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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 찾으면 보듬고 잘 거야…내 자식인데 뭐 어때”

“유골 찾으면 보듬고 잘 거야…내 자식인데 뭐 어때”
5·18 때 사라진 아들 39년째 찾고 있는 이귀복씨
[경향신문] 강현석 기자 | 입력 : 2019.04.09 06:00:02 | 수정 : 2019.04.09 06:02:01



“아들 유골이라도 찾는 것이 남은 소원이지. 찾으면 밤새 이불 속에서 보듬고 잘 거야. 부스러진 뼛조각이면 어때 내 자식인데….”

1980년 5월 아들을 잃은 이귀복씨(83·사진)의 시선은 간간이 허공을 향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된 8세 큰아들은 39년이 흘렀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골목대장’으로 남아 있다.


골목대장이었던 8살 창현… 완도서 돌아오니 보이지 않아

8일 5·18민주화운동 최후항쟁지였던 광주 옛 전남도청에서 만난 이씨는 “국민(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무엇을 알았겠어. 지구가 끝나고 내 몸이 끝날 때까지 한을 풀 수 없다”고 말했다. 이씨의 2남1녀 중 둘째였던 창현군은 1980년 5월 19일 집을 나선 뒤 행방불명됐다.

이씨 가족은 당시 광주 서구 양동시장 인근에 살았다. 동네 골목을 신바람나게 뛰어다니던 창현군은 그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이씨는 전국의 큰 공사장을 돌며 일을 했고, 부인은 화장품 외판원으로 살림을 보태던 시절이었다.

이씨는 “창현이는 동네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달려나가곤 했다. 또래들을 이끌고 다니며 골목대장 노릇을 할 정도로 발랄한 아이였다”고 회상했다. 5·18 발발 이튿날 창현군은 집을 나섰다가 실종됐다.

당시 이씨는 전남 완도의 한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었다고 한다. 나머지 가족들이 창현군을 찾으려 했지만 계엄군 때문에 집 밖을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이씨는 “5·18 소식을 듣고 당장 광주 집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시 외곽이 모두 계엄군에 막혀 있었다”면서 “4~5일 만에 어렵사리 집으로 돌아왔더니 창현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역 앞에서 총 맞았다는 비보... 결국 못 찾고 행불자로 등록

이씨는 “아이를 찾기 위해 광주를 이 잡듯 뒤진 끝에 ‘당시 광주역 앞에서 총에 맞은 것을 봤다’는 사람을 만났지만 행방은 알 수 없었다”고 했다.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창현군은 1994년 5·18 행방불명자로 인정받았다.

아들이 사라진 이후 이씨는 5·18 행불자 가족들의 대표를 맡으며 전국으로 아들을 찾아 헤맸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신이 발굴되거나 무더기로 유골이 나오는 곳이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어디든 찾아갔다. 경기 파주와 전남 영광, 해안가 등을 수도 없이 헤맸다.

12년 동안 이씨가 행불자회 회장을 맡으며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가족들의 삶도 함께 궁핍해졌다. 이씨는 “일을 제대로 못하면서 아내와의 다툼도 잦아졌다. 지금은 혼자 광주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의 이 같은 사연은 지난해 5·18민주화운동 38주년 기념식에서 <영원한 소년>이라는 제목으로 공연되기도 했다.

이씨는 “그동안 광주에서 11번이나 행불자를 찾기 위해 땅을 팠지만 1구의 유골도 안 나왔다. 당시 계엄군들이 광주 가까운 곳에 묻었을 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행불자들이 어딘가에 반드시 암매장됐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는 “공군 수송기가 5월 25일 김해로 ‘시체’를 날랐다는 기록이 발견된 만큼 반드시 조사해봐야 한다. 시신도 찾지 못한 자식을 잊을 수는 없다”면서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시신 수송 문건 발견됐다니 진실 밝히는 대원엔 큰절을…

전두환 등 여전히 5·18의 진실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세력에 대해 이씨는 “진정으로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에 죄를 지은 전두환 등이 무릎 꿇고 먼저 참회를 해야 우리가 받아줄지 말지 결정할 것 아니냐”면서 “죄를 지은 사람이 당당하고, 토착왜구당 ‘망언 3인방’처럼 못된 소리만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5·18의 진실을 가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많은 행불자 가족이 유골조차 못 찾아 지금도 가슴 아파한다”면서 “공수부대원들이 지금이라도 양심선언을 하고 진실을 말해준다면 큰절이라도 올리겠다”고 말했다.


출처  [단독]“유골 찾으면 보듬고 잘 거야…내 자식인데 뭐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