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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영업비밀’이란 신화 뒤에 숨긴 진실은 무엇일까

삼성전자가 ‘영업비밀’이란 신화 뒤에 숨긴 진실은 무엇일까
‘삼성 반도체’ 안전진단보고서 공개 결정
[한겨레] 정은주 기자 | 등록 : 2017-11-05 09:45 | 수정 : 2017-11-05 10:35


▲ 2013년 1월 29일 경기지방경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강유역환경청, 소방방재청, 경기소방재난본부, 화성동부경찰서 관계자들이 불산 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한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사업장에서 현장감식을 벌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산업재해가 발생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안전보건 실태를 지적한 2013년 5월 노동부의 안전진단보고서가 95% 이상 공개된다. 법원이 지난달에 “생명, 건강과 관련한 국민의 알권리는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을 앞선다”고 최종 판결했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는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다가 목숨을 잃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산재를 입증할 중요 증거로 활용될 것이다. ‘영업비밀’이라는 신성불가침의 신화를 덧씌워 진실을 감추려던 이들의 행적을 되짚어봤다.

법원, 안전진단보고서 공개 판결
‘삼성 반도체’ 보건안전 실태 담겨
보고서 작성된 지 5년 5개월 만에
반도체 노동자·주민 손 들어줘

2013년 화성공장 불산 누출 사고
삼성, “영업비밀 보호” 주장하며
정부보고서 ‘변조’해 국회 제출하고
“의원이 영업비밀 유출” 공세 펴기도



“생명, 건강과 관련한 국민의 알권리는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을 앞선다.”

산업재해가 발생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안전보건 실태를 지적한 2013년 5월 정부 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행정10부(재판장 김흥준)는 지난달 13일 삼성전자와 산재 소송을 벌인 반도체 노동자와 인근 주민 등 6명이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경기지청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거부 취소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삼성전자 안전진단보고서에서 작업자 이름이나 생산공정 흐름도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정이다. 노동부(피고)가 상고하지 않아 이 판결은 최종 확정됐다. 이 보고서가 작성된 지 5년 5개월 만이다. 임자운 변호사는 “삼성 반도체 공장의 안전 관리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자료가 95% 이상 공개된다”며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산재를 입증할 중요 증거로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작성한 안전진단보고서가 공개되기까지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영업비밀’이라는 신성불가침의 신화가 덧씌워졌던 그 시간들을 되짚어봤다.


1. 거부의 시간 “사람이 죽어도 영업비밀은 보호돼야”

2013년 1월 경기도 화성시 반월동에 있는 삼성전자 화성공장의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유독물질인 불산(불화수소산)이 누출돼 하청업체 노동자 1명이 죽고 4명이 다쳤다. 불산 가스를 제대로 제거하지 않은 채 공급배관 교체 작업을 벌이다 누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특별감독을 실시했다. 2,004건(삼성전자 1,934건, 협력업체 70건)의 법 위반 사실이 적발됐다. 유해 화학물질을 다루는 화학물질 중앙공급실 등에 독성물질을 안전하게 중화시키는 배기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게 대표적이었다. 또 방독 마스크 등 보호구의 지급·사용이 미비했던 점도 드러났다. 권오현 당시 삼성전자 대표이사(부회장)는 대국민 사과문을 내어 “빠른 시일 안에 환경안전 업무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나가겠다”고 말했다.

▲ 권오현 당시 삼성전자 대표이사(부회장)가 2013년 5월 13일 오후 경기 기흥사업장을 방문한 국회 환경노동위원들에게 불산 누출 사고와 관련 재발 방지를 밝히며 사죄하고 있다. 기흥/김경호 선임기자

삼성전자의 안전·보건 관리가 총체적으로 부실하다는 걸 확인한 노동부는 화성공장과 더불어 용인시 기흥구 농서동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기흥공장)도 안전진단을 받으라고 명령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정부가 특별감독하고 진단명령을 내린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점검 결과는 안전진단보고서에 담겨 삼성전자와 노동부에 각각 제출됐다. 이 보고서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화학물질 관리 전반에 대한 정부의 공식 진단이다. 이 공장에서 산재를 입은 노동자의 작업환경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인 셈이다.

2014년 6월 은수미 당시 의원(민주통합당)은 삼성전자 안전진단보고서를 제출하라고 노동부에 요구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며 내용의 상당 부분을 가리고 제출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병을 얻은 노동자들도 산재 소송을 벌이면서 이 보고서를 증거로 요구하자 삼성전자는 거부했다. 법원이 14차례나 제출을 요청하거나 명령을 내렸는데도 꿈쩍하지 않았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가 노동부에 재차 요구했지만 역시 거부당했다. 결국 2015년 8월 보고서 공개를 둘러싼 행정소송(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이 시작됐다.

▲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과 반올림, 참여연대가 2016년 12월 1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전자와 노동부를 사문조 위변조 및 행사,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다고 밝혔다. 강병원 의원실 제공


2. 조작의 시간 “영업비밀 가리는 정부 보고서 변조는 권리”

국회도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강병원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바통을 넘겨받아 2016년 9월 국정감사에서 보고서 제출을 다시 요구했다.

이번에도 노동부는 철저히 삼성전자의 편에 섰다. 삼성전자가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며 정부 보고서를 변조했고 노동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원본과 대조해보지도 않은 채 그냥 국회와 법원에 이를 제출한 것이다.

예를 들어 보고서 원본엔 ‘엘(L)8 공장’의 11가지 위험요인에 대한 문제점과 개선대책을 제언하는 11줄짜리 표가 있지만, 삼성전자가 변조한 보고서엔 표 가운데 7줄이 삭제돼 있었다. 또 원본에 ‘위험요인: 11건’이라고 적힌 부분은 ‘위험요인: 4건’으로 고쳐져 있었다.

삼성전자 쪽은 “실무자가 (정부) 보고서 원본 파일을 열어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내용을 지우는 과정에서 삭제된 내용에 맞게 본문도 수정했다. 일부 고쳐선 안 될 것을 고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업비밀 내용을 가리는 것은 삼성전자의 권리로 (정부 보고서를 수정한 것은) 실정법 위반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노동부는 삼성전자에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

1심 재판부도 ‘영업비밀의 신화’를 일부 수용했다. 2017년 3월 수원지법 행정2단독 김강대 판사는 보고서를 공개해달라는 행정소송에서 “삼성전자의 경쟁력과 영업상 이익을 상당히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진단 총평을 제외하고는 비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전부 비공개하는 것은 위법하지만 △생산공정 흐름도와 역할 △생산라인 배치도 △노동자 수 △장비·설비·시설의 종류와 개수, 사양, 작동 방법 등 상세 내용과 배치 현황 △사용되는 물질의 종류와 투입량 등 경영·영업상 비밀에 해당하는 정보는 공개하지 않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김 판사는 “비록 그 내용이 파편적, 단편적이라 하더라도 경쟁업체들이 (공개된) 정보를 재구성하거나 종합해 삼성전자의 생산설비와 체계, 공정 등에 관한 여러 정보를 추출할 수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3. 반격의 시간 “국회의원이 영업비밀을 유출했다”


그러나 국회에 이미 제출된 삼성전자의 안전진단보고서를 검토한 강병원 의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 의원은 “1심 재판부가 경영·영업상 비밀로 판단한 정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삼성전자의 안전보건상 잘못을 지적하는 내용이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급성중독 사망사고가 발생한 물질에 대한 성분 정보를 영업비밀로 분류해 관리하는 것은 부적정함”,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물질유해위험에 대한 실질적인 교육이 미흡했던 것으로 사료됨”, “외부점검, 안전진단을 통해 문제점을 발굴하겠다는 자세보다는 문제가 없다고 하거나, 문제점 축소를 지향하는 왜곡된 문화가 상당히 강함” 등이라고 지적돼 있다. 당시 <한겨레>는 안전진단보고서가 밝힌 삼성전자의 안전보건상 잘못을 열람한 뒤 강 의원의 지적이 타당하다고 판단해 이를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국회(강병원 의원)가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을 제3자(한겨레)에게 유출했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삼성전자는 정부와 그 산하기관 등에 모든 자료를 투명하고 성실하게 제출한다. 제출받은 기관이 삼성의 지적 자산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실제로 노동부도 지난 10월 국회에 해당 문서를 제출하면서 제3자에게 유출되지 않도록 당부했다.”(2017년 3월 22일 ‘삼성뉴스룸’에서)

삼성전자의 반박은 거짓이었다.

첫째, 삼성전자는 법원의 거듭된 문서송부 촉탁에도 영업비밀이라며 관련 정보를 제출하지 않았다. 2017년 8월 대법원이 삼성전자 엘시디(LCD) 공장 노동자의 다발성경화증을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삼성전자가 영업비밀이라며 정보의 공개를 거부해 유해물질의 구체적 종류나 노출 정도를 증명하기 곤란해진 사정도 (산재 인정에)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할 정도였다.

둘째, 노동부가 국회에 삼성전자 안전진단보고서를 제출하며 덧붙인 단서는 삼성전자의 설명과 다르다. “영업비밀이 포함되어 있어 공개될 경우 제3자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으니 붙임 자료 관리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3자(삼성전자)의 이익”을 해치지 않도록 국회가 자료를 잘 관리해달라는 요청인데 삼성전자는 “제3자 유출 불가”를 당부한 것처럼 왜곡했다.

셋째, 강 의원은 자료를 잘 관리했다. 법원이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이라고 언급한 보고서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안전보건상 문제점만 골라서 지적했다. 그 내용은 삼성전자의 이익을 해치는 영업비밀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뒤늦게 속마음을 내비쳤다. “법원이 영업비밀로 판결한 문서를 <한겨레>가 열람한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이 극히 일부인지 상당 부분인지도 <한겨레>가 판단할 영역이 아니다.”(2017년 3월 24일 ‘삼성뉴스룸’에서) 삼성전자가 영업비밀이라고 이름 붙인 문서는, 그 문서 작성자가 아무리 정부라 하더라도 국회의원이나 언론이 검증할 수 없다는 얘기다.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은 신성불가침이라는 선언이다.


알권리는 영업비밀에 우선한다

그러나 신화는 깨졌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노동자와 지역 주민의 생명·신체 또는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는 삼성전자의 경영·영업상 비밀에 대한 이익을 앞선다”고 판결하며, 안전진단보고서 95% 이상을 공개하고 극히 일부만 영업비밀로 인정했다. 이유는 이렇다.

첫째, 안전진단보고서는 노동자와 지역주민의 생명·신체의 안전과 건강과 관련한 정보다. 그 구체적 내용은 알권리를 충분히 보장받아야 한다.

둘째, 이 보고서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작성한 문서다. 정보가 공개돼야 노동부가 제대로 감독했는지,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했는지, 보완대책을 철저히 수립했는지 국민이 투명하게 감시할 수 있다.

셋째, 산재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진단은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 노동자의 불안을 제거하고 신뢰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넷째, 비공개해 보호되는 삼성전자의 이익에 비해 알권리 충족, 노동자 또는 지역 주민의 건강·안전의 보호라는 공익이 더 크다.

강병원 의원은 “국민의 생명권이 얼마나 중요한지 밝힌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산재로 하루하루 고통받으며 죽어갔다. 어떤 작업 환경이었기에 병에 걸렸는지 밝혀줄 의무가 살아남은 우리의 몫이다. 삼성전자는 영업비밀이라는 거짓 신화를 덧씌워 안전진단보고서에 엄청난 기술이 담겨 있고, 그래서 이를 공개하면 매국노가 되는 것처럼, 정부와 국회, 그리고 국민을 속여왔다. 이 거짓을 바로잡은 회초리 같은 판결이다.


삼성전자 감추고 싶었던 것들

삼성전자가 감추고 싶었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안전진단보고서에 담긴 주요 내용을 보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회사의 안전보건 수준이 높은 것으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있으며, 외부 지적에 대한 상당히 방어적이고 내부의 문제를 노출하지 않으려는 문화가 강함. 근본적인 개선과 발전에 상당히 지장을 초래할 위험이 있음.”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문제가 최근 수년 동안 수차례 지적되었음에도 현재까지 충분히 개선되지 않고 있음.”

“이해하기 곤란할 정도로 글씨 크기가 작은 영문 경고표시가 부착돼 관계자들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

“가스감시기가 높아 공기보다 무거운 가스가 누출되면 감지가 불가능함”

“작업자는 화상이나 신경독성을 일으킬 수 있는 성분이 포함돼 있는지를 모를 수 있음.”

삼성전자 관계자는 “무엇을 영업비밀로 볼지는 안과 밖의 시각이 다를 수 있다. 우리도 (정부의 안전진단)보고서 전체를 영업비밀이라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그동안 우리가 쌓아온 노하우, 생산기술이 들어 있어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보고서를 열람한 것 자체가 삼성전자의 영업비밀 유출이라고 주장하던 기존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출처  삼성전자가 ‘영업비밀’이란 신화 뒤에 숨긴 진실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