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 비준동의안, 끝없이 쏟아지는 번역 오류
외통부 반박 역시 오류
기사입력 2011-03-07 오후 6:41:31
한국과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의 번역 오류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21일, 송기호 변호사가 <프레시안> 기고를 통해 최초로 제기한 번역 오류 문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대되는 양상이다.
"협정문을 의역?… FTA 협정문이 '문학작품'인가?"
정부는 송 변호사가 처음 지적한 오류 가운데 일부만 수정하여 국회에 제출했다. 완구류와 왁스류 원산지 판정 기준에 관한 내용이다. 하지만 송 변호사가 지적한 나머지 오류는 그대로다. 예컨대 송 변호사는 한ㆍEU FTA 협정문 영문본에는 사실상 래칫(역진방지) 조항이 담겨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정부는 한·미 FTA에는 이 내용이 포함됐지만, 한·EU FTA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논란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any'의 번역을 둘러싼 논란도 있다. 예컨대 협정문 한국어본의 부속서 2-다 제9조 '자동차 및 부품 작업반'의 제1항에는 "이 부속서의 적용범위에 해당하는 제품의 무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치를 서로에게 통보하기로 합의한다"고 돼 있다. 여기 있는 '조치'라는 낱말이 영문본에는 'any measure'라고 돼 있다. 어떤 조치건 다 통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걸 '조치를 통보한다' 정도로 번역하면, 의미가 달라진다. 그리고 법적 구속력을 갖는 문서는 읽기 편한 글이 아니라, 의미가 분명한 글로 작성돼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그런데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국회에서 "문학 작품도 직역과 의역을 염두에 두지 않느냐"고 밝혔다. 협정문을 '의역'했다는 게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 협정문은 문학 작품이 아니다.
내국인에게 불리한 건축사 자격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송 변호사는 새로운 번역 오류를 계속 찾아냈다. 현재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상정된 한ㆍEU FTA 비준동의안의 오류다.
새로 드러난 오류 가운데 대표적인 게 건축설계서비스 시장 개방에 관한 부분이다. 한국어본은 부속서7-가-4의 건축설계서비스 분야의 '추가적 약속' 항목에서 이렇게 규정했다.
"대한민국 법에 의하여 자격을 취득한 건축사와의 공동계약에 의한 외국건축사의 건축설계서비스 공급은 허용됨. 본국의 법에 따라 외국건축사 자격을 취득한 5년의 실무수습을 한 자는 정규 6개 건축사 시험과목 중 2개 과목인 (i)건축법규와 (ii)건축설계만을 대상으로 하는 간단한 시험만 합격함으로써 대한민국 건축사 자격 취득이 가능함"
문제는 이 대목이 영어본, 독어본, 불어본, 스페인어본 등에는 다르게 돼 있다는 점이다. 영어본에는 '5년의 실무수습'을 뜻하는 문구가 없다. 영국의 경우, 2년의 수습만 거쳐도 건축사 자격이 주어진다. 영어본 대로라면, 한국 건축사 자격을 영국인이 더 쉽게 딸 수 있다. 형평성 논란이 필연적이다.
'추가적 약속'에 기재된 이상, 구속력 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는 한국어본 부속서7-가-4의 주해 7조를 근거로 반박했다. 이런 내용이다.
"자격 요건 및 절차, 기술 표준, 그리고 면허 요건과 관련된 조치가 제 7.5조 및 제 7.11조와 제 7.6조 및 제 7.12조의 의미에서의 시장접근 또는 내국민대우 제한을 구성하지 아니하는 때, 이 양허표는 그러한 조치를 포함하지 아니한다.
그러한 조치 (예를 들어, 면허 취득 필요, 보편적 서비스 의무, 규제되는 분야에서의 자격인정 획득 필요, 언어 시험을 포함하여 특정한 시험 통과 필요 및 경제활동이 수행되는 영역에 법적 주소를 보유할 필요)는, 비록 열거되지 아니하더라도, 유럽연합 당사자의 서비스와 서비스 공급자에게 어떠한 경우에도 적용된다."
정부는 이 내용이 "우리나라에서 건축사 자격을 얻으려면 한국 건축사법에 규정된 자격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규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송 변호사는 이런 반박이 오류라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문제의 내용이 (부속서7-가-4의 건축설계서비스 분야의) '추가적 약속(Additional Commitment)'에 담겨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 협정(GATS) 제18조에는 '추가적 약속'이 "회원국은 자격, 표준 또는 면허사항에 관한 조치를 포함하여 제16조(시장접근) 또는 제17조(내국민대우)에 따른 양허표 기재사항은 아니나 서비스의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 조치와 관련하여 약속에 관한 협상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약속은 회원국의 양허표에 기재된다"라고 풀이돼 있다.
정부가 언급한 내용대로, 자격이나 표준 또는 면허사항에 관한 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 협정(GATS) 제16조(시장접근), 제17조(내국민대우)에 따른 양허표 기재사항이 아니다. 그러나 당사국들은 이에 대하여 협상을 할 수 있으며 그 협상 결과로 합의된 약속을 양허표의 '추가적 약속' 란에 기재한다는 게 송 변호사의 설명이다. '추가적 약속'에 기재된 이상, 구속력이 있으며 정부가 근거로 삼은 '한국어본 부속서7-가-4의 주해 7조'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영문본, 독일어본, 불어본, 스페인어본 등의 '추가적 약속' 란에 '5년의 실무수습'을 거치지 않고서도 건축사 자격을 얻을 수 있다고 돼 있다면, 이는 그대로 효력을 갖는다는 설명이다.
송 변호사는 "외통부의 해명과 달리, '추가적 약속'에 명시해 놓은 한, 한국의 건축사법에 규정된 '5년간 실무 수습 요건'은 유럽의 27개 나라의 건축사에 대해선 적용되지 않는다"라고 못 박았다.
이어 그는 "외통부의 해명처럼 우리가 그런 합의를 해 준 바가 없다면, 영문본, 독어본, 불어본 등을 수정해야 한다. 한국어본에는 다르게 돼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성현석 기자
외통부 반박 역시 오류
기사입력 2011-03-07 오후 6:41:31
한국과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의 번역 오류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21일, 송기호 변호사가 <프레시안> 기고를 통해 최초로 제기한 번역 오류 문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대되는 양상이다.
"협정문을 의역?… FTA 협정문이 '문학작품'인가?"
정부는 송 변호사가 처음 지적한 오류 가운데 일부만 수정하여 국회에 제출했다. 완구류와 왁스류 원산지 판정 기준에 관한 내용이다. 하지만 송 변호사가 지적한 나머지 오류는 그대로다. 예컨대 송 변호사는 한ㆍEU FTA 협정문 영문본에는 사실상 래칫(역진방지) 조항이 담겨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정부는 한·미 FTA에는 이 내용이 포함됐지만, 한·EU FTA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논란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any'의 번역을 둘러싼 논란도 있다. 예컨대 협정문 한국어본의 부속서 2-다 제9조 '자동차 및 부품 작업반'의 제1항에는 "이 부속서의 적용범위에 해당하는 제품의 무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치를 서로에게 통보하기로 합의한다"고 돼 있다. 여기 있는 '조치'라는 낱말이 영문본에는 'any measure'라고 돼 있다. 어떤 조치건 다 통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걸 '조치를 통보한다' 정도로 번역하면, 의미가 달라진다. 그리고 법적 구속력을 갖는 문서는 읽기 편한 글이 아니라, 의미가 분명한 글로 작성돼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그런데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국회에서 "문학 작품도 직역과 의역을 염두에 두지 않느냐"고 밝혔다. 협정문을 '의역'했다는 게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 협정문은 문학 작품이 아니다.
내국인에게 불리한 건축사 자격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송 변호사는 새로운 번역 오류를 계속 찾아냈다. 현재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상정된 한ㆍEU FTA 비준동의안의 오류다.
새로 드러난 오류 가운데 대표적인 게 건축설계서비스 시장 개방에 관한 부분이다. 한국어본은 부속서7-가-4의 건축설계서비스 분야의 '추가적 약속' 항목에서 이렇게 규정했다.
"대한민국 법에 의하여 자격을 취득한 건축사와의 공동계약에 의한 외국건축사의 건축설계서비스 공급은 허용됨. 본국의 법에 따라 외국건축사 자격을 취득한 5년의 실무수습을 한 자는 정규 6개 건축사 시험과목 중 2개 과목인 (i)건축법규와 (ii)건축설계만을 대상으로 하는 간단한 시험만 합격함으로써 대한민국 건축사 자격 취득이 가능함"
문제는 이 대목이 영어본, 독어본, 불어본, 스페인어본 등에는 다르게 돼 있다는 점이다. 영어본에는 '5년의 실무수습'을 뜻하는 문구가 없다. 영국의 경우, 2년의 수습만 거쳐도 건축사 자격이 주어진다. 영어본 대로라면, 한국 건축사 자격을 영국인이 더 쉽게 딸 수 있다. 형평성 논란이 필연적이다.
▲ 이명박 대통령(왼쪽)이 지난해 10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한·EU FTA 서명식에서 호세 마누엘 바로소 EU 집행위원장(오른쪽), 헤르만 판 롬파워 유럽연합 상임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
'추가적 약속'에 기재된 이상, 구속력 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는 한국어본 부속서7-가-4의 주해 7조를 근거로 반박했다. 이런 내용이다.
"자격 요건 및 절차, 기술 표준, 그리고 면허 요건과 관련된 조치가 제 7.5조 및 제 7.11조와 제 7.6조 및 제 7.12조의 의미에서의 시장접근 또는 내국민대우 제한을 구성하지 아니하는 때, 이 양허표는 그러한 조치를 포함하지 아니한다.
그러한 조치 (예를 들어, 면허 취득 필요, 보편적 서비스 의무, 규제되는 분야에서의 자격인정 획득 필요, 언어 시험을 포함하여 특정한 시험 통과 필요 및 경제활동이 수행되는 영역에 법적 주소를 보유할 필요)는, 비록 열거되지 아니하더라도, 유럽연합 당사자의 서비스와 서비스 공급자에게 어떠한 경우에도 적용된다."
정부는 이 내용이 "우리나라에서 건축사 자격을 얻으려면 한국 건축사법에 규정된 자격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규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송 변호사는 이런 반박이 오류라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문제의 내용이 (부속서7-가-4의 건축설계서비스 분야의) '추가적 약속(Additional Commitment)'에 담겨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 협정(GATS) 제18조에는 '추가적 약속'이 "회원국은 자격, 표준 또는 면허사항에 관한 조치를 포함하여 제16조(시장접근) 또는 제17조(내국민대우)에 따른 양허표 기재사항은 아니나 서비스의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 조치와 관련하여 약속에 관한 협상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약속은 회원국의 양허표에 기재된다"라고 풀이돼 있다.
정부가 언급한 내용대로, 자격이나 표준 또는 면허사항에 관한 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 협정(GATS) 제16조(시장접근), 제17조(내국민대우)에 따른 양허표 기재사항이 아니다. 그러나 당사국들은 이에 대하여 협상을 할 수 있으며 그 협상 결과로 합의된 약속을 양허표의 '추가적 약속' 란에 기재한다는 게 송 변호사의 설명이다. '추가적 약속'에 기재된 이상, 구속력이 있으며 정부가 근거로 삼은 '한국어본 부속서7-가-4의 주해 7조'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영문본, 독일어본, 불어본, 스페인어본 등의 '추가적 약속' 란에 '5년의 실무수습'을 거치지 않고서도 건축사 자격을 얻을 수 있다고 돼 있다면, 이는 그대로 효력을 갖는다는 설명이다.
송 변호사는 "외통부의 해명과 달리, '추가적 약속'에 명시해 놓은 한, 한국의 건축사법에 규정된 '5년간 실무 수습 요건'은 유럽의 27개 나라의 건축사에 대해선 적용되지 않는다"라고 못 박았다.
이어 그는 "외통부의 해명처럼 우리가 그런 합의를 해 준 바가 없다면, 영문본, 독어본, 불어본 등을 수정해야 한다. 한국어본에는 다르게 돼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성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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