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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새해 첫날, 직원 무더기 해고한 한국정보화진흥원

새해 첫날, 직원 무더기 해고한 한국정보화진흥원
장애인 수화·문자 통역하는 중계사 12명 일자리 잃어
무기계약직 전환 평가 앞두고 ‘퇴직서류 제출’ 요구받아
“‘형식적 채용시험’이란 진흥원 설명 믿었는데 새해 첫날 실업자”

[한겨레] 글·사진 선담은 기자 | 등록 : 2019-01-01 10:46 | 수정 : 2019-01-01 21:24


▲ 손말이음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수화중계사 모습. 정책브리핑 갈무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기관인 한국정보화진흥원(진흥원)이 청각·언어 장애인의 전화 소통을 돕는 수화중계사들의 직접고용 전환을 앞두고 절반에 가까운 중계사들을 사실상 무더기로 해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2017년 7월 발표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라 2019년부터 ‘진짜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던 중계사 12명은 새해 첫날부터 일자리를 잃게 됐다.

전국공공운수노조 케이티(KT)새노조 손말이음센터지회는 지난 31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19년 1월 1일 손말이음센터 중계사들을 무기계약직으로 직접 고용하겠다던 한국정보화진흥원이 3단계 정규직 전환 시험을 내세워 장애인에게 수화·문자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계사들을 해고했다”며 “졸지에 실업자가 된 기존 중계사들의 빈자리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로 채워지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진흥원은 2005년 청각·언어 장애인을 위한 통신중계서비스(현 손말이음센터)를 시작한 뒤 2009년부터 이 서비스를 케이티 자회사인 케이티씨에스(KTcs)에 위탁 운영해왔다. 케이티씨에스는 법무부, 고용노동부, 국민카드 등의 콜센터를 운영하는 회사다. 그동안 손말이음센터에서 연중무휴 상시·지속 업무를 해온 중계사 34명은 모두 케이티씨에스 소속의 하청노동자 신분이었다.

▲ 전국공공운수노조 케이티새노조 손말이음센터지회가 지난 31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한국정보화진흥원 채용 사기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러한 간접고용 구조 속에서 중계사들은 저임금과 각종 성폭력에 시달리면서도 노동권을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 2017년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선 영상통화 중계 과정에서 악성 이용자들의 ‘모니터 성폭력’을 당하고도 센터장의 지시에 따라 중계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는 중계사들의 증언이 나와 손말이음센터 운영 실태에 대한 여야의 질타가 쏟아졌다.

이후 중계사들은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지난해 2월부터 진흥원 쪽과 직접고용 전환을 논의해왔다. 그 결과 진흥원은 지난 17일 정규직 전환 대상으로 결정된 중계사 39명(퇴사자 5명 포함)을 대상으로 직접고용 무기계약직을 선발하는 제한경쟁채용 공고를 올렸다. 이에 기존 중계사 가운데 무기계약직 전환 의사를 밝힌 30명 가운데 29명이 지난 19일부터 27일까지 한글 타자 능력과 외부 전문가 및 임직원 면접 등 모두 3차례에 걸쳐 정규직 전환 평가를 치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12명의 중계사가 탈락했다. 탈락자 명단에는 지난 28일 손말이음센터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의 표창을 받은 황소라 손말이음센터 지회장도 포함됐다.

문제는 중계사들이 직접고용 전환을 앞두고 소속 회사인 케이티씨에스로부터 사직서 제출을 요구받았다는 점이다. 실제 중계사 34명 전원은 1차 평가 당일인 지난 19일 오전 회사의 요구에 따라 퇴직서류를 제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영수 손말이음센터지회 사무국장은 “직접고용 논의 당시 진흥원 쪽은 무기계약직 전환 평가에 대해 ‘기존 직원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형식적인 채용시험일 뿐’이라고 설명했다”며 “그 말만 믿고 사표를 제출한 중계사들은 졸지에 원래 다니던 직장마저 잃고 새해 첫날부터 실업자가 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진흥원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중계사들의 사직서 제출과 관련해 케이티씨에스에 어떠한 요구도 한 적이 없고, 보고받은 내용도 없다”고 해명했다.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화를 추진하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반하는 대규모 해고 사태에 대해선 “(중계사들의) 무조건적인 무기계약직 채용은 또 다른 불공정 논란을 낳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충원 과정에서 외부 입사 희망자에게도 채용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진흥원 쪽 주장에 대해 황 지회장은 “손말이음센터의 모든 관리 책임은 원청인 진흥원에 있기 때문에 서비스를 위탁 운영하고 있는 케이티씨에스는 진흥원의 지시를 받을 뿐, 중계사들의 사직서 제출을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구조”라고 반박했다.


출처  새해 첫날 ‘장애인 통역’ 직원 무더기 해고한 한국정보화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