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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제주·강정·구럼비·해적기지

`구럼비의 정령이 구럼비 자신을 찍었다`

"구럼비의 정령이 구럼비 자신을 찍었다"
'트위터' 후끈 달군 한 컷 사진의 탄생 비밀

[스팟인터뷰] 화제의 구럼비 사진 찍은 영화감독 정우철
[오마이뉴스] 이주빈 기자 | 12.03.09 19:12 | 최종 업데이트 12.03.10 00:40


▲ 국제 사진 공모전에서 은상을 받은 정우철 감독의 사진 <구럼비> ⓒ 정우철

구럼비 발파 사태와 맞물려 화제가 되고 있는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순한 녹색 빛을 머금은 제주바다 뒤로 멀리 범섬이 안개처럼 아스라이 앉아있다. 몽환적인 분위기가 매력적인 이 사진은 구럼비 폭파 아픔이 커질수록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사진은 <동아일보>와 제주도가 주최한 '유네스코 자연과학분야 3관왕 제주 제3회 국제사진공모전'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보도에서 사진의 저작권자를 '매튜 호이'라는 밝히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 사진을 촬영한 이는 영화 <사랑이 무서워>의 정우철 감독이다. 정 감독이 촬영한 사진을 그의 미국인 친구인 매튜 호이가 사진공모전에 출품한 것이다.

"작년 여름 태풍이 올라오는 날이었어요. 평소에 사진에 취미도 없을뿐더러 사진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싫어하는데 그날 따라 사진을 찍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저는 카메라가 없거든요. 마침 매튜에게 아주 오래된 낡은 콤팩트형 디지털 카메라가 있기에 빌려 달라고 했죠. 그리고 매튜 보고 구럼비 바위 할망물 주변에 있는 바다에 들어가라고 했어요. 그렇게 사진을 서너 컷 찍고 다시 마지막 사진을 찍는데 전원이 나가버리는 겁니다. 안 찍혔겠지 생각했는데 다시 켜보니 이 작품이 찍혀 있는 거예요."

그는 "이 작품은 내가 찍은 게 아니"라고 했다. 정 감독은 "그때도 구럼비의 정령이 구럼비 자신을 찍은 '구럼비의 셀카'라는 생각이 들었고 언젠가 이 사진이 참 소중하게 쓰일 날이 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정 감독이 찍은 이 사진은 카메라 주인인 매튜 호이에 의해서 국제사진전에 출품되었다. 매튜는 "아름다운 강정마을과 구럼비 바위를 한국과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출품했다고 한다. 그리고 출품을 하면서 자신은 출품자일 뿐이고 작가는 레인 정(정우철 감독)이라고 분명히 밝혔다고 한다.

이 사진을 본 영화배우 로버트 레드포드는 신문에 제주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칼럼을 실어 화제가 됐다. 또 한국에서는 검색 1위가 될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구럼비의 미래 역시 긍정적이고 희망적"

▲ 강정마을 주민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정우철 감독. ⓒ 이주빈

"저작권을 굳이 강조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이 사진은 제가 찍은 것이 아니라 구럼비가 구럼비 자신을 찍은 것이니까요. 그저 이 사진을 보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바위 구럼비와 아름다운 강정바다를 지키는 일에 함께 해주시길 바랄 뿐이죠."

정 감독은 8일에도 구럼비 발파를 반대하는 주민들과 함께 있었다. 그가 강정에 온 지도 벌써 일 년이 거의 다되어간다. 양윤모 전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이 연행되던 2011년 4월 '영화감독 10인 선언'에 참여하면서 강정마을과 처음 연을 맺었다. 그리고 일 년 동안 주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강정마을을 지켰다. 구럼비 발파로 많은 이들이 낙담하고 분노하고 있는 요즘 정 감독은 "희망을 느낀다"고 했다.

"기댈 곳이 생겼잖아요. 늦었지만 그리고 100% 만족스럽진 않지만 어찌됐든 제주도정이 주민들의 편에 서서 중앙 정부에 요구하는 단계까지 왔잖아요. 제주도가 쇼가 아닌 진정성 있는 입장이기를 바랄 뿐이죠. 우리끼리 악 지르고 싸우다가 이렇게 많은 국민들이 관심 가져주니까 또 주민들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구요."

정 감독은 스스로를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구럼비의 미래 역시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라며 다시 카메라를 들고 주민들 뒤를 따랐다.

"정부와 해군이 구럼비 발파를 계속 강행하고 있으니 구럼비 파괴와 훼손은 어느 정도 될 수밖에 없지만 더 이상은 안 됩니다. 국민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또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구럼비는 자기 스스로를 지키니까요."


출처 : "구럼비의 정령이 구럼비 자신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