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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 문제, 2년 전 이미 경고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문제, 2년 전 이미 경고했다
[경향신문] 조형국 기자 | 입력 : 2018.05.20 10:31:01 | 수정 : 2018.05.20 16:34:32


▲ 인천시 연수구 삼성 바이오로직스.

“회사 상장(IPO)이 어렵다구요? 방법이 있습니다. 일단 요즘 뜬다는 ‘바이오’에 전념한다는 자회사 A를 하나 세우세요. 그다음에 ‘외국회사가 A사 주식 상당량을 나중에 사 갈지 모른다’라고 공시한 후 자회사(종속기업) 리스트에서 빼는 겁니다. 그러면 연결재무제표에서 제외되고 귀사가 보유한 A주식을 지분법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때 비결이 하나 있습니다. ‘A사는 바이오에 투자한 회사니 당장은 적자가 나도 수년 뒤에 수천억 원의 이익을 벌어들일 거라서 A사 지분의 값어치는 최소 5조 원은 된다’고 선언하는 겁니다. 그러면 A사 주식에 대한 지분법 평가로 귀사에 수조 원의 기타포괄순익이 잡힙니다. 그럼 귀사는 당장 영업적자가 나더라도 수조 원의 이익을 내는 회사로 탈바꿈하는 겁니다.

매출액이 적어서 안된다구요? 걱정마세요. 이번에 거래소가 상장 규정도 크게 완화했습니다. 자본금만 넉넉하면 적자가 나도 유가증권시장 상장도 가능합니다. 무리한 거래 아니냐구요? 대한민국 No. 1 삼성그룹도 지금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2016.5.13 인베스트조선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을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

2년 전 이맘때입니다. 2016년 4월부터 조선일보(정확히는 인베스트조선)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코스피 상장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기사를 연이어 보도합니다. 기사에서 조선비즈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기업에서 관계기업으로 돌리며 4조5000억 원의 회계상 이익을 본 것을 두고 ‘코스피 상장의 사전정지 작업’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당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재분류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언론은 인베스트조선이 유일했습니다.

2016년 말부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가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2017년 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특검 조사를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과정의 문제가 주목받았지만 이때 제기된 문제점들은 모두 인베스트조선이 보도한 내용이었습니다. 참여연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과대평가된 제일모직의 자산 구성을 따져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수상한(?) 실적 향상을 발견하기 훨씬 전에 인베스트조선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자산 재평가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겁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4월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 특별감리에 착수해온 금융감독원이 약 1년 만에 삼성바이오로직스와 회계법인에 조치사전통지서를 통보했습니다. 새롭게 드러난 사실관계는 많지 않습니다. 최근 분식회계 혐의를 심의하는 첫 감리위원회가 열린 직후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논란은 여전합니다.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려다 그만둔 게 삼성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뒤에 로펌 김앤장이 있었다’ 등이 밝혀졌고, 나머지는 대부분 ‘금감원 사전통지서에 핵심 증거가 없다더라’, ‘금융위원회가 금감원 독자행동을 불편해한다’, ‘문재인 대통령 코드 맞추려 금융기관들이 무리한다’ 같은 ‘카더라’와 ‘하루 새 시총 5조 원 증발’, ‘나흘새 시총 8조 원 날아가’ 같은 시장발 반응들입니다.

▲ 인베스트조선 보도 갈무리

인베스트조선이 지적했던 과거의 ‘사실’들은 무엇일까요. 그들이 “과연 한국에서 ‘삼성’ 이 아닌, 다른 회사라면 이런 식의 상장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품었던 데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3년 전입니다. 2011년 설립 이후 적자만 내 오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5년 2조 원 가까이 순이익을 내면서 초우량 기업으로 변신합니다. 얼핏 사업이 엄청 잘된 결과 같지만, 아닙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바이오에피스라는 회사의 지분을 91.2% 가지고 있었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종속회사’일 때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 가치는 장부가액 4612억 원이었는데 이를 ‘관계회사’로 바꾸면서 지분 가치는 공정가치인 4조8085억 원으로 뛰어올랐습니다. 회계 처리상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바뀌면 지분 가치 평가 방법이 달라집니다.

종속회사와 관계회사는 무슨 차이일까요. 관건은 ‘실질적인 지배력’입니다. 금융감독원이 작성한 ‘K-IFRS 연결재무제표 관련 Q&A’를 보면 “기업이 다른 기업에 대한 지분율이 50%를 초과하거나 지분율이 50% 이하라도 실질적인 지배력이 있는 경우 해당 지분을 보유한 회사를 지배회사, 상대 회사를 종속회사”라고 하고 “관계회사는 당해 회사에 대해 유의적인 영향력이 있는 회사를 의미하며, 통상 직간접적으로 지분율 20% 이상을 소유하고 있으면 유의적인 영향력이 있는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기업에서 관계기업으로 바꿨다는 것은 자신들이 보유한 ‘실질적인 지배력’이 ‘유의적인 영향력’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본다는 뜻입니다.

▲ 금융감독원 ‘K-IFRS 연결재무제표 관련 Q&A’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우리의 지배력이 떨어졌다’고 인정하는 것만으로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기업 가치가 10배 넘게 뛰어올랐습니다. 여기서 한창 논란이 되는 DCF(현금흐름할인모형·Discounted Cash Flow)가 등장합니다. 자세한 얘기는 다음 편에서 하고 눈에 띄는 내용만 짚어보겠습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DCF를 쓰면서 회사의 영업이익률 전망치를 최저 마이너스 24.1%에서 최대 57.4%로, 영업수익성장률은 최저 마이너스 1%에서 최대 105.3%로 잡았습니다. 인베스트조선은 이를 두고 “한 푼도 못 벌 수도 있고, 100% 넘게 벌 수도 있고… 거의 의미 없는 가정치”라고 평가했습니다.

관련기사▶ 1년새 3300억→ 5조2700억대… 삼성바이오로직스 ‘고무줄’ 자회사 가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왜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자신들의 지배력이 떨어졌다고 판단했을까요. 공동투자기업 바이오젠이 등장하는 배경입니다. 삼성그룹은 미국계 바이오제약 기업 바이오젠과 함께 바이오에피스를 세우면서 바이오젠이 최대 지분 49.9%까지 취득할 수 있도록 콜옵션을 부여했습니다. 2016년 당시 바이오젠의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율은 8.8%였습니다. (2016.4.29 인베스트조선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마술'로 만든 2兆 순익은 상장 대비용?>)

콜옵션은 특정 자산을 만기일 혹은 그 이전에 미리 계약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바이오젠의 경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보유한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중 최대 49.9%까지 미리 정해둔 가격에 사 갈 수 있다는 겁니다. 바이오젠이 내야 할 돈은 초기투자금액+이자 정도로 수천억 원에 그치는데, 가져갈 수 있는 지분은 2조5000억 원에서 최대 3조 원까지 될 수 있습니다.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바뀐 삼성바이오에피스가 회계 처리방식을 변경하면서 기업 가치가 5조 원 가까이 뛰어오른 대가입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는 논리로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회계 처리방식을 바꿨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난 4일 낸 해명자료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복제약) 개발성과 가시화에 따른, 바이오젠 콜옵션(에피스지분을‘50%-1주’까지 매입)행사 가능성이 증가해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연결)’에서 ‘관계회사(지분법)’로 회계처리 변경했다”고 밝혔습니다.

▲ 박근혜에게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권도현 기자

▲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기준 변경 시 변화

2016년 초부터 인베스트조선이 지속해서 제기했던 문제들은 2016년 12월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가 금융감독원에 공식 질의를 하면서 수면 위로 떠 오릅니다. 참여연대는 삼성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건을 모니터링 하는 과정에서 제일모직의 자산 구성을 하나씩 살폈고, 그 과정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산가치가 갑작스레 뛰어오른 것을 발견합니다. 이후 2017년 2월 참여연대의 특별감리 요청이 이어졌고, 두 달 뒤 금감원은 특별감리에 착수합니다. 이후 약 1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금감원이 최종 결론의 가닥을 잡으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다시 삼성 총수 일가 승계 문제의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최근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공동 설립한 바이오젠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콜옵션 행사 의사를 표명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바이오젠의 이런 행동은 삼성 분식회계 의혹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요.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으니 우리는 지배력이 없다’고 했던 삼성 측의 주장이 사실로 증명된 걸까요? ‘설립 초기부터 있었던 콜옵션을 핑계로 자회사 가치를 뻥튀기했다’는 일각의 지적은 타당성을 잃은 걸까요? 바이오젠이 곧 만기를 앞둔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았더라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5조 원으로 올린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가치를 다시 기존 장부가액(3000억 원)으로 되돌려야 했습니다. ‘2년 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는 타당한 것인가?’ 아직 해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인베스트조선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집요한 보도를 이어온 것과 달리, 같은 조선일보 계열사인 조선비즈에서는 그간 인베스트조선이 지적해온 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유행이 된 ‘삼성 때리기’”라고 진단합니다. 조선비즈는 “삼성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은 삼성이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재벌 개혁’을 내세운 문재인 대통령의 코드에 맞추기 위해 각 기관이 무리하게 움직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고 지적합니다. 조선일보 계열사 내의 미묘한 온도 차는 어디에서 기인할까요. 2016년 5월과 2018년 5월의 차이점은 첫 번째, 정권이 바뀌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 이재용 부회장이 출소했다는 점입니다.


출처  [이슈 추적] ①삼성바이오로직스 문제, 2년 전 이미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