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미 FTA] 한·미 FTA 반대! 광장에 모인 사람들
‘나는 꼼수다’ 여의도 공연 풍경… “여기 많이 모인 건 사회가 비정상이라는 뜻”
주간경향 954호 | 2011 12/13 |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여의도는 섬이다. 사방에서 바람이 모여든다. 바람은 여름에는 산책자들의 고마운 벗이지만 겨울에는 날선 기세로 행인들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 훼방꾼이다.
지난 11월 30일 밤에도 그랬다. 종일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퇴근길 직장인들은 잔뜩 몸을 웅크리고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그런데도 수많은 인파가 여의도로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6시40분쯤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3번 출구 앞은 만원이었다. 지상으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수십미터 길이로 늘어서 있었다. 여의도역 3번 출구는 여의도광장 방향으로 난 출구다. 줄지어선 이들 대부분이 7시30분부터 시작하는 ‘나는 꼼수다(나꼼수)’ 서울공연을 보기 위해 여의도광장으로 가고 있었다.
전국을 돌며 공연을 하고 있는 나꼼수 팀은 이날 여의도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특별공연을 열었다. 여의도광장에 모여든 인파의 대부분이 한·미 FTA 반대라는 신념을 공유하는 이들인 셈이다.
이준덕씨(30)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여의도에 도착했다. 직장일을 마치자마자 곧장 여의도로 내달렸다. 여의도역에서 광장으로 오는 관람객들을 맞기 위해서다. 흰색 우비를 걸친 그는 횡단보도 맞은편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관람객들을 향해 “나는 꼼수다” “쫄지마” “경찰추산 10만명”을 연거푸 외쳤다. 혼자가 아니었다. 흰색 우비를 걸친 20여명의 청춘남녀들이 함께 외쳤다. 외침은 리듬을 타고 합창이 됐다.
“찔리는 게 없다면 날치기 했을까요?”
20여명의 청년들은 이날 처음 만났다. 이들은 공연 시작 며칠 전부터 트위터나 인터넷 카페를 통해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신청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제각기 공연장에 도착해 우비와 간단한 소도구들을 챙겨 횡단보도 앞에 섰다. 소도구 중 하나는 수건이다. 검은색으로 인쇄된 이름들이 뽀얀 수건 위에 빼곡하게 박혀 있다. 한·미 FTA 비준안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의 이름이다. 수건을 들고 있던 한 20대 여성이 외쳤다. “너희들의 이름으로 이 수건은 걸레가 되리라.”
이씨의 직장은 경기도 화성에 있다. 여의도까지 두 시간 가까이 걸린다. 한·미 FTA 반대 집회는 이번이 세 번째다. 비준안이 통과된 다음날도 그는 집회에 참석했다. 입법자인 국회의원들도 힘겨워하는 1800여쪽 분량의 한·미 FTA 협정문을 그라고 다 꿰뚫고 있을 리 없다. 그러나 반대한다. “협정 내용을 잘 아는 국민들은 많지 않겠죠. 하지만 뭔가 찔리는 게 없다면 날치기를 했을까요? 내용도 내용이지만 날치기를 한 게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씨는 정보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찬성하는 쪽은 최상을 말하고 반대하는 쪽은 최악을 말하죠. 어느 쪽이든 100% 맞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국가간 협상에서는 이익과 손해가 있기 마련이죠. 그런데 이익이 뭐고 손해가 뭔지 명확하게 알려주는 사람이 드물어요.”
나꼼수 공연 자원봉사를 하고 있지만 나꼼수가 말하는 모든 것이 다 사실이라고 믿지도 않는다. ‘나꼼수 현상’은 사회가 만든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오늘 여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온 건 사회가 정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기성정치나 제도언론이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알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을 나꼼수는 아주 쉽게 풀어줬어요.” 별 관심이 없어 2008년 촛불집회에는 참석하지 않았다는 그는 나꼼수를 들으며 “정치인들이 그들 자신만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특별한 지지정당이 없는 ‘무당파’다.
직장인 오형윤씨(34)는 공연 시작 전 서서히 달아오르는 분위기를 지켜보며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FTA 반대 집회는 이번이 세 번째다. “상식을 가진 국민이라면”이라고 촛불을 든 그가 말했다. “이 협정이 국민의 이익이 아닌 미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협정이란 걸 알 수 있죠. 기득권층에겐 이익이지만 서민경제는 어려워지겠죠. 내용도 문제고 방식도 문제고, 모든 게 다 문제입니다.” 그는 한나라당을 반대한다. 민주당도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즘 부쩍 입길에 오르는 제3 정당에 대한 기대 또한 확신과는 거리가 멀다. “안철수 현상은 막장 같은 한국정치에서 터져나온 희망이죠. 하지만 정치인이 아니라 멋진 오피니언 리더로 남길 바랍니다.”
나꼼수 자원봉사하러 휴가 내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모여서 집회를 이어가면 협상을 폐기하거나 개정할 수 있을까. 오씨는 “집회 동력이야 갈수록 줄어들겠지만 집회로 드러나지 않은 민심은 총선과 대선에서 투표로 흡수될 것”이라고 봤다. 투표로 정치세력을 바꾸면 폐기는 어렵더라도 개정은 가능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공연장에서 양팔로 모금함을 안고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직장인 손모씨(0·여)는 이날 오후 2시에 여의도에 왔다. 휴가를 냈다. 휴가를 내기 위해 구실을 만들어내지는 않았다. 사실 그대로 말했다. 나꼼수 공연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휴가를 낸 직원을 회사는 어떻게 생각할까. 손씨는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FTA에 반대하는 건 내 의사예요. 내 의사를 표현하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행동이에요.”
공연이 진행될수록 인파가 늘었다. 여의도광장이 꽉 찼고 광장 주변도 사람들로 에워싸였다. 일부는 광장 주변을 산책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종이컵에 담긴 뜨거운 어묵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남자들이 있었다. 이희승씨(37)는 어묵 트럭 앞에서 ‘손님’을 끌어모았다. 종이컵 대여섯 개를 쟁반에 담아 주변에 있는 관객들에게 부지런히 건넸다. 다른 네 사람은 몸을 절반쯤 가리는 피켓을 들고 섰다. 대통령이 어묵을 먹는 사진이 피켓에 박혀 있다. 이 어묵의 이름은 “가카도 반한 맛!”인데 “보편적 무상 어묵”이라는 점이 특징이라고 이들은 말했다.
트럭에서 어묵을 만드는 이들까지 모두 20명이 광장에 왔다. 이들은 밀리터리 마니아의 인터넷 동호회 ‘밀갤닷컴’ 회원들이다. “날씨가 추울 것 같아” 동호회 차원에서 돈을 모아 어묵을 준비했다는 이씨는 한의원 원장이다. “저 같은 사람이야 한·미 FTA가 되더라도 나쁠 거 없죠”라며 그가 말했다. “제가 미국에 잠시 있어봤거든요. 미국은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 힘든 곳이에요. 당장 수출이 안 돼 나라가 망한 것도 아닌데 미국식 제도를 강요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됩니다.”
“예전처럼 정치에 뒷짐지지 않겠다”
공연을 주최한 쪽은 11월 30일 공연에 3만~5만명이 모였다고 본다. 1만여명이 모인 것으로 알려진 11월 19일 대전공연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숫자다. 한·미 FTA 반대 집회는 비준안이 통과되기 전날부터 날마다 계속되고 있지만 FTA 반대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이만한 규모로 모인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그 이전까지 가장 큰 규모였던 11월 26일 집회에는 1만여명이 모였다. 그러나 11월 26일이 토요일이었던 데 비해 이날은 평일인 수요일이었다. 이처럼 많은 인원이 모일 수 있었던 데는 FTA에 대한 반대 민심만이 아니라 나꼼수 팀의 대중 동원력이 크게 기여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단박에 시선을 잡아끄는 공연이 없어도 집회는 이어진다. 12월 1일 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한·미 FTA를 반대하는 야당 정당연설회가 열렸다. 규모는 200여명에 불과했다. 정당이나 시민사회단체 사람들이 깃발을 들고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자리를 지켰다. 단체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다. 동국대 사범대 3학년 우동희씨(21)는 학생회 친구들 10여명과 함께 집회에 나왔다. 그는 나꼼수를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들어본 적은 없다. 그는 한나라당을 반대하고 민주당은 “기회주의적 정당”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가는 건 진보정당 쪽이다. 경북 문경시가 고향인 그는 “부모님이 한우를 키우는데 FTA가 발효되면 쇠고기 시장이 더 큰 폭으로 개방될 것 같아 집회에 나왔다”고 말했다.
임순정씨(32)는 겨울용 점퍼에 달린 모자를 푹 눌러쓰고 촛불을 든 채 집회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나꼼수 팬이다. 서울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그는 교대 근무 때문에 전날 여의도 공연에 못 간 걸 아쉬워했다. FTA 반대 집회에 참가한 건 이날이 처음이다. 지지하는 정당은 없지만 “한나라당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임씨는 “집회 소식을 기사나 트위터로만 보다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집회에 나왔다”고 말했다.
임씨와 나란히 붙어 촛불을 들고 있던 간호사 동료 한신애씨(26)는 연방 “다른 사람을 인터뷰하라”고 말했다. 한·미 FTA에 대해서는 “공공분야 민영화가 걱정된다”고 짧게 말했다. 그는 수줍음이 많은 사람인 듯했다.
집회는 오후 8시10분쯤 끝났다. 한 시간쯤 뒤 그가 보낸 장문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는 자신이 “낯을 많이 가린다”고 말했다. 한씨가 한·미 FTA에 반대하는 이유는 요약하면 이렇다. “모든 협정은 서로 이익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잃는 것보다는 이익이 더 많아야겠죠. FTA가 무조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가려서 체결하자는 겁니다.
민영화로 인한 가격 인상으로 서민들이 무척 힘들게 될까 걱정이고, 병원에서 돈 되는 환자들만 받는 현상이 심각해질까 또 걱정입니다. 촛불시위를 한다고 해서 FTA를 폐기할 수는 없겠죠. 그러나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우리들의 목소리는 누가 내주나요. 저희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이 예전처럼 정치 앞에서 뒷짐지고 있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출처 : [특집| 한·미 FTA]한·미 FTA 반대! 광장에 모인 사람들
‘나는 꼼수다’ 여의도 공연 풍경… “여기 많이 모인 건 사회가 비정상이라는 뜻”
주간경향 954호 | 2011 12/13 |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여의도는 섬이다. 사방에서 바람이 모여든다. 바람은 여름에는 산책자들의 고마운 벗이지만 겨울에는 날선 기세로 행인들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 훼방꾼이다.
지난 11월 30일 밤에도 그랬다. 종일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퇴근길 직장인들은 잔뜩 몸을 웅크리고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그런데도 수많은 인파가 여의도로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6시40분쯤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3번 출구 앞은 만원이었다. 지상으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수십미터 길이로 늘어서 있었다. 여의도역 3번 출구는 여의도광장 방향으로 난 출구다. 줄지어선 이들 대부분이 7시30분부터 시작하는 ‘나는 꼼수다(나꼼수)’ 서울공연을 보기 위해 여의도광장으로 가고 있었다.
▲ 지난 11월 30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나는꼼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특별공연에 3만여명의 시민들이 참가했다. /김창길 기자 |
전국을 돌며 공연을 하고 있는 나꼼수 팀은 이날 여의도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특별공연을 열었다. 여의도광장에 모여든 인파의 대부분이 한·미 FTA 반대라는 신념을 공유하는 이들인 셈이다.
이준덕씨(30)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여의도에 도착했다. 직장일을 마치자마자 곧장 여의도로 내달렸다. 여의도역에서 광장으로 오는 관람객들을 맞기 위해서다. 흰색 우비를 걸친 그는 횡단보도 맞은편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관람객들을 향해 “나는 꼼수다” “쫄지마” “경찰추산 10만명”을 연거푸 외쳤다. 혼자가 아니었다. 흰색 우비를 걸친 20여명의 청춘남녀들이 함께 외쳤다. 외침은 리듬을 타고 합창이 됐다.
“찔리는 게 없다면 날치기 했을까요?”
20여명의 청년들은 이날 처음 만났다. 이들은 공연 시작 며칠 전부터 트위터나 인터넷 카페를 통해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신청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제각기 공연장에 도착해 우비와 간단한 소도구들을 챙겨 횡단보도 앞에 섰다. 소도구 중 하나는 수건이다. 검은색으로 인쇄된 이름들이 뽀얀 수건 위에 빼곡하게 박혀 있다. 한·미 FTA 비준안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의 이름이다. 수건을 들고 있던 한 20대 여성이 외쳤다. “너희들의 이름으로 이 수건은 걸레가 되리라.”
이씨의 직장은 경기도 화성에 있다. 여의도까지 두 시간 가까이 걸린다. 한·미 FTA 반대 집회는 이번이 세 번째다. 비준안이 통과된 다음날도 그는 집회에 참석했다. 입법자인 국회의원들도 힘겨워하는 1800여쪽 분량의 한·미 FTA 협정문을 그라고 다 꿰뚫고 있을 리 없다. 그러나 반대한다. “협정 내용을 잘 아는 국민들은 많지 않겠죠. 하지만 뭔가 찔리는 게 없다면 날치기를 했을까요? 내용도 내용이지만 날치기를 한 게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씨는 정보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찬성하는 쪽은 최상을 말하고 반대하는 쪽은 최악을 말하죠. 어느 쪽이든 100% 맞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국가간 협상에서는 이익과 손해가 있기 마련이죠. 그런데 이익이 뭐고 손해가 뭔지 명확하게 알려주는 사람이 드물어요.”
나꼼수 공연 자원봉사를 하고 있지만 나꼼수가 말하는 모든 것이 다 사실이라고 믿지도 않는다. ‘나꼼수 현상’은 사회가 만든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오늘 여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온 건 사회가 정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기성정치나 제도언론이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알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을 나꼼수는 아주 쉽게 풀어줬어요.” 별 관심이 없어 2008년 촛불집회에는 참석하지 않았다는 그는 나꼼수를 들으며 “정치인들이 그들 자신만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특별한 지지정당이 없는 ‘무당파’다.
▲ 서울 여의도공원 앞 횡단보도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우의를 입고 여의도광장을 찾아온 시민들을 맞고 있다. /정원식 기자 |
나꼼수 자원봉사하러 휴가 내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모여서 집회를 이어가면 협상을 폐기하거나 개정할 수 있을까. 오씨는 “집회 동력이야 갈수록 줄어들겠지만 집회로 드러나지 않은 민심은 총선과 대선에서 투표로 흡수될 것”이라고 봤다. 투표로 정치세력을 바꾸면 폐기는 어렵더라도 개정은 가능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공연장에서 양팔로 모금함을 안고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직장인 손모씨(0·여)는 이날 오후 2시에 여의도에 왔다. 휴가를 냈다. 휴가를 내기 위해 구실을 만들어내지는 않았다. 사실 그대로 말했다. 나꼼수 공연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휴가를 낸 직원을 회사는 어떻게 생각할까. 손씨는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FTA에 반대하는 건 내 의사예요. 내 의사를 표현하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행동이에요.”
공연이 진행될수록 인파가 늘었다. 여의도광장이 꽉 찼고 광장 주변도 사람들로 에워싸였다. 일부는 광장 주변을 산책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종이컵에 담긴 뜨거운 어묵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남자들이 있었다. 이희승씨(37)는 어묵 트럭 앞에서 ‘손님’을 끌어모았다. 종이컵 대여섯 개를 쟁반에 담아 주변에 있는 관객들에게 부지런히 건넸다. 다른 네 사람은 몸을 절반쯤 가리는 피켓을 들고 섰다. 대통령이 어묵을 먹는 사진이 피켓에 박혀 있다. 이 어묵의 이름은 “가카도 반한 맛!”인데 “보편적 무상 어묵”이라는 점이 특징이라고 이들은 말했다.
트럭에서 어묵을 만드는 이들까지 모두 20명이 광장에 왔다. 이들은 밀리터리 마니아의 인터넷 동호회 ‘밀갤닷컴’ 회원들이다. “날씨가 추울 것 같아” 동호회 차원에서 돈을 모아 어묵을 준비했다는 이씨는 한의원 원장이다. “저 같은 사람이야 한·미 FTA가 되더라도 나쁠 거 없죠”라며 그가 말했다. “제가 미국에 잠시 있어봤거든요. 미국은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 힘든 곳이에요. 당장 수출이 안 돼 나라가 망한 것도 아닌데 미국식 제도를 강요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됩니다.”
“예전처럼 정치에 뒷짐지지 않겠다”
▲ 지난 11월 30일 ‘밀갤닷컴’ 회원들이 나꼼수 공연을 보러온 시민들에게 어묵을 나눠주고 있다. /정원식 기자 |
그러나 단박에 시선을 잡아끄는 공연이 없어도 집회는 이어진다. 12월 1일 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한·미 FTA를 반대하는 야당 정당연설회가 열렸다. 규모는 200여명에 불과했다. 정당이나 시민사회단체 사람들이 깃발을 들고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자리를 지켰다. 단체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다. 동국대 사범대 3학년 우동희씨(21)는 학생회 친구들 10여명과 함께 집회에 나왔다. 그는 나꼼수를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들어본 적은 없다. 그는 한나라당을 반대하고 민주당은 “기회주의적 정당”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가는 건 진보정당 쪽이다. 경북 문경시가 고향인 그는 “부모님이 한우를 키우는데 FTA가 발효되면 쇠고기 시장이 더 큰 폭으로 개방될 것 같아 집회에 나왔다”고 말했다.
임순정씨(32)는 겨울용 점퍼에 달린 모자를 푹 눌러쓰고 촛불을 든 채 집회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나꼼수 팬이다. 서울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그는 교대 근무 때문에 전날 여의도 공연에 못 간 걸 아쉬워했다. FTA 반대 집회에 참가한 건 이날이 처음이다. 지지하는 정당은 없지만 “한나라당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임씨는 “집회 소식을 기사나 트위터로만 보다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집회에 나왔다”고 말했다.
임씨와 나란히 붙어 촛불을 들고 있던 간호사 동료 한신애씨(26)는 연방 “다른 사람을 인터뷰하라”고 말했다. 한·미 FTA에 대해서는 “공공분야 민영화가 걱정된다”고 짧게 말했다. 그는 수줍음이 많은 사람인 듯했다.
집회는 오후 8시10분쯤 끝났다. 한 시간쯤 뒤 그가 보낸 장문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는 자신이 “낯을 많이 가린다”고 말했다. 한씨가 한·미 FTA에 반대하는 이유는 요약하면 이렇다. “모든 협정은 서로 이익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잃는 것보다는 이익이 더 많아야겠죠. FTA가 무조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가려서 체결하자는 겁니다.
민영화로 인한 가격 인상으로 서민들이 무척 힘들게 될까 걱정이고, 병원에서 돈 되는 환자들만 받는 현상이 심각해질까 또 걱정입니다. 촛불시위를 한다고 해서 FTA를 폐기할 수는 없겠죠. 그러나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우리들의 목소리는 누가 내주나요. 저희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이 예전처럼 정치 앞에서 뒷짐지고 있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출처 : [특집| 한·미 FTA]한·미 FTA 반대! 광장에 모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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