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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고용” 절박한 외침에 “소요사태 난다” 언론마저 봉쇄

“직접고용” 절박한 외침에 “소요사태 난다” 언론마저 봉쇄
고속도로 톨게이트 위로 올라간 요금수납 해고노동자들
[경향신문] 심윤지·탁지영 기자 | 입력 : 2019.07.26 06:00 | 수정 : 2019.07.26 14:33


▲ 톨게이트 해고 노동자들이 24일 경기도 성남시 서울톨게이트 지붕 위에서 노숙투쟁 중인 노동자들을 위한 응원 집회를 열고 있다. 김창길 기자

톨게이트 수납원들로부터 고공농성 현장을 취재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건 지난 16일이다. 한국도로공사로부터 용역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이들은 도로공사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지난달 30일 경기 성남시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 캐노피 위에 올랐다. 투쟁 25일째에 접어든 24일 서울톨게이트를 찾았다.

“4일 전 해고자 네 분이 건강 악화로 또 내려가셨어요. 치아가 빠지고 혈변 증세를 보인 분도 있었어요. 마흔 한 명이 올라와 이제 서른 다섯 명이 남았네요.” 캐노피에 오른 박선복 한국노총 톨게이트노동조합 위원장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해고 노동자들 건강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진다. 하루 평균 오가는 차량이 10만대가 넘는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소음과 매연, 더위와 습기와 싸우며 하루하루를 견딘다. 고공농성을 벌이는 이유를 직접 듣고 싶었다. 캐노피 농성장과 노동자들을 취재하기란 쉽지 않았다. 캐노피로 향하는 유일한 입구는 굳게 잠겨있다. 도로공사는 “언론 취재를 위해 별도로 사다리차를 부를 수는 없다”고 했다.

이날 오전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농성장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행 취재를 요청해 오후 5시 경기 성남시 분당구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에 도착했다. 쉴 새 없이 오가는 차 소리에 큰소리를 내지 않고는 대화가 어려웠다. 30분이 지나자 매연으로 목이 칼칼해졌다.

“오늘은 비가 오고 날이 흐려서 그나마 시원한 편이에요.” 목에 맺힌 땀을 닦아내는 기자에게 충남 예산 수덕사톨게이트 수납원 정미선씨(48)가 말했다. 정씨는 지난달 30일 서울에 올라와 캐노피 아래 천막농성에 참여했다. “캐노피 위는 훨씬 더워요. 4일엔 농성장 온도가 46도까지 올라갔어요. 고무로 된 슬리퍼가 더위로 쭈글쭈글해질 정도였다니까요.

도로공사는 농성장 노출을 막았다. 이 의원은 경찰과 도로공사 본사와 사전에 조율했다. 현장에 도착한 이 의원은 “현장 책임자가 보고 받지 못했다”, “올라가지 않고도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왜 굳이 올라가려 하냐”며 직원들로부터 제지당했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소요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실랑이 끝에 도로공사 측은 “의원은 올라가게 하겠다. 하지만 기자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 서울톨게이트 캐노피 위 천막. 민주노총 전국민주연합노조 제공


도공 교섭 약속 믿다 계약 해지…준비도 없이 기습 농성 25일째
“여긴 46도, 매연·벌레까지 고통…탈수·화상에 이제 35명만 남아”

사전에 취재 협조를 구했다고 항의했지만 도로공사는 요지부동이었다. 현장 책임자 주국돈 수도권본부장은 “기자라고 다 올려보내야 하냐. 자격도 없는 사람을 왜 올려보내줘야 하냐”고 했다. 그는 조합원들에게도 “당신네들하고 말할 이유가 없다”며 대화를 거부했다. 한 조합원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오늘 상황, 그대로 써주세요. 도로공사가 이래요. 저희 말은 아예 들으려고 하지를 않아요.

고공농성은 준비되지 않은 투쟁이었다. 지난달 초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전국의 수납 노동자들은 도로공사의 불성실한 교섭 태도에 30일 새벽 4시 30분 캐노피 위에 올랐다. 긴 싸움이 될지 몰라 침낭이나 생필품, 복용약도 챙기지 않았다. 금왕꽃동네톨게이트 수납원 이인영씨(46)는 “첫날 새벽에는 돗자리를 깔고 일단 아무 곳에나 앉았는데, 날이 점점 밝아오면서 캐노피 위 철골 구조물이 눈에 들어오더라. 막막함이 몰려왔다”고 했다.

농성 노동자들을 가장 괴롭히는 건 더위다. 캐노피 바닥 고무판에 발을 디뎠다 화상을 입은 사람도 있다. 지상에서 동료들이 올려주는 얼음물과 부채로 더위를 견뎌보지만 역부족이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후 30년 넘게 쌓인 매연과 먼지로 손과 신발은 검게 변했다. 급한대로 지하수를 끌어다 쓰고 있지만 30명이 넘는 이들이 제대로 씻을 수 있는 양은 아니다. 텐트를 쳐서 간이 화장실을 만들었지만 용변 처리는 난관이다. 벌레 물림도 심해 원인 모를 피부발진까지 생겼다.

▲ 24일 경기도 성남시 서울톨게이트 지붕 위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요금수납원노동자들이 밧줄을 이용해 식료품을 제공받고 있다. 김창길 기자

캐노피로 향하는 입구 철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문 뒤로는 철조망이 쳐있다. 캐노피와 지상을 잇는 건 노란색 전선과 회색 밧줄 세 가닥이 전부다. 쇼핑백과 바구니를 밧줄에 달아 식료품 등을 나른다. 한 서울영업소 수납원은 “오전 7시와 오후 7시 두 번에 걸쳐 식사를 올린다. 아래 천막농성 조합원들도 그때만 밥을 먹는다”고 했다.

오후 6시. 청년한의사회 김이종 한의사가 캐노피에서 의료검진을 마치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는 “당뇨나 고혈압 등의 지병을 가지신 분들도 인스턴트 식품을 주로 드시다보니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땀을 많이 흘려서 탈수 증세를 보이시는 분도 있다”고 했다.

한 명은 혈당 수치가 260을 기록했다. 그마저도 며칠 전 ‘측정불가’ 수준(500 이상)에서 떨어진 것이라고 했다. 6년 전 위암수술을 받았다는 그는 의료진 설득에도 “내려갈 수 없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분 딸도 톨게이트 수납일을 하고 있거든요. 딸에게 이런 근무 환경을 넘겨줄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에 쉽게 내려오시지 못하시는 거예요.” 김 한의사로부터 검진 결과를 전해듣던 정씨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설명을 보탰다.

▲ 캐노피 위 철골 구조물 가운데 설치된 간이세면장. 세면장까지 가려면 철골 구조물을 넘어야하기 때문에 고령의 여성 노동자들은 무릎과 허리 통증을 호소한다. 한국노총 톨게이트노동조합 제공

▲ 캐노피 농성 해고자들의 피부에 생긴 원인미상의 발진. 한국노총 톨게이트노동조합 제공


귀 막은 도공, 취재 막기에 급급…국회의원 출입까지 제지하기도
“고용불안 우릴 사람으로 안 봐, 본 대로 써달라…장기전도 각오”

비정규직으로서 고용불안을 견딜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에 농성을 이어간다. 올해 정년을 맞은 이나은씨(60)는 “후배들에게는 이런 근무 환경 물려줄 수 없다는 생각 하나로 농성에 참여했다”고 했다. 한 현장소장은 이들 노동자를 물건을 세는 단위로 부른다고 한다. “도로공사는 우리들을 사람으로 안 봐요. 한 소장은 ‘너네들 10개가 자동화기계 1개만 못하다’고도 했어요.

용역업체는 불안정한 고용 상태를 쥐고 흔든다. 수납원들은 길게는 1년, 짧게는 한 달 반마다 재계약을 해야 한다. 용역업체 사장과 현장소장이 전권을 가지고 있다보니 부당한 일을 당해도 견디는 수밖에 없다. 한 수납원은 “현장소장이 출근하면 90도로 인사하고 가방을 받아주는 그런 생활을 했다. 아침 근무를 하다 말고 달려나가 소장 아침식사도 차려줘야 했다”고 했다.

이씨 역시 “현장소장에게 성폭행을 당하고도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 젊은 수납원들이 많다”고 했다. 일부는 스트레스 때문에 재계약 기간 때마다 하혈을 하기도 한다. 그는 “용역업체 사장 대부분은 도로공사에서 퇴임한 ‘낙하산’이고,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문제제기를 하면 ‘싫으면 그만두라’는 말만 돌아온다”고 덧붙였다.

▲ 캐노피 농성 해고자들이 생활하는 천막. 한국노총 톨게이트노동조합 제공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은 2013년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해 1·2심 모두 승소했다. 법원은 노동자들이 용역회사가 아닌 도로공사의 근로지휘를 받는다며 파견법 위반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이 발표됐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도로공사는 지난해 9월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도로공사가 직접고용을 피하기 위해 자회사 설립이라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본다.

조합원들도 조금씩 지쳐간다. 가족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약해진다. 서안성톨게이트수납원 김미이씨(46)는 “2003년에 도로공사 입사하면서 딸 둘을 혼자 키웠다. 딸이 ‘엄마 언제 오냐’며 울먹일 때마다 눈물이 난다. 빨리 집에 가서 딸을 보고 싶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캐노피 위아래에서 서로를 지켜주며 힘을 얻어 버틴다.

노동자들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내려갈 수는 없다”고 했다. 도명화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지부장은 “도로공사가 이 의원과의 면담에서 세 노조(한국노총·민주노총·공공연대) 공동교섭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도 “장기전도 각오하고 있다”고 했다.


출처  [르포]“직접고용” 절박한 외침에 “소요사태 난다” 언론마저 봉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