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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영 판사님, 이재용 살리기 재판 계속하실 건가요?

정준영 판사님, 이재용 살리기 재판 계속하실 건가요?
[민중의소리] 강경훈 기자 | 발행 : 2020-01-20 09:47:31 | 수정 : 2020-01-20 09:47:31


▲ 이재용(삼성전자 부회장) .ⓒ김철수 기자

뇌물과 배임·횡령, 재산 국외 도피 등 혐의로 재구속 갈림길에 선 이재용(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이재용을 살려주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은 듯하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17일 재판에서 ‘회복적 사법’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들먹이며 삼성이 만든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 여부를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재판장인 정준영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삼성의 준법감시제도는 실질적이고 실효적으로 운영돼야 양형 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반면 재판부는 준법감시위와 관련한 내용 외에 특검 측이 신청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주가조작 증거,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조작 사건 관련 증거들은 양형 사유로 고려할 수 없다는 취지로 모두 배척했다. 이재용의 형량이 늘어날 수 있는 요인들을 모두 외면했지만, 이재용에 유리한 감형 요인만 고려하겠다는 편향적 태도다. 심지어 지난 공판에서 삼성의 준법감시제도에 대해 “재판 진행이나 결과와는 무관함을 분명히 한다”고 전제한 것과도 어긋난다.

특검 측은 “재판장은 준법감시위를 양형 사유로 보고 계신 것이 분명하다. 개별 현안을 입증하는 내용을 양형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고, 준법감시제도는 양형 사유라고 한다면 무엇이 양형 사유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재판이 불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드러난 재판부의 의중은 삼성 준법감시위를 빌미로 이재용이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면 선처를 베풀어주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처벌보다는 재발 방지에 초점을 맞춘 이 ‘회복적 사법’의 개념을 재벌과 부조리한 정권이 결탁한 고질적인 정경유착 범죄에 적용하겠다는 정준영 부장판사의 발상 자체는 기본적으로 비현실적인 것을 넘어 오만하기까지 하다.

이미 삼성을 포함한 재벌기업들에는 내·외부를 망라한 감사체계가 형식적으로 확립돼 있었다. 새롭게 구성된 준법감시위가 특별히 기존의 감사체계보다 재벌체제 감시라는 실효적 측면에서 우월성을 지닌다고 보기도 어렵다. 아무리 내부에 형식적인 감사체계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총수 일가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편법 승계가 가능하고 지배력을 좌우할 수 있는 기형적인 재벌구조를 균열시킬 수 없다. 강제성 있는 행정 제재나 입법 장치가 없다면 무의미하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이러한 점을 이재용-박근혜 게이트를 통해 확인하지 않았나. 특검 측도 “재벌체제 개혁 없이 준법감시제도만 양형으로 고려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사실 작년 8월 대법원 판단에 따라 정상적인 법리와 양형기준에 따른다면 이재용의 재구속은 불가피한 일이다.

대법원은 이재용의 뇌물공여액을 항소심이 인정한 액수인 36억여 원보다 많은 87억여 원에 달한다고 판단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이러한 대법원 판단을 다시 뒤집기는 분명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재판부가 대법 판단과 양형기준을 따른다면 이재용에 최저 징역 5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해 법정구속시키는 것이 정상이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은 횡령액이 50억 원을 넘을 경우 5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선고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행법은 50억 이상의 횡령죄를 5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판사의 형량 선택에 재량권을 주고 있다. 현행 형법 제53조는 판사가 정상 참작해 법률상 명시된 형을 감경할 수 있다고 규정해놓았다. 유기징역을 깎아줄 때는 법률상 명시된 형량의 절반까지 줄여줄 수가 있다. 따라서 재판부가 마음만 먹으면 이재용에 징역 2년 6개월의 집행유예 혹은 징역 3년의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재판 흐름을 고려했을 때 정준영 부장판사가 내세우고 있는 ‘회복적 사법’은 결국 집행유예 선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아마도 정준영 부장판사는 이재용을 회생시켜줄 방도를 상당히 심도 있게 고민하지 않았나 싶다. 공교롭게도 그는 작년 초까지 서울회생법원 수석부장을 지낸 회생 전문가다. 회생법원에서 삼부토건과 STX조선해양 등 굵직한 기업들의 회생 절차를 담당하기도 했다.

아울러 이재용을 회생시켜주기로 작심한 듯한 정준영 부장판사의 모습은 그동안 국정농단 사건 재판 과정에서 유독 이재용이 연루된 혐의에 대해 과잉 관용을 베풀어온 다른 판사들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도 매우 절망적이다.

1심 재판부는 영재센터 후원금 관련 제3자 뇌물죄를 인정한 것을 바탕으로 이재용에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외형상 실형을 선고하긴 했으나, “대통령의 적극적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했다”, “부당한 성과를 얻지 않았다”는 등의 이색적인 참작 논리를 제시하면서 최대한 형량을 줄였다. 재판부의 이러한 태도는 ‘항소심에서의 집행유예 판결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비판을 낳았다.

설상가상으로 항소심 재판부는 제3자 뇌물 혐의를 무죄로 인정, 공소 제기된 290억여 원 중 36억여 원만 뇌물에 해당한다며 이재용을 집행유예로 풀어줬다. 항소심 재판부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 현안들의 진행 과정에 따른 결과를 놓고 평가할 때 이재용의 지배력 확보에 효과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을 뿐이지, 이런 사정만 갖고 ‘승계작업’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현실에서 엄연히 존재하는 총수 일가 ‘승계작업’의 존재를 부정하면서까지 형량을 줄여준 것이었다.

그로부터 두 달여 후에 열린 박근혜의 1심 선고 공판에서도 재판부는 이재용과 엮인 제3자 뇌물수수 혐의를 모두 무죄로 인정해, 이재용 항소심 판단에 명분을 실어줬다.

국민들은 이처럼 ‘재벌 변호인’ 노릇을 해온 사법부에 거듭 실망해오면서도, ‘자본에 굴복하지 않는’ 판사가 존재할 가능성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야 이 불공정한 세상에서 꾸역꾸역 버텨내며 살아갈 수 있다는 한 줌의 희망이라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정준영 판사님, 앞으로 남은 재판도 계속 그런 식으로 하실 건가요?


출처  [기자수첩] 정준영 판사님, 이재용 살리기 재판 계속하실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