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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재벌과 싸워보니 관료가 더 적폐더라”

“재벌과 싸워보니 관료가 더 적폐더라”
재벌저격수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겨레] 김종철 선임기자 | 등록 : 2018-03-04 09:24 | 수정 : 2018-03-04 09:33


▲ “지금까지 성과가 있었다면 모두 다 우리 방 식구들 덕분이다. 우리 방은 진보와 전문성 두 축으로 굴러가고 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은 20대 국회의 재벌 저격수로 불린다. 박 의원이 진보 축을 담당하는 박상필 보좌관(오른쪽), 전문성을 책임지는 김성영 보좌관(왼쪽)과 함께 지난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법안 발의 등 의정활동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역대 국회에서도 늘 삼성 저격수니 재벌개혁의 기수니 하는, 경제민주화에 앞장선 의원들이 있었습니다. 이번 20대 국회에서는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단연 선두주자입니다. 그는 삼성과 현대자동차 등 양대 재벌그룹의 문제점을 제기해서 해결책을 마련하도록 했으며, 금융 쪽의 거물인 미래에셋금융그룹과 싸움에서도 승리했습니다. 그의 투쟁 및 재벌개혁 보고서인 <재벌은 어떻게 우리를 배신하는가>를 최근 펴낸 박 의원을 지난 26일 오후 만나 비결을 들어봤습니다.

약속 시간에 맞춰 국회 의원회관 611호실에 도착했다. 박용진 의원(46·이하 호칭 생략)은 마침 다른 손님을 배웅하러 의원실 복도에 나와 있었다. 그는 자기 방으로 기자를 안내하기 전에 보좌진이 근무하는 공간을 한 바퀴 돌면서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라며 한명 한명 인사를 나누게 했다. 인터뷰에는 보좌관 2명(박상필, 김성영)이 끝까지 자리를 함께했다. 보충 설명을 위한 배석자로서가 아니라 사실상 동등한 인터뷰 자격이었다. 인터뷰 동안 두 보좌관은 동지적 관계로 의원을 대했고, 박용진은 두 사람을 존중했다. “훌륭한 보좌진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배우며 협업할 수 있었던 지난 시간은 나에게 또 다른 축복”이라며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경의를 표한다”면서 보좌진에게 보낸 헌사(<재벌은 어떻게 우리를 배신하는가> 메디치, 2018년)가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님은 확실했다.

경력 2년 차 국회의원인 박용진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부시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삼성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 문제를 제기해, 수십 년 동안 금융당국이 방치해온 과징금 징수와 차등 과세를 하도록 만들었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삼성이 내야 할 과징금과 세금 액수만 해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 현대자동차의 세타2 엔진 결함 문제 등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끝에 미국 소비자 기준으로 국내 소비자들도 리콜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편법과 꼼수로 투자 활동을 벌인 미래에셋그룹의 행태에도 확실한 제동을 걸었다. 그는 2016년과 2017년 연속으로 당과 언론사 등이 선정한 국정감사 우수의원에 뽑혔다. 그가 발의한 법안도 재벌개혁에 관한 핵심적인 것들이다. 공익법인이 가지고 있는 재벌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 회사를 인적 분할 할 때 자사주에 대해서는 신주 배정을 금지하도록 한 상법 개정안(일명 ‘이재용법’) 등이 대표적이다.


‘삼성이 싫어하는 보좌관’ 김성영

― 초선인데도 재벌개혁의 기수로 평가받는다. 비결이 뭔가?

박용진 “의원이 될 때까지는 밀가루로 반죽 정도만 할 줄 알았지, 그걸로 수제비를 만들지 국수를 만들지 과자를 만들지는 정확하게 모르는 상태였다. 즉,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해야 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재벌과 권력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솔직히 어떤 상임위를 갈까도 헷갈렸다. 성과가 있었다면 모두 다 우리 방 식구들 덕분이다. 우리 방은 진보와 전문성 두 축으로 굴러가고 있다. 박상필(48) 보좌관 등 절반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때부터 나랑 함께 일한 사람들이다. 진보의 눈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해법을 찾는다. 김성영(59) 보좌관을 필두로 한 절반은 경제와 금융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다. 두 그룹이 잘 협력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 같다.”

― 김성영 보좌관을 영입할 때는 방해공작도 많았다던데.

박용진 “박 보좌관이 전문가들을 찾아냈다. 영등포 한 음식점에서 김 보좌관을 처음 만나서 ‘도와주시기로 해서 감사하다’는 얘기를 하고 돌아왔는데 그날부터 ‘그 사람은 안 된다’면서 여기저기에서 전화가 왔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박상필 “돈을 밝힌다, 조카 결혼식 때 갑질했다, 화합을 못 하는 사람이다. 등등 온갖 마타도어들을 해왔다. 처음에는 이거 뭐지 했는데 같은 내용의 전화를 20여 통 받다 보니까 의원이나 나나 김성영 보좌관을 어떻게든 뽑아야겠구나 싶었다.”

20대 국회 ‘재벌 저격수’ 박용진
진보와 전문가로 동지적 팀 구성
삼성 차명계좌·현대차 리콜 등
재벌과의 싸움에서 잇단 승리

금융위가 앞장서 삼성 편드는 등
‘재벌개혁 걸림돌은 관료’ 절감
“대통령만 바뀌었지 관료 그대로
정권 힘 빠지기만 기다리는 듯”


― 배후가 있었나?

박상필 “내게 전화한 분들이 모두 삼성과 친했던 사람들이다. 뒤에 삼성이 있구나 하는 감이 오더라.”

박용진 “저는 기자들한테 주로 전화를 받았는데 그들의 소스가 모두 삼성의 대관업무 하는 인사들이더라.”

― 김 보좌관은 왜 삼성에 그렇게 찍혔나?

김성영 “19대 국회 때 이종걸 의원실에서 일할 당시 낸 삼성생명법과 박영선 의원실에서 근무할 때 낸 이학수법이 불편했겠죠.”

2014년 8월에 발의된 ‘삼성생명법’(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회사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의 한도(총자산의 3%)를 취득 원가가 아닌 공정한 시장가격으로 평가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 법이 개정될 경우 삼성생명은 10조 원 이상의 계열사 주식을 팔아야 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분 구조가 크게 흔들리게 된다. 2015년 2월에 발의된 ‘이학수법’(불법이익환수법)은 횡령·배임 또는 제3자를 통해 취득한 이익이 50억 원을 넘을 경우 국가가 이를 환수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1999년 삼성에스디에스(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등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은 이재용 부회장을 포함한 삼성 3남매 등 삼성 사람들이 주로 적용 대상이다. 두 법안을 주도한 김성영은 삼성증권, 체이스맨해튼은행, 골든브릿지자산운용 등에서 일했던 금융전문가로, 19대 때 이종걸에게 스카우트됐다.

― 당사자에게는 협박이나 회유가 없었나?

김성영 “나한테는 전화가 없었다. 그런데 이 방에 오기 전에 두 번 이상한 일이 있었다. 2015년 10월에 조그만 자산운용회사에 취업해서 첫 출근을 했는데 사장이 부르더니 ‘미안하지만 없었던 일로 하자’고 해서 바로 짐 쌌다. 2016년 3월쯤 다른 작은 자산운용사에 들어갔는데 또 사장이 부르더라. ‘누가 전화해서 왜 그런 사람 뽑았냐’고 하는데 자기 생각에는 삼성에서 음해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 그때 삼성이 내 취직을 막으려고 무지하게 애를 쓰는구나 알았다.”


“김현미 장관 된 뒤 국토부 관료 태도 변해”

박용진은 재벌뿐 아니라 관료들과도 치열하게 싸운다. 지난해 여름 김성영이 입원 중인 병실에서 <한국방송>의 ‘추적60분’을 보면서 얻은 아이디어로 박용진 팀은 삼성 특검(조준웅·2008년)에 의해 확인된 1,199개 차명계좌에 들어 있던 4조5천억 원대의 돈을 삼성이 벌금과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찾아간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국정감사에서 그를 막아선 것은 삼성이 아니라 금융위원회였다. 금융위는 삼성이 세금을 내지 않고 돈을 찾아간 것은 합법적이라면서 오히려 삼성 편을 들었다.

― 금융위가 뭐라고 삼성 편을 들었나?

김성영 “금융실명제에 따르면 비실명 자산에 대해서는 예금 금액의 50%를 과징금으로 징수하고, 원금에 대해 이자나 배당 소득에 대해서는 90%의 차등과세를 하게 돼 있다. 그런데도 금융위는 삼성 차명계좌는 가명이 아니기에 과징금 징수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1997년 대법원 판결(96도 3377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내세웠다. 그러나 그 판결에서도 2명의 소수 보충의견에서 그런 주장을 했을 뿐이고, 나중에 보니까 1998년 대법원 판결(98다 12027 대법원 판결)에서는 차명계좌도 실명제법 위반이라는 점을 명백히 밝혔더라. 더구나 1999년에 금융위가 만든 <금융실명제 종합편람>에서도 차명계좌는 차등과세를 한다고 해석해 놓았더라. 그런데도 그들은 삼성을 감쌌다.”

▲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진보 정치인이다. 그는 2012년 “진보진영이 집권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 세력이 연대해서 세력을 키워야 한다”며 민주당행을 택했다. 지난 26일 그의 회관 사무실 벽에 걸린 자신의 과거 국회의원 선거 벽보 사진 앞에 박 의원이 서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 금융위원장(최종구)은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사람인데 왜 그런가?

박용진 “이 문제를 처음 보좌진한테 보고받았을 때는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겠지, 설마 실명제법 적용을 거꾸로 했겠느냐고 생각하면서 잘 알아보자고 말했다. 그런데 파면 팔수록 금융당국이 엉터리로 일을 했고, 또 그것을 계속 감추려고 했더라. 대통령은 바뀌었어도 관료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오죽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면 모피아라고 하겠나. 금융위 간부들이 선배들이 결정한 일인데 어떻게 우리가 뒤집을 수 있냐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 초선의원이 금융위를 상대로 싸웠으니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다.

박용진 “한번은 우리 당 정무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문제를 얘기했더니 다른 의원들이 ‘금융위 설명을 들어보니 박용진이 틀렸다. 그러니 더 얘기하지 말자’고 하더라. 이들이 다른 의원들한테 다니면서 나를 금융위원장한테 소리나 지르는 감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당 안에서 ‘쟤는 왜 시끄러워, 우리가 지금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같은 식구끼리 왜 이래’라고 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게 진짜 힘들었다.”

그럴수록 박용진은 국민 편에 섰다. 또 팩트로 접근했다. 당 지도부에 차근차근 설명하고, 청와대 정책실장(장하성)도 만났다. 당정 협의에서도 매섭게 따졌다. 우원식 원내대표와 김태년 정책위의장이 다행히 적극적인 원군이 됐다. 그러자 결국 최종구는 종합 국정감사 때 “이건희 차명계좌는 차등과세 대상”이라며 두 손을 들었다. 박용진은 한 번의 승리에 취하지 않았다. 제도적 개선을 끌어내기 위해 당에 건의해 ‘이건희 등 차명계좌 과세 및 금융실명제 제도 개선 티에프(TF)’를 만들었다.

― 현대차 때도 관료들이 기업 편을 들지 않았나?

박용진 “그렇다. 감독 권한이 있는 국토부가 현대차에 유리하게 모든 것을 해석하면서 소비자 편을 안 들더라. 이러한 관료들이야말로 적폐 중의 적폐다. 이들은 지금 가만히 있는데 정권 힘이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원내대표단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을 때 ‘절대로 힘이 빠지시면 안 된다. 관료 개혁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박상필 “기관장이 누구냐에 따라 관료들은 달라지더라. 금융위는 아직도 우리와 사사건건 싸우고 있는데 국토부는 김현미 장관이 간 이후부터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김 장관이 상임위 등에서 우리 질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관료들의 안이한 태도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니 아래 관료들이 변하더라. 금융위는 아직도 우리를 또라이 취급한다.”

▲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은 과거 진보진영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박 의원의 오른쪽)과 경제 및 금융 전문가(박 의원의 왼쪽)로 보좌진을 구성했다. 박 의원은 “두 그룹이 잘 협력해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은 박 의원과 보좌진이 지난 26일 회관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는 모습. 강재훈 선임기자


“민주당 오기를 잘했다”고 느껴

―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도 대부분 국회에서 통과가 안 되고 있는데.

박용진 “주옥같은 법안을 낼 때는 기분이 좋았는데 막상 국회에서 처리가 안 된다. 우리가 중요한 법안으로 정할수록 야당은 더 반대한다. 재벌개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국회가 정말 필요하지만, 여기만 갇혀 있어서는 아무것도 안 될 것 같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국회 밖으로 진격하려고 한다. 책 낸 것을 계기로 대학가나 노조, 지역위원회 등등을 다니면서 강연을 하려고 한다. 아날로그 방식이지만 국회를 움직이려면 국민의 힘을 하나하나 모아야 한다. 나보다 먼저 재벌개혁을 위해 노력했던 분들이나 단체와의 네트워크도 구성하려고 한다. 박용진이 재벌 저격수라는 이름을 얻고 마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일을 성사시키는 게 중요하다.”

성균관대 총학생회장(1994년) 출신의 박용진은 1997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에서 사회활동을 처음 시작했다. 그해 겨울 대선에서 ‘국민승리21’ 후보 권영길을 도운 것을 시작으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진보진영에서 20년 가까이 활동했다. 그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야권 대통합 운동을 벌인 ‘혁신과 통합’을 거쳐 민주당에 합류했다. ‘자유주의에 투항한다’는 비판에 대해 그는 “진보정치가 담고 있는 ‘노동’과 ‘복지’는 내가 정치를 계속하는 한 확장해가고 실현해내야 할 핵심 키워드”라며 “(진보) 독자성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감수했던 ‘소수파 전략’에서 벗어나 집권을 위한 ‘다수파 전략’으로 전환함으로써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으로 나서야 한다”(<과감한 전환>, 폴리테이아, 2012년)고 말했다.

당 바꿀 때의 초심이 유지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자기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정치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구체적으로 성과를 내고 있으니까 아주 보람차고 기분이 좋다. 제가 민주당의 객이 아니라 이 당의 주인으로서 뜻을 더 펼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여기 오기를 잘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출처  재벌저격수 박용진 “재벌과 싸워보니 관료가 더 적폐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