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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에 전달된 ‘전술핵 찬성’ 450만 서명 진짜일까?

자유한국당에 전달된 ‘전술핵 찬성’ 450만 서명 진짜일까?
극우단체 ‘엉터리 서명운동’ 받아 들고 “벌써 500만명 서명됐다” 좋아한 홍준표
[민중의소리] 신종훈 기자 | 발행 : 2017-10-18 11:02:12 | 수정 : 2017-10-18 12:22:39


▲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열린 북핵 폐기·전술핵 재배치 국민 서명패 전달식에 참석한 홍준표(오른쪽) 대표가 이정린 북핵 폐기·전술핵 재배치 천만인서명운동본부 집행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미국에 '전술핵 재배치'를 요청하기 위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방미를 엿새 앞둔 17일, 자유한국당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한 시민단체(?)가 홍 대표의 '전술핵 재배치' 주장에 동참하겠다며 450만 '국민 서명패'를 선물로 들고 온 것이다.

단체 이름도 '북핵폐기·전술핵재배치 천만인서명운동본부'다. 마침 '전술핵 재배치 1천만 서명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는 홍 대표 입맛에도 '딱'인 이름이다. 그래서인지 홍 대표가 직접 이들을 맞아 서명패 전달식까지 열었다.

그가 서명운동본부로부터 전달받은 서명패에는 이렇게 써있었다. '국민서명 4,521,648명(17. 10.16 현재)'. 452만 명? 두 눈을 의심했다. 이 단체는 홍 대표가 연말까지 목표로 세운 서명 인원 1천만 명의 절반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전술핵 찬성' 서명을 했다며, 그 뜻을 홍 대표가 미국 조야에 대신 전해달라고 찾아온 것이었다.

452만 명이라는 게 얼마나 황당한 숫자인지 감이 안 온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한국 제2의 도시 부산의 인구수가 348만 여명(2017년 8월 기준)인데 그보다 100만 명이 더 많다. 게다가 서울 8개 노선(1~8호선)의 하루 평균 승차인원인 484만 여명(2016년 실적 기준)에 육박하고, 남한 전체 인구(5천144만여 명, 2016년 기준) 10분의 1에 달하는 숫자다.

다른 서명운동 참여자 수와 비교해보면 더 확 와닿는다. 충격과 공포로 온 국민을 집단 우울증에 빠뜨린 2014년 4.16 세월호 참사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650만 서명운동으로 천신만고 끝에 탄생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특조위를 지키기 위한 서명운동에 추가로 참여한 시민이 70만이다.

나라를 뒤흔들고 대통령이 권좌에서 쫓겨나는 하나의 이유가 될 정도의 특대형 이슈여야 겨우 가능한 숫자가 650만인데, 고작 남의 나라의 전술핵무기 들여오자고 450만이 서명했다고 선전하면 국민이 그걸 곧이 곧대로 믿어야 하나?

더구나 반세기가 넘도록 이 나라를 지배해온 자유한국당이 1천만 서명을 목표로 전력을 다하고 있는데도 최근 실적이 전국적으로 30만을 조금 넘는 수준이라는 말이 당 안팎에서 들려오고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대국민 서명운동이 ‘도깨비 방망이’?

더 황당한 대목이 있다. 지난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인 2월 29일 극우단체 인사들로 꾸려진 문제의 서명운동본부는 그해 7월 "4개월 만에 '북핵폐기' 서명에 250만 여명이 참여했다"며 이 뜻을 미국 조야에 전하겠다고 대대적인 언론 홍보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금세 350만 명의 서명이 모였다며 미국을 한 번 더 찾았다.

당시 서명운동본부의 이름은 '북핵폐기 천만인서명운동본부'였다. 그러던 것이 1년이 흘러 자유한국당 대국민서명운동이 벌어진 뒤에는 '전술핵 재배치'라는 이름이 덧붙여진 채 450만이 모였다며 다시 홍 대표의 방미 선물로 돌아왔다. 그리고 순식간에 자유한국당 목표치의 절반 가까이가 채워졌다. 대국민 서명운동이 무슨 도깨비 방망이인가?

서명운동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이름(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개인정보 포함)을 모아 평화적인 방법으로 집단적 의사표시를 하는 일종의 정치행위다. 따라서 그 행위 과정의 신뢰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여론조작,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사문서 위·변조, 나아가 공무집행방해 시비에 휘말리기 십상이다.

마찬가지 문제의식의 연장선에서 보면 이 단체의 '450만 국민 서명'이라는 주장의 신뢰성에 의문이 생긴다. 왜냐하면 이 단체가 자유한국당사를 찾아온 모습이 너무 단출했기 때문이다. 보통 서명운동의 결과물로 '전달식'이라는 것을 한다고 하면 묵직한 박스 수십개가 차곡차곡 쌓여있는 모습을 떠올리지 않는가?

그러나 이 단체의 집행위원장, 부위원장, 사무총장이라는 사람들은 "500만에 육박하는 자유대한민국의 평화 갈망 의지와 국민의 뜻을 미국 조야에 전해달라"는 기자회견을 진행한 뒤, 달랑 '국민서명 4,521,648명'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서명패' 하나를 홍 대표에게 전달하는 모습을 연출하고는 떠나버렸다. 서명용지? 그런 건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열린 북핵 폐기·전술핵 재배치 국민 서명패 전달식에 참석한 홍준표(왼쪽 두번째)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린 북핵폐기·전술핵재배치 천만인서명운동본부 집행위원장, 홍준표 대표, 이종혁 최고위원. ⓒ뉴시스


누구나 엉터리로 작성 가능한 ‘서명란’, 순식간에 ‘1만명’ 서명도 가능

기자는 너무나 궁금했다. 그게 '국민의 뜻'이라고 주장할 만한 증거가 있어야 하지 않은가? 서명운동본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홍 대표가 미국에 간다고 하니까, 우리가 서명 받은 것을 통해서 '전술핵 재배치'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국민의 뜻'을 전달한 거죠. 서명 용지를 전달한 건 아니고요"라고 설명했다.

'북핵 폐기'와 '전술핵 재배치'를 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한 결과물을 전달한다면서 서명용지 한 장 없다니. 그러면서 "국민의 뜻"을 전달한 것이라고? 자유한국당 관계자에게도 물어봤다. "시민단체들의 '북핵 폐기' 뜻을 담아서 전달하는 행사였다"는 마찬가지 답변이 돌아왔다. 이어 '북핵폐기.com'이라는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국민의 뜻'이 담긴 서명현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친절하게 일러주며 기자의 의심을 일축했다.

들어가 봤다. '북핵폐기.com'. 이런 곳이다.

▲ ‘북핵폐기.com’ 홈페이지 ⓒ홈페이지 캡쳐

곧바로 눈에 들어오는 '서명현황 현재 4,521,651 명'(17일 16시 40분 기준). 홍 대표에게 전달된 서명패에 쓰여진 '10월 16일 현재' 숫자보다 한나절만에 3명이 늘어난 숫자다. 하지만 사실은 '2명'이다. 나머지 1명은 기자가 보탠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서명 현황이 실시간으로 변하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기자도 서명을 해봤다.

▲ ‘북핵폐기.com’ 홈페이지에서 엉터리 서명이 가능한 모습. ⓒ홈페이지 캡쳐

이름은 '신짱구', 지역은 '율도국', 전화번호는 '010-1234-5678', 이메일 주소는 'korea@korea.com', 응원메세지는 '전술핵 반대합니다.' 라고 기입한 뒤 서명해봤다.

그러자 곧바로 1명이 추가됐다. '서명현황 현재 4,521,651 명'은 이렇게 작성된 기자의 서명 한 표가 반영된 것이다. 이것을 보고도 자유한국당에 전달된 서명패에 '450만 국민의 뜻'이 담겼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웃음이 나왔다. 이런 방식으로 하자면 100명에게 100장만 할당이 돼도 '1만 명'의 숫자가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실시된 역사교과서 국정화 의견 수렴 과정에서 벌어진 '차떼기 여론조작'이 떠올랐다. 기자가 서명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작성된 '이완용/대한제국 경성부 조선총독부/010-1910-0829(경술국치일)', '박정희/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 청와대/010-1979-1026(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일)' 따위의 서명용지가 발견된 사건 말이다.

참고로, 교육부 역사교과서국정화진상조사위원회는 이 같은 여론조사 조작 의혹에 대해 김상곤 교육부 장관에게 수사를 의뢰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서명운동본부 “우리가 중복까지 가려낼 순 없지 않나, 일단은 그냥 간다”
홍준표, 엉터리 ‘안보장사’로 ‘혹세무민’하나

서명운동본부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 중복 서명이 가능하면 숫자의 신뢰성에 문제가 생기지 않느냐'는 기자에게 "이게 중복도 좀 있다고 봐야지. 우리가 중복까지 다 가려낼 순 없으니까. 일단은 서명한 숫자대로 그냥 가는 거죠. 천만 명이 될 때까지는 계속 해야 되니까. '천만인서명운동'이니까 천만 명 목표대로 가는 거죠"라고 '쿨'하게 답했다.

1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서명운동본부를 만난 홍 대표는 "우리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시민단체에서 어제까지 452만1천648명 서명운동이 진행된 것을 저희 당에서 한 것과 합치면 곧 500만 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가 합심해서 이 정부를 대신해 5천만 국민이 핵 인질 사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홍 대표는 올해 연말까지 '1천만 국민 서명'을 마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추측건대, 연말께 가서 목표치에서 약간(?) 모자란 것처럼 '700~800만 국민 서명을 받는 성과를 냈다'며 아쉬워하는 모습을 연출하지 않을까?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가장 짭짤한 장사가 '안보장사'일테니 말이다. 그러나 장사의 기본은 '신뢰'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유한국당의 '전술핵 재배치' 여론전은 '혹세무민'에 불과할 것이다.

▲ 자유한국당 발정·막말·영감탱이 홍준표 대표 ⓒ양지웅 기자


출처  자유한국당에 전달된 ‘전술핵 찬성’ 450만 서명 진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