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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도 못 쉬어, 실신은 흔한 일”…울분 토하듯 쓴 시엔 “삼성 지옥”

“아파도 못 쉬어, 실신은 흔한 일”…울분 토하듯 쓴 시엔 “삼성 지옥”
글로벌 삼성 지속 불가능 보고서 ②산재
국제환경노동단체 보고서 단독 입수
삼성, 하루라도 쉬면 월급 깎아
생리불순, 유산 잦아
유엔, 삼성 노동자 인권 침해 우려

[한겨레] 하노이/이재연 김완 기자 | 등록 : 2019-06-20 05:00 | 수정 : 2019-06-20 11:02


▲ 베트남 박닌 삼성전자 공장 내부 모습. 휴대폰 제조는 노동자 1명이 부품을 앞에 늘어놓고 종일 서서 조립하는 공정으로 이뤄진다. 연합뉴스

“실신하는 사례는 많이 있어요. 밤낮이 자주 바뀌니까 잠을 못 자서 그런 것 같아요.”

“저번에 병원에 갔다 온 동료는 종양이 발견됐다고 했어요. 저도 그럴까 봐 무서워서 병원에 못 가고 있어요.”

베트남 시민단체 CGFED가 2017년 3월 4일 삼성전자 공장 노동자와 진행한 인터뷰 중 일부다. CGFED와 국제 환경단체 IPEN은 2016년 11월부터 2017년 7월까지 삼성전자 박닌 공장 21명과 타이응우옌 공장 24명 등 노동자 45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뒤 보고서를 발표했다. 르우티타인떰(사망 당시 22살)이 타이응우옌 공장에서 숨진 건 인터뷰가 시작되기 3개월 전인 2016년 8월이다. 떰과 같은 시기에 같은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건강은 무사했을까. <한겨레>가 인터뷰 녹취록 일부를 입수해 분석했다.


“공장에서 실신은 흔한 일”

노동자들은 실신이나 생리불순 같은 증상을 두고 “통상적인 것”,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실신하는 경우가 있느냐’는 물음에 한 노동자는 “우리 라인에서는 없는데 다른 라인에서 많이 있다”고 답했다. 그는 “(야간 근무 때문에) 자주 밤을 새우면 불면증에 걸려서 다시 아침에 출근할 때 너무 힘들다. 게다가 공장에서는 서서 일하니까 다리가 저리고 어지러워 쓰러진다”며 “여기서는 이렇게 실신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했다. 다른 노동자는 “어지러움은 통상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대 근무 때문에 생활 주기가 계속 바뀌니까 잠을 잘 수가 없다. 교대가 바뀐 직후에는 몸이 약해져서 (정상 체력의) 60~70%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팜티민항 CGFED 부단장은 “인터뷰에서 박닌과 타이응우옌 노동자들 모두 실신은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며 “또 인터뷰에 참여한 노동자 중 3명이 직접 유산을 경험했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거의 모든 여성 노동자가 생리불순을 겪었다. 한 노동자는 “생리불순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며 “삼성에서 일하기 전에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최근 피 색깔이 검어지고 양도 줄었다”고 말했다. 다른 노동자도 “(삼성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로 갑자기 이렇게 됐다. 계속 이러면 병원에 가야겠지만 무섭다. 용기가 나지 않는다”며 말끝을 흐렸다.

노동자들은 문제의 원인과 심각성을 알 수 없어 답답해했다. 이들은 “삼성 노동자 중에 불임이 많다고 하는데 확인할 길이 없다”고 털어놨다. 생리불순에 대해서는 “원인을 모르겠다”고 했다. 화학물질에 관해 묻자 한 노동자는 “화학물질을 쓰는 부서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몇 명 안다”며 “그들도 자신이 무슨 물질을 쓰는지 모르더라”고 말했다.

이들은 “삼성에서 오래 일하면 안 된다”고 했다. 한 노동자는 “생리 문제가 많으니까 불임이 될까 봐 부모님이 걱정한다. 그래서 여성 노동자들은 2~3년 일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베트남 노동자가 지난해 11월 29일 삼성에서의 경험에 대해 작성한 시. “12시간, 참 오랫동안 삼성에서 일하는 가여운 나/ 긴 줄 서서 들어가고 나가고/ 노동자들이 왜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나?/ 경비원들은 끝나는 시간까지 문을 닫아둬 / (…) / 우리는 언제 삼성 지옥을 떠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왼쪽) 오른쪽 사진은 베트남 노동자가 베트남 시민단체 CGFED에 보낸 문자.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하다. 앞으로는 연락하지 말아달라. 회사가 알면 나를 해고하거나 고소할 것이다. 다시 한번 미안하다”는 내용이다. 국제환경노동단체 IPEN 제공


“하루라도 쉬면 월급 깎여”

노동자들은 몸이 아파도 쉴 수 없었다. 병가를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이들은 말했다. 연차휴가를 비롯해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조차 이들에겐 주어지지 않았다. 생산라인의 반장을 맡고 있다는 한 노동자는 “쉬고 싶으면 5일 전에는 말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프다고 말해도 다 무단결근으로 처리한다”며 “모든 직원이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한번은 설사 때문에 화장실에서 나올 수가 없어서 상사에게 말했는데 회사 와서 직접 말하라고 했다. 전화로 얘기하면 허락 없이 결근한 것으로 보겠다고 했다”고 털어놨다. 이 노동자는 한달에 24~25일 일하고, 일요일에 출근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2주 동안 휴일 없이 일한 적도 있지만 대체휴가는 쓸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무단결근’은 월급에 반영됐다. 노동자들은 하루 결근하면 월급이 100만동(약 5만원) 이상 깎인다고 했다. 당시 이들의 월급(초과근무수당 제외)은 600만~700만동(약 30만~35만원)이었다고 한다. 하루 결근하면 월급의 약 15%가 사라지는 셈이다. 한 노동자는 “한번은 월급이 너무 적어서 당황해 확인해보니 한 번 결근한 게 문제였다”며 “인사팀에서 ‘이유 없는 결근’으로 처리해버려서 한달 개근 수당과 하루치 월급이 모두 깎인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노동자는 “사람들은 삼성이 돈을 많이 준다고 생각하지만 잔업수당을 빼면 돈이 별로 없다. 그래서 아파도 꾹 참고 회사에 나오게 된다”고 했다.

하루도 마음대로 쉴 수 없는 공장에서 노동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들은 “메인 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울 정도로 힘들어한다”고 토로했다. 한 노동자는 “처음에는 그냥 삼성에 취직하면 잔업을 많이 해서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좋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은 개보다 못한 삶인 것 같다”고 했다.

조 디간지 IPEN 과학전문 상임고문은 “삼성이 노동자들을 어떻게 여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며 “삼성뿐만 아니라 삼성 제품 소비자들도 이들 45명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 “삼성 노동자 인권 침해 우려”

IPEN 보고서는 삼성전자 노동자 인권에 대한 유엔의 논평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됐다. 유엔은 지난해 3월 “유엔 인권 전문가들이 베트남 박닌과 타이응우옌 공장 노동자들이 독성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또 “보고서 발표 이후 삼성이 ‘외부인에게 삼성 내 노동환경에 대해 말하면 소송을 걸겠다’고 노동자들을 협박했다는 의혹이 있다”며 “이에 대해서도 삼성에 해명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출처  “아파도 못 쉬어, 실신은 흔한 일”…울분 토하듯 쓴 시엔 “삼성 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