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WTO·FTA·TPP

“정부 해명은 과장 아니면 모순, 그리고 논점회피”

[특집| 한·미 FTA] “정부 해명은 과장 아니면 모순, 그리고 논점회피”
한·미 FTA 전문가들이 본 외교통상부 반박자료의 허와 실
주간경향 954호 | 2011 12/13 |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외교통상부 자유무역협정정책국 FTA 이행과에서 기자들에게 정기적으로 메일을 보내고 있다. 이 메일에는 한·미 FTA 관련 자료가 첨부되어 있다. 한·미 FTA에 대한 언론의 비판과 관련, 해명자료나 의료비 폭등과 같은 ‘괴담’(?)에 대한 반박이다. 한·미 FTA 전문가들은 외교통상부의 해명자료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했다. 통상전문가 송기호 변호사,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정책자문위원 남희섭 변리사,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에게 외교통상부의 해명자료를 보내고 의견을 받아봤다. 이들은 “외교통상부의 해명자료는 과장됐고, 모순됐고, 비판의 논점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11월 29일 민주당 등 야5당 의원들이 청와대 앞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에 대한 대통령의 서명 중단을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래칫 조항, 미국식 FTA만의 고유한 제도”

한·미 FTA의 문제점 중 하나가 법적인 불균형이다. 한·미 FTA가 한국에서는 국내법의 지위를 받지만, 미국의 한·미 FTA 이행법안을 보면 미 국내법보다 후순위 지위다. 또다른 불균형은 한·미 FTA 때문에 한국은 23개의 법률을 개정하지만, 미국은 관세법·무역법 등 4개 법률만 개정할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미 FTA의 ‘래칫 조항’(역진 방지)으로 인해 개방 폭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법률을 개정할 수는 있어도 뒤로 후퇴하는 방향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점도 비판을 받고 있다.

외교통상부는 “한·미 FTA를 양국의 국내법 체제로 수용하는 방식 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 상의 의무를 이행해야 할 한·미 양국 정부의 국제법적 의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해명했다. 송기호 변호사는 “외통부의 설명은 잘못”이라며 “문제의 핵심은 미국은 미국 국내법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미국 국내법과 어긋나는 FTA는 무효라고 입법했다. 이를 위해 한·미 FTA를 ‘조약’으로 인정하지 않은 이행법 체제를 선택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법률 개정 수의 차이에 대해 외교통상부는 “우리법 체계와 미국법 체계의 차이를 도외시한 단순 개수 비교는 부적절하다”고 설명했다. 송 변호사는 “미국에 한·미 FTA는 자국 법령을 고칠 필요가 없게끔 진행된 것이고,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라고 반박했다. ‘래칫 조항’에 대한 비판에 외교통상부는 “시장 개방의 예측 가능성을 제고하고 서비스의 점진적 자유화에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송 변호사는 “원상회복 금지 조항은 세계무역기구에는 없는 미국식 FTA의 고유한 제도”라며 “시장 개방의 예측 가능성과 관계가 없다. 애초의 개방 수준을 기준으로 예측하는 것이 오히려 더 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송 변호사는 외교통상부의 해명에 대해 “한 손으로는 한·미 FTA로 인해 법령을 바꾸고 미국식 제도를 이식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한·미 FTA 하면 떠오르는 것이 ISD(Investor-State Dispute), 투자자-국가소송제다. 외국에 투자한 기업이 상대방 국가의 정책으로 이익을 침해당했을 때 해당 국가를 국제투자분쟁중재센터(ICSID) 등 국제중재기관에 제소할 수 있는 제도다. ISD는 한·미 FTA의 독소조항으로 꼽히고 있다. 야당과 전문가들은 ISD 조항 폐기를 강하게 요구했다. ISD 조항으로 인해 정부의 공공정책이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거세지고 있다.

외교통상부는 “(ISD에 대한 우려는) 간접수용을 말하는 것”이라며 “간접수용은 정부의 규제조치로 인해 재산권이 박탈되거나 몰수되는 수준과 동등한 정도의 심각한 침해를 초래하는 경우를 말한다”고 설명했다. 보통의 경우 정부의 공공정책이 ISD로 인해 제소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해명한다.

남희섭 변리사는 “가령 환경규제나 과세 등 다양한 공공정책으로 규제를 받는 투자자 입장에서 (ISD는) 언제든지 주장할 수 있는 좋은 무기”라며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사례를 보면 간접수용을 주장한 사건이 전체 사건의 60%를 넘는다. 호주가 필립모리스의 담배 광고를 규제하고자 할 때도 필립모리스는 간접수용을 주장했다”고 반박했다.

ISD로 인해 정부의 정책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고, 공공서비스 요금도 폭등할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재벌들이 ISD를 이용해 정부 규제에 저항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외교통상부는 “공공정책의 자율권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다” “민간의 참여가 허용된 공공분야일지라도 요금에 대한 정부의 통제권한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도 ISD 대상될 수 있어’

남 변리사는 “공공정책 자율권은 충분히 확보되어 있지 않다. 공공정책을 수정하지 않으면 계속 보상을 해야 하는데, 어떤 공무원이 그 정책을 계속 유지하는지 더 물어볼 필요도 없다”면서 “미국 투자자가 ISD를 제기하는 방식은 국내 기업을 대신하는 경우 외에도 자기를 위해서도 할 수 있다. ISD를 제기할 투자자의 범위는 매우 넓다”고 비판했다. 남 변리사는 “외교통상부는 말해야 할 사실들을 너무 많이 생략하고 자기들에게 유리한 사실은 과대 포장한다”고 비판했다.

한·미 FTA 비준으로 사람들을 떨게 하는 대표적인 ‘괴담’(?)은 의료비와 약값의 폭등, 국민건강보험의 변화 등이다. “맹장 수술 한 번에 수백만원”이라는 소문이 대표적이다.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로 인해 벌어질 약값 폭등에 대한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 외교통상부는 “복제약의 시장 진입이 늦어진다는 주장은 과장” “허가·특허 연계제도는 모든 복제약에 다 적용되는 것이 아니며, 이로 인해 약값이 상승할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해명하고 있다.

우석균 정책실장은 “허가·특허 연계제도 도입은 다국적 제약회사가 하나의 약에 여러 개의 특허를 걸어놓게 하도록 유도하는 제도다. 이른바 ‘특허 폭탄’(patent bomb)이라고 불린다”면서 “사실상 돈이 되는 약품의 경우 특허권자가 모두 소송을 걸 것이다. 특허권이 강화되어 자동정지 기간 중 복제약이 나오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미 FTA 체제에서 국민건강보험은 아무런 영향이 없을까. 전문가들은 국민건강보험도 투자자-국가소송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외교통상부는 “국민건강보험 등 법정사회보장제도는 협정 적용 자체가 배제된다”면서 “국민건강보험과 관련, ISD 청구 제기가 이뤄질 수 있는 상황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우 정책실장은 “건강보험서비스는 모든 항목이 유보된 게 아니라 최소기준 대우와 수용 및 보상에 대해서는 유보되어 있지 않다. 즉 최소기준 대우 위반과 수용에 대해 보상해야 한다”면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나 국민연금의 보장성 강화조차도 ISD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또한 “외교통상부가 왜 보건복지 정책을 답변하는지 알 수 없다. 외통부의 답변은 논점 회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사실관계도 왜곡하는 경우가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 [특집| 한·미 FTA]“정부 해명은 과장 아니면 모순, 그리고 논점회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