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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경찰·군까지 ‘댓글 공작’…마지막 퍼즐은 MB

민간인·경찰·군까지 ‘댓글 공작’…마지막 퍼즐은 MB
[한겨레] 고한솔 기자 | 등록 : 2018-09-23 12:41 | 수정 : 2018-09-23 13:31


▲ 국가정보원. 한겨레 자료사진

“다른 팀 팀장들 여러 명 있었는데 그중 기소된 사람이 또 있습니까?”(판사)

“네, 성○○, 최○○가 1심에서 실형 선고받고 항소심 재판 중에 있습니다.”(검사)

“음… 김○○, 이○○ 이런 친구들도 있는데요.”(판사)

지난 13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302호 법정. 국가정보원 심리전단 사이버팀 직원과 사이버 현안 대응 ‘외곽팀’ 팀장을 맡았던 민간인 등 10명의 항소심 첫 공판이 서울중앙지법 형사2부(재판장 차문호) 심리로 열렸다.

차문호 부장판사는 같은 혐의로 다른 재판부의 심리를 받는 국정원 직원 및 민간인의 재판 현황을 체크했다. ‘민간인 댓글부대’ 관련 혐의로 재판을 받는 이들만 22명에 달한 탓이다. 이날 항소심 공판도 피고인과 변호인 20명으로 법정 절반이 가득 찼다. 피고인석 의자 5개로도 모자라 증인석 뒤에도 의자 15개가 놓였다. 한산한 방청석과 대비를 이뤘다.

지난해 8월 국가정보원 적폐청산 티에프(TF)를 통해 그간 <한겨레> 등 언론을 통해 의혹이 제기됐던 민간인 댓글부대의 존재가 확인된 지 1년이 흘렀다. 당시 댓글 여론조작에 국정원은 물론 경찰과 군까지 투입됐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MB’를 정점으로 한 범정부적 댓글공작 방식과 규모 역시 ‘문어발 확장’하고 있다.


수산물업체 대표·회사원…민간인 팀장 대부분 1심 집행유예

국정원 외곽팀은 2009년 5월~2012년 12월 네이버·다음 등 포털사이트와 트위터에서 활동하며 친정부 성향의 글을 작성하고, 정부에 비판적 여론을 ‘종북세력’으로 낙인찍는 일을 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지시사항이 담긴 ‘이슈와 논지’를 참고해 4대강 녹조 현상의 원인을 폭염으로 돌리거나, VIP(이명박) 독도 방문을 헐뜯는 여론에 대응하는 식이다.

민간인 댓글부대 사건은 정치 관여·선거 개입 색채가 짙은 여론조작 활동에 민간인까지 동원됐다는 점에서 국정원의 조직적 사이버 활동과는 다른 차원의 충격을 안겼다. ‘외곽팀 팀장’으로 불린 이들은 회사원, 자영업자, 시민단체 대표, 인터넷사이트 운영자 등 평범한 시민이었다. 국정원 내부 문건은 이들을 ‘전직 (국정원)직원·탈북자·예비역 군인·뉴라이트 추종자 등 보수 친여 성향(좌파척결 활동에 열정적)‘이라고 설명했다. 나이, 사회적 지위, 정치적 성향 등을 따져 선발한 이들이었다. 외곽팀은 최대 30개로 파악됐지만 검찰은 지휘 체계와 활동 실적, 수령액, 수사 과정에서 보인 태도 등에 따라 재판에 넘길 이들을 추렸다.

1심 재판은 주로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정계선)와 28부(재판장 최병철)가 맡았다. 민간인 외곽팀장 3명만이 1심 재판에서 징역 8~10개월·자격정지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나머지 대부분은 집행유예됐다.

“우리 늙은이들이라도 국가안보를 위해 좌파들에 적극 대응하자”, “나이가 많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 일명 ‘양지 사이버 동호회’를 만들어 트위터 활용법을 교육받는 등 열성적으로 댓글 작업을 돕던 국정원 퇴직자 모임 ‘양지회’ 회원들도 대부분 집행유예를 받았다.

민간인 외곽팀장들은 지난 13일 항소심에 나와 “형이 너무 무겁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 외곽팀장은 “전립선암과 위암으로 투병하고 있다가 갑자기 구속되어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돈을 건넨 직원이 국정원 직원인 줄 알지 못했다”라고 항변했다. 양지회 회원의 변호인은 “단순히 기계적·반복적 행위를 한 것일 뿐 그저 도구에 불과했다. 퇴직한 이후에 노후활동을 하면서 단순히 정치적 의견을 밝힌 것일 뿐 국정원이 개입한 일인지 몰랐기 때문에 공모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간인 댓글부대를 운영·관리했던 국정원 심리전단 안보사업 3팀장 최아무개씨, 안보사업 2팀장 성아무개씨는 실형을 피하지 못했다. 국정원의 댓글공작을 총지휘한 원 전 원장은 지난 4월 징역 4년이 확정됐지만, 민간인 외곽팀 여론조작을 지시한 혐의로 추가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 지난 5월 23일 첫 재판에 출석한 이명박. 한겨레 자료사진


“국정원처럼 댓글 잘해야”…최종 책임자는 MB

민간인만이 아니다. 국정원에서 시작된 댓글 조작 의혹은 국정원 민간인 외곽팀에 이어, 군 사이버사령부, 경찰 보안사이버수사대까지 확대된 상태다. 고구마 줄기 캐듯 이명박 정부 시절 범정부적 댓글 활동이 시차를 두고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의 재판에선 낯 뜨거운 이미지가 법정 화면을 통해 공개됐다. 제주 해군기지를 반대하던 방송인 김제동씨와 김미화씨 얼굴 사진을 따와 ‘구럼비만 말고 탈북자도 지켜주소’라는 문구를 붙인 이미지를 시작으로, 김관진을 국가대표에 빗대어 영웅화한 사진, ‘12억 배럴 유전 수주 축하한다’는 문구와 함께 이명박의 자원외교 성과를 떠받드는 사진 등이 연이어 화면을 지나갔다. 군 사이버사령부가 여론조작을 위해 만들어 온라인에 배포한 이미지들이다. 김관진은 짧은 한숨을 내쉰 뒤 “이거(이미지) 하나하나까지 장관이 보고받는 시스템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김관진은 2011년 11월~2013년 6월 군 사이버사령부를 동원해 정부·여당을 지지하고 야당·야권 정치인을 비난하는 정치적 글을 9000여 차례에 걸쳐 올린 혐의(군형법상 정치 관여 등)로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과 함께 올해 3월 재판에 넘겨졌다. 경찰 또한 온라인 여론조작에 나섰다는 사실이 밝혀져 경찰 특별수사단이 이명박 정부 당시 경찰 댓글 공작을 수사하고 있다.

검찰은 범정부적 댓글 여론조작 활동을 짜 맞추는 마지막 퍼즐을 이명박이라 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국가정보원 수사팀(팀장 박찬호 2차장)은 세종시에 있는 대통령기록관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생산된 대통령기록물을 압수수색하던 중 이명박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등에서 ‘댓글 지시’하는 육성이 담긴 녹음파일·녹취록 등을 다수 확보했다. 녹취록에는 “댓글이 중요하다”, “다른 기관들도 국정원처럼 댓글을 잘해야 한다” 등 국정원식 댓글공작을 다른 부처에도 독려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다스 비자금 횡령·뇌물 혐의 등으로 10월5일 1심 선고를 앞둔 이명박이 추가 기소가 불가피하다.


출처  민간인·경찰·군까지 ‘댓글 공작’…마지막 퍼즐은 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