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미 FTA]라틴 아메리카는 왜 가난해졌을까
미국과 FTA 체결 후 식량주권 잃어…투기자본 고수익 이면엔 국민 복리후생 저하
주간경향 954호 | 2011 12/13 | 심혜리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grace@kyunghyang.com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1월 29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을 위한 14개 부수법안에 서명했다. 이로써 한·미 FTA 비준 절차는 마무리됐다. 한·미 FTA가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찍이 미국과 FTA를 체결한 라틴 아메리카의 사례는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대부분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미국과 FTA를 체결했다.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같은 다자간 자유무역협정뿐 아니라 미국·칠레 FTA, 미국·페루 FTA와 같은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을 맺었다. 지난 20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FTA를 맺은 국가 수는 6배 증가했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의 경우 눈에 두드러진다. 세계은행의 집계에 따르면 라틴 아메리카 39개국 중 33개국이 하나 이상의 FTA에 가입돼 있다.
식량 수입의존도 높아 세계 곡물가에 ‘휘청’
그렇다면 FTA가 이들 지역에 번영과 성장을 가져다주었을까? 오히려 FTA가 라틴 아메리카에 빈곤과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미국의 싱크탱크 국제정책센터(CIP)는 지난 11월 ‘자유시장으로 인한 중미의 식량위기’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를 보여줬다.
보고서는 2005년 미국과 CAFTA를 맺은 엘살바도르·코스타리카·과테말라·온두라스·니카라과·도미니카공화국 등 6개국을 중심으로 FTA 이후 이들 지역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꼽았다. 보고서는 “중미자유무역협정으로 대표되는 ‘통상 자유화’ 이후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자국에 싼 값에 대량 수입되는 상품을 굳이 국내에서 생산하지 말도록 권유했다”고 밝혔다. 곡물이 대표적이었다. 1990~2005년 사이 이들 지역의 쌀·콩·옥수수·수수 등의 곡물은 수출에 유리한 작물로 대체됐으며, 그 결과 곡물 생산량은 절반으로 떨어졌다.
농업 자체가 수출용 제조업, 서비스업 등으로 대체돼 시골에 거주하던 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심으로 대규모로 이주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2001년 평균 40%대에 달했던 중미지역의 농업용지는 2008년 7.4%까지 떨어졌다. FTA 이후 농업이 사실상 붕괴상태에 이른 것이다.
자국에서 식량수급을 제어할 수 없게 된 이들 국가의 물가는 세계 식량가격의 등락에 따라 휘청거렸다. 식량 가격이 폭등했던 2008년 엘살바도르 도심의 1인당 한 달 기본 식품비는 44.80달러로, 전년(38.40달러)보다 6.40달러 올랐다. 아울러 이들 국가의 식량공급은 기후변화에도 취약했다. 과테말라 정부는 기상이변으로 집중호우가 있었던 2009년 5월 선포했던 국가재난상태를 4개월 뒤 무기한 연장했다. 곡물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든 상황에서 적절한 기후변화 대책을 마련하지 못해 40만가구가 영양실조와 기아상태에 처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쌀과 옥수수 같은 주식을 수입 체인에 의존하게 된 이후 식량주권과 식품을 선택할 권리가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미국과 FTA를 체결한 이후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아래서 개별적으로 무역을 하던 때보다 실익이 더 적어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2005년 세계은행이 만든 시나리오에 따르면 브라질·멕시코를 제외한 중남미 국가들이 FTA 등 지역 무역협정을 체결했을 때 얻는 이익이 9억 달러라면 FTA 없이 무역을 할 경우 163억 달러의 이익이 발생한다. 이를 세계의 개발도상국 전체로 확대해보면 개도국들이 FTA를 체결할 경우 215억 달러의 손실이 생기는 반면, FTA를 하지 않을 때는 1080억 달러의 이익이 생긴다. FTA가 개도국보다는 선진국에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폐해는 FTA 체결 당시에도 예상됐다. 라틴 아메리카의 일부 전문가들은 당시 “라틴 아메리카가 미국과 FTA를 할 경우 얻게 되는 이익이 확실치 않다”고 지적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가 2000년대 앞 다투어 미국과 FTA를 맺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케빈 갤러거 미국 보스턴대학 교수(국제관계학)는 당시 라틴 아메리카에 신자유주의가 만연해 있었으며 대부분의 국가가 우익 정부로 구성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갤러거 교수는 지난 9월 ‘안정과 성장 팔아먹기: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미국의 무역협정’을 발표하고 라틴 아메리카의 개발도상국들이 미국식 FTA를 도입한 배경에는 정치·경제적 이유가 있었다고 밝혔다.
갤러거는 “지난 25년간 세계 어느 개도국 지역보다 중남미에 신자유주의 이념이 가장 깊게 침투했다”며 “신자유주의 정신은 당시 정책 결정을 하는 중남미 우익 엘리트 관료 사이에 만연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테크노폴(정치성향을 가진 관료)’들이 1990년대 이후 중남미의 시장 자유화에 가장 앞장섰다”며 “이들은 FTA가 미국과 자국에 서로 도움이 되는 ‘윈·윈’ 전략이라고 자신했다”고 설명했다.
신자유주의 정부 경쟁적으로 체결
실제 당시 미국과 FTA나 양자간 투자협정(BIT)을 체결했던 국가 중 니카라과(2004), 코스타리카(2004), 과테말라(2004), 페루(2006), 엘살바도르(2004), 멕시코(1992) 등 14개 국가의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따르는 우익 정부였다. 협정 체결 당시 도미니카공화국(2004), 우루과이(2005), 자메이카(1994), 칠레(2004) 등 4개 국가만이 좌익 성향으로 분류됐다.
갤러거 교수는 이들 국가가 경쟁하듯 미국과 FTA를 체결했던 이유로 “중남미 국가는 지리적으로 몰려 있기 때문에 서로 먼저 미국 시장에 진입하는 혜택을 누리기 위해 이웃 국가를 라이벌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갤러거 교수는 “미국과의 무역협정으로 인해 이들 국가는 일시적으로 미국 시장에 더 쉽게 들어갈 수 있는 특혜를 얻었으나, 그 이후 미 경제권에 예속됐다”며 “초기 미국에 의존해 일시적으로 수출이 늘기는 했으나 결국 금융규제를 완화해 투기자본만 고수익을 누렸으며, 국민들의 복리후생은 줄어들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중남미 국가가 미국과 FTA를 하는 것이 경제성장의 입장에서 이득이 별로 없으며, 정부의 관세 세입이 줄어들고 오히려 중남미 국가 간의 교역은 더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1993년 미국, 캐나다와 NAFTA를 체결한 후 미국 경제에 예속된 멕시코의 사례는 세계적인 이슈가 돼왔다. 멕시코는 NAFTA를 체결하면서 무관세를 실현했지만 이는 결국 빈부격차의 심화, 문화 종속, 공공서비스 기반 붕괴 등으로 이어졌다.
출처 : [특집| 한·미 FTA]라틴 아메리카는 왜 가난해졌을까
미국과 FTA 체결 후 식량주권 잃어…투기자본 고수익 이면엔 국민 복리후생 저하
주간경향 954호 | 2011 12/13 | 심혜리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grace@kyunghyang.com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1월 29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을 위한 14개 부수법안에 서명했다. 이로써 한·미 FTA 비준 절차는 마무리됐다. 한·미 FTA가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찍이 미국과 FTA를 체결한 라틴 아메리카의 사례는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대부분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미국과 FTA를 체결했다.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같은 다자간 자유무역협정뿐 아니라 미국·칠레 FTA, 미국·페루 FTA와 같은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을 맺었다. 지난 20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FTA를 맺은 국가 수는 6배 증가했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의 경우 눈에 두드러진다. 세계은행의 집계에 따르면 라틴 아메리카 39개국 중 33개국이 하나 이상의 FTA에 가입돼 있다.
▲ 지난 7월 11일 백악관 앞에서 콜롬비아와 미국의 FTA 체결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 www.citizen.org |
식량 수입의존도 높아 세계 곡물가에 ‘휘청’
그렇다면 FTA가 이들 지역에 번영과 성장을 가져다주었을까? 오히려 FTA가 라틴 아메리카에 빈곤과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미국의 싱크탱크 국제정책센터(CIP)는 지난 11월 ‘자유시장으로 인한 중미의 식량위기’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를 보여줬다.
보고서는 2005년 미국과 CAFTA를 맺은 엘살바도르·코스타리카·과테말라·온두라스·니카라과·도미니카공화국 등 6개국을 중심으로 FTA 이후 이들 지역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꼽았다. 보고서는 “중미자유무역협정으로 대표되는 ‘통상 자유화’ 이후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자국에 싼 값에 대량 수입되는 상품을 굳이 국내에서 생산하지 말도록 권유했다”고 밝혔다. 곡물이 대표적이었다. 1990~2005년 사이 이들 지역의 쌀·콩·옥수수·수수 등의 곡물은 수출에 유리한 작물로 대체됐으며, 그 결과 곡물 생산량은 절반으로 떨어졌다.
농업 자체가 수출용 제조업, 서비스업 등으로 대체돼 시골에 거주하던 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심으로 대규모로 이주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2001년 평균 40%대에 달했던 중미지역의 농업용지는 2008년 7.4%까지 떨어졌다. FTA 이후 농업이 사실상 붕괴상태에 이른 것이다.
자국에서 식량수급을 제어할 수 없게 된 이들 국가의 물가는 세계 식량가격의 등락에 따라 휘청거렸다. 식량 가격이 폭등했던 2008년 엘살바도르 도심의 1인당 한 달 기본 식품비는 44.80달러로, 전년(38.40달러)보다 6.40달러 올랐다. 아울러 이들 국가의 식량공급은 기후변화에도 취약했다. 과테말라 정부는 기상이변으로 집중호우가 있었던 2009년 5월 선포했던 국가재난상태를 4개월 뒤 무기한 연장했다. 곡물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든 상황에서 적절한 기후변화 대책을 마련하지 못해 40만가구가 영양실조와 기아상태에 처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쌀과 옥수수 같은 주식을 수입 체인에 의존하게 된 이후 식량주권과 식품을 선택할 권리가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분석했다.
▲ 멕시코의 한 농부가 말라비틀어진 옥수수를 쳐다보고 있다. | www.laborrightsblog.typepad.com |
이와 함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미국과 FTA를 체결한 이후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아래서 개별적으로 무역을 하던 때보다 실익이 더 적어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2005년 세계은행이 만든 시나리오에 따르면 브라질·멕시코를 제외한 중남미 국가들이 FTA 등 지역 무역협정을 체결했을 때 얻는 이익이 9억 달러라면 FTA 없이 무역을 할 경우 163억 달러의 이익이 발생한다. 이를 세계의 개발도상국 전체로 확대해보면 개도국들이 FTA를 체결할 경우 215억 달러의 손실이 생기는 반면, FTA를 하지 않을 때는 1080억 달러의 이익이 생긴다. FTA가 개도국보다는 선진국에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폐해는 FTA 체결 당시에도 예상됐다. 라틴 아메리카의 일부 전문가들은 당시 “라틴 아메리카가 미국과 FTA를 할 경우 얻게 되는 이익이 확실치 않다”고 지적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가 2000년대 앞 다투어 미국과 FTA를 맺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케빈 갤러거 미국 보스턴대학 교수(국제관계학)는 당시 라틴 아메리카에 신자유주의가 만연해 있었으며 대부분의 국가가 우익 정부로 구성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갤러거 교수는 지난 9월 ‘안정과 성장 팔아먹기: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미국의 무역협정’을 발표하고 라틴 아메리카의 개발도상국들이 미국식 FTA를 도입한 배경에는 정치·경제적 이유가 있었다고 밝혔다.
갤러거는 “지난 25년간 세계 어느 개도국 지역보다 중남미에 신자유주의 이념이 가장 깊게 침투했다”며 “신자유주의 정신은 당시 정책 결정을 하는 중남미 우익 엘리트 관료 사이에 만연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테크노폴(정치성향을 가진 관료)’들이 1990년대 이후 중남미의 시장 자유화에 가장 앞장섰다”며 “이들은 FTA가 미국과 자국에 서로 도움이 되는 ‘윈·윈’ 전략이라고 자신했다”고 설명했다.
신자유주의 정부 경쟁적으로 체결
실제 당시 미국과 FTA나 양자간 투자협정(BIT)을 체결했던 국가 중 니카라과(2004), 코스타리카(2004), 과테말라(2004), 페루(2006), 엘살바도르(2004), 멕시코(1992) 등 14개 국가의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따르는 우익 정부였다. 협정 체결 당시 도미니카공화국(2004), 우루과이(2005), 자메이카(1994), 칠레(2004) 등 4개 국가만이 좌익 성향으로 분류됐다.
갤러거 교수는 이들 국가가 경쟁하듯 미국과 FTA를 체결했던 이유로 “중남미 국가는 지리적으로 몰려 있기 때문에 서로 먼저 미국 시장에 진입하는 혜택을 누리기 위해 이웃 국가를 라이벌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갤러거 교수는 “미국과의 무역협정으로 인해 이들 국가는 일시적으로 미국 시장에 더 쉽게 들어갈 수 있는 특혜를 얻었으나, 그 이후 미 경제권에 예속됐다”며 “초기 미국에 의존해 일시적으로 수출이 늘기는 했으나 결국 금융규제를 완화해 투기자본만 고수익을 누렸으며, 국민들의 복리후생은 줄어들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중남미 국가가 미국과 FTA를 하는 것이 경제성장의 입장에서 이득이 별로 없으며, 정부의 관세 세입이 줄어들고 오히려 중남미 국가 간의 교역은 더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1993년 미국, 캐나다와 NAFTA를 체결한 후 미국 경제에 예속된 멕시코의 사례는 세계적인 이슈가 돼왔다. 멕시코는 NAFTA를 체결하면서 무관세를 실현했지만 이는 결국 빈부격차의 심화, 문화 종속, 공공서비스 기반 붕괴 등으로 이어졌다.
출처 : [특집| 한·미 FTA]라틴 아메리카는 왜 가난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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