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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원전·방사능·후쿠시마

[3.11 후쿠시마가 남긴 것] `정부는 속이고 언론도 원전 칭찬하는 기사만 쓰더라`

"정부는 속이고 언론도 원전 칭찬하는 기사만 쓰더라"
[3.11 후쿠시마가 남긴 것] 공포와 체념, 원전 주민들의 삶을 지배하는 모순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부산) | 기사입력 2012-03-08 오전 10:25:58


과학전문지 <네이처>는 전 세계에 원자력발전소 반경 30킬로미터(㎞) 이내에 사는 인구가 9000만 명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를 보도한 바 있다. 원전 반경 30㎞는 사고시 부근 주민을 대피시켜야 하는 필수 범위다. 후쿠시마 사태 때도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반경 30㎞ 내 거주주민을 전부 대피시켰다.

한국에서는 571만 명이 이 통계에 포함된다. 이 중 가장 많은 341만 명이 한국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원자력발전소 인근에 산다. 부산광역시 기장군을 비롯해 해운대구, 금정구 등 상당수 부산지역과 울주군을 비롯한 울산광역시 대부분 지역, 양산시 등이 범위다. 지난 1978년 가동을 시작한 고리원전 1호기는 이미 지난 2007년 설계수명 30년이 끝났으나 10년의 수명을 더 연장했다. 인근 주민들은 10년 더, 원자로 부근에서의 삶을 이어가게 됐다.

후쿠시마 사태 1년을 맞은 지금, <프레시안>은 원전 인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듣기 위해 고리원전이 위치한 부산광역시 기장군을 찾았다. 공포만 있는 것도, 찬양만 있는 것도 아니다. 불만과 슬픔, 시샘과 절망으로 크게 나뉠 온갖 번민이 주민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는, 전력생산을 고민하지 않고 소비에만 몰두하는 서울시 주민으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정서였다(서울은 소비전력의 3%만 자체생산한다. 나머지는 전부 다른 지역에서 끌어온다). 더군다나, 이곳은 바로 원전 부근 아닌가. <편집자>



▲ 한국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원전. 원자력발전소는 대개 해수면에 맞닿은 곳에 설치된다. ⓒ프레시안(이대희)

"이래 다 말하몬 우리한테 좋은 기가? 저 발전소 열불나는 거야 말할 것도 없는데, 기사가 나가몬 우리한테 좋아야 되지, 잘모해가 동네 망하몬 우짜노? 그라이까 동네 이름은 쓰몬 안 된데이."

지난 6일 찾은 고리원전 부근 지역의 주민들은 한사코 '동네 이름이 나가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인터뷰에는 협조적으로 응했지만, 결단코 자신의 이름이나 지명이 보도되선 안 된다고 했다. 이장도, 택시기사도, 슈퍼마켓 주인도, 남편을 잃은 과부도 마찬가지였다.

원자력발전소가 두려워서는 아니다. 이들은 고리가 국내 최초의 원자력발전소 부지로 확정된 지난 1969년 이후 40여년 간 국가를 상대로 싸웠다. 이제 와서 발전소를 두려워할 이유도, 발전소를 갑자기 찬양하게 될 이유도 없다.


발전소가 바꾼 것

이들은 현실이 가져오는 생존의 위기를 두려워했다. 원자력에 대한 두려움은 그간 자신들만 안고 살아왔다. 그런데 후쿠시마 사태 이후로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 온 국민이 국내에도 원자력에 의한 '위험'이 있다는 걸 갑자기 자각하게 됐다. 원전 부근 주민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될까. 원전 부근으로 찾아오는 관광객이 줄어들 것이다. 원전 부근에는 해수욕장이 있고, 당연히 관광객에 의존하는 횟집과 민박집이 늘어서 있다. 산지 생산물을 거부하게 될 것이다. 이곳은 반농반어촌이다. 버섯을 재배하고, 미역을 걷고, 생선을 잡는다. 싼 집을 찾아오는 세입자 수요가 줄어들지도 모른다. 이는 집값 하락으로 이어진다. 주민들은 이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부근 마을의 김춘호(52, 가명) 이장은 말했다.

"여가 원전 부근이라고 방세가 쌉니더. 바로 옆에 마을이나 우리 마을이나 원전 부근이긴 마찬가진데, 거기 방세가 25만 원이면 우리 동네는 15만 원이라. 그래가 돈 없는 일용직노동자, 백수 이런 아들이 여기 들어온다고. 그나마 그런 돈이라도 있으니 먹고 살지, 아이몬 우리가 머해 먹고 삽니까? 무신 국가시설이라고 물고기도 못 잡게 해, 산에도 못 오르게 해, 땅은 저거들이 다 사놔. 그런데 동네 이름 (기사에) 나가봐라. 큰일 난다."

원자력발전소는 대개 바닷가 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대도시에선 떨어져 있다. '못 사는 게 당연하지'란 생각은 잘못됐다. 원자력발전소는 국가 기반시설이다. 제조업 생산에 기반이 되는 전력을 생산하는, 한국 경제 성장의 핵심 젖줄이다. 포항이 포스코로 인해 부를 얻고, 울산이 수출산업으로 인해 노동자를 고용하고 지역경제가 발전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게 더 마땅하다. 원전을 통해 지역주민의 소득이 그에 합당하게 오르는 건, 국가를 위해 삶의 터전까지 빼앗긴 이들이 어쩌면 마땅히 누려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전'이라서 그게 안 된다. 원자력발전소는 일반 제조업체에 비해 고용효과가 크지 않다. 상대적으로 고급인력 의존도가 높다. 지역 내 고용이 원활히 이뤄지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위험시설이기도 하다. 법적으로 원자력발전소 반경 700미터(m)이내에는 거주가 금지돼 있다. 관련 산업이 발달하기 어렵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원자력발전소 반경 5㎞를 발전소 주변지역으로 설정, 이곳 주민들에게 일부를 지원금으로 나눠준다. 이 지원금은 지역주민 소득증대사업, 공공시설사업, 교육사업, 각종 복지사업 등에 쓰인다. 시민들이 납부하는 전기세에서 나가는 전력기반부담금으로 이 자금을 충원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제대로 쓰이지 않는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실제 한 마을 회관이 원전지원금으로 지어졌다. 당연히 지자체 일반회계에서 충당해야 할 시설자금을 엉뚱하게 '특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원전지원금으로 부담한 셈이다. 지자체로서는 할 일을 방기한 셈. 지원금을 지자체가 관리하면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지역주민들은 주장했다. 마을주민 박중호(49, 가명) 씨는 "우리가 원하지도 않은 곳에 발전소가 들어온 것도 모자라, 발전소는 주민 땅을 수용해서 삶의 터전을 뺏고 있다. 그런데 지역주민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원전지원금이 제대로 주민 삶에 기여한 게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 기장군의 한 마을회관. 원전지원금으로 회관을 지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지역 주민들은 지원금이 이런 식으로 소비되는 바람에 실제 주민들의 이익에 어떻게 직결되는지 알 길이 없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이대희)
주민들의 말을 종합하면, 원자력발전소로 인해 지역은 생산기반을 통째로 잃게 됐다. 대체부지 수용 규모가 커지면서 그만큼 주민들이 농사지을 땅은 사라졌다. 접근금지구역에는 어획구역도 포함됐다. 실제 바다에는 부표로 접근 금지 구역이 표시돼 있다. 그곳은 인근 바다에서도 양질의 해삼과 멍게 등이 가장 많이 채취되던 곳이라는 게 어민들의 설명이다. 그런데 지역 내 취업은 어렵다. 외부에서 들어와 직원용 사택에 지내는 원전 직원을 제외하면, 극히 소수의 원주민이 일용직노동자로 원전에 취직한다. 삶의 터전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원전 인근 주민들은 지원금 외에도 전기세 감면 혜택을 받는다. 고리원자력발전소에 따르면, 발전소는 원전 주변지역 5㎞ 이내 지역 주민들의 전기세를 적게는 50%, 많게는 전액 지원한다.

원전 인근에 거주하는 자영업자 박영호(39, 가명) 씨는 "감면혜택이 있으니 여름에 에어컨 마음껏 쓴다. 나쁠 것 없다"며 원전이 지역에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원전 사고 위험이 걱정되진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뭐, 복불복이지"하며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눙쳤다.


투쟁해도 소용없다

고리원전 주민 대부분은 원전이 들어올 당시부터 강하게 반대했다. 김 이장은 "당시 마을 어르신들이 이만저만 반대가 아니었다. 그런데 시대가 시대다 보니, 죄다 두들겨 맞고 끌려가서 '빨간 줄'만 그였다. 그 뒤로 마을이 망가졌다"고 말했다.

김 이장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군부는 원자력발전소 개발을 통해 지역이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전이 배출하는 뜨거운 물을 따라 고래 떼, 상어 떼가 몰려든다고 담당 공무원이 마을 어르신들께 홍보했었다고 그는 말했다. 원전 건설이 확정되면서, 대상 부지 마을 사람들은 죄다 다른 마을로 강제 이주됐다. 이주민들은 다른 마을에서 타지인이라는 설움을 겪었다. 지금도 한 이주민 마을은 동네 제사(동제)를 지낼 때 지자체의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 마을에서 먹고 살 길이 없어지면서 젊은이들이 모두 다른 도시로 뿔뿔이 흩어진 것도 원전이 남긴 상처다.

▲ 고리원전부근 마을 전경. 최근 인근 지역에 다세대주택 신축이 크게 늘어나고 있으나, 이들 가옥은 외지인 소유가 대부분이라고 주민들은 말했다. ⓒ프레시안(이대희)
재산권 행사가 어려워졌다는 것도 마을 주민들이 원전을 혐오한 이유다. 국가기반시설지역인 까닭에 인근지역은 지난 2001년 말까지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로 설정돼 있었다. 주민들은 이로 인해 재산권 행사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최근 지역에 들어선 고층 다세대주택은 모두 임대수익을 노린 외지인 소유라고 주민들은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외지인과 극명히 차이가 나는 부의 크기는, 원전의 위험 여부를 떠나 주민들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이 때문에 지난 40여년 가까이 주민들은 꾸준히 원전 반대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들이 최근 들어 반핵시위와 관련 환경단체에 냉소적인 입장을 보이는 이유다.

서토덕 부산환경연합 부설 환경과 자치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고리원전 인근주민은 워낙 오랜 시간 투쟁하고도 아무런 성과를 못 얻어, 이제는 지친 상태"라며 "어찌됐든 원전지원금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생겨나고, 관련 일자리를 얻은 사람이 늘어나면서 이들은 더 이상 목소리를 낼 힘을 잃었다. 이 점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시간이 지나면서 원전 이해관계자들은 지역 내에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부산 해운대구와 연제구, 북구의회는 고리1호기 폐쇄와 핵단지화 중단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으나, 정작 원전을 끼고 있는 기장군의회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건설업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중론이다.

이처럼 커져가는 '막을 수 없다'는 체념 논리는 신고리 원전을 자발적으로 유치한 울산시 울주군의 상황을 낳기도 했다. 서 책임연구원은 "정부가 기장군의 반대운동을 겪으면서 원전을 자발적으로 유치하는 지역에는 인센티브 300억 원을 추가로 내놓겠다는 미끼를 던졌다"며 "울주군은 '어차피 못 막는 것, 돈이나 더 받자'는 분위기가 컸다. 이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원전을 혐오함에도 이를 숙명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체념의 정서가, 지역민들의 민심 밑바닥에 깔린 셈이다. 모순적이지만, 현실이다.


그래도 커져가는 불안함

그러나 모두가 체념으로 가득 차, 우리나라 모든 혐오시설을 '밀어붙이기'로 건설하는 정부의 정책에 따르는 건 아니다. 특히 지난 후쿠시마 사태 이후 원전에 대한 지역의 불안함이 커졌다.

서 책임연구원은 "최근 지역주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고리원전 부근 지역의 원전 반대여론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며 "과거 원전지역민과 환경단체 만의 의제였던 원전의 위험성을 후쿠시마 사태 이후 국민들이 '내 문제'로 체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5월 환경과 자치연구소가 부산시 16개 구·군민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8.6%가 원전의 위험성을 우려한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39.5%는 "원전을 점진적으로 폐쇄하고 재생가능 에너지로 대체해야 한다"고 답했고, 고리원전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43.7%가 "불안하다"고 응답했다.

울산시민의 불안함은 더 크다. 울산광역시는 고리, 신고리원전과 월성원전에 둘러싸인 '원자력 도시'다. 지난해 4월 민주노동당 울산시당이 울산시민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1%가 도시를 둘러싼 원전에 대해 불안함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분위기는 후쿠시마 사태 1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6일 서울환경운동연합이 후쿠시마 사태 1주기를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65%가 원전 비중을 확대하는 데 대해 반대의견을 보였다. 또 절반이 넘는 53.5%는 국내 원전의 안전성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실제 고리원전 부근 주민들은 건강에 대한 공포를 내면화한 듯 보였다. 김 이장을 비롯한 부근 마을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마을 주민 사망원인의 80~90%는 암"이라고 강조했다. 15년 전 남편을 간암으로 잃은 박길자(72, 가명) 씨는 "남편이 발전소에서 막노동을 수년 했는데, 그거 때문에 죽지 않았을까 생각은 한다"며 "아들도 발전소에 근무해 걱정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 핵 방사능 공포는, 원전 부근 주민들에겐 일상이다. ⓒ프레시안(이대희)
10년 전 남편이 위암으로 사망한 김인애(70, 가명) 씨도 같은 두려움을 안고 있다. 어부였던 그의 남편은 어획을 위해 원전 반경 700m 이내에 진입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김 씨는 "남편이 한 끼라도 생선, 해삼을 안 먹는 날이 없을 정도로 해물을 좋아했는데, 그 때문에 죽은 것 아닌가 싶다"며 "남편이 사망한 뒤로 생선은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김 이장은 "지역 중학교와 일본의 중학교가 자매결연을 맺어, 일본인 학부모들이 이곳을 방문할 때가 있는데, 부근에 원전이 있다고 하니 생선회에는 손도 안 대더라"고 말했다. 그는 "주변에서 꼬리가 뒤틀린 생선이 나와도 '원전과 관계가 없다'고 하니 우리로선 더 할 말이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자료는 없다. 아직 공식적으로 원전의 방사능 위험이 인체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기록은 없고, 실제 이 지역 주민들의 사망과 원전에 대한 상관조사를 실시한 결과도 '관계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전자신문>이 지난해 후쿠시마 사태 직후 실시한 원자력 관계자들의 좌담회에서 이명철 한국동위원소협회 회장은 "국내 방사능 수치와 관련해서는 사실상 논할 가치도 없다"며 국내의 방사능 공포가 부풀려졌다고 지적했다. 국내 다수 방사능 전문가들의 주장이 이런 식이다.

주민들이 이처럼 공포에 떠는 진정한 원인은 그러나, 바로 불신이다. 초기부터 주민들을 속이며 진행된 원전개발, 그 후 지속된 피해와 투쟁의 실패, 타지역민들의 무관심으로 그들은 정부와 원전, 언론 등의 기관을 믿지 못했다.

김 이장은 "정부는 우리 속이기만 했고, 기자도 와서 취재하고는 막상 발전소 칭찬하는 기사만 쓰더라"며 "국민의료공단에서 우리 주민을 정기검진한다고 해도 받으러 가는 주민이 없다. '가 봤자 뻔하다'는 반응들이다. 아무도 정부 말은 안 믿는다"고 말했다.

불신과 불안함, 고통과 체념, 갖가지 번뇌가 발전소를 태우고 있었다. 이런 갈등이 '전력생산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전국의 원전부근 각지에서 조명 받지 못하고 태워 없어진다.


출처 : "정부는 속이고 언론도 원전 칭찬하는 기사만 쓰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