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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추악한 자본

암보다 무서운 본사 횡포 “제발 편의점 폐점하게 해달라”

암보다 무서운 본사 횡포 “제발 편의점 폐점하게 해달라”
암 수술뒤 2010년 문 열었는데
길건너 새 점포 생긴 뒤 적자...폐점요청 하니 “위약금 내라”
건강악화돼 밤샘영업 못하자...본사 ‘손해배상’ 공문까지

[한겨레] 유신재 기자 | 등록 : 2013.04.01 15:34 | 수정 : 2013.04.01 22:49


▲ 편의점 본사와의 불공정한 계약으로 인한 압박 끝에 목숨을 끊은 편의점주 임영민(가명)씨를 추모하는 기자회견이 3월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적선동 편의점 앞에서 열리고 있는 가운데, 참석자들이 든 국화꽃 뒤로 간판이 보이고 있다. 참석자들은 불공정 행위를 개선하는 데 정부가 즉각 나설 것을 촉구했다.   박종식 기자

허아무개(39)씨는 2009년 갑상선 및 임파선 전이암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왼팔에 마비증상이 나타나고 쉽게 피로감을 느끼는 후유증이 남았다. 다니던 경비업체를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후배로부터 편의점 개발담당자라는 사람을 소개받았다. 편의점 운영이 암보다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그땐 미처 몰랐다.

개발담당자는 광주 북구 양산동 부지를 제안했다. 편의점 부지 맞은편에 동사무소가 들어설 예정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허씨는 창업용으로 5000만원을 빌렸다. 2010년 7월 상가 보증금 3000만원, 편의점 프랜차이즈 가맹비 700만원, 상품보증금 1500만원을 주고 20평 규모의 ‘훼미리마트 양산행복점’을 열었다.

양산행복점 개점 뒤 주변에 다른 편의점들이 속속 문을 열었다. 하루 평균 100만원 매출을 올리는 게 힘겨웠다. 하루 100만원씩, 월 3000만원 매출이라고 해도, 본사가 가져가는 가맹수수료와 상품구입비, 상가 임대료 150만원 등을 빼고 허씨에게 지급되는 돈은 200만원 수준이었다. 여기서 또 아르바이트 직원 월급을 빼고 나면, 허씨 손에 남는 돈은 월 100만원 미만이었다.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힘든 밤시간 영업은 허씨가 도맡았다. 매일 저녁 6시께 가게에 나가 다음날 아침 10시까지 16시간을 꼬박 일했다. 식사는 유통기한이 지나 팔 수 없는 편의점 도시락이나 삼각김밥, 즉석라면으로 때웠다. 암 수술 이후 매일 아침 호르몬제를 먹고 석달마다 병원에서 피검사를 받는데 갑상선호르몬 수치는 좀체 정상범위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편의점 운영 전까지 77~78㎏이던 체중은 어느새 90㎏까지 불었다.

결정타는 지난해 7월 찾아왔다. 훼미리마트가 씨유(CU)로 이름을 바꾼 지 한 달 만이었다. 허씨의 편의점 길 바로 건너편에 세븐일레븐이 들어섰다. 40평 넓이로 허씨 편의점의 두 배 규모였다. 3000만원 가까웠던 월 매출은 8월부터 급감하기 시작해, 9월에는 2000만원 아래로 떨어졌다. 매달 150만~200만원씩 적자가 났다. 직원 월급을 주고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빌린 돈이 1500만원에 달했다.

허씨의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지난 2월 말 허씨는 심한 어지럼증과 두통으로 1주일 동안 입원했다. 병원은 두통과 어지럼증의 이유를 밝히지 못했다. 편의점 영업을 더는 이어가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허씨는 본사에 폐점을 요청했다. 이에 본사는 지금 폐점하면 위약금 등 수천만원을 물어야 한다고 위협했다.

퇴원하고 나니, 허씨 대신 가게를 지키던 아르바이트 직원마저 그만뒀다. 다른 직원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허씨가 하루 20시간씩 가게를 지켰다. 새벽 3시부터 7시까지 4시간은 어쩔 수 없이 가게를 닫았다. 그러자 지난달 19일 씨유 브랜드 관리 본사인 비지에프(BGF)리테일로부터 ‘계약해지 예고’라는 제목의 공문이 내려왔다. 열흘 동안 본사와 협의 없이 점포영업을 중단한 것은 계약위반이고, 가맹계약에 따라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공문에는 밤에 문이 닫혀 있는 허씨의 편의점을 찍은 사진도 첨부돼 있었다.

“부모님과 친척 동생들한테까지 부탁해 가게를 지켜보려 했지만 더는 방법이 없어요. 이제 편의점을 그만두고 당분간 건강관리에 전념하고 싶다는 생각뿐입니다.”

허씨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본사를 상대로 지난 8일 소송을 냈다. 계약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계약을 체결했고, 본사로부터 정확한 내용을 통보받지도 못했기 때문에 가맹계약 해지를 청구한다는 내용이다. 허씨는 5일 국회에서 열리는 ‘편의점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을 계획이다. 허씨가 제기한 소송에 대해 비지에프리테일 쪽은 “허씨에게 계약내용과 정보제공서를 정확히 제공했다. 현재 적법한 절차에 따라 폐점 절차가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출처 : 암보다 무서운 본사 횡포 “제발 편의점 폐점하게 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