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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벗겨지고, 손가락 잘리고”…삼성 하청 공장은 더욱 처참

“살 벗겨지고, 손가락 잘리고”…삼성 하청 공장은 더욱 처참
글로벌 삼성 지속 불가능 보고서 ②산재
삼성 국외공장 하청 노동자들을 만나다
독성 약품 노출... 직업병·산재 위험 높아
강제 초과근무. 브로커 성행하지만
삼성은 ‘짬짜미’ 감사, “감독 의무 소홀”

[한겨레] 치카랑, 수카부미(인도네시아)/옥기원 기자 | 등록 : 2019-06-20 05:00 | 수정 : 2019-06-20 11:09


▲ 삼성전자 하청 공장인 롱빈 노동자들이 각종 화학약품에 노출되어 몸에 수포와 두드러기가 생겼다. 이 공장에서는 삼성이 사용을 제한한 톨루엔이 사용됐다. 작업 중에 손가락이 잘린 노동자도 있었다. 수카부미(인도네시아)/산재 피해 노동자들 제공

삼성의 아시아 하청 노동자들은 목숨을 걸고 일한다. 갤럭시 부품을 만들지만 하청 소속이란 이유로 더 위험한 작업환경과 열악한 처우에 노출된다. 월급은 삼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반 남짓, 독성 화학약품에 노출되고 작업 중 손가락이 잘리는 부상을 당한 노동자도 있다.

<한겨레>는 지난 5월 중순 인도네시아 치카랑 삼성전자 공장 주변에 있는 삼성 하청 노동자들을 만나 실태를 조사했다. 인도네시아의 부품 직수입 금지 정책으로 많은 한국의 하청업체가 삼성과 함께 현지에 진출해 있다. 대부분의 하청은 삼성에서 받게 될 불이익을 우려해 취재를 거부했다. 약속 당일 갑자기 연락이 끊긴 취재원도 있었다.

가장 적극적으로 취재에 응한 사업장은 삼성에 이어폰과 USB 케이블을 납품하는 회사인 롱빈의 노동자들이었다. 치카랑 공장에서 차로 4시간여 떨어진 수카부미 지역에 있어서 삼성의 압력이 덜한 곳이다. 롱빈에는 약 3800명의 노동자가 일한다. 생산품 60% 이상을 삼성에 공급한다.


독성물질 노출, 손가락 절단 사고…

롱빈 노동자들은 최근까지 독성 화학물질인 톨루엔에 노출됐다. 삼성 이어폰 제조 공정에서 불순물을 세척하기 위해 스포이트에 톨루엔을 넣어 사용했다. 유해 화학물질로 세계보건기구가 사용을 제한한 톨루엔은 호흡기를 통해 신체에 흡수되며 장시간 과다 노출될 경우 구토 및 경련, 심하면 사망에도 이를 수 있다. 삼성이 2018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사용을 제한하겠다고 밝힌 약품이기도 하다.

7년 동안 이 공장에서 일한 율리얀티는 “(톨루엔이) 위험한 약품인지 모르고 사용했다. 토하거나 몸에 수포, 두드러기가 생기는 동료가 많아서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독성 물질을 다루는데도 마스크와 보호장비 등이 지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심지어 약품 구매비를 줄이기 위해 밀폐된 작은 창고에서 사용한 톨루엔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재활용 작업도 했다고 설명했다. 율리얀티는 “대부분 시골 출신이라서 위험한 노동 환경에 문제의식이 없었고, 어지러워도 참고 일했다. 보호장비를 자비로 사는 게 아까워서 그냥 근무했다. 폐병에 걸린 동료도 있었다”고 했다.

인도네시아 노동보건단체인 립스(LIPS)가 지난해 말 보고서에 롱빈의 톨루엔 사용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뒤 현재는 자극성이 더 약한 것으로 알려진 에틸아세테이트가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어지럼증을 호소하거나 살갗이 벗겨지는 노동자가 많은 상황이다. 롱빈 노동조합은 “대부분이 단기 계약직인데 독성 약품 사용의 후유증은 퇴사한 후 한참 뒤에도 나타날 수 있다. 약품을 다루는 노동자에게 충분한 보호장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롱빈에서는 지난 4월 USB 케이블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기계에 손가락이 잘린 사고도 있었다.

알피안 립스 연구원은 “삼성 하청 노동자는 본공장보다 더 위험한 환경에서 일한다. 삼성이 부품 단가를 낮출수록 하청의 처우는 더 열악해진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많은 하청 노동자가 직업병과 산재를 겪은 것으로 보고됐다”고 설명했다. 립스는 최근 갤럭시 포장 상자에 들어갈 안내문을 제작하는 한 하청업체 노동자가 폐암으로 사망한 사례를 소개했다. 고온 작업 중 증발한 잉크의 독성 물질에 장시간 노출된 것이 폐암의 원인으로 추정된다.

▲ 인도네시아 롱빈 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생산라인 옆에 설치된 목표량 전광판. 수카부미(인도네시아)/공장 노동자 제공


강제 초과근무, 브로커 알선 성행

삼성 하청 노동자에게 ‘강제 초과근무’는 일상이었다. 롱빈의 경우 한 라인 30명에게 할당된 작업량은 1시간에 이어폰 3500개를 조립하는 것. 단순 계산으로 한명이 30초 안에 1개를 만들어야 했다. 롱빈에서 3년 넘게 일한 이루야(가명·28)는 “작은 부품을 섬세하게 조립해 붙이는 작업이라 불량이 나기 쉽다. 일에 익숙한 노동자가 화장실을 못 가고 일해도 목표를 채우기 힘들었다. 속도가 느리면 관리자에게 개, 돼지에 빗댄 욕설을 들으며 일했다”고 말했다.

공장은 2교대(조립 공정 기준 오전반 7시 45분~15시 45분, 오후반 19시 45분~다음날 5시)로 돌아갔다. 정해진 근무시간에 할당량을 채우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노동자들은 교대시간이 지나도 일을 해야 한다. 초과근무수당은 지급되지 않았다. 아파도 쉴 수 없었고, 휴가를 쓰면 (의사 소견서가 있어도) 임금을 깎았다. 이렇게 일해서 롱빈 노동자가 받는 한달 임금은 약 300만루피아(25만원). 잔업과 연차 수당을 모두 합친 포괄임금이다. 삼성 치카랑 공장 비정규직 월급 약 600만루피아(초과근무수당 포함)의 절반이다.

대부분은 3~6개월 단위 초단기 계약직이었다. 롱빈 노조는 비정규직 비율을 90%로 추산했다. 수디안티 노조 위원장은 “10년 전만 해도 정규직이 절반 이상이었지만 기존 정규직을 계약직으로 전환하면서 계약직이 매우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삼성의 단가 인하 요구에 맞물려 인건비를 낮추기 위한 변화라고 해석했다.

일자리가 불안정해지자 돈을 받고 채용을 알선해주는 브로커까지 성행하고 있다. 롱빈 노조는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브로커들이 구직자에게 (한달 임금 수준인) 300만루피아를 받고 채용을 알선하고 있다. 기존 노동자도 계약이 만료되고 다시 일하려면 100만루피아를 (브로커에게) 내야 한다”고 밝혔다. 브로커의 채용 알선은 현지 노동법 위반이며 삼성이 근절을 약속한 악습이다.


’원청’ 삼성은 ‘짬짜미’ 감사

불법을 관리·감독하기 위한 삼성의 하청 감사가 짬짜미로 진행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 하청 노조 전 간부는 “하청 관리자들은 삼성에서 감사가 올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준비했다. 삼성은 하청이 정해놓은(답변을 준비한) 노동자만 만나고 감사를 끝냈다. 이런 거짓 감사로는 하청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롱빈 노조 역시 지난해 관리자들이 삼성 감사가 나오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노동자들과 입을 맞췄다고 밝혔다.

취재 중에 만난 인도네시아 금속노동자연맹(FSPMI)과 삼성 하청 관계자들은 “다른 하청 사업장도 롱빈 못지않게 매우 열악하다. 초과근무, 저임금, 위험한 노동조건은 대부분의 하청 노동자가 겪는 문제”라고 말했다. “삼성이 하청 업체 간의 납품 단가 인하 경쟁을 유도해 피해가 고스란히 하청 노동자에게 전가된 결과”라는 설명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하청업체 관계자는 “언제 (삼성) 물량이 끊길지 모르는데 어떻게 정규직을 고용하고 좋은 처우를 제공할 수 있겠나. (열악한 처우를) 너무 하청 잘못으로만 보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현지법과 ‘책임있는 기업연합’(RBA) 행동규범 등을 성실히 지키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삼성 하청 노동자에게 비자발적 근무 금지, 안전한 근무환경 제공 등의 국제규범은 적용되지 않았다.


출처  “살 벗겨지고, 손가락 잘리고”…삼성 하청 공장은 더욱 처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