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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검찰 같았던 기재부

검찰 같았던 기재부
[민중의소리] 홍민철 기자 | 발행 : 2020-04-24 21:19:56 | 수정 : 2020-04-24 21:20:25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제5차 비상경제대책회의’ 내용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0.04.22. ⓒ민중의소리

긴급 재난지원금을 두고 벌어졌던 기획재정부 저항이 일단락됐다. 청와대와 정치인 출신 국무총리, 여당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이어온 저항을 일단 멈췄다. 다행스러운 일지지만, 석연치 않은 우려는 남는다.

재정건정성에 대한 판단이나, 부유층에게 ‘지원이 꼭 필요하냐’는 인식은 다를 수 있다. 미증유의 위기를 맞아 ‘나라 돈을 어떻게, 어디까지 써야 하는 지’ 해법은 여러 갈래다.

홍남기 부총리처럼 ‘고소득자를 위해 나랏빚을 만들 수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이준구 교수처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적자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당연히 그 길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대화와 토론의 영역이다.

그런데, 최근 기획재정부를 보면 ‘대화와 토론’을 하겠다는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청문회 과정에서 ‘내가 내린 결론이 유일한 진리’라 몰아붙였던 검찰을 보는 것 같았다.

지난 20일 열렸던 기획재정부 확대간부회의가 대표적이다. 홍남기 부총리는 예정에 없던 회의를 소집했다. 그는 간부들을 모아놓고 “지급기준 하위 70%가 유지될 수 있도록 국회를 설득하라”고 지시했다.

홍 부총리가 이 말을 꺼내기 불과 4시간 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긴급재난지원금 전 국민 확대”를 처음으로 공식화했다. 총선에서 국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여당 대표의 ‘공약 실천 선언’을 비웃기라도 하듯, “국회를 설득하라”고 지시한 홍남기 부총리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충격의 강도는 덜하지만, 조 전 장관 청문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부인을 기소했던 검찰이 머리에 스쳤다.

하고 싶은 말을 ‘관계자’라는 익명 뒤에서 흘리고, 여론을 지켜보는 모습도 닮아 있었다. 오죽하면 총리가 나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발언이 보도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공개 경고를 했을까.


진짜 돈 써야 할 때
기재부 또 고집 피울까
실업대란 대책, 이제 논의 시작해야

지금도 고집스럽게 길을 걷는 검찰과 달리, 기재부가 일단 멈췄다는 점은 다행이다. 이제야 대화와 토론의 첫 단추가 끼워졌다.

진짜 대책을 논의할 때가 아닌가 싶다. 원래 논란은 ‘100%냐 70%냐’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벌어져야 했다. 다가올 실업대란에 대한 논의다.

정부는 280조 원을 금융시장 안정과 기업지원에 쏟아붓는다. 금융시스템과 기업,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안타깝게도 정부 대책이 실업을 막을 충분한 대책이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주요국과 비교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더 크다.

정부 대책에도 ‘일부 실업은 어쩔 수 없다’는 속내가 읽힌다. ‘고용을 유지해야 지원한다’는 원칙이 있지만, 고용 총량의 몇 %를 유지해야 하는지, 유지 기간을 10년으로 할지 6개월로 할지 정하지 않았다. 유동적이다. 미국은 항공사에 자금을 지원하며 ‘고용 총량 90% 유지’를 조건으로 내세웠는데, 바꿔 말하면 ‘10%는 해고해도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유지 기간도 5개월에 불과하다.

지난달 ‘일시 휴직’자는 160만 명이다. 이들 대부분은 순차적으로 실업자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실업 인구가 118만 명이니까, 휴직자 절반만(80만 명) 실업자가 된다고 가정해도 올 하반기 실업자는 200만 명을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일자리 창출’ 대책은 불과 50만 명에 불과하다. 앞으로 나올 150만 명의 실업자를 위한 대책을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적자를 감내하고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면, 고소득층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주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고민하는 것도 좋지만, 당장 눈 앞에 펼쳐질 실업 대책을 위한 국채 규모를 갑론을박해야 하는 것 아닐까.

문재인 대통령이 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언급한 ‘한국판 뉴딜’ 사업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본다. 실업 충격을 완화하고 대통령이 구상하는 디지털 국가 전환도 이룰 혁신적 대책이 만약 있다면, 나오면 참 좋겠다.

정말 돈이 필요한 대책을 논의할 때, 기획재정부가 지금과는 사뭇 다를 것이라 기대하면서.


출처  [기자수첩] 검찰 같았던 기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