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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합의’로 국민 속였던 박근혜정부의 한미 방위비 협상

‘이면합의’로 국민 속였던 박근혜정부의 한미 방위비 협상
‘추가 현금지원’ 담은 이면합의 해놓고 국회 보고도 누락
[민중의소리] 최명규 기자 | 발행 : 2018-02-22 12:24:04 | 수정 : 2018-02-22 12:45:50


▲ 한미, 제9차 방위비 분담금 협정 정식서명. ⓒ뉴시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9차 한미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타결 당시 '이면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한국이 미국 측에 지원하는 군사건설비와 관련해 '추가 현금 지원'의 가능성을 열어 사실상 '현물 지원'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이면합의는 국회 비준동의 과정에서 은폐됐다.


확인된 ‘이면합의’와 ‘보고누락’

9차 방위비 분담 협상 관련 외교부 자체 태스크포스(TF) 조사 결과를 보면 '이면합의'의 존재와 '보고 누락' 사실이 확인된다. 이에 따르면 2014년 1월 11일 본협정 타결 당시 한미 양국은 '특정군사건설사업'에서 '예외적 추가 현금 지원'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문안을 본협정 또는 교환각서가 아니라 '이행약정'(협정을 이행하기 위한 약정)에 넣기로 합의했다. 이행약정은 국회 비준동의가 필요 없다. 해당 문안이 담긴 1장 짜리 문서에는 협상 부대표(박철균 현 국방부 국제정책차장)가 국방당국을 대표해 가서명했다.

하지만 정부는 그해 2월 국회에 비준동의안을 제출했는데 이 내용은 쏙 뺐다. 해당 문안은 같은해 4월 국회에서 비준동의안이 통과되고 난 뒤 6월에 체결된 이행약정으로 고스란히 들어갔다. 문안은 다음과 같다.

특정군사건설사업이 군사적 필요와 소요로 인해 미합중국이 계약 체결 및 건설 이행을 해야 하며 동 목적을 위해 가용한 현금 보유액이 부족하다고 한국 국방부와 주한미군사가 협의를 통해 합의하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추가 현금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21일 TF 조사 결과와 관련해 "협정 타결 시점에 '예외적 현금 지원' 문안을 합의했음에도 보고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다만 TF는 '이면합의'라고 명확히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TF는 "제3자적 시각으로 봤을 때 이면합의 의혹을 초래할 소지를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애매한 표현을 사용했다.

'이면합의'의 존재는 작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외교통일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폭로에 의해 처음 드러났다. 외교부는 이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TF를 구성해 활동해 왔다.


‘현물지원’ 원칙 훼손시킨 9차 협정

'이면합의'와 '이행약정'이라는 꼼수가 동원된 9차 협정은 8차 협정에서 성과로 꼽혔던 '현물 지원' 원칙을 훼손시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2009년 8차 협정에서 군사건설비는 '현물 지원'을 기본으로 명시하고 있었다. 8차 협정 3조는 "대한민국이 지원하는 건설은 2009년부터 점진적으로 현물 지원으로 전환되며, 2011년부터는 시설의 설계 및 시공감리와 관련된 비용을 제외하고는 전면 현물로 지원된다"고 적시했다. 교환각서에 따르면 설계 및 시공감리는 총 사업비의 평균 12%이다. '현물 88%+현금12%'인 셈이다.

현물 지원을 기본으로 한 이유는 미군 측이 1조원 가량의 미사용 현금을 통해 막대한 액수의 이자 수익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7차 협정까지는 한국이 군사건설비를 전액 현금으로 지원했다.

그런데 9차 협정에서는 "시설의 설계 및 시공감리와 관련된 비용을 제외하고는 전면 현물로 지원된다"는 문구가 아예 삭제됐다. 동시에 교환각서에 '현금 제공' 문제와 관련해 "이행약정을 체결할 수 있다"는 문구가 추가됐다. 이는 '예외적 추가 현금 지원'을 핵심으로 하는 이면합의 문안을 이행약정에 넣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에 따라 설계·감리 비용 이외에 추가로 현금이 지원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러한 이행약정이 실제로 집행된다면 현금 지원액은 총 사업비의 12%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8차 협정에서 합의된 '현물 지원' 확대 방침이 허물어지게 되는 것이다. '현물 88%+현금 12%' 원칙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외교부 TF에서도 인정한 대목이다.

9차 협정 타결 이후 국회 공청회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지적했던 유영재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은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이면합의를 통해 현금 지원 가능성의 길을 열고 국회 비준동의를 거친 다음에 이행약정에 집어넣은 것은 아주 의도적으로, 체계적으로 국회를 속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 위원은 "10차 협상에서는 국민들을 속였던 부분들을 바로잡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금 지원을 할 수 있는 길을 불법적으로 연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차단해야 한다"며 "현물 지원 원칙을 명확하게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누가, 왜?

'추가 현금 지원' 내용을 이면합의를 통해 추후 이행약정에 넣는 꼼수를 택한 이유는 국회 비준동의 문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당장 8차 협정에서 합의됐던 '현물 지원' 원칙을 명시적으로 훼손시키는 부분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은 이면합의와 이행약정에 명시된 '특정군사건설사업'이다. 이는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최고기밀 정보를 다루는 보안시설인 민감특수정보시설(SCIF·스키프)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그러한 군사적 필요에 의한 시설이 스키프 시설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일반적 이해가 일치하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미국 측은 줄곧 스키프에 대해 현금 지원을 요구해 왔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경협 의원은 전화통화에서 "스키프는 청와대도 도감청이 가능하고, 한국인은 접근도 안 된다"며 "정보주권을 미국이 다 가져가는데 그런 시설을 우리 예산으로 지어주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비준동의 과정에서 반대에 부딪힐 수 있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던 셈이다. 김 의원은 "이런 내용으로 국회 비준동의를 요청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그래서 이걸 이면합의로 빼서 비준동의 요청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면합의' 결정은 9차 협정 타결 전날인 2014년 1월 10일 비공개로 열린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 이뤄졌다. 이 자리에는 김장수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윤병세 외교부 장관, 김관진 국방부 장관,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김홍균 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조정비서관, 협상대표였던 황준국 현 주영국대사 등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서는 황준국 대사를 비롯한 협상 당사자들에 대한 추가적 조치 여부와 관련해선 내부 검토 중이다.

한편, 9차 협정은 올해말 종료된다. 문재인 정부는 내달 중 미국과 10차 방위비 분담 협정 협상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 9차 한미방위비분담특별협정 협상대표였던 황준국 현 주영국대사(자료사진) ⓒ정의철 기자


출처  ‘이면합의’로 국민 속였던 박근혜정부의 한미 방위비 협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