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단체 대표는 ‘묻지마 고발’, 경찰은 ‘과잉 수사’
평화박물관·아름다운재단 등 ‘기부금 모집’ 문제삼아
악의적 소문도 흘려…고발당한 단체, 과잉수사에 고통
[한겨레] 엄지원 기자 | 등록 : 2013.04.02 20:10 | 수정 : 2013.04.02 22:07
“잘못한 일은 없지만, 위축되는 게 사실이네요.”
지난해 12월 대통령선거 일주일 전부터다. 평화박물관의 오하린(40) 사무처장은 경찰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입이 바싹 말랐다.
오 처장 등 평화박물관 이사 14명은 지난해 11월 ‘정의로운 시민행동’이라는 보수단체 대표 정아무개(66)씨에 의해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당했다. 정씨는 고발장에서 “현행법에 따른 ‘기부금품 모집 등록’을 한 사실이 없는 평화박물관이 정기회비, 후원금 등의 명목으로 2006년부터 무등록 불법모금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기부금품법)은 회원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공개된 장소에서 1000만원 이상의 기부금품을 모집할 때에만 지방자치단체나 안전행정부에 사전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평화박물관은 기획재정부가 공익성을 고려해 지정하는 ‘지정기부금’ 단체로, 회원을 상대로 한 일상적인 후원회비 모금은 기부금품 모집 등록을 하지 않아도 된다. 지정기부금 단체들은 해마다 관할 부처에 모금한 돈과 실제 사용한 돈을 보고하게 돼 있어 기부금이 투명하게 운용된다. 평화박물관 역시 모금액을 모두 공개하고 있다.
정씨가 이 법을 이용해 고발한 단체는 평화박물관만이 아니다.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전후해 박원순 서울시장이 상임이사를 지낸 공익기부단체 아름다운재단·희망제작소를 같은 혐의로 고발했고, 안철수재단·노무현재단 등도 고발했다. 인터넷 보수매체 <ㅁ신문> 대표를 맡고 있는 김아무개(61)씨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같은 혐의로 아름다운재단을 고발한 바 있다.
정씨를 비롯한 보수단체가 이들을 고발한 이유는 정작 다른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씨는 검찰에 낸 고발장에 “평화박물관은 최근 민중화가 홍성담의 엽기풍자화가 포함된 기획전을 전시하여 세간에 물의를 일으킨 단체”라고 적었다. 그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도 “평화박물관이 민감한 시기에 ‘박근혜 출산 그림’을 전시해, 어떤 곳인지 들여다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선 직전 논란을 부른 ‘박근혜 출산 그림’ 전시에 대한 ‘응징’ 성격이라는 것이다.
고발당한 단체들은 수사기관의 과잉 수사로 고통을 겪고 있다. 오하린 처장은 “우리 단체는 정치적 색채를 가지고 발언해온 곳이 아님에도 대선 전후 경찰에 불려 다니고, 회원 명부까지 제출하라고 요구받으니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고발당한 지 1년5개월여가 지난 아름다운재단은 여전히 검찰로부터 몇 차례씩 소환조사를 요구받고 있다. 정경훈 아름다운재단 경영기획국장은 “검찰이 요구하는 과거 자료를 준비하느라 업무에 부하가 걸린다. 특히 우리 재단은 공신력이 가장 큰 자산인데 고발인이 온라인상에서 마치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처럼 악의적인 소문까지 내고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이상희 변호사는 “법적 근거가 희미한 고발에 대해 경찰이 회원 명부까지 제출하라고 하고 무더기로 소환조사를 하는 것은 명백한 과잉수사다”라고 지적했다.
출처 : 보수단체 대표는 ‘묻지마 고발’, 경찰은 ‘과잉 수사’
평화박물관·아름다운재단 등 ‘기부금 모집’ 문제삼아
악의적 소문도 흘려…고발당한 단체, 과잉수사에 고통
[한겨레] 엄지원 기자 | 등록 : 2013.04.02 20:10 | 수정 : 2013.04.02 22:07
“잘못한 일은 없지만, 위축되는 게 사실이네요.”
지난해 12월 대통령선거 일주일 전부터다. 평화박물관의 오하린(40) 사무처장은 경찰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입이 바싹 말랐다.
오 처장 등 평화박물관 이사 14명은 지난해 11월 ‘정의로운 시민행동’이라는 보수단체 대표 정아무개(66)씨에 의해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당했다. 정씨는 고발장에서 “현행법에 따른 ‘기부금품 모집 등록’을 한 사실이 없는 평화박물관이 정기회비, 후원금 등의 명목으로 2006년부터 무등록 불법모금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기부금품법)은 회원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공개된 장소에서 1000만원 이상의 기부금품을 모집할 때에만 지방자치단체나 안전행정부에 사전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평화박물관은 기획재정부가 공익성을 고려해 지정하는 ‘지정기부금’ 단체로, 회원을 상대로 한 일상적인 후원회비 모금은 기부금품 모집 등록을 하지 않아도 된다. 지정기부금 단체들은 해마다 관할 부처에 모금한 돈과 실제 사용한 돈을 보고하게 돼 있어 기부금이 투명하게 운용된다. 평화박물관 역시 모금액을 모두 공개하고 있다.
정씨가 이 법을 이용해 고발한 단체는 평화박물관만이 아니다.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전후해 박원순 서울시장이 상임이사를 지낸 공익기부단체 아름다운재단·희망제작소를 같은 혐의로 고발했고, 안철수재단·노무현재단 등도 고발했다. 인터넷 보수매체 <ㅁ신문> 대표를 맡고 있는 김아무개(61)씨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같은 혐의로 아름다운재단을 고발한 바 있다.
정씨를 비롯한 보수단체가 이들을 고발한 이유는 정작 다른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씨는 검찰에 낸 고발장에 “평화박물관은 최근 민중화가 홍성담의 엽기풍자화가 포함된 기획전을 전시하여 세간에 물의를 일으킨 단체”라고 적었다. 그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도 “평화박물관이 민감한 시기에 ‘박근혜 출산 그림’을 전시해, 어떤 곳인지 들여다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선 직전 논란을 부른 ‘박근혜 출산 그림’ 전시에 대한 ‘응징’ 성격이라는 것이다.
고발당한 단체들은 수사기관의 과잉 수사로 고통을 겪고 있다. 오하린 처장은 “우리 단체는 정치적 색채를 가지고 발언해온 곳이 아님에도 대선 전후 경찰에 불려 다니고, 회원 명부까지 제출하라고 요구받으니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고발당한 지 1년5개월여가 지난 아름다운재단은 여전히 검찰로부터 몇 차례씩 소환조사를 요구받고 있다. 정경훈 아름다운재단 경영기획국장은 “검찰이 요구하는 과거 자료를 준비하느라 업무에 부하가 걸린다. 특히 우리 재단은 공신력이 가장 큰 자산인데 고발인이 온라인상에서 마치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처럼 악의적인 소문까지 내고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이상희 변호사는 “법적 근거가 희미한 고발에 대해 경찰이 회원 명부까지 제출하라고 하고 무더기로 소환조사를 하는 것은 명백한 과잉수사다”라고 지적했다.
출처 : 보수단체 대표는 ‘묻지마 고발’, 경찰은 ‘과잉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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