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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생도들, 재보선·총선 앞두고 주소지 대거 이전

육사 생도들, 재보선·총선 앞두고 주소지 대거 이전
[단독] 2011년 8·9월 281명, 2012년 1·2월 275명... "헌법·선거법 위반 가능성"
[오마이뉴스] 구영식 | 12.09.23 12:48 | 최종 업데이트 12.09.23 13:13


▲ 육사 생도들이 지난 2010년 9월 2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청광장까지 국군의 날 기념 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육군사관학교(육사)가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와 올 4월 19대 총선을 앞두고 생도들의 주소지를 대거 이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오마이뉴스>가 전해철 민주통합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육군사관학교 전입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1년 8·9월 281명에 이어 올 1·2월에도 275명의 생도들이 주소지를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현재는 서울시 노원구 화랑로 574번지)으로 이전했다.

육사 쪽은 "애교심과 소속감 고취, 주소지 이전에 따른 혜택 등을 고려해 주소지를 이전했다"고 해명했지만, 일각에서는 헌법과 선거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생도들의 주소지 이전을 선거부정 의혹과 연결시키는 시각도 있다.


10·26 재보선과 19대 총선 앞두고 총 556명 주소지 이전

육사는 지난 1946년 5월 설립된 조선경비사관학교를 모체로 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직후인 지난 1948년 9월 조선경비사관학교를 현재의 '육군사관학교'로 개칭했다. 육사가 개교한 태릉은 원래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에 속해 있었으나 행정구역 개편 이후 서울시 노원구로 편입됐다.

올해로 개교 66주년을 맞는 육사에서 2011년까지 배출한 졸업생은 총 1만8000여 명에 이른다. 그리고 2012년 육사의 정원은 990명이다. 그 가운데 900명 이상이 화랑관에서 생활하고 있다. 특히 올해 생도모집에서는 6400여 명이 지원해 27년 만에 최고의 경쟁율(22.1 대 1)을 기록했다.

전해철 민주통합당 의원실이 육사로부터 제출받은 '육군사관학교 전입 현황' 자료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 시기인 지난 2006년과 2007년에 주소지를 이전한 생도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생도들의 주소지 이전이 대규모로 이루어졌다.

지난 2008년 4명에 불과했던 주소지 이전 생도수는 2009년 총 497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같은 해 3월에만 477명의 생도들이 주소지를 화랑관으로 이전했다(아래 상자기사 참조). 화랑관은 생도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이어 2010년에는 주소지를 이전한 생도수가 3명에 그쳤다. 그런데 2011년 하반기와 2012년 상반기에 수백명의 생도들이 주소지를 이전했다. 주소지를 이전한 생도수는 2011년 286명, 2012년 277명 등 총 563명에 이른다. 이는 육사 정원(990명)의 약 57%에 해당하는 규모다.

특히 생도들의 주소지 이전이 10·26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와 4·11 총선(19대 총선)을 앞둔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2011년 8·9월에 281명, 2011년 1·2월 275명 등 총 556명이 주소지를 이전했다.

생도들의 주소지 이전은 지역을 불문하고 이루어졌다. 특히 서울에 주소지를 둔 생도들조차도 화랑관으로 주소지를 이전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심지어 노원구 상계동(노원병 지역구)과 중계동(노원을 지역구)에 주소지를 둔 생도들도 노원갑 지역구인 육사로 주소지를 이전한 사례도 확인됐다.

▲ 육사생도 주소시 이전 현황(2006년부터 2012년 4월까지). ⓒ 오마이뉴스 이은영


육사 "애교심 고취, 주소이전에 따른 혜택 등" 해명하지만...

육사는 "생도들의 주소 이전은 '07년 군의 강원도민화 운동' 수범사례에 대한 벤치마킹과 주소 이전을 통해 육사에 대한 애교심과 소속감 고취, 노원구 지역주민으로서 행정관서에 적극적인 지원 요구 가능, 주소이전에 따른 혜택 등을 고려하여 희망자에 한해 이루어졌다"고 해명했다.

육사는 '주소 이전에 따른 혜택'으로 '국민임대주택 청약 가산점 부여' 등을 제시했다. 주택건설지역에 5년 이상 거주하면 3점의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도들이 4년의 과정을 마치고 졸업한 후에는 대부분 각 부대로 배치되는 현실 등을 헤아리면 육사쪽의 해명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또한 육사는 "애교심과 소속감 고취"나 "지역주민으로서 적극적인 지원 요구 가능" 등을 주소지 이전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왜 하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와 19대 총선을 앞두고 대규모의 주소지 이전이 이루어졌는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육사 출신 한 인사는 "작년 12월 초엔가 후배 생도와 통화했는데 '일부 도서지역만 제외하고 주소지를 옮기라는 지시가 내려와 주소지를 옮겼다'고 했다"며 "육사에서는 '노원구 주민들이 육사 이전을 요구하고 있는데 생도들이 주소지를 옮겨 노원구민이 되면 그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 인사는 "육사 이전 문제가 오래된 문제이긴 하지만 생도들의 주소지 이전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생도들의 주소지 이전에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비정상적인 조치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노원구청도 "육사 이전과 관련한 민원이 제기된 적도 없고, 생도들의 주소지 이전과 관련해 사전에 구청과 협의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특히 생도들의 주소지 이전 과정에 강압성이 있었다면 이는 헌법과 선거법을 위배한 행위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거주 이전의 자유'와 '군인에 의한 선거자유방해죄'를 각각 규정한 헌법 제14조와 선거법 제238조를 위배했다는 것이다.

실제 강압성이 있었다는 정황도 있다. 주소지 이전(전입 신고)이 개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생도들의 상관인 기숙사 시설장이 생도들의 전입 신청서를 모아 해당 주민센터에 신청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사 쪽은 "희망자에 한해 주소지를 이전했다"며 강압성 의혹을 일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사쪽의 해명들에 허점들이 드러나면서 민감한 시기에 주소지를 이전한 '진짜 이유'와 관련한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아래 상자기사 참조).


선거부정 의혹까지 제기돼... 전해철 "국감에서 관련경위 밝히겠다"

또한 생도들의 주소지 이전이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와 19대 총선을 앞두고 이루어졌다는 '시기 문제'로 인해 선거부정 의혹까지 제기됐다. 현재 구속 중인 정봉주 전 의원은 지난해 12월 <나는꼼수다(나꼼수)> 방송 32회에 출연해 "지난 10월 26일 재보선 이전에 (서울 노원구) 공릉동으로 주소를 옮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한다"고 전하면서 이렇게 주장한 바 있다.

"육사 생도 다 800명밖에 안 되는데 이들 표를 합치더라도 (여당이) 가져가는 표가 150-200표밖에 안 된다. (여당이) 이 표가 절실할 정도로 굉장히 박빙을 예상하고 육사 생도의 주소를 옮기라고 지시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육사는 정 전 의원의 지역구(노원갑)에 위치해 있다. 지난 19대 총선에서는 <나꼼수>의 일원인 김용민씨가 야권 단일후보로 출마해 이노근 새누리당 후보에게 4,782표 차이로 패배한 바 있다.

전해철 민주통합당 의원은 "육사가 생도들의 주소지 이전을 추진한 의도가 무엇인지 등 많은 의혹이 있다"며 "향후 국정검사를 통해 관련 경위는 물론이고 절차상 문제 등 위법한 부분을 분명히 밝혀내겠다"고 말했다.

육사 생도들의 대규모 주소지 이전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교장인 박종선 중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신청하는 방안까지 검토되고 있다.

18대 총선 이후 생도들 주소지 이전 검토
▲ 육사가 주소지 이전을 추진한 것은 18대 총선 이후인 2008년 10월이었다. ⓒ 구영식

육사에서 작성한 '생도 주소지 이전 관련 검토 결과' 문건에 따르면, 육사가 처음 생도들의 주소지 이전을 추진한 시기는 지난 2008년 10월 7일이다. 목적은 "학교발전과 민·관과의 유대 강화"였다. 특히 이 문건의 표지에는 주소지 이전 검토가 "학교장님의 지시사항"이라고 명시돼 있다.

이어 육사는 "생도 자율에 의거"해 같은 해 10월 10일부터 주소지을 이전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2009년 3월 477명, 4월 18명이 주소지를 이전했다.

육사는 지난 2007년부터 1군사령부에서 추진해왔던 '군의 강원도민화운동'을 모델로 삼았다. 당시 1군사령부는 간부와 그의 가족들을 대상으로 주소지를 이전하도록 독려했고, 일반 병사들에게도 주소지 이전을 권장했다. 주소지를 이전한 병사들에게는 지역관광상품권이 지급됐다.

육사는 앞서 언급한 문건에서 생도들의 주소지 이전의 명분으로 '인구증가로 행정기관의 재정자립도 향상', '주민세 미부과 등 각종 세금 혜택'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연간 약 6000원에 불과한 주민세를 감면받는 것이 유인책이 되기는 어렵고, 특히 '인구증가로 재정자립도 향상'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노원구청은 "지방교부세법 제6조에 의거 서울특별시는 지방교부세(보통교부세)를 부과받지 않는 단체에 속하기 때문에 (재정자립도 향상은) 육사 생도의 주소지 이전과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문건에 '노원구 지역에서 투표권 행사 가능'이라고 적힌 대목이 눈길을 끈다. 투표권 행사를 통해 지자체에 육사 지원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투표권 행사'는 구청장과 국회의원 선거에서 육사가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이와 관련, 헌법 제14조와 선거법 제238조를 위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육사는 "주소지 이전 여부는 개인의 자유이고, 주소지 이전 권유에 불응하는 인원에 불이익을 주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하다는 법적 검토 결과(육군본부 법무감실 법제과)를 내세우며 그런 지적을 일축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생도들의 주소지 이전이 검토된 시기가 공교롭게도 18대 총선(2008년 4월 9일)이 끝난 이후였다는 점이다. 육사가 위치한 노원갑은 정봉주 민주통합당 후보가 현경병 새누리당 후보에게 근소한 차이(2,700여 표)로 패배한 곳이다.


출처 : 육사 생도들, 재보선·총선 앞두고 주소지 대거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