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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법원은 승계작업을 몰랐을까? 기업들은 협박에 굴복한 걸까?”

“법원은 승계작업을 몰랐을까? 기업들은 협박에 굴복한 걸까?”
‘징역 24년’ 박근혜 판결문 함께 읽기
[한겨레] 정리 박현철 기자 | 등록 : 2018-04-15 09:46 | 수정 : 2018-04-15 11:58


▲ 징역 24년과 벌금 180억 원. 국정농단으로 기소된 박근혜는 1심에서 18개 혐의 중 16개 혐의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600쪽이 넘는 그의 판결문을 함께 읽고 기록하기 위해 김종보 변호사, 정민영 변호사, 현소은 기자, 김민경 기자(왼쪽부터)가 모였다. 강재훈 선임기자

‘법정 다큐, 수인번호 503’ 연재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에서 파면돼 구속기소된 박근혜(66) 피고인의 1심 재판을 기록했다. 지난해 5월 23일 첫 재판을 시작으로 지난 2월 27일 구형 공판까지 17회에 걸쳐 법정에서 펼쳐진 검찰과 피고인·변호인의 공방, 증인으로 나온 전·현직 공무원과 기업인들의 진술 등을 전했다. 지난해 10월 이후부터 판결 선고 날까지 법정에 나오지 않은 박근혜의 ‘불출석’도 기록으로 남겼다.

지난 4월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심동영·조국인)는 박근혜에게 징역 24년과 벌금 180억 원을 선고하면서 1심 재판을 마쳤다. 18개 혐의 중 16개에 유죄가 선고됐다. 뇌물수수와 뇌물요구, 직권남용과 강요 등 대통령 직위로 할 수 있는 온갖 ‘나쁜 짓’들이 그의 판결문에 ‘범죄사실’로 기록됐다.

하급심 최초로 선고 공판은 생중계됐다. 김세윤 재판장은 요약된 판결문을 두 시간 가까이 읽었다. 선고가 나온 뒤 <한겨레>를 포함한 여러 언론이 판결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기사들을 실었지만 600쪽이 넘는 판결문의 내용을 온전히 전달하기엔 시간과 공간이 여전히 부족하다.

‘법정 다큐, 수인번호 503’ 연재의 마지막회는 박근혜의 판결문을 되짚어보기로 했다. 연재를 시작하며 밝혔던,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기를 바라는 역사적 비극의 ‘성실한 기록자’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1년 가까이 박근혜 재판을 방청하고 기록한 <한겨레> 법조팀 김민경·현소은 기자와 김종보(법률사무소 휴면)·정민영(법무법인 덕수) 변호사가 참여했다. 12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근처 한 카페에 모였다.

▲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 김세윤 재판장이 지난 4월6일 열린 박근혜 선고 공판에서 판결문을 읽고 있다. 제이티비시 화면 갈무리


2% 부족했던 생중계

“재판부 합의 결과, 변호인이 주장한 피고인의 권리 등을 고려하더라도 재판의 중대성, 역사적 의미, 국민적 관심과 알 권리 등을 고려하면 생중계를 허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돼 생중계를 허가하기로 결정했다.”

김민경 선고 공판 생중계는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당시 법정 안에 있었기 때문에 어떤 화면이 어떻게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김종보 당시엔 못 보고, 생중계가 나오는 자료화면만 봤다. 두 시간 가까이 물 한 잔 마시지 않고… 전설이라더만.

현소은 평소 말하는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은데, (오후) 4시 전에 끝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김민경 박근혜는 직접 “1심 선고 생중계를 제한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했다. 하지만 법원은 “생중계 결정은 재판부의 권한행사로 민사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각하했다. “피고인이 전직 대통령이고 이 사안 자체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비상하므로 방송 허가를 정당화할 높은 수준의 공공의 이익이 인정된다”고도 지적했다.

정민영 예전부터 주요 사건의 경우 판결 선고뿐만 아니라 재판 심리 과정까지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미 지금도 법정에 들어간 기자들은 발언들을 받아쳐서 심리 과정을 사실상 중계하고 있는데, 중계를 막을 이유가 별로 없다고 본다. 관련 규정을 개정해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모든 사건은 아니더라도 이번처럼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재판은 전 과정을 생중계하는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재판은 공개가 원칙이니까.

김민경 선고 공판에도 박근혜 피고인은 나오지 않았다. 재판부가 판결에서 이에 대해 언급을 할 줄 알았다.

정민영 양형 이유에 보면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는데, 이 대목이 ‘불출석’에 대한 평가로 보인다.

김민경 두 변호사 같으면 피고인인 의뢰인이 재판에 안 나온다고 하면 어떻게 대응할까?

김종보 불구속 상태라면 당연히 구속영장이 발부될 테고…. 내가 변호사라면 어떻게든 법정에 데리고 나가려 애쓸 거다.

정민영 피고인이나 변호인이나 다분히 정치적인 판단을 한 것 같다. 진지하게 열심히 다투었다가 줄줄이 유죄판결을 받으면 자신이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주장을 하기 어렵고, 다퉈봐야 결론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으니 재판을 거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 법치를 강조했던 전직 대통령이 할 만한 행동은 아닌 듯하다.

현소은 ‘국정농단’ 피고인들이 검찰, 특검 조사나 관련 재판 증인신문에 불출석으로 일관한 부분은 판결에 ‘반성 없다’는 근거로 언급됐는데, 이번엔 아예 판단하지 않았다. 박근혜 쪽에서 끊임없이 ‘정치적 탄압’이라고 주장하니까, 빌미가 될 만한 언급을 아예 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평가도 있더라.

▲ 박근혜 재판 취재기자와 변호사의 방담 모습. 왼쪽부터 김민경 한겨레 기자, 현소은 한겨레 기자, 김종보 변호사, 정민영 변호사. 강재훈 선임기자

“업무수첩은 단독 면담에서 피고인과 개별 면담자 사이에 ‘그 기재와 같은 내용의 대화가 있었다’는 점에 관한 진술증거로는 전문법칙에 의해 증거능력이 없다고 할 것이지만, 그러한 내용의 대화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간접사실에 대한 정황증거’로서는 증거능력이 있다. 즉, 안종범은 ‘대통령이 단독 면담 후 그 면담에서 나눈 대화 내용을 자신에게 불러주어 이를 그대로 받아적었다’고 진술하였는바, 이와 같이 피고인이 단독 면담 후 안종범에게 면담에서의 대화 내용을 불러주어 안종범이 이를 수첩에 받아적어 두었다는 사실은, 단독 면담에서의 피고인과 개별 면담자 사이의 대화 내용을 추단할 수 있는 ‘간접사실’에 해당하고, 위 업무수첩은 그러한 간접사실에 대한 정황증거로 사용하는 범위 내에서 증거능력이 있다.”

김민경 법리적 쟁점 중 하나였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작성한 업무수첩의 증거능력은 이재용 항소심과 달리 인정됐다. 그런데 판결문 내용은 좀 어렵다. 설명 좀 부탁한다.

정민영 안 전 수석이 박근혜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나눈 대화의 내용을 수첩에 적었는데, 이는 증거로서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수첩에 적힌 내용 그대로의 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직접 인정하는 진술증거, 둘째는 안 전 수석이 수첩에 받아적었다는 사실 등으로 미뤄 실제 박근혜와 이 부회장이 대화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는 정황증거, 이 두 가지다. 이재용 항소심은 ‘안종범 수첩을 정황증거로 받아들이면, 우회적으로 그런 대화 내용이 있었다는 것을 직접 인정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논리로 수첩을 정황증거로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반면 이번 박근혜 1심은 업무수첩이 다른 사람(박근혜)의 얘기를 듣고 쓴 것이어서 그 대화 내용 자체가 있었다는 것을 직접 입증하는 증거로 쓸 수는 없지만, 그런 대화가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정황증거로 사용할 수는 있다고 정리한 것이다.

김민경 이 수첩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는 박근혜의 직권남용이나 강요 등 거의 전 혐의를 입증하는 데 중요한 쟁점이었다.

김종보 둘(박근혜, 이재용) 사이의 대화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면 무죄가 나올 테니까.

현소은 무엇보다 안 전 수석이 쓴 수첩의 내용과 안 전 수석 진술의 ‘싱크로율’이 굉장히 높았다. 수첩에 적힌 내용들이, 대화를 나눈 시점에서 며칠이 지난 것들은 대부분 배제됐다. 대화 직후 바로 받아적은 내용들은 인정이 됐다. 안종범이 안종범 수첩을 완성시킨 셈이다.

김민경 최순실(최서원)의 것이냐 아니냐 논란이 많았던 태블릿피시의 소유권 역시 최순실이 완성시켰다는 말이 나온다. 판결문을 보면 “태블릿피시를 처음 개통한 김한수 전 청와대 행정관은 법정에서 ‘2013년 1월 초순께 최서원이 전화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일할 것을 권유하면서 ‘그런데 태블릿피시는 네가 만들어주었다면서?’라고 이야기하였다”고 나온다. 자기가 쓰는 물건이 아니고선 이렇게 물을 수 없다는 거지. 자기가 뱉은 말이 자신에게 되돌아온 셈이다.

현소은 태블릿피시가 증거로 제출되는 과정에 대한 위법성 논란도 깔끔하게 정리됐다.

김종보 국가기관이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는 증거능력이 없다. 그런데 국가기관이 아닌 사인(개인)이 수집한 증거에 증거능력을 부여할 것인가에 대해선 다양한 학설이 있다. 판례는 어느 정도 정립돼 있다. 박근혜 재판부가 제시했듯이 ‘형사소송에서의 진실 발견이라는 공익과 개인의 인격적 이익 등을 비교해 인정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판결문을 그대로 인용하면, “제이티비시(JTBC) 기자가 태블릿피시를 더블루케이 임직원 승낙 없이 취득하긴 했지만 이 태블릿피시가 박근혜의 직무상 비밀 누설 혐의의 유력한 증거가 되므로 공익 실현을 위해 태블릿피시에서 발견된 문건을 증거로 제출하는 것이 허용돼야 한다.”

선고 생중계
“언론 친화적이던 재판부
선고도 2시간 속전속결
불출석 관련 언급은 안 해
공판 전 과정 공개했으면”

이재용 승계작업 불인정
“독대 날짜에 연연하며
개별현안 일부는 판단 안해
이재용 승계는 포괄적 현안
공공연한 사실…법원만 부정”

직권남용과 강요
“최순실 위한 권한남용 적나라
기업들이 ‘협박’에 굴복했을까?
정권 향한 ‘기대’가 본질일 수도
뇌물 수사 못한 초기 아쉬워”

여전히 투쟁중인 박근혜
“스스로를 ‘신화’ 속에 가두려는 듯
끝내 선고공판까지 출석 거부
법정서 정치투쟁하던 변호인들
방청하는 내내 참담한 심경”

▲ 지난 4월 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박근혜의 1심 선고 공판 중계 화면. 하급심 판결 최초로 생중계됐다. 제이티비시 화면 갈무리


법원만 모르는 ‘승계작업’

“개별 현안들 중 삼성에스디에스 및 제일모직의 유가증권 시장 상장, 이 사건 합병 및 외국자본에 대한 경영권 방어 강화, 이 사건 합병에 따른 신규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한 삼성물산 주식 처분 최소화 및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은, 그것이 성공에 이르는 경우 이재용의 삼성전자 또는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력 확보에 직간접적으로 유리한 영향을 미치는 효과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된다.

그러나 위와 같이 직간접적으로 지배력 확보에 유리한 영향을 미치는 효과가 있었다는 사정은 개별 현안들의 진행 과정에 따른 결과를 놓고 볼 때 그러한 효과가 확인된다는 것이고, 그와 같이 확인된 결과는 개별 현안들의 진행에 따른 여러 효과 중의 하나일 뿐이어서, 결과적으로 확인된 그와 같은 사정만 가지고 검사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이재용의 안정적 경영권 승계’라는 목표성을 갖는, 위 개별 현안들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의미의 ‘승계작업’이 존재한다고 바로 인정할 수는 없다.

더욱이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은 이 부분 공소사실에 있어 피고인과 이재용 사이에 부정한 청탁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바, 이러한 의미의 ‘승계작업’은 명확하게 정의된 내용으로 그 존재 여부가 증거에 의하여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인정되어야 한다.”

김민경 최순실씨 항소심 첫 재판이 어제(11일) 열렸다. 특검은 “대통령이 단독 면담 기회에 대기업 총수 3인에게 금품 제공을 요구했는데 왜 롯데와 에스케이는 제3자 뇌물이고 삼성은 제3자 뇌물이 아니냐”고 따졌다. 박근혜 1심 재판부는 롯데와 에스케이는 현안이 있었던 반면, 삼성은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제3자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돼야 한다. 청탁을 할 만한 현안이 있었느냐? 1심의 제3자 뇌물죄 인정은 여기에서 갈렸다.

정민영 박근혜 항소심 최대의 쟁점이 아마 그 내용일 듯하다. 결국은 현안이 있었느냐, 그리고 그에 대한 묵시적, 암묵적 청탁이 있었느냐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갈리겠지.

현소은 검찰은 승계작업을 이루는 개별 현안으로 8가지를 제시했는데, 재판부는 단독 면담이 이뤄진 2015년 7월 25일 및 2016년 2월 15일을 기준으로 삼아 삼성에스디에스 및 제일모직의 유가증권 시장 상장 등 4가지 개별 현안은 “면담 당시를 기준으로 이미 해결돼 종결됐다”며 제외시켜 버렸다. 독대 시점에 지나치게 연연한 게 아닌가 싶다. 합병만 봐도, 합병이라는 게 어느 특정 날짜 하루에 짠 하고 이뤄지는 게 아니다.

김종보 대통령과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렇게 구체적으로 무슨 현안들을 주고받거나 할 리도 없다. 박근혜는 정유라에 대한 구체적인 얘길 했지만, 그렇다고 이 부회장이 대통령에게 ‘제가 승계 잘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말을 하겠나. ‘잘 좀 도와달라’ ‘항상 감사하다’는 정도의 얘기만 했겠지.

김민경 롯데는 호텔롯데 상장이 왜 신동빈 회장에게 중요한지, 호텔롯데에서 면세점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인지 등 부정한 청탁과 관련된 내용이 판결문에 자세히 나온다. 하지만 삼성은 개별 현안은 단독 면담과 시기가 안 맞는다고 쳐내고, 승계작업은 존재하지 않았다며 간단하게 정리했다.

김종보 에스케이·롯데와 삼성은 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재용 부회장이 원하는 건 최소한의 돈으로 최대한의 삼성그룹 지배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돈이나 사업으로 딱 정해진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추상적인 목표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으로 시작되는, 20년 넘게 진행되고 있는 과정이다. 그 아래 세부 액션들로서 여러 개별 현안들이 있는 거다. 그런데 재판부는 개별 현안들이 있고 여기서 포괄적인 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을 도출한 것 같다. 난 생각이 다르다. 경영권 승계라는 원대한 현안이 있고, 그 아래에 세부적인 현안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현소은 이 부회장 항소심 선고 나온 뒤 어느 판사가 한 말이 있다. ‘개별 현안의 존재를 증명한 뒤 포괄적 승계작업을 개별 현안의 결과로서 증명하려고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였다. 특검이 그렇게 입증하려 해서도 안 된다고.

정민영 생중계할 때 재판장이 갑자기 그 부분을, 판결문에도 없는 말을 하더라. “언론이나 경제 전문가들이 승계작업을 보도하고 언급하는 걸 자주 본다. 일반인 입장에선 삼성 그룹의 승계작업이 당연히 진행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김민경 1심은 박근혜가 금융감독원의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관련 전망’ 등 정부기관 보고서를 보고받을 가능성, 김영한 전 민정수석 업무일지에 적힌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monitering(모니터링)’ 등을 바탕으로 박근혜가 ‘이재용의 삼성그룹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 확보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개념을 인식했을 여지는 있다고 봤다. 그렇지만 승계작업은 없다고 전제하니까 박근혜가 뭘 보고 지시했어도 몰랐을 거라는 결론이 나왔다.

김종보 예외 없이 모든 언론들이 이 부회장을 ‘후계자’라 지칭하고, 모든 국민이 알고 있고 심지어 삼성도 인정하는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법원만 인정하지 않았다. “증거가 없다”며. 문형표 재판과 이재용 1심 재판 결과와 다르다.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특검과 검찰도 공소유지를 더 잘해야 할 것 같고.

▲ 2015년 5월 7일 박근혜가 경기도 평택시 고덕국제화계획지구 내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단지 기공식에 참석해 이재용(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와 관련된 김기춘의 각종 지시, 문화예술계 ‘좌파’에 대한 지원은 부적절하므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청와대의 기조는 모두 ‘좌편향’되어 있는 문화예술계를 시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피고인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 ‘문화계가 한쪽으로 편향된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항상 우리나라 문화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소위 좌파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지원을 많이 받았는데,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은 그간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이러한 현상들이 이상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비서진들이나 참모들이 큰 틀에서 대통령의 생각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라고 진술했고, 김기춘도 수사기관에서 ‘대통령이 문화계가 좌편향되어 있어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기억난다’고 진술했다.”

김민경 블랙리스트 관련 판결문 내용을 보면서 ‘박근혜가 검찰에서 거짓말을 하진 않았구나’라고 생각했다. ‘좌편향됐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잘못이에요?’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김종보 문화예술을 좌편향, 우편향으로 나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웃긴 거다. 정부가 정치적 잣대로 문화, 예술, 학문 영역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문화융성에 역행하는 거다.

현소은 같은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1심은, 김 전 실장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그에게만 죄를 물었다. 김 전 실장은 ‘정부 기조였기에 거기에 따라 행동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재판부는 그걸 받아들이면서도 박근혜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박근혜 1심은 대통령의 강요죄를 인정하면서 대통령의 직무, 윤리 기준을 세운 거 아닌가 생각된다. 대통령이 직접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하지 않더라도 여러 단계를 거쳐 그런 메시지를 준다면, 보고받고도 바로잡지 않는다면 책임이 있다는.


기업들은 ‘협박’에 굴복한 것일까

“최서원(최순실)이 피고인에게 ‘케이디코퍼레이션이 현대자동차에 흡착제를 납품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하고, 그 부탁에 따라 피고인이 안종범에게 위 사항을 지시하여 안종범이 김용환 등에게 다시 위와 같은 피고인의 지시사항을 전달한 것으로 판단된다.”

“피고인 스스로도 수사기관에서 ‘나중에 알고 보니 재단이 급박하게 설립되었다. 며칠 사이에 급하게 재단을 설립하여야 된다고 독촉했다면, 재단에 출연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압박감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진술한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 역시 판시 범죄사실 기재와 같이 안종범을 통해 전경련과 출연기업 관계자에게 재단 출연을 요구하는 것이, 그들로 하여금 그 요구에 응하지 않을 때에는 부당한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위구심을 일으키게 하는 해악의 고지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김민경 최순실씨가 박근혜에게 말하면 대통령이 안종범 수석에게 말하고, 다시 안 수석이 개별 기업에 말하는 과정이, 물론 이미 공개됐던 내용이지만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정민영 직권남용 과정을 보면 박근혜와 최씨의 관계가 잘 드러난다. 케이디코퍼레이션은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초등학교 동창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인데… 대통령이 거기에 나서서 현대차에 부품을 납품하게 하는 과정을 보면 대단히 노골적이다. 판결문을 보면, 이에 대해 변호인들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을 위해 정당한 직무를 수행했다”고 다툰 것으로 보이는데, 굳이 이런 주장까지 해야 했을지 좀 안타까웠다. 박근혜나 변호인들이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좀 큰 틀에서 다퉜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김민경 박근혜가 검찰에서 했다는, ‘재단에 출연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압박감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도 참…. 그걸 알면서 그렇게 했다니 놀랍다.

김종보 강요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을 때 성립하는 범죄다. 대통령의 말을 협박으로 볼 수 있느냐도 쟁점 중 하나였다.

정민영 판결문 곳곳에 여러 번 강조하고 있다. “대통령은… 신규사업의 인허가, 금융 지원, 세무조사 등… 직접 또는 간접적인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그래서 대통령이 요구하면 기업들은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그게 공통되는 전제인 것 같다.

김민경 그렇다면 기업들은 피해자일까, 단순한?

김종보 신세계 같은 경우는 출연금을 내지 않았다.

정민영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게 아닐까 싶다. ‘대통령의 지시나 요구를 거부하면 우리가 다칠 수 있다’는 불안이나 공포. 다른 한편으론 ‘이 요구에 응하면 우리 현안을 해결해주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사실 그 기대가 더 본질적일 수 있겠지.

김민경 <한겨레>는 ‘국정농단’ 의혹이 드러나던 초반, 기업들의 출연금을 직권남용 및 강요가 아니라 뇌물 사건으로 봐야 한다는 기사를 썼다. 그런데 당시 수사를 하던 검찰은 삼성을 제외하곤 뇌물로 수사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아버렸다. 1심 판단이 나오고 보니 검찰이 직권남용이 아닌 뇌물로 첫 단추를 끼웠다면 다른 결론이 나오지 않았을까 아쉽다.

▲ 박근혜가 2017년 3월 21일 뇌물수수 혐의 피의자로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가고 있다. 전직 대통령으로 받는 역대 네번째 검찰 조사였다. 사진공동취재단

“피고인은 부속비서관을 통해 장기간에 걸쳐 공무상 비밀로 누설되어서는 안 되는 대통령의 일정·외교·인사·정책 등에 관한 청와대 문건 등을 최서원에게 전달하기도 하였고, 삼성그룹에 최서원의 딸 정유라에 대한 승마 지원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면세점 특허 취득에 관한 부정한 청탁을 받고 롯데그룹으로 하여금 최서원이 적극 관여한 케이스포츠재단에 금전적 지원을 하도록 요구하여, 삼성그룹과 롯데그룹으로부터 합계 140억 원이 넘는 거액의 뇌물을 수수하였고, 에스케이그룹에 대해서는 89억 원의 뇌물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피고인은 합당한 이유 없이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들에게 사직을 강요하여 직업공무원제도의 근간을 훼손하였고, 정치적 성향과 이념이 다르다거나 정부 정책에 반대하고 정부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조직적으로 문화예술계 개인 및 단체에 대한 정부 보조금 등의 지원 배제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이 사건 범행을 모두 부인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최서원에게 속았다거나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비서실장이나 수석비서관 등이 행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그 책임을 주변에 전가하는 태도를 보였다.

다시는 대통령이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함부로 남용하여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해서라도 피고인에게는 그 범죄사실에 상응하는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 박근혜가 2017년 5월 23일 왼쪽 옷깃에 수인번호 ‘503’을 달고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국정농단의 첫 재판이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민경 징역 24년 벌금 180억 원은 어떻게 보는지. 박근혜의 나이(66)를 고려하면 사실상 무기징역이나 마찬가지라는 말도 있는데.

정민영 양형 이유는 비교적 담백한 것 같다. 헌법재판소가 밝힌 탄핵 사유와 비슷하다. 헌재나 법원이나 고민하는 게 비슷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김종보 탄핵소추안이 잘 쓰였다. 헌재에서 심리도 잘했고. 그때의 문제의식이 법원 판결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민경 박근혜 1심을 끝으로 ‘국정농단’ 재판 1심들이 마무리됐다. 재판을 본 소감이나 의미를 짚어본다면?

정민영 오랜 기간 대통령의 직무 관련 행위, 이른바 통치행위는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라고 해서 정치적 책임을 묻더라도 사법적 단죄를 하는 데에는 소극적이었다. 그로 인해 대통령은 늘 책임 소재에서 한발 물러나 있었다. 아쉬운 점들이 있지만 이번 판결을 통해 대통령이라도 직무 범위를 벗어난 행위를 하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경험과 메시지를 남긴 데 의미가 있다.

현소은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증인으로 나왔던 공판이 기억난다. 초기였는데, 박근혜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가 증인인 유진룡 장관에게 반말을 한다며 서로 목소리를 높이고 싸웠던 적이 있다. 변호인은 피고인 이익을 위해 변론해야 하는데, ‘반말 여부’를 따지는 게 어떤 이익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근혜가 재판을 거부한 이후 선임된 국선변호사들은 ‘저분들은 왜 저렇게 열심일까’ 하는 의문은 들었지만, 적어도 법정에서 정치 논쟁은 하지 않았다. 법정에서 정치투쟁을 벌이려는 전 대통령과 그의 변호사들을 보는 심정이 참담했던 기억이 있다.

김종보 그동안 드러난 사실이 거의 모두 객관적 증거에 의해 인정됐다. 최순실씨는 정말 비선 실세였다. 공무상 비밀누설죄가 인정된 것도 중요한 포인트였다. 박근혜가 재판을 거부하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를 신화가 되고 싶어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국가를 위해 헌신했지만 총살당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정치보복의 희생양이 돼버린 자신. 하지만 국민들이 더이상 허상뿐인 신화에 속을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정민영 첫 공판이 기억에 남는다. 최순실과 나란히 앉아서,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최순실은 ‘대통령은 죄가 없다’고 말하고, 박근혜는 마치 최순실은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그 장면을 보면서 예전 군사쿠데타와 내란·내란목적 살인 등으로 기소된, 나란히 손을 붙잡고 판결을 기다리던 두 전직 대통령이 생각났다.


▲ 2017년 3월 31일 새벽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된 박근혜가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들어서고 있다. 강창광 기자

▲ 2017년 10월 16일 구속 연장 후 첫 공판을 마친 박근혜가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이날 이후 박근혜는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연합뉴스



출처  “법원은 승계작업을 몰랐을까? 기업들은 협박에 굴복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