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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공사가 한국노총과의 합의문에 이해하기 힘든 단서조항 담은 진짜 이유

도로공사가 한국노총과의 합의문에 이해하기 힘든 단서조항 담은 진짜 이유
끝까지 “불법파견 소지 없앴다” 주장하는 도로공사...파국 우려
[민중의소리] 이승훈 기자 | 발행 : 2019-10-16 09:25:15 | 수정 : 2019-10-16 11:07:38


▲ 도로공사 정규직 전환 노사합의서. ⓒ기타

“단, 공사는 변론이 종결된 1심 사건의 2015년 이후 입사자에 대해서는 관련 차후 최초 판결결과에 따른다.”

이 문장은 최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중재로 한국도로공사와 한국노총 톨게이트노동조합이 합의한 노사합의서에 있는 단서조항이다.

지난 9일 도로공사와 한국노총 톨게이트노조는 민주노총이 빠진 상태에서 을지로위원회 중재로 ‘공사는 현재 근로자지위확인소송 2심 계류 중인 수납원은 직접고용하고, 1심 계류 중인 수납원은 1심 판결 결과에 따라 직접 고용하되, 1심 판결 이전까진 공사의 임시직 근로자로 고용한다’에 합의했다. 그리고 이 단서조항을 달았다.

그런데 이 단서조항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취재과정에서도 노·사 당사자로부터 문구에 대한 명확한 의미를 듣기 위해서 여러 번의 전화통화와 문자를 주고받아야만 했다. 심지어 합의문의 당사자인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중에서도 이 문구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합의서에 서명한 당사자가 아니고선 이 문장을 명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직접 노사에 중재안을 제시한 을지로위원회 관계자도 15일 민중의소리와의 전화통화에서 “이해하기가 힘든 단서조항”이라며 “우린 단서조항이 담기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노사가 직접 만나다 보니까, 중재하는 입장에선 이를 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을지로위원회에 따르면, 이 문장은 애초 을지로위원회 조정안에 없던 내용이다. 그런데 민주노총이 합의에 참여하지 않게 되고, 도로공사와 한국노총 톨게이트노조가 만나서 합의하는 과정에서 사측의 요구로 갑자기 이 단서조항이 생겼다는 것이다. 또 이 조항 때문에 오전 10시 30분 개최 예정이던 서명식이 세 차례 미뤄져 결국 오후 3시 10분이 되어서야 열렸다.

무슨 내용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일까?

▲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19.10.10 ⓒ정의철 기자


“2015년 이후 입사자 2심은 직고용, 1심은 판결 필요”
일관성 없는 직고용 전환방안, 노사합의문

이 문구를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의 ‘대법원 판결 직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난 8월 29일 대법원은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을 직접고용 해야 한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지금까지 도로공사가 불법파견을 저질러 왔다고 본 것이다. 그럼 대법원에서 판결대로 수납원들을 직접고용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도로공사는 대법원 판결 원고에 한해서만 직접고용하고, 나머지 수납원도 재판에서 승소하면 그때 직접고용하겠다고 밝힌다.

“보통 대법원의 판단이 나오면 (해당 사건에 대한) 사실관계 그리고 법리에 관한 판단도 모두 나온 것이라서, 그 사건의 원고가 아니더라도, (나머지 인원도) 대법원 판결에 따른다.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엔 회사가 각 소송마다 뭔가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하면서 하급심에 계류 중인 수납원 또한 판결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소속 오민애 변호사

수납원들 입장에선 도로공사가 직접고용을 막기 위해 대법원 판결 취지까지 무시하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도로공사는 아직 따져볼 문제가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14일 도로공사 관계자는 민중의소리와의 전화통화에서 “2015년도 이후부터 불법파견 요소를 제거하고 각 톨게이트 영업소를 적법하게 운영했다”며 “그래서 법원의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도로공사가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자회사를 고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도로공사 관계자에 따르면, 2015년 도로공사는 수납원 불법파견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수의계약을 전부 공개입찰로 전환 △영업소 내 관리직 전원 지사로 발령 △상시감독 방식을 간헐적 순회검증으로 전환 △용역계약 특수조건 및 과업지시서 전면 개정 등의 조치를 취했다.

또 “2015년도 이후 입사자의 경우, 불법파견 요소가 전부 제거된 영업소에 배치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도로공사는 끝까지 2015년도 이후 입사자에 대한 재판을 받아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9일 노사합의문에서도 을지로위원회가 처음 제시한 조정안에 단서조항을 붙인 이유도 이 부분을 끝까지 따져보고 싶은 도로공사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적용하는 기준이다.

단서조항을 자세히 보면 ‘1심 변론이 종결된 1심 사건의 2015년 이후 입사자’라며, 적용대상을 1심 계류 중인 2015년 이후 입사자에 한하고 있다. 공사 관계자는 “‘1심에 승소해 2심에 계류 중인 2015년 이후 입사자’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판단이 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2심 계류 중인 분들은 입사시기에 관계없이 전원 직접고용 하고, 1심 판결을 받지 못하고 1심에 계류 중인 분 중 ‘2015년 이후 입사자’에 대해선 차후 최초 판결결과를 따라간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조에 따르면, 현재 1·2심 법원에 계류 중인 2015년 이후 입사자는 대략 80여명이고, 이중 1심에서 승소하고 2심에 계류 중인 2015년 이후 입사자는 14명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불법파견 요소를 제거했다는 2015년 이후 상황’에 대해 따지고 싶다면, 2015년 이후 입사자 전부에 대해서 따져봐야 한다고 해야 했다. 그러지 않고, 1심 계류 중인 2015년도 이후 입사자는 따져봐야 하고, 2심 계류 중인 2015년도 이후 입사자는 군말 없이 직고용하겠다고 하니, 제3자 입장에선 혼란이 오는 것이다.

사측이 이렇게 헷갈리는 단서조항을 마련한 이유는 ‘2심 계류 중인 2015년 이후 입사자’가 이미 1심에서 승소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미 패소한 내용을 두고 또다시 법원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거듭 주장하다보니, 이런 혼란스러운 단서조항이 달린 것이다.

이미 한 번 판결이 나온 ‘2015년도 이후 입사자’에 대한 공방을 적극적으로 다시 한다고 하더라도, 노조나 전문가들은 대법원과 같이 ‘직접고용 하라’는 취지의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의 조치가 일부 불법파견 요소를 제거했다고는 하지만, 요금수납 업무 자체가 도로공사의 관리·감독 없이는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보는 시각이 크기 때문이다. 고속도로를 관리하는 도로공사 업무 중에서 톨게이트 요금수납 업무는 유기적으로 연결된 핵심 업무이기도 하다.

지난 9월 도로공사 본사 농성장에서 만난 문 모(50) 씨 등 다수의 요금수납원은 “2015년 이후 관리감독자가 없어졌기에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도로공사가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매일 와서 체크하고 갔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항상 확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불법파견 요소인 공사의 관리·감독은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련해서 오민애 변호사는 “공사 관리직이 영업소에 상주하지 않게 했을 뿐이지, 그 업무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서형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5년 (불법파견 소지를 없애기 위해) 후속조치를 했다고 하나, 영업규정이나 지침을 없애지 않았기에 2015년 이후 입사자에 대해서도 (도로공사가)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 전문위원 활동결과 보고. ⓒ이정미 의원실


노사전문가협의 합의도 없었던 자회사
명분 없는 자회사 강행, 파국 우려

이런 점을 보면, 요금수납원 직고용 문제를 두고 ‘도로공사의 반응이 지나치게 방어적이다’를 넘어 ‘집요하다’는 인식이 든다. 이처럼 끝까지 2015년도 이후 입사자에 대한 판단을 강조하는 이유를 두고 일각에서는 ‘어떻게든 자회사 설립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도로공사는 최근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요금수납업무를 대행하는 자회사를 설립해 수납원들을 자회사 소속으로 옮기도록 했다. 현재 민주노총 소속 수납원들은 자회사를 거부하고 본사가 직접고용하라며 김천 도로공사 본사에서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대법원에서 패소하고, 2015년 이후 입사자들이 포함된 2심 계류 수납원들에게도 1심에서 패소했지만, 새롭게 전개되는 다른 수납원들의 1심 재판에서 공세적으로 소송을 방어해 내고, 만약 ‘2015년 이후 조치로 불법파견 소지를 없앴음’을 인정받기라도 하면, 지금의 상황을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일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인천일반노조가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도로공사가 자회사 설립 추진의 명분으로 내세운 ‘노사전문가협의회에서의 합의’는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노총이 공개한 ‘노사전문가협의회 전문위원 활동결과 최종 보고서’엔 “(9월 5일 회의에서) 전문가들과 유노조 대표 1명은 회의 종료를 선언하고 퇴장하면서 서명이 이루어지더라도 노사전문가협의회의 이름으로 기록이 남을 수 없다고 언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12명(사측 5명, 정규직 노조 대표 2명, 용역노동자 대표 5명)은 회사 안에 서명했다”고 기록돼 있다.

또 “이들(요금수납원)은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도 많은 수가 이미 2심 판정까지 받은 상태로서 직고용이 기대되는 상황에서 자회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한다. 오히려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 의해 고용조건이 더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합리적 전환거부자로 분류될 수 있다”며, “노·사와 사측·전문가 사이에서 이견이 더 이상 좁혀지지 않으므로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의 새로운 판단과 방향 제시를 구한다”고 보고서를 마무리 짓고 있다.

보고서 내용대로라면, 합의는 없었다. 그런데도, 공사는 무리하게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선제적으로 자회사 설립을 강행하고, 지금과 같은 복잡한 갈등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을 해결하려는 방식이 불법파견이 아님을 인정받고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든 뒤집어보려고 한다는 데 있어서, 파국으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출처  도로공사가 한국노총과의 합의문에 이해하기 힘든 단서조항 담은 진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