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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내란음모 정치공작

[나는 분노한다 ③] "서울대 시국선언, 아직 못해서 죄송합니다"

"서울대 시국선언, 아직 못해서 죄송합니다"
[나는 분노한다 ③] 시국선언이 아직 없는 '우리들'에게
[오마이뉴스] 이은호 | 13.07.07 11:15 | 최종 업데이트 13.07.08 11:46


"완전한 민주주의 보장하라" 서울대생 시국 기자회견 국정원의 불법 정치·선거개입 사태에 대해 6월 20일 서울대총학생회 간부와 일반 학생들이 서초동 대검찰청앞에서 '국가기관의 간섭없는 완전한 민주주의 보장'을 촉구하는 기지회견을 열고,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를 촉구했다. ⓒ 권우성

서울대학교 부총학생회장 이은호입니다. 얼마 전 대학가를 휩쓴 시국선언 열풍, 기억하시나요? 그 중심에 저희 서울대도 있었는데요. 주목을 받아 감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죄송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하실지 모르겠으나, 서울대는 아직 시국선언을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20일 대검찰청 앞에서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 경찰 등 수사기관의 축소수사, 법무부의 수사간섭을 규탄하는 것을 골자로 한 성명서를 낭독한 자리는 단순한 기자회견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몇몇 대학에서 시국선언이 이루어졌고 뒤이어 많은 대학들이 시국선언 대열에 동참하면서, '시국선언 추진을 고려 중'이던 저희의 입장이 여러 언론에서 '시국선언문 발표'로 부풀려졌죠.

일각에서는 사회적 파장이나 그 형식을 놓고 보면 타 대학 시국선언과 다를 게 없으니 사실상 시국선언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시국선언보다 더한 기자회견이 아니냐고도 했고요. 그런데 지금 대학가에서는, 기자회견이든 시국선언이든 총학생회가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전체 학생들을 대표해야 하는 총학생회가 모든 학생들의 의견수렴 없이 입장을 내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어떤 사안에 대한 입장을 시일에 맞게 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에 신속함이 중요한 기자회견이든, 신중하게 추진되어야 하는 시국선언이든, 학생들의 의견수렴을 전혀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총학생회의 입장을 내거는 것은 지양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대학 총학생회에서 운영위원회(이하 운위) 등 학내 의사결정구조를 통해,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학내에서의 면대면 토론회를 통해 의견수렴을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6월 15일 서울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 '서울대 시국선언 합시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수천 건의 조회 수와 수백 건의 추천 수를 얻은 바 있습니다.

이에 총학생회는 어느 정도 학생들의 요구가 있다고 판단, 과·반운위, 단과대운위, 총운위의 논의와 의결을 거쳐 기자회견을 진행하였습니다. 현재는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 중이고, 토론회를 계획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이 과연, 2만 명에 달하는 서울대 학생들의 목소리를 전부 담아낼 수 있을까요? 질문을 바꿔 보겠습니다. 완전한 의견수렴이란 가능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이지 못한다면 항상 의견수렴에서 배제되는 사람이 생기는 까닭입니다.

혹자는 묻습니다. 모두의 의견을 듣고자 한다면, 국정원 사태에 대한 대응을 놓고 총투표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 그 정도는 해야 의견수렴 아니냐고요. 물론 여기에는 총학생회의 역량이나, 학기가 끝나고 방학 중이라 학생들의 숫자가 많지 않다는 것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 따라붙습니다.

이전에는 물론 기자회견이 끝난 지금도, 총학생회는 학생들 대다수의 반응을 알고 있지 않습니다. 정치적 입장 또한 모릅니다. 결국 다수는 특별한 입장이 없거나 관심이 없고, 있다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정도는 안 됩니다. 언제나 이야기를 주도하는 것은 찬성과 반대, 어느 한 방향으로 적극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총학생회는 적극적인 사람들의 의견만 반영해야 할까요? 아니면 의견수렴 따위 제쳐두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면 될까요? 어느 쪽도 아닙니다.


여러분, 책무는 언제 다 할 생각이십니까?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 앞에서 열린 국정원 규탄 대학생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학생과 시민들이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국정조사 실시와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서울대학교의 경우 총학생회는 일차적으로 선거에 당선되면서,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임기 동안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학생 대표자들에게 승인받음으로써 대표성을 인정받습니다. 이는 총학생회가 독자적인 입장을 낼 때, 이것이 전체 학생들을 어느 정도 대표할 수 있다고 보는 암묵적인 합의를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총학생회는 개별적인 사안에 있어, 그 사안이 중대하면 할수록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반영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는 총학생회가 학생들의 대표기구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의견수렴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어떤 것이 가능하고 어떤 것이 불가능한지를 분명히 인식해야 할 뿐 아니라, 의견수렴에 있어 적극적인 이들의 목소리가 부각되는 것은 필연적이며 결국 의사결정을 주도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총학생회라는 것 역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총학생회의 결정은 독단적이어서는 안 되며, 다수의 소극적인 학생들을 대변하기 위한 노력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개별적인 사안에 대한 모두의 동의 없이는 움직이지 않겠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잘못이며, 총학생회의 책임에 대한 방기입니다.

몇몇 대학들이 정치적 중립을 선언하며 국정원 사태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핵심적인 근거 중 하나로 모두의 의견수렴과 동의가 없었다는 점을 듭니다. 물결이 어느 한쪽으로 세차게 흐르고 있는데 가만히 있겠다는 것은, 실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입니다.

서울대 총학생회가 기자회견을 한 지 수일이 지났습니다. 그사이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과 관련하여 보다 많은, 좀 더 놀라운 사실들이 여럿 밝혀졌습니다. 대학가를 넘어 사회 각계각층에서 시국선언이 잇따랐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대학들이 있습니다. 역시 아직 시국선언을 하지 않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가, 여태껏 입을 닫고 있는 또 다른 '우리들'에게 묻습니다. 학생들을 어떤 식으로든 대표할 책임이 있는 여러분, 그 책무는 언제 다할 생각입니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은호 서울대 부총학생회장 입니다.


출처 :"서울대 시국선언, 아직 못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