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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사건에서야... 헌재의 뒤늦은 결론

백남기 농민사건에서야... 헌재의 뒤늦은 결론
2014년 소수의견 “치명적” 지적했지만... 故 백남기씨 사건에서야 기본권 침해 판단
[오마이뉴스] 박소희 | 20.04.23 18:13 | 최종 업데이트 : 20.04.24 08:31


▲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서울 종로1가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 설치된 경찰 차벽앞에서 69세 농민 백남기씨가 강한 수압으로 발사한 경찰 물대포를 맞은 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시민들이 구조하려하자 경찰은 부상자와 구조하는 시민들을 향해서도 한동안 물대포를 조준발사했다. ⓒ 이희훈

3대 6이 8대 1로 바뀌기까지 6년이 걸렸다. 그리고 한 사람이 숨졌다.

23일 헌법재판소는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이 농민 백남기씨에게 물대포를 일직선 형태로 살수(직사)한 것은 위헌이라고 선언했다. 2014년 김이수·이정미·서기석 재판관이 낸 소수의견이 마침내 다수의견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당시 백씨는 물대포에 머리와 등, 가슴 윗부분을 맞고 쓰러졌다. 가족들은 경찰의 물대포 직사가 위헌이라며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을 상대로 헌재에 헌법소원을 냈다. 하지만 백씨는 끝내 의식을 찾지 못하고 2016년 9월 25일 세상을 떴다.

헌법소원은 청구인의 기본권 침해를 회복하기 위한 제도다. 이 사건처럼 당사자가 사망한 뒤에 나오는 결론은 어느 쪽이든 효과가 없다. 이 때문에 보통 청구인이 사망하면 심판 자체가 중단된다.

헌재는 고민 끝에 “심판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직사살수행위는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공권력 행사에 해당하며 헌재는 직사살수행위가 헌법에 합치하는지 여부에 대한 해명을 한 바 없다”는 이유였다. 다만 이종석 재판관은 가족이 먼저 헌법소원을 제기한 뒤 백씨를 청구인으로 추가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며 사건을 판단할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반대했다.

사건 전반을 살펴본 재판관들은 사실상 만장일치로 ‘물대포 직사는 위헌’이라고 결론 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이선애·이석태·이은애·이영진·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당시 경찰이 시위대 해산에 꼭 살수가 필요했는지, 특히 백씨가 시위대와 떨어져 홀로 경찰버스에 연결된 밧줄을 끌어당기는 상황에서 반드시 그에게 물대포를 쏴야 했는지, 살수요원들의 시야가 제대로 확보됐는지, 가슴 윗부분을 겨냥한 직사살수의 위험이 있는지 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백씨의 머리와 가슴 윗부분을 향해 약 13초 동안 직사했고, 그가 쓰러진 뒤에도 백씨와 그를 구조하던 시위대 등 5명을 향해 15초가량 추가 살수했다. 헌재는 이 일로 백남기씨가 생명권과 집회의 자유를 침해 당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또 지연된 정의

▲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유남석 헌재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대심판정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 있다. 이날 헌재에서는 2015년 12월 故 백남기 농민의 가족들이 경찰의 직사살수 행위가 헌법에 위반된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선고를 진행한다. 왼쪽부터 문형배·이영진·이은애·이선애 헌법재판관, 유남석 헌재소장, 이석태·이종석·김기영·이미선 헌법재판관. 2020.4.23. ⓒ 연합뉴스

경찰의 물대포 사용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집회부터 문제됐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침해할 뿐 아니라 참가자들의 안전까지 위협했기 때문이다.

2014년 6월 26일 헌재는 처음으로 물대포 직사를 어떻게 봐야 할지 판단했다. 2011년 11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집회 참가자들이 경찰의 물대포 직사로 고막이 찢어지고 뇌진탕을 입는 등 기본권을 침해 당했다고 주장한 사건이었다.

“근거리 직사 살수는 발사자의 의도이든 조작실수에 의한 것이든 생명과 신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위헌’이라고 본 사람은 김이수·서기석·이정미 재판관 3명뿐이었다. 다수의견은 이미 집회가 끝나서 위헌 여부를 판단할 필요도 없지만, 굳이 살펴보더라도 “근거리 물포 직사 살수라는 기본권 침해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관련 기사 : “물대포 직사는 치명적” 헌법재판관 우려 현실로)

그리고 1년 뒤, 백남기씨가 쓰러졌다.

백씨 변호인단 단장인 이정일 변호사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헌재의 2014년 판단이 매우 아쉽다”고 했다. 그는 “당시 경찰이 ‘안전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의견서를 내자 재판관들이 반복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그런데 백남기씨뿐 아니라 세월호 집회에서도 계속 (물대포 사용에 따른 피해가) 반복됐다, 헌재가 그때 만약 헌법적 판단을 했다면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그래도 헌재가 2018년 5월 ‘물대포에 최루액을 섞으면 안 된다’고 결정한 데 이어 ‘직사로도 쏘면 안 된다’고 한 것은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경찰이 집회에서 살수차를 이용하는 것은 해산 목적인데 최루액을 못 넣고 직접 쏘지도 못하면 물대포는 집회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단이 안 된다”며 “시민들의 의식도 많이 높아진 만큼 경찰이 과감하게 살수차 운영지침 자체를 폐지하는 것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또 국회가 살수차 등 위험한 장비의 사용 금지를 입법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출처  백남기 농민사건에서야... 헌재의 뒤늦은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