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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

김원봉과 동아일보 김원봉과 동아일보 [미디어오늘 1204호] 사설 | 승인 : 2019.06.16 13:25 1920년 부산경찰서 박재혁, 1920년 밀양경찰서 최수봉, 1921년 조선총독부 김익상, 1923년 종로경찰서 김상옥, 1924년 도쿄 궁성 김지섭, 1926년 동양척식 주식회사 나석주. 모두 일제를 향해 폭탄을 던진 의열단원이다. 이들 모두 독립운동가로 서훈 받았다. 그러나 정작 의열단장 김원봉은 아직이다. 심지어 김원봉과 동지이자 부부였던 박차정도 1995년 뒤늦게 서훈을 받았는데. 김원봉이 얼마나 대단한 사회주의자였기에 청와대마저 ‘서훈 못 준다’ 할까. 김원봉은 사회주의자들 눈엔 단지 급진적 자본가에 불과했고, 보수 민족주의자에겐 사회주의자로 보였다. 밀양사람 김원봉은 1913년 서울에 올라와 중앙학교에 .. 더보기
의열단 ‘의백’ 김원봉은 뼛속까지 민족주의자였다 의열단 ‘의백’ 김원봉은 뼛속까지 민족주의자였다 [경향신문] 이기환 선임 기자 | 입력 : 2019.05.03 09:23 | 수정 : 2019.05.03 21:47 “내가 왜놈 등쌀에 언제 죽을지 몰라.” 약산 김원봉(1898~1958)과 친일경찰 노덕술(1899~1968)의 악연과 관련된 이야기는 전설처럼 전해진다. 물론 1차 사료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의열단 동지인 유석현(1900~1987)과 임시정부에서 활약한 정정화 선생(1900~1991)의 회고담, 독립운동가 송남헌(1914~2001)의 , 그리고 이런 자료들을 재구성한 과 각종 논문 등을 종합해보자. 1947년 3월 22일 서울 청계천 은신처에서 변소에 앉아있던 약산 김원봉(1898~1958) 선생이 체포됐다. 김원봉 선생이 누구인가. 일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