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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WTO·FTA·TPP

날치기 통과된 부수법안 뭐가 있나

[특집| 한·미 FTA] 날치기 통과된 부수법안 뭐가 있나
한·미FTA 이행에 필요한 법률 고쳐 ‘독소조항’ 뒷받침
주간경향 954호 | 2011 12/13 |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지난 11월 22일에 날치기로 통과된 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만이 아니다. 한나라당은 비준안을 처리한 직후 한·미 FTA 이행에 필요한 14개 부수법안도 무더기로 통과시켰다. 당시 국회 회의록을 보면, 한·미 FTA 이행에 필요한 14개 부수법안들이 이날 오후 4시 31분부터 4시 55분까지 불과 20여분 만에 모두 처리됐다.

이날 처리된 부수법안들은 한·미 FTA가 국내법과 동등한 법적 효력을 갖게 됨에 따라 기존 국내법을 협정문 조항에 맞게 고친 개정법률안들이다. 불공정무역행위구제법·대외무역법·공인회계사법 등 한·미 FTA에 따라 개정된 다른 9개 부수법안들은 2007년부터 올해 상반기 사이에 공포돼 이미 시행 중이다. 이로써 한·미 FTA로 인해 개정된 국내 법률은 모두 23개가 됐다. 이는 한국 전체 법률의 2%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11월 29일 청와대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을 위한 14개 부수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 특허권자에 한국정부 과잉친철

한·미 FTA의 대표적인 독소조항 중 하나로 지적돼온 허가-특허 연계제도는 약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법적으로 명문화됐다. 허가-특허 연계제도란 국내 제약사가 한국 보건당국에 특허가 만료된 의약품의 복제약 시판 허가를 신청할 경우 보건당국이 이 사실을 미국 특허권자에게 알려주도록 한 제도다. 얼핏 보면 문제가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문제는 심각하다. 특허는 기본적으로 사권(私權)이다. 특허 침해 사실을 발견해 대처하는 것은 특허권자 개인의 몫이다. 허가-특허를 연계한다는 것은 이 일을 정부가 대신해준다는 얘기다. 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지난 10월 ‘한·미 FTA 분석 특별보고서’에서 “특허권자 개인이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할 일을 세금으로 운영되는 행정기관이 대행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제약회사와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특허권자에 대한 행정부의 불필요한 ‘과잉친절’인 셈이다.

문제는 이 ‘과잉친절’이 국내 제약업계의 이익은 물론 국민들의 건강권을 침해한다는 사실이다. 자동차의 경우에는 안전기준이나 환경기준과 무관한 특허 침해를 이유로 해당 자동차의 판매나 운행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약사법 개정안에 포함된 허가-특허 연계제도는 특허권자가 특허 침해소송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복제약 시판 허가절차를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2002년 미국 연방무역위원회 조사를 보면 의약품 특허 침해소송에서 특허권자가 패소한 비율은 73%에 달했다. 한국의 경우 2000년부터 2008년 사이에 복제약 제조사가 특허권을 보유한 제약회사를 상대로 승소한 비율은 77.1%였다. 뿐만 아니라 특허 침해로 판명된 경우 특허권자는 민사소송을 통해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약사법 개정안은 특허 침해소송을 제기하는 것만으로 복제약 시판이 중단될 수 있도록 했다. 소송이 남발될 경우 저렴한 복제약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은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결국 높은 비용부담을 치를 수밖에 없다.


저작권·저작인접권 70년으로 늘어

저작권법 개정안은 저작권과 저작인접권의 보호기간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저작권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다.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은 한국이 미국에 지불해야 하는 로열티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2007년 4월 저작권법학회가 당시 문화관광부 용역을 받아 작성한 보고서는 협정에 따른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으로 한국이 향후 20년간 2111억원의 추가적인 로열티 부담을 지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 질서유지권과 경호권이 발동된 상황에서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지난 11월 22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통과를 선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보호기간만이 아니라 보호대상도 확장됐다. 이번에 통과된 저작권법 개정안은 ‘일시적 저장’도 저작권으로 인정했다. 이 법 35조의 2를 보면, 컴퓨터에서 저작물을 이용하는 경우 그 저작물을 일시적으로 컴퓨터에 복제할 수 있지만 그 저작물의 이용이 저작권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복제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정작 미국에서는 일시적 저장이 저작권 침해로 간주되지 않는다. 남희섭 변리사(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정책자문위원)는 11월 24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 저작권법은 원칙적으로 일시적 저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어느 매체에 일시적인 기간 이상으로 고정되어야만 저작권이 미치도록 했기 때문”이라며 “협정의 이행과 아무 상관도 없는 내용이 들어가버렸다”고 지적했다.

영화관이나 공연장에서 영화나 공연을 녹화하는 것은 현행법상 처벌 대상이다. 이번 저작권법 개정안은 한 발 더 나아가 불법녹화는 물론 그러한 ‘시도’를 한 경우도 처벌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놓았다. 송기호 변호사는 특별보고서에서 이는 미국 연방형법에서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영화 또는 영상물을 복제·전송하기 위해 영상녹화 장치를 사용하거나 사용을 시도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내용이 국내 저작권법에 들어온 것이다.

저작인접권 보호기간 연장은 이미 소멸된 저작인접권을 되살려놓았다. 저작인접권이란 저작권자(작사·작곡자) 이외에 가수·음반제작자·방송사업자(저작인접권자)가 일정 기간 보유하는 권리다. 본래 국내 저작인접권은 1986년 저작권법에서는 20년으로 설정됐지만, 1994년 개정안을 만들면서 50년으로 연장됐다. 그러나 20년에서 50년으로 연장할 경우 ‘소급입법’ 논란이 발생할 수 있어 1987년에서 1994년 사이에 발생한 저작인접권은 원래대로 20년만 인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저작인접권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이 이번 저작권법 개정안에 부칙 형태로 들어가면서 또다시 ‘소급입법’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냄새·소리 상표 보호 미국기업에 유리

남희섭 변리사는 저작인접권 보호기간을 연장한 이 부칙이 한·미 FTA 협정문과 배치된다고 본다. “협정문 18.1조 10항은 ‘협정 발효일에 이미 공공의 영역(무료 이용)에 속하게 된 대상물에 관한 보호를 회복하도록 요구되지 아니한다’고 해 저작인접권 회복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박탈을 금지하는 헌법에 위배될 가능성이 제기돼 문방위 법안심사소위도 통과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11월 2일 한나라당 허원제 의원이 발의한 내용이 포함된 개정안이 비준안 날치기 과정에서 그대로 통과됐다.

이외에 실용신안법, 디자인보호법,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 상표법, 특허법 등의 법률 개정안에는 ‘비밀유지명령제도’가 도입됐다. 이는 특허소송 과정에서 법원, 소송인, 피소송인 사이에 교환된 정보는 오직 소송을 위해서만 쓰도록 하고 위반할 경우 제재를 받도록 한 제도다. 특히 상표법의 경우 법안 개정으로 냄새와 소리가 상표에 포함됐다. 한국의 경우 기존 상표법이 냄새와 소리를 상표로 보호하지 않았다. 미국은 1950년부터 소리를, 1990년부터 냄새를 상표로 보호해왔다. 결국 상표법 개정은 이 분야에서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 기업들에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지방세법 개정안과 개별소비세 개정안에 대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세수를 줄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승수 의원이 지난 10월 26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비영업용 승용차에 대한 자동차세를 현행 5단계에서 3단계로 줄이고 2000cc 이상 중대형 승용차에 대한 세금을 인하하는 지방세법 개정으로 향후 5년간 1338억원의 세수가 줄어든다. 자동차 개별소비세 개정안은 자동차 개별소비세를 10%에서 5%로 단계적으로 인하하도록 했다. 개별소비세 자체는 지방세가 아니지만, 개별소비세 인하는 지방세의 일종인 자동차 취득세 감소에 영향을 미치므로 지자체 재정수입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

우체국예금·보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우체국 금융상품 판매를 제한한다. 개정안 부칙 제2조는 이 법 시행 이후 “새로운 보험의 종류를 신설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기존 보험의 종류만 수정할 수 있다. 신규 보험시장 진출에 제한되므로, 우체국의 금융수익은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체국 입장에서 악재는 또 있다. 우편법 개정안은 국가가 독점하는 우편사업 범위를 축소하도록 규정했다. 그동안 서신 우편업무는 국가(우정사업본부) 독점 영역이었다. 그러나 우편법 개정안 2조 3항은 “서신(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발송하는 등기취급 서신은 제외한다)의 중량이 350g을 넘거나 우편요금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통상우편요금의 10배를 넘는 경우에는 타인을 위하여 서신을 송달하는 행위를 업으로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민간사업자가 이 분야에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한·미 FTA가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출처 : [특집| 한·미 FTA]날치기 통과된 부수법안 뭐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