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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환경

아라뱃길 대통령 행차 소식에…‘빈 컨테이너 진열쇼’

아라뱃길 대통령 행차 소식에…‘빈 컨테이너 진열쇼’
국토부, 물동량 많게 보이려 개장식 맞춰 야적 지시
직원들 “놀던 설비 작동모습 보니 진짜 오시나 보다”
터미널은 통관준비 안돼 불꺼지고 출입문엔 쇠사슬

[한겨레] 노현웅 기자 | 등록 : 2012.05.23 08:03 | 수정 : 2012.05.23 15:33


▲ 경인 아라뱃길 김포터미널(선착장)에서 컨테이너 야작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오는 25일 이명박이 참석한 가운데 이곳에서 아라뱃길 개장식이 열릴 예정이다. 김포/김경호 기자

조만간 개장식을 앞두고 있는 경인 아라뱃길 김포터미널은 서해에서 시작된 18㎞의 인공수로가 한강과 맞닿은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전호리에 자리잡고 있다. 올림픽대로를 타고 여의도에서 10㎞ 남짓을 달리면 모습을 드러내는 김포터미널은, 폭 100m 남짓의 뱃길 양안에 푸른 유리로 날렵하게 멋을 낸 여객터미널과 붉은 컨테이너 접안 시설이 골리앗처럼 버티고 서 있는 컨테이너터미널이 마주보고 있었다.

<한겨레>가 김포터미널 현장을 찾은 지난 21일 컨테이너터미널에는 화물선 ‘한서호’가 정박해 있었다. 한서호는 한진해운이 운항하는 화물선으로 중국 칭다오항과 아라뱃길 인천터미널을 주 1회 운항하는 3096t급 컨테이너선이다. 매주 목요일 아라뱃길 인천터미널에 들르는 한서호가 월요일인 21일 김포터미널까지 들어와 있는 이유는 개장식을 앞둔 컨테이너 하역 작업 때문이었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22일 “그간 아라뱃길의 화물 운송 기능에 대한 비판이 많았던지라, 텅 빈 컨테이너 부두를 그대로 두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한진해운에 요청해 남는 컨테이너를 김포터미널에 야적해두도록 조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물동량이 많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개장식에 맞춰 빈 컨테이너를 진열시키는 ‘꼼수’를 부렸다는 뜻이다.

이날 한서호에는 붉고 푸른 컨테이너 70여개가 실려 있었고, 이를 컨테이너 항만에 내리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김포컨테이너터미널 관계자는 “개장식 행사 때문에 배에서 컨테이너 내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100여명이 와서 일하고 있는데, 터미널 시범 개장 뒤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것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한진해운 관계자도 “이번 개장 행사에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오시기 때문에 아라뱃길을 운행하는 선박과 컨테이너가 일부 동원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포컨테이너터미널에는 정상적인 물류 통관 절차를 진행할 아무런 준비도 돼 있지 않았다. 컨테이너터미널을 운영하는 한진해운 통관 사무실은 불이 꺼진 채 문이 잠겨 있었고, 인천세관의 컨테이너터미널 사무실 역시 출입구에 굵은 쇠사슬이 칭칭 감겨 있었다. 화물을 싣고 내리는 선착장 안은 세관의 관리 영역으로 기자의 접근이 차단돼 있었다. 컨테이너 접안 시설에서 일하다가 나왔다는 한 인부는 땀을 훔치며, “컨테이너가 대부분 비어 있던데 뭐하러 가지고 온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컨테이너터미널에서 ‘ㄷ’자로 돌아 뱃길 건너 여객터미널 쪽으로 오니, 컨테이너터미널의 바쁜 움직임이 좀더 생생하게 관찰됐다. 하역 장비는 끊임없이 움직여 배에 실린 컨테이너를 항만으로 내렸고, 인부들은 야적을 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김포여객터미널에서 근무한다는 한 직원은 “생전 안 움직이던 설비가 움직이는 것을 보니, 높은 분이 오시긴 오시는 모양”이라며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여객터미널 쪽도 개장식 준비에 분주하긴 마찬가지였다. 맨모래가 훤히 드러난 화단에는 소형 굴착기가 땅을 파고 있었고, 붉은 수건을 머리에 두른 중년 인부들은 풀을 뽑거나 나무를 심다 말고, 그늘에 앉아 쉬고 있었다.

뱃길을 따라 나 있는 산책로 구석에서는 한 홈쇼핑 채널의 아웃도어 의류 광고를 위한 사진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장소 섭외를 담당한다는 직원은 “주변에 편의시설이 별로 없어서 자주 찾지는 않는데,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는 광고 스틸을 찍기에 괜찮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드물게 유람선을 타러 온 관광객들도 눈에 띄었다. 주차장에 있는 관광버스 4~5대를 보니, 대부분 단체여행인 듯했다. 경북 영덕군 축산항에서 단체로 경로여행을 왔다는 한 할머니는 “대통령께서 잘 만드셨을 테니 한번 타보러 오는 거지, 뭐 꼭 대단한 구경 하러 오나”라고 말했다.


출처 : 아라뱃길 대통령 행차 소식에…‘빈 컨테이너 진열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