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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진보정당 후보에게도 말할 기회를 달라

진보정당 후보에게도 말할 기회를 달라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발행 : 2018-06-01 13:33:41 | 수정 : 2018-06-01 13:33:41


▲ 홍성규 민중당 경기도지사 후보(가운데)가 4일, 마트산업노동조합에서 주최한 ‘최저임금법 날치기 통과! 임이자 국회의원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담당 분야가 경제이기도 하지만 워낙 사람 만나는 일을 꺼리는 소심한 성격 탓에 기자에게는 ‘아는 정치인’이 없다. 아니, 없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선거가 시작되면서 그 생각이 잘못임을 깨달았다. 분명히 지난달에도 소주 한잔 같이 마신 친구인데, 그 친구가 선거에 출마해 열심히 활동을 한다. 그 모습을 보니 기자에게도 ‘아는 정치인’이 있는 셈이다.

직업이 정치인인 기자의 술친구는 두 명이다. 한 명은 정의당 김종철 원내대표 비서실장, 다른 한명은 민중당 홍성규 경기도지사 후보다. 소속 정당 이름만 보면 낙선을 밥 먹듯 하는 불쌍한 진보정당 정치인처럼 보이는데(사실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정치적 비중은 진보정당 내부에서 생각보다 크다.

김종철 실장은 2006년 36세의 젊은 나이에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로 선거에 나선 강금실, 오세훈 후보와 맞붙었던 화려한(!) 경력이 있다. 화성에서 여러 차례 선거에 출마해 왔던 홍성규 후보는 이번에 민중당의 경기도지사 후보가 됐다. 두 명 다 한 정당의 광역단체장 선거 대표선수로 나설 정도니 정치적 비중이 결코 작지 않은 셈이다.

이 두 친구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선거 때마다 매스미디어로부터 밥 먹듯 소외됐다는 점이다. 김종철 실장은 진보신당과 노동당 시절 특히 언론으로부터 소외를 많이 당했다. 그가 상대한 후보들이 정몽준, 나경원, 정동영 등 초거물급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수 진보정당 출신 후보에게 언론 노출의 기회조차 박탈당한 선거는 해보나 마나였다.

이번에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홍성규 후보는 KBS가 주최한 TV 토론에 출연도 하지 못했다. 진보정당 후보들이 늘 겪는 설움이긴 하지만, 후보가 고작 다섯 명인데 굳이 홍 후보를 토론에서 제외했다는 소식에 좀 서글퍼졌다.

197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스웨덴의 진보 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Gunnar Myrdal)은 평생 빈곤과 차별을 연구한 학자다. 뮈르달 이론의 핵심은 ‘누적적 인과관계’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가난은 대물림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뮈르달에 따르면 이는 큰 착각이다. 가난은 같은 크기로 대물림되지 않는다. 후손으로 대물림될수록 더 커지면서 대물림된다. 아비의 가난이 10이라면 자식의 가난 강도는 50, 손주의 가난 강도는 100으로 불어나는 식이다.

차별은 빈곤을 낳는다. 그런데 빈곤에 빠지면 교육과 건강에서 더 불평등한 대접을 받는다. 그러다보니 더 가난해진다. 빈곤하니까 차별을 받고, 차별을 받아서 더 빈곤해진다. 이런 식으로 차별과 빈곤이 반복적으로 작용해 누적적으로 커진다는 것이 뮈르달의 주장이다.

진보정당 후보들이 당선권에서 멀리 떨어진 이유가 ‘오로지 제도권 언론이 차별 탓’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공정한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서 진보정당 후보들이 대거 당선권에 진입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만큼 한국의 진보정당 앞에는 놓여있는 과제도 많고, 반성해야 할 부분도 많다. 실력을 한참 더 키워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부족함과 별개로 진보정당의 소외에 누적적 인관관계가 낳은 불평등은 없었을까? 경험적으로 보면 진보정당 후보들의 소외는 빈곤과 마찬가지로 누적적으로 커지면서 대물림됐다.

지지율이 낮다고 언론의 노출에서 거부당하면, 이들의 생각을 유권자들에게 알릴 길이 차단된다. 당연히 지지율이 더 낮아지는데, 언론은 지지율이 더 낮아졌다고 이들의 출연을 더 강하게 거부한다.

“이들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면 얼마든지 당선도 가능하다”는 주장은 허황되다. 하지만 공평한 기회도 주지 않고 “가능성도 없는 놈들이 무슨 TV토론이냐”라고 내치는 것은 너무 처참하지 않은가?

술친구들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들은 모두 평생을 민중들과 함께 싸운 헌신적인 투사들이자 진심어린 정치인들이다. 이런 이들이 당선 가능성도 낮은 선거에 도전해 유권자들에게 진심을 이야기하려 한다.

그런 이들에게 거대 정당 후보에게 부여된 기회의 절반만이라도 달라는 게 그렇게 경우 없는 요구일까? 부디 한국 사회가 “그렇지 않다. 당신들의 이야기를 얼마든지 들어주겠다”고 답해 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출처  [기자수첩] 진보정당 후보에게도 말할 기회를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