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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탑기사 ‘다스 비자금’ 단서, 검찰 캐비닛에 있다

‘다스 비자금’ 단서, 검찰 캐비닛에 있다
2008년 BBK특검, 100억대 비자금 찾아내고도
당선자 MB 2시간 조사한 뒤 불기소 ‘면죄부’
당시 수사기록·파견 검사 모두 검찰에 있어
MB 재직중 공소시효 감안 수사 서둘러야

[한겨레] 강희철 기자 | 등록 : 2017-10-17 11:48 | 수정 : 2017-10-17 11:58



어제(16일) 오전 출근 무렵 한 때 포털의 이른바 ‘실검’(실시간 검색어) 1위를 ‘다스(DAS)’가 차지했다. 알짜배기로 알려질 만큼 건실하다고는 하지만, 삼성이나 현대차도 아니고 카시트를 전문으로 만드는 작은 기업의 이름이 잠시나마 실검 1위에 오른 경우는 전례를 찾기 힘들다. 다스는 왜 이렇게 ‘유명세’를 타게 됐을까. 이명박(MB)과의 ‘모종의 관계’ 때문이다.

그런데, 이 양자의 관계도는 매우 복잡하다. 여러 사람이 여러 버전으로 설명을 했지만, 김경준과 도곡동 땅과 비비케이(BBK)와 엘케이이(LKe)뱅크와 e뱅크증권중개와 옵셔널벤쳐스와 스위스 은행을 끼고 돌고 우회하고 명의를 빌리고 통하고 해서 결국은 “다스가 엠비 소유”라는 주장으로 요약된다. 듣다 보면 어지럽다.

▲ 이명박(오사카산 쥐새끼, 쪽발이)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 출근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서초동 법조계에서 사건 좀 해봤다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 한 특검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던 법조계 인사의 말이다. “나도 다스는 (엠비 소유가 아닌가) 의심스럽다. 그런데 이걸 비비케이, 김경준에다 스위스 계좌까지 연결하면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진다. 그런 설명을 듣고 있노라면 더 이상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니 일반인들은 오죽 하겠나.” 어쩌면 그것이 이 10년 넘은 의혹이 여태 해소되지 않고 있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은 다스와 엠비의 관계를 밝힐 명징한 수사 단서에 관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 단순히 “다스는 누구꺼?”라는 의문에 한 줄 보태려는 게 아니라 엠비가 소유한 것으로 보이는 ㈜다스의 ‘범죄’ 혐의에 관한 것이다. 때마침 서울중앙지검은 16일 “다스와 관련한 이명박 고발 사건을 산하 첨단범죄수사1부에 배당해 수사한다”고 밝혔고, 박상기 법무부 장관도 이날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이명박도 혐의가 확인되거나 증거가 나온다면 수사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질의에 “수사대상에서 제외되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한 마당이니, 지금이 이 이야기를 ‘재론’할 적기인듯 싶어서다.

얘기는 ‘복기’에서 출발한다. 2007년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닥친 12월 17일, 국회는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이명박의 주가조작 등 범죄혐의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이명박특검 혹은 비비케이특검)의 설치에 관한 법률’이라는 긴 이름의 법률안을 통과시킨다. 그리고 이틀 뒤 대통령 선거에서 대다수가 예상한대로 엠비가 당선됐다. 해가 바뀌어 1월 7일 판사 출신인 정호영 변호사가 특별검사로 임명된다. 준비기간을 거친 정호영 특검은 15일 공식 출범과 함께 40일간의 수사를 개시한다. “불편부당한 자세로 선입견 없이 진실을 밝히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그때 그가 한 말은 수사 책임자다웠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달라도 많이 달랐다. 특검은 활동시한이 거의 끝나갈 무렵 엠비를 겨우 2시간, 그것도 방문해 조사하고는 21일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론은 엠비와 관련한 모든 혐의의 내사종결, 즉 무혐의 처분이었다. “모든 의혹이 해소되고 새 정부가 산뜻하게 출범할 수 있게 돼 다행이다.” 당시 엠비가 내놓은 소감문이다.

그러나 ‘발표문’이 전부는 아니었다. 정호영 특검은 어쩌면 그때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 특검팀이 다스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100억 원대 비자금이 조성된 사실을 확인했다. 수사팀에서 2003년~2008년까지 5년에 걸친 다스의 광범위한 자금흐름을 쫓다 130억~150억원 규모의 ‘(장)부외자금’(비자금)이 만들어진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심지어 이 자금을 관리하던 경리부서 직원이 그 중 3억 원을 빼내어 아파트를 사는 데 썼다는 사실까지도 확인하고, 당사자를 조사했지만 수사는 거기서 멈춰섰다.

특검은 이런 사실을 발표문에 넣지도 않고, 검찰에 통보도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덮었다. 이미 대통령 당선인 신분인, ‘예약된 최고 권력자’ 혹은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 혹은 범죄를 정면으로 겨누기엔 특검이 너무 취약했던 것일까. 수사가 끝나자 특검에 파견됐던 검사와 수사관들은 모두 검찰로 원대 복귀했다. ‘공문서’인 특검의 수사기록도 이들과 함께 검찰로 넘어와 문서 창고로 옮겨졌다.

그로부터 4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2012년 10월께 <한겨레>는 검찰 내부자로부터 중요한 ‘제보’를 받았다. 바로 이 내용이다. “다스에서 2003년부터 약 5년간 100억대 부외자금이 조성됐다고 한다. 당시 정호영 특검팀 계좌추적에서 나온 거다. 그런데 특검이 덮어버렸다. 특검이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사안이다. 수사기록은 전부 검찰로 넘어와 있다. 그때 파견 갔던 검사들을 접촉해 봐라. 애초에 그들 입에서 나온 얘기다. 위에 보고도 했다고 한다. 당연히 대검(검찰 지휘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정호영 특검에게도 물어봐라.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왜 이 얘기가 4년만에 되살아난 것일까. 이 제보를 받은 시점은 이른바 ‘사저특검’ 도입이 진행 중인 상황이었다. 즉 엠비 아들 이시형씨가 장차 아버지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머물 사저 터를 사들이면서 현금 6억 원을 사용했는데, 그 출처가 의혹을 샀다. 이씨의 경제활동 이력이나 소득으로 봤을 때 ‘현금 6억 원’은 소명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결국 10월 16일 이 사저 문제를 포함해 엠비 관련 의혹 전반을 다룰 특검 수사가 개시됐고, 이 무렵 <한겨레>에 과거 다스 비자금과 관련한 제보가 이뤄진 것이다.

회사 후배인 김태규, 김정필 기자 등이 한동안 확인 취재에 매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해 11월 9일치 <한겨레> 1면(“4년전 BBK 특검, 다스 100억대 비자금 알고도 덮었다”)과 4면(“‘100억대 비자금 확인 파장/시형씨가 큰아버지에게 빌렸다는 6억, ‘다스 비자금’ 일부?)에 기사를 내보냈다. ‘현직 대통령’과 관련한 놀랄만한 내용이었지만 ‘파장’은 일지 않았다. 예상한 대로 이명박 정부도, 정호영 특검 쪽도, 검찰도 조용했다. 당시 최초 제보를 받았던 기자도 ‘각하의 반면교사’라는 칼럼을 쓰며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 정호영 특별검사가 2008년 2월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에 있는 특검 사무실에서 이명박 당선인의 다스·도곡동 땅 차명소유 의혹 등에 관한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정 특검은 다스 수사과정에서 나온 100억 원대 비자금을 수사하지 않은 채 이 당선인과 관련한 의혹 모두를 내사 종결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이 기사의 취재 과정, 기사가 나간 뒤 보인 정호영 특검 쪽 인사들의 반응이다. 파견을 갔던 검사들은 기자들을 피했다. 전화도 받지 않고, 만나주지도 않았다. 겨우 접촉이 된 당시 특검보(이상인 변호사)는 “특검 당시의 일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 수 없다. 특검께 물어보라”고 했다. 수사 결과에 최종 책임을 져야 할 정 특검은 아예 만날 수 없었고, 연락도 닿지 않았다. 실제로 두 김 기자는 그의 해명을 들으려고 집과 사무실을 여러 차례 찾아갔지만, 얼굴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봐줬다’ 혹은 ‘덮었다’는, 특검 입장에서는 모욕적으로 들릴 기사가 나갔는데도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한겨레> 기자들을 명예훼손으로 걸게 되면 기사의 전제가 되는 사실관계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을까 우려해서일 것이라고 우리끼리 짐작만 했다.

당시 사저특검도 정호영 특검의 수사기록을 보겠다고 했지만, 수사는 여러 이유로 인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당시 특검 관계자를 최근 만나봤다.

“그 사저 터 매입자금 6억 원의 출처는 애초에 저쪽(엠비쪽)에서 설명을 하지 못했다. 근데 수사가 더 진행되면서 그것과 별개로 이시형씨가 전세자금으로 사용한 돈이 나왔는데, 이것 역시도 이씨의 당시 소득이나 경제활동으로 볼 때 너무 큰 금액이어서 소명이 안 됐다. 우린 계속 소명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시간을 끌다가 결국 저쪽에서 하나를 인정하고 하나는 접자는 식으로 나온 것이다. 터 매입 자금을 큰아버지(이상은씨)가 줬다고 한 거지. 그 현금다발이 쌓여 있었다는 방인지 뭔지도 수사관들을 보내 살펴봤는데, 특검 수사가 개시되기 얼마 전까지도 거기에 벽장 한 가득 현금 다발이 쌓여 있었다고 하더라. 무슨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물론 그 때는 다 치우고 없었지만. 그때 그 큰어머니(엠비 형수·이상은씨 부인)라는 분이 그 말을 했다는 거다. ‘뭔 돈? 누가 (6억 원을 빌려줬다고) 그래요?’라고.”

당시 사저특검은 무엇보다 시간이 없었다. 청와대 압수수색도 검토만 하다 결국은 영장 청구조차 하지 못했다.

“우리도 수사를 해봤으니까 ‘감’이 있는데, 그 6억 원에서 딱 한 칸만 더 따라가면 원래 그 돈이 나온 ‘저수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여러 이유로 거기까지는 못 간 거지.”

대통령은 재임 중 형사소추를 당하지 않는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다. 동시에 임기 5년간 공소시효의 진행도 정지된다. 엠비도 예외가 아니다. 다스에서 2003년~2005년 사이 100억 원대 비자금이 조성됐다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위반 행위(횡령·배임과 탈세)가 이뤄졌다는 뜻이고, 만약 엠비가 그 범죄의 주범 내지 공범일 경우 공소시효는 10년이다. 이 범죄가 단계별로 끊기지 않고 계속해서 이뤄진 ‘포괄일죄’라고 본다면, 엠비의 공소시효는 아직 살아 있다. 게다가 특검의 수사기록은 검찰 문서창고에 보관돼 있고, 당시 이 특검에 파견됐던 검사들은 지방의 고검장을 비롯해 대부분 검찰에 재직 중이다. 무슨 인연인지, 다스 관련 고발 사건을 배당받은 서울중앙지검 첨수1부장도 당시 그 특검에 파견을 갔던 검사다.

5년 전에 기자는 칼럼 끄트머리에 이런 글을 썼다. “앞으로 누군가가 ‘다스 비자금’을 검찰에 고발하면 5년 동안 굳게 막아놓았던 봉인은 풀릴 수밖에 없다. 검찰 수사는 이명박의 불소추 특권이 사라지는 내년 2월 이후에나 본격화하겠지만, 다스의 실소유주가 누구인지, 이명박의 아들이 가져다 쓴 6억 원이 어느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인지, 그에게 재산상 이익을 몰아준 사저 터 매입 계획은 누가 입안하고 결정한 것인지, 비비케이 특검이 왜 다스 비자금을 덮었는지를 모두 밝혀야 할 것이다. ‘정의는 비록 늦게라도 어김없이 오는 것’(고대 아테네의 정치가 솔론)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각하의 반면교사’)

많이 지체됐지만, 지금이 그 ‘봉인’을 풀 때다.


출처  ‘다스 비자금’ 단서, 검찰 캐비닛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