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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무서워 죽겠어요”... 누가 공포·불안을 조장하는가

“무서워 죽겠어요”... 누가 공포·불안을 조장하는가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언론들의 선정적 보도
[오마이뉴스] 하성태 | 20.02.06 15:45 | 최종 업데이트 : 20.02.06 15:45


▲ 5일 SBS <8뉴스> 보도 중에서. ⓒ SBS

“조금 있다가 1인 1실로 다 격리돼요. 우리도 무서워, 무서워 죽겠어요.”

창문 틈으로 내다보던 입원환자가 걱정스러운 듯 카메라를 내려다보며 심경을 토로한다. 4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판정을 받은 16번, 18번 환자가 머물렀던 광주의 한 병원에 격리된 환자였다. 한 기자와 통화한 또 다른 입원환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침에 담당 주치의가 오셔서 한 2주 정도는 격리해야 한다고. 하루 입원한다는 것이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답답한 거 빼놓고는 만사 다 괜찮습니다.”

자, 당신이 기자라면, 또 방송사 보도국 데스크라면 두 입원환자의 심경 중 어느 쪽에 더 무게를 실을 것인가. 물론 하루아침에 황당하고 불안한 상황에 노출된 기존 병원 환자들이 고충을 토로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잠복기를 고려, 2주간 격리되는 것도 모자라 보호자들과의 일상적 면회까지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렇게 5일 하루 긴박하고 초조하게 돌아간 광주광역시 21세기 병원 안팎을 취재한 SBS <8뉴스>는 해당 보도의 제목을 <“무서워 죽겠어요”…광주 21세기병원 통제 현장>이라고 달았다. 어수선할 수밖에 없는 병원 안팎 분위기를 전하며 “무서워 죽겠어요”라던 한 입원환자의 불안한 ‘워딩’을 제목으로 뽑은 것이다.

얼핏 그럴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정작 리포트나 현장을 담은 <8뉴스>의 화면은 “무서워 죽겠어요”라는 자극적인 제목과는 다르게 꽤 차분한 분위기였다. 그렇다면, 국민적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던 이날 해당 병원과 광주의 분위기를 전한 다른 방송사 메인뉴스들은 어땠을까.


타 방송사와 비교되는 SBS 광주 병원 보도

“교통사고로 한 달 정도 입원했는데, 정말 전쟁 아닌 난리가 나서…”(환자 보호자)
“(걱정되는 부분은?) 전염됐을까 하고, 격리되면 재활치료를 못 받아서…”(입원환자/자가격리 예정)
“(검사) 결과를 받고 퇴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혹시 가족에게 전파가 되는, 집에 가면 그런 위험이 있거든요.” (환자 보호자)


이날 JTBC <뉴스룸>이 전한 입원 환자와 보호자들의 인터뷰다. SBS가 제목으로 뽑은 “무서워 죽겠어요”라는 환자의 말과 엇비슷하게 “전쟁”, “난리”와 같은 환자 보호자의 표현이 눈에 띈다. 하지만 이 리포트의 제목은 <18번 확진자는 16번 환자 딸…전면 봉쇄된 광주21세기병원>이었다. 자극적인 표현이 기사 내 포함됐지만, 한국의 흔한 “따옴표 저널리즘”에서 탈피한 것이 눈에 띈다.

좀 더 차분한 쪽은 KBS와 MBC였다. 불안해할 환자와 가족들의 음성을 전하는 대신 현장을 찾은 취재 기자의 리포트와 영상 취재로 현장 분위기를 전달했다. 특히 KBS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광주광역시의 전반적인 대응에 집중하는 모양새였다. <접촉자 대거 발생…16·18번째 확진자 머문 병원 통제·환자들 격리> 리포트를 보자.

“또 어제(4일) 16번째 확진환자에 대한 발생보고서가 SNS를 통해 유포되면서 확인되지 않은 소식들까지 나돌아 시민들의 불안감을 키우기도 했는데요. 이런 가운데 16번째 환자와 직간접적으로 접촉했던 기관들의 폐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 환자의 자녀가 다녔던 어린이집은 2주 동안 일시 폐쇄됐고 광주시교육청은 1400여 개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이틀 동안 휴원을 권고했습니다.

설 연휴 때 16번째 환자와 접촉한 직원이 근무했던 광주우편집중국 역시 임시 폐쇄됐습니다. 또 광주의 일부 복지관과 도서관 등도 2주가량 임시 운영을 중단했고, 금호타이어도 이틀 동안 공장 가동을 멈출 예정입니다. 광주시는 역과 터미널에 열 감지기를 설치하는 한편, 방역과 소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MBC의 경우, 방역 당국의 격리 조치 방법에 주목했다. 이날 하루 격리 조치 방법을 두고 일부 언론의 문제제기로 설왕설래했던 ‘코호트 격리’에 대한 방역당국의 판단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KBS 역시 ‘앵커의 눈’이란 개별 꼭지를 통해 ‘코호트 격리’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먼저 16번째, 18번째 확진자가 1주일 동안 입원해있던 3층은 모두 비우고 3층에 입원해 있던 환자들은 모두 5층과 6층으로 옮겨 격리하는데 최대한 1인 1실로 배치합니다. 나머지 층 입원 환자들과 의료진 직원들은 일단 자가격리를 시키기로 했습니다.

보건당국은 입원환자 전부를 병원에 격리하는 이른바 코호트 격리는 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21세기 병원에 1인실이 적어 오히려 추가 감염 위험이 높아질 거란 판단 때문입니다.” (5일 MBC <뉴스데스크>, <한 병원 내 ‘2명’ 확진…같은 층 환자 격리조치> 중에서)



국민들에게 면역 체계 요구하는 언론들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공포가 확산하는 가운데 1월 28일 오전 김해국제공항에서 공항 이용객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 연합뉴스

전국민이 불안한 상황이다. 중국의 인접국이니만큼 해외에서도 우려의 눈길을 보내는 것도 당연지사다. 이럴 때일수록 좀 더 신중하고 엄격한 보도가 요구된다. 불안과 공포를 조장할 일이 아니란 얘기다. 시야를 돌려, 외국에서 평가하는 실제 한국의 질병 예방 대응 능력을 볼까.

지난달 31일 KBS <한국, 전염병 예방 대응능력 9위…중국은?> 기사에 따르면, 미 존스홉킨스대학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공동으로 개발한 세계보건안전지수(Global Health Security Index)가 평가한 한국의 질병 예방 대응 능력은 전체 195개 국가 중 9위였다.

한국은 100점 만점에 70.2점을 기록, 195개 국가 가운데 9위를 차지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선 73.2점을 받은 태국 다음이었고, 중국은 52위였다. 상위 10개 국가 가운데 아시아 국가는 우리나라와 태국뿐이었다. 상위 그룹은 역시 서구 국가들로, 1위는 미국(83.5). 2위는 영국(77.9)이었다.

“6개 평가 항목 가운데 우리는 질병 탐지에서 92.1점을 기록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예방 항목에서는 57.3점을 받아 상대적으로 점수가 가장 낮았다. 존스홉킨스대학의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보건 안전 체계는 서구 선진국들과 견줄 수 있는 수준이다. 국가의 방역 체계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중국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급격하게 확산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대다수 한국 언론은 이런 조사 결과를 소개하지 않는다. 최근 ‘신종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외신들이 앞 다퉈 인용하는 결과인데도 그러하다. 이를 기사화한 KBS조차도 ‘랭킹뉴스’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용으로만 출고했을 뿐 메인뉴스는 물론 여타 뉴스에서도 다루지 않았다.

모든 언론이 그렇다고 볼 순 없지만, 선정적인 제목이나 내용이 소위 ‘클릭 장사’에 유리하다고 보는 곳들이 적지 않기 때문 아닐까. 이렇듯 두려움을 양산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언론들을 국민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이미 ‘메르스 사태’에 이어 ‘신종 코로나’ 사태를 경험하며 자극적이고 공포를 조장하는 보도를 일삼는 언론과 방송에 대한 ‘면역’을 갖춰나가고 있지 않을까.

KBS1라디오 <최경영의 경제쇼> 진행자인 KBS 최경영 기자는 중국 우한 교민들의 이송과 격리 지역을 둘러싼 논란을 두고 이렇게 주장했다. 몇몇 언론과 방송의 이름이 두둥실 떠오르는 일침이 아닐 수 없었다.

“굳이 검찰발 보도에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 지난해 여름 일본이 무역 도발을 감행했을 때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일본 수산물도 안전하다고 보도할 때도. 2년전 최저임금(를) 보도 미친 듯 쏟아놓을 때도. 한국은 베네수엘라 된다 타령하며 망한다, 금사라 달러 사라 부채질 할 때도. 이번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보도에서까지.

이들이 추구하는 건 국민의 안위, 국가의 이익, 균형된 시각, 공정한 보도, 진실의 추구. 이따위 것들이 전혀 아니었다. 이 사람들은 그냥 진짜 안과 밖이 뚜렷한, 매우 노골적인 재벌 광고주 정파적 사익집단일 뿐이다.” (지난달 31일 최경영 기자 페이스북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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