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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내란음모 정치공작

군사반란에 준하는 ‘남재준의 누설’

군사반란에 준하는 ‘남재준의 누설
[토요판] 표창원의 죄와벌
<20>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매카시즘·워터게이트·3.15부정선거’ 연상되는 그의 누설

[한겨레] 표창원 | 등록 : 2013.06.28 19:09 | 수정 : 2013.07.01 15:39


▲ 최근 국가정보원의 불법 선거개입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르자 남재준 국정원장은 “야당 공격에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18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후보자였던 남재준 국정원장이 의원들의 질의를 받으며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강창광 기자

역사의 축소판이 될 만하다
종북몰이에선 매카시즘
수사 축소 압력의 측면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을 닮았다
선거에 개입했다는 점에선
3·15 부정선거가 연상된다

정보화 사회, 사이버 시대로
접어든 21세기 특성 감안하면
이 사건은 군대를 동원하고
다수 국민을 적으로 돌린
반란과 내전에 비교할 만


지난 3월 ‘강직한 참군인’으로 군과 자신의 명예를 걸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국가정보원 개혁을 이끌어내 주리라는 기대감 속에 남재준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했다. 그 뒤 언론 보도와 검찰 수사로 국정원의 불법 정치·선거 개입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는 동안 그는 침묵했다. 원세훈 국정원에서 불법 정치 개입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의심받는 국정원 관계자가 청와대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도, 경찰에서 범죄 혐의를 입증해 입건한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와 이아무개씨 등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도 조치도 없었다. 국내 정보기능 폐지 등 개혁 방안도 내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배반의 핵폭탄’을 터뜨렸다. 엄중한 적법절차 없이 공개해선 안 될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발췌본’을 공개한 것이다. 검찰의 판단이나 재판을 통해 처벌 여부가 가려지긴 하겠지만, 그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하고 수사를 받게 됐다. 하지만 그는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임명된 지 석달밖에 안 된 사람이, 전임자의 잘못을 바로잡고 대대적인 개혁을 하겠다고 공언한 상태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결국 남재준은 국민의 신망과 군의 자존심, 명예보다 그가 모시는 ‘주군’과 그를 비호하는 ‘정당 패거리’를 위해 헌법과 법률, 국가기관의 기본 사명을 팔아먹은 ‘원세훈의 길’을 그대로 답습하기로 한 것으로 봐야 한다.


원세훈-김용판-남재준의 연결고리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경제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남재준의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에 대해 ‘한국에서는 정보기관이 기밀 누설자(Leaker)’라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다. 그가 벌인 행위의 파장은 실로 상상을 초월한다. 북한이 기다렸다는 듯이 엔엘엘(NLL)의 합법성 문제와 ‘정상회담 대화 내용’을 공개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 문제를 제기하며 맹공격했다. 다른 나라 정상들과의 회담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까? 한-중 정상회담에 임하는 중국 쪽에서도 심금을 털어놓는 대화는 꺼릴 것이다. 2002년 민간인 신분으로 방북한 박근혜 대통령이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과 했던 대화 내용을 북한이 공개하겠다고 위협하면 우리 정부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국익을 수호’해야 할 국가정보원이 스스로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 ‘국익을 참담하게 훼손’한 국가적 범죄사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는 왜 갑자기 이런 돌발 행동을 했을까?

이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이 ‘단서’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국정원의 불법 선거개입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고 경찰의 증거 인멸과 허위 발표, 무마 압력 등이 속속 밝혀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뽑은 선거의 정통성은 균열이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밀리고 싶지 않았던지 정문헌,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 등을 필두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엔엘엘 포기 발언’ 문제를 제기하며 국정원에서 보관중이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발췌본을 새누리당 의원들이 단독으로 열람하게 된다. 그러고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엔엘엘 포기 발언을 한 것이 맞다. 김정일에게 보고드린다는 등 굴욕적인 표현을 일삼았다’는 등의 폭로를 감행했다. 6월20일, 6·25 한국전쟁 발발 63주년을 닷새 앞둔 시점이었다. 보수적 국민들의 애국과 반공, 보훈 심리가 강해지는 시기적 특성을 노리는 한편 국정원 불법 선거 개입 의혹의 국면을 전환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이들 새누리당 의원들의 ‘공개’가 불법행위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아직 ‘때가 묻지 않은’ 남재준 원장이 총대를 메고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발췌본’을 공개한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대선 전후에 제기한 모든 주장과 발언들을 ‘사후적으로 정당화’시키는 한편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의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전 대선 후보가 실제로 ‘엔엘엘을 포기하고 북한 정권에 굴종하는 종북세력’이라는 여론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곧 앞으로 이어질 ‘국정원 사건 국정조사’와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원세훈과 남재준 그리고 김용판, 전혀 다른 배경과 특성을 가진 ‘세 명의 국가기관장’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것이 김무성, 권영세 등 새누리당 핵심 실세들이다. 원세훈 전 원장의 조직적이고 파렴치한 여론조작 범죄행위와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허위조작 공직범죄 그리고 남재준 원장의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 행위의 배경에 이러한 정황들이 작용한 증거가 뒷받침된다면, 새누리당의 핵심 실세들은 ‘정치전략이라는 이름으로 헌법을 유린하고 국가기관을 사병화하는 한편 색깔론으로 국민을 분열시키고 국격을 추락시키고 국익을 저해한 역적’으로 역사에 기록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런 ‘정황’과 원세훈, 김용판, 남재준의 불법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면 이 세 사람은 지위와 역할에 걸맞지 않은 공개적이고 확신에 찬 범죄적 일탈행동을 행한 ‘이상심리’에 대해 전문가의 정신감정과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국정원 게이트’는 인터넷에서 조직적으로 여론을 조작해 야당 후보 등을 ‘종북’으로 몰고 그 혐의에 대한 수사 과정마저 압력과 허위로 왜곡한 사건 그리고 이를 덮기 위해 국가기밀인 정상회담 대화 내용까지 불법적으로 유출한 의혹에 관한 사건이다. 국정원 게이트는 국정조사와 재판 등 앞으로 이어질 진상규명 과정에서 입증되고 확인될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첩보기관 역할 할 수 있겠나

이미 드러난 정황과 증거만 가지고도 종전에 발생했던 어떤 사건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국가적 범죄행위’로 총칭할 수 있다. 그 하나하나만으로도 역사를 바꾼 매카시즘 사태와 워터게이트 사건, 3·15 부정선거가 국정원 게이트 안에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1950년부터 4년 동안 미국에서 “내 손안에 공산주의자의 명단이 있다”며 정치인과 공무원, 지식인과 예술인, 교사, 군인 등을 무차별적으로 빨갱이로 낙인찍고 고발한 조지프 매카시 공화당 상원의원. 그의 위세에 눌려 누구도 감히 정권과 정부 시책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결국 그의 주장은 거짓임이 드러났고 공화당 소속 의원들이 “자유는 결코 독재의 방법으로 지킬 수 없다”며 매카시를 규탄하는 양심선언을 하기에 이르면서 매카시즘은 종말을 맞았다. 미국의 사상가와 철학자들은 “미국의 지성사에 절대로 회복하지 못할 상처를 남겼다”고 매카시즘을 진단한다. 지금도 누군가를 공산주의자로 규정하고 공격하는 ‘이념적 마녀사냥’에 대해 세계 각국에서 매카시즘이라고 규정할 정도다.

국정원 게이트도 마찬가지다. 원세훈 원장 재직 4년 내내 수십명의 직원들과 민간인 협력자들을 통해 인터넷상에 야당 정치인과 정부 비판 지식인, 시민사회단체 등을 ‘종북’, ‘빨갱이’로 매도해 척결과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글을 지속적으로 게시했다. 우익 성향의 논객이나 네티즌 등이 이를 반복 전파해 여론을 조작하고 국론을 분열시켰다. 국정원 게이트는 매카시즘 못지않은 폐해와 파급 효과가 큰 사건이다.

1972년에 발생한 워터게이트 사건은 민간인 다섯명이 야당 사무실이 차려진 워터게이트 호텔 방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가 적발돼 경찰에 체포된 것이 발단이었다. 실제로 선거에 아무런 영향이나 효과를 미치지 못한 ‘미수에 그친’ 범죄다. 하지만 공화당 닉슨 대통령 당선 뒤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중앙정보국(CIA)과 백악관, 선거운동본부 등이 관련된 사실이 드러나고, 연방수사국(FBI) 수사를 무마하려는 닉슨 대통령의 압력과 모의 사실이 알려지면서 닉슨 대통령은 탄핵 직전에 사임했다. 이 과정에서 특위 소속 공화당 의원 17명 중 6명이 탄핵안에 동의하는 ‘양심적 행동’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국정원 게이트는 도청 미수라는 워터게이트 사건에 비해 훨씬 파급력이 큰 여론조작이라는 조직적 범죄행위가 실제로 이뤄졌고, 그 수사 과정에서 권력에 의한 축소와 왜곡 압력이 작용했다는 점에서 워터게이트를 능가하는 불법성과 폭발력을 가졌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기록된 역사적인 시민저항운동인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3·15 부정선거는 이승만 정권이 내무부와 경찰, 폭력조직을 총동원해 불법·관권 선거를 치르고, 항거하는 시민들을 유혈폭력 진압한 사건이었다. 국정원 게이트 역시 제18대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이 보유중인 ‘정상회담 대화록’이라는 기밀이 여당 쪽에 선거전략용으로 제공되고, 조직적 여론조작행위가 이뤄졌으며, 윤정훈 새누리당 에스엔에스(SNS) 단장 등이 운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소위 ‘십알단’ 등 ‘사이버 깡패’들이 동원되었음은 물론 경찰의 증거인멸과 허위 중간수사결과 발표 등 조직적인 불법개입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총체적 불법선거’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 불거진 스노든의 폭로 역시 같은 맥락이다. 국정원 게이트의 경우에는 초기에 국정원 직원이 전 직원을 통해 여론조작 범죄 정황을 제보하는 ‘폭로’로 시작된 측면도 있지만,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고 야당의 공격과 시민사회의 비난여론이 거세지자 이를 희석시키기 위해 직원 개인이 아닌 국정원장이 공개적으로 국가기밀을 유출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다는 측면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스스로 기밀을 유출하는 정보기관이 앞으로 국제 첩보세계에서 제구실을 할 수 있을까?


책임있는 모든 사람을 숨김없이 밝혀야

정보화 사회, 사이버 시대로 접어든 21세기라는 특성을 고려하면 이 사건은 20세기에 군대를 동원해 권력을 찬탈하고 다수 국민을 적으로 돌린 반란과 내전에 비교할 수 있을 정도의 엄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대통령 개인의 진퇴나 특정 정당이나 정파의 이해·승패라는 소아적 망상과 집착은 던져버려야 한다. 이 사건 가담자들 중에는 자신이 실제로 ‘애국’을 한다는 확실한 신념하에 적극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사람들과 정치적 줄서기를 통해 이익을 보려는 사람들 그리고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상급자가 시키는 대로 지시를 수행한 사람들이 섞여 있다.

첫째, ‘야당 등 종북 세력으로부터 나라를 지킨다’는 비뚤어진 애국주의적 신념을 가진 자들은 마치 광신도나 테러리스트와 같은 확신범을 연상케 한다. 대통령이나 정부, 정당 등이 곧 ‘국가’라고 여기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이나 세력을 ‘적’으로 간주해 ‘전쟁’을 벌인다는 심리가 있다. 전쟁 중에 법이나 원칙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인식, ‘지면 죽는다’는 절박함이 평시의 민주주의 사회에 정상적일까? 민주주의를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헌법의 정신과 내용을 제대로 깨치지 못한 채 편협한 주장에 반복 노출된 탓에 그릇된 신념으로 ‘세뇌’가 이뤄진 것 아닌가.

둘째,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반국가적 범죄를 주도하거나 가담한 자들의 심리는 일반적인 범죄자와 다를 바가 없다. 다만 그 폐해가 국가 전체에 미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셋째, 상관의 부당한 지시를 거역하지 못하고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경우다. 1961년 실시된 ‘밀그램의 실험’에서, 권위를 가진 자가 독촉할 경우, 틀린 답을 제시한 학생에게 지속적으로 높은 전기충격을 주는 버튼을 눌러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하는 비율이 90%에 이른다는 것이 확인된 것처럼 의외로 많은 사람이 ‘권위적인 불법적 지시’에 항거하지 못한다. 밀그램의 실험 이후 우리나라를 포함한 각국은 이런 유형의 조직적 국가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마련해왔다. 국가공무원법과 공무원 행동강령 등에 불법 부당한 지시에 항거하고 따르지 말 것을 정하고 있으며 공무원 채용 및 직무 교육과정에서도 끊임없이 ‘부당한 지시 이행 거부’ 의무를 가르친다. 여전히 법과 원칙보다는 권위와 명령이 우선시되는 전근대적 조직문화가 남아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무엇보다 이들에 대한 엄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상관의 지시를 따르기 때문에 괜찮을 거야’라는 인식을 뿌리뽑을 수 있다.

잘못된 정치 풍토와 관료주의 문화가 소수의 광신적 확신범과 만나 이루어진 이런 망국적 범죄행위가 다시 자행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선열들이 피와 생명을 바쳐 지킨 대한민국의 존립과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이미 국가기밀까지 전세계에 공개된 마당에 더 숨길 게 무엇이 있겠는가? 이 사건에 관련된 모든 사실과 책임있는 모든 사람을 숨김없이 밝혀야 한다. 그리고 법에 정한 응당한 처벌이 이루어지고 재발 방지를 위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이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과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이렇게 훼손되고 오염되고 짓밟히기엔 너무 많은 이들의 피와 땀과 생명이 서려 있다.



출처 : 군사반란에 준하는 ‘남재준의 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