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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웰스토리 파업 초읽기, 그룹 사상 처음

삼성웰스토리 파업 초읽기, 그룹 사상 처음
삼성웰스토리 노사협상 큰 진전 없어… 계열사 노조 연대 움직임 주목
[경향신문] 송진식 기자 | 입력 : 2018.03.25 07:45:01


▲ 2017년 4월 17일 열린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삼성웰스토리노동조합 출범식에서 노동자들이 사측에 정당한 노조활동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 삼성웰스토리지회 제공

삼성그룹의 사상 첫 번째 단체교섭으로 주목 받았던 삼성웰스토리의 노사협상이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사측은 계속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노조(금속노조 웰스토리지회) 측은 협상에 사측이 불성실하게 임하고 있다며 진전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노조 측은 향후 2~3차례 협상을 더 해본 뒤 그래도 진전이 없다면 중앙노동위원회에 교섭에 대한 조정을 요청할 계획이다.

중노위 조정에 들어가 양측 간 합의가 이뤄진다면 큰 문제 없이 협상이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조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다. 이 경우 노조는 파업신고를 내고 합법적인 파업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현재로서는 양측 간 견해차가 워낙 커 중노위 조정 실패에 따른 파업 돌입 가능성이 적지 않다. 삼성웰스토리노조가 파업에 돌입한다면 삼성그룹 첫 단체교섭에 이은 첫 번째 파업 사례가 될 전망이다.


9차례 협상했지만 진전 없어

지난해까지 소수의 개별노조로 활동하던 삼성그룹 내 각 계열사 노조들의 경우 올해 봄부터는 공동연대와 투쟁을 통해 활동할 계획이다. 정치권도 삼성 노조 문제에 뛰어들 태세다. 80년 넘게 이어온 삼성그룹의 ‘무노조 경영’ 신화에 생긴 ‘균열’이 점차 커지고 있는 셈이다.

삼성웰스토리지회는 2017년 10월 기준 64명의 노조원을 확보해 사측으로부터 다수 노조로 인정 받았다. 이에 올해 1월 10일부터 노사는 협상테이블을 꾸려 교섭에 착수했다. 테이블이 꾸려지기 전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사측은 협상이 시작되기 직전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단협에 대한 권한을 모두 넘겨 사실상 ‘대리 교섭’에 나섰다. 노조 측은 “협상을 시작할 의지조차 없다”며 크게 반발했고, 경총과 노조의 첫 상견례는 불과 몇 분 만에 파행으로 끝났다. 결국 노조가 사측에 항의한 끝에 2월 21일 사측에서 ‘관계자’가 협상에 참여하기로 하면서 노사 간 대화가 시작됐다.

이후 두 달 넘게 진행된 협상에서 노사는 총 9차례에 걸쳐 교섭을 가졌다. 지난 9차례의 교섭을 바라보는 노사의 시각차는 극명하다. 노조 측은 “아홉 번 협상을 진행되는 동안 아무것도 진전된 게 없다”는 입장이다. 임원위 지회장은 “사측 대리인(경총)들이 어떤 발전적인 사항을 내놓기보다는 노조 측이 제시한 협상안 문구의 표현 등을 문제 삼는 등 본질과 다른 얘기만 하고 있다”며 “고의적으로 협상을 지지부진하게 만들어 노조의 결집력과 협상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반면 삼성웰스토리 관계자는 “지금까지 원활하게 협상을 진행해 왔는데 아무것도 된 게 없다는 노조 측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웰스토리지회는 협상에 임하는 사측의 진정성에도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제30조 ‘교섭 등의 원칙’에서 노사 양측에 ‘성실교섭의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사 양측은 정당한 이유 없이 교섭 또는 단체협약의 체결을 거부하거나 태만하게 대응해서는 안된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단체교섭 과정에서 사측이 성실교섭의 의무를 이행했는지는 중요하다. 교섭이 잘 되지 않아 향후 중노위 등에 중재나 제소를 할 경우 교섭이 파행으로 끝난 데 대한 책임소재를 가릴 때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노조 측은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사측이 성실교섭의 의무를 지키지 않고 있다고 주장 중이다. 첫 번째는 교섭이 시작될 당시 요구한 ‘회사 관계자’가 협상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는 주장이다. 현재 삼성웰스토리는 경총 대리인단에 과장급 직원 한 명을 더 포함시켜 노조와의 협상에 나서고 있다. 임 지회장은 “해당 직원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회사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협상을 진행하는 자리에 과장 직위의 직원이 참석한다면 상식적으로도 책임있는 간부라 볼 수 없을 것”이라며 “초지일관 노조를 무시해온 태도를 사측이 협상이 시작된 이후에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가 제기하는 두 번째 문제는 삼성웰스토리가 최근 사내 노사협의회와 임금협상을 체결한 부분이다. 삼성웰스토리는 한마음협의회라는 노사협의회를 운영 중인데, 사측은 한마음협의회와 3월 들어 연간 3.0%의 임금인상을 기본으로 하는 임금협상을 체결했다. 임 지회장은 “사측이 협의회와 임금협상을 시작한 시점이 바로 노사협상이 시작된 1월 10일”이라며 “노조와의 협상은 경총에 위임해놓고 협의회와는 임금협상을 시작한 건 노조를 무시한 행태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지회 소속 삼성웰스토리 조합원들은 현재 사측이 협의회와 체결한 임금협상에 참여를 거부한 상태다.



첫 파업 초읽기 들어가나

사측은 노조의 주장을 억측이라며 일축하고 있다. 삼성그룹에서는 통상 과장급 직위 이상 직원을 ‘간부’로 본다. 이 때문에 과장급 직원이 협상에 나서는 게 노조가 요구한 ‘회사 관계자’의 기준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삼성웰스토리 관계자는 “노조가 요구한대로 인사과 과장이 교섭에 성실하게 참여 중”이라고 밝혔다. 한마음협의회와의 임금협상 체결도 관행에 따랐다는 입장이다. 삼성웰스토리는 “노조가 생기기 전부터 3월에 협의회와 협상을 해 연봉계약을 해왔고, 올해도 그렇게 했을 뿐 노조를 무시한 게 아니다”라며 “교섭 때문에 300여명에 달하는 나머지 직원들의 임금인상을 늦출순 없다”고 밝혔다.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김승희 교수는 “단체교섭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이사급 간부가 참여해도 부족할텐데 과장급 간부가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측의 책임자라고 보기는 상식적으로 어렵다”며 “협상을 위임 받은 경총 역시 사측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입장이라서 양측 간 협상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임 지회장은 “향후 2~3차례 협상을 더 진행한 뒤 달라진 게 없으면 중앙노동위에 조정신청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웰스토리와 같은 일반사업장의 경우 신청 후 최대 25일까지 조정기간을 거칠 수 있다. 중노위의 조정이 성립되면 단체협약의 지위를 가지게 되지만 조정결정 자체가 어떤 강제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조정안에 대해 노사 양쪽이나 어느 한쪽이 거부할 경우 효력이 없게 된다.

조정이 실패하면 대부분 파업 수순을 밟는다. 삼성웰스토리지회 역시 조정기간이 끝나도록 사측과 협의가 안될 경우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아직 협상 기회가 남아있긴 하지만 삼성그룹 역사상 첫 노조 파업이 초읽기에 들어간 셈이다.

실제 파업에 들어갈 경우 노사 모두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게 될 전망이다. 삼성그룹의 경우 아직까지 정규직 노조가 파업을 단행한 사례를 겪어본 바 없다. 그 자체로 여론의 큰 주목을 받게 돼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법원이 “삼성이 작성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힌 그 유명한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에도 파업을 대비한 매뉴얼이나 대응책은 적혀 있지 않다. 삼성그룹은 지난해에만 계열사에 3개의 정규직 노조가 신설되는 등 아직 각 노조별 조합원 수는 적지만 노조 설립 움직임이 점차 활성화되고 있는 단계다. 웰스토리지회가 파업에 착수할 경우 다른 계열사 노조에 주는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예컨대 삼성에스원노조만 해도 사측과 개별협상을 끝내고 최근 본협상에 착수한 상태다. 삼성에스원의 경우 사측이 경총 등에 협상을 위임하지 않고 직접 나서고 있고, 다소 이견은 있었지만 본협상 전 개별협상이 타결되는 등 삼성웰스토리보다는 다소 원만한 상태다. 그렇다 해도 본협상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상황은 삼성웰스토리처럼 악화될 수 있다.

웰스토리지회의 경우 여론의 지지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최근 한국지엠 사태와 조선·중공업부문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부 보수언론 등을 중심으로 노조 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삼성이 재계를 대표하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파업을 바라보는 기득권층과 재계의 시선도 곱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 상당수가 사실상의 무노조 경영을 해온 상태라 삼성그룹 내 노조 움직임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며 “삼성 내 파업이 다른 대기업의 노조활동에도 불을 댕길 수 있어 아무래도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 계열사 노조 ‘뭉친다’

지난해까지는 개별적으로 활동했던 삼성그룹 계열사 노조들이 올 들어서는 조직적으로 함께 움직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간경향> 취재 결과 삼성웰스토리, 삼성에스원,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삼성지회(구 에버랜드노조) 등 4개 노조는 4월 초 공동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노조 문제에 대한 삼성그룹의 책임있는 대응과 사회적 관심을 촉구할 방침인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그룹 내에서 가장 활성화된 노조들의 연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삼성지회의 경우 삼성그룹 내 최초의 정규직 노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수년간에 걸친 사측과의 법정공방이 최근 마무리된 뒤 노조를 재건하기 위한 움직임이 한창이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비정규직노조로 삼성그룹 내 파견근로 문제를 사회적으로 크게 환기시킨 바 있다. 삼성에스원과 삼성웰스토리는 지난해 노조가 생기긴 했지만 나란히 사측과 단체교섭을 진행 중인 상태다.

삼성 계열사 노조의 한 관계자는 “계열사 노조가 아직 소규모이고 사측의 견제 등으로 노조활동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서로 뭉쳐서 힘을 보태고 키우자는 차원에서 그간 지속적으로 공동대응 문제를 협의해 왔다”며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노조 간 연합을 통해 보다 적극적인 연대활동을 이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치권도 삼성그룹의 노조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노조 관계자는 “5월에 4개 노조 위원장 등 간부들이 워크숍을 하는데 야당의 중진 국회의원도 참여의사를 밝혔다”고 귀띔했다. 정치권에서 삼성 노조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경우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이 문제가 선거 이슈로 부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승희 교수는 “과거 이동통신업계 비정규직노조 문제의 경우도 당시 야당에서 적극적으로 나왔고, 총수 리스크 등이 연관되면서 어느 정도 문제가 해소됐다”며 “삼성 노조가 소수인 만큼 정치권에서 관심을 갖고 지원한다면 새로운 해법을 도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삼성웰스토리 파업 초읽기, 그룹 사상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