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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내란음모 정치공작

눈 뜬 자들의 청계광장…‘항의’가 소리없이 타올랐다

눈 뜬 자들의 청계광장…‘항의’가 소리없이 타올랐다
소설가 손아람의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 참가기
[한겨레] 손아람 | 등록 : 2013.08.04 20:22 | 수정 : 2013.08.04 20:38


▲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책임자 처벌과 정치공작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5차 국민촛불대회가 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렸다. 이종근 기자

어느 선거일, 유권자의 80퍼센트가량이 백지투표를 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우파 집권당과 중도 야당은 크게 당황한다. 좌파 정당은 백지투표가 자신들에 대한 지지표라고 주장하지만 아무런 근거가 없다. 정부는 음모를 의심한다. 하지만 사건에서 어떤 정치적 합의도, 조직적 배후도, 폭력의 징후도 발견하지 못한다. 어떻게 그 많은 시민들이 음모에 가담할 수 있었는지는 오리무중이다. 공포를 견디지 못한 정부는 배후를 ‘만들어’ 내고 만다. 그런데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 그냥 그런 일이 일어났을 뿐이다. 시민들이 눈을 뜬 것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 뜬 자들의 도시>의 줄거리다. 나는 사라마구가 지난 토요일의 촛불 집회를 눈으로 보지 못하고 세상을 뜬 게 아쉽다.

손에 들린 수만개의 촛불은
하나로 들끓는다기보다
따로따로 조용히
휘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3일 서울 청계 광장에는 시민 수만명이 촛불 집회에 참석했다. 주요 언론에서 촛불 집회에 대해 거의 다루지 않았다. 시민들은 소리없이 모였고 소리없이 촛불을 들었다. 분노의 기미는 느끼기 어려웠다. 시민들은 무표정하거나 심지어 웃고 있었다. 팔이 지치면 촛불을 바닥에 내려놓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겼다. 가족과 함께하거나 연인과 함께했다. 담배를 피우러 자리를 일어서거나 연단을 등지고 둘러앉아 팥빙수를 떠먹었다. 그들은 조직된 군대가 아니었다. 호출받은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나타난’ 사람들이었다. 목표와 전략이 아니라 시간과 장소만을 공유하고 있었다. 손에 들린 수만개의 촛불은 하나로 들끓는다기보다 따로따로 조용히 휘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 눈에 비친 청계 광장의 촛불에는 구체적인 주장이 없었다. 연단 위에 선 정당과 시민단체의 연사들이 거기에 앞다퉈 부여한 전투적인 해석을 귀로 들었을 뿐이다. 대통령 퇴진. 국정원 해체. 국정원장 사퇴. 책임자 구속 처벌. 수만개의 촛불은 그 가운데 무엇을 의미할까? 전부일 수도 어느 것도 아닐 수도 있다. 시민들의 손에 들린 플래카드의 기조 역시 완전히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내가 본 것은 그저 농이 흐르는 양초였다. 개별적인 침묵이었다. 무언의 항의였지 무언의 합의가 아니었다. 아마 요구가 아니라 인식을 함께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게 옳을 것이다. 시민 몇명을 붙잡고 왜 여기 나왔냐고 물어보았다. 김동성(66)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국민학교 6학년 때 4·19혁명이 일어났는데 그때도 서대문 사거리에 나갔거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똑같은 생각을 하는 거야. 정치가 다른 건 조금 도둑질할 수도 있어도 표만큼은 안 되는 거라고.” 딱 그만큼이다. 문제는 명백했지만 누구에게 무엇을 얼만큼 요구하고자 이 자리에 나왔다고는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촛불 전체에 대해서도 그만큼만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냥 일이 일어났을 뿐이다. 언론이 가르쳐주려 하지 않는 시간. 언론이 가르쳐주려 하지 않는 장소. 이날 밤 청계 광장에서. 갑자기 나타난 수만장의 백지 투표처럼.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는 요구가 불분명한 채 행위로 이행된 시위를 ‘백지와 같은 항의’라고 부르며 거기에는 이런 메시지가 있다고 보았다. ‘싫든 좋든 우리는 여기에 있다. 우리가 안 보이는 척해봐야 소용없다.’ 지제크에 따르면 백지 투표와 같은 침묵의 시위는 정부 권력을 제한적인 의미에서 타도하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차원에서 해체한다. 제도 안에서 마련된 투표행위와는 달리 이런 시도는 제도 자체를 전복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리없이 타오르는 촛불은 적대적인 투표보다 오히려 정권에 더 위협적일 수 있다.

시민들이 정부를 위협하려고
거리를 채운 게 아니라
반대로 조용히 거리를 채움으로써
정부를 위협하고 있었다


지제크와는 정반대로, 물리적 폭력만이 혁명을 달성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체 게바라 역시 이날의 촛불집회를 보았다면 생각이 좀 달라졌을지 모른다. 어린 시절 체 게바라는 비폭력 시위에 가담하라는 요구에 “경찰에 얻어맞기 위해 거리로 나갈 일은 없다”고 딱 잘라 대답한 적이 있다. 그런데 청계 광장의 시민들 역시 경찰에 얻어맞으려고 나오지 않았다. 시민들은 한눈에 봐도 폭력 진압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았다. 심지어 소나기조차 감수할 채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빗방울이 투둑투둑 떨어지기 시작하자 그들은 나타날 때처럼 조용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투사라기보다 유령과 같았다. 투지와 실체를 갖춘 적으로 나타나지 않았기에 오히려 경찰은 손쓸 도리가 없었다. 시민들이 정부를 위협하려고 거리를 채운 게 아니라 반대로 조용히 거리를 채움으로써 정부를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구를 묵살하고 주장을 탄압할 수는 있지만 손에 촛불이 들렸다는 이유로 진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충돌도 없었다. 나는 촛불을 든 시민에게 웃으며 길을 안내하는 경찰을 보았다.

수백으로 시작한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 촛불 집회의 규모가 입소문만으로 수만의 단위까지 커지면서 주요 언론의 외면은 오히려 집회의 동력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집회 참가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바로 이 자리에 모였다’는 사실로써 일종의 해방적 결사의 서사를 구축해가는 것으로 보인다. 주요 언론의 외면은 이미 촛불 집회에서 국정원의 선거개입, 새누리당의 국정 조사 회피와 나란히 피켓과 플래카드를 장식하는 규탄 문구가 되었다.

이 ‘백지와 같은 항의’에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까? 떠올릴 수 있는 비교적 간단하고 고전적인 방법은 집회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일 터다. 이미 새누리당의 이완구 의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촛불 집회 그분들은 지난 광우병 때도 했던 항상 그분들”이라며 “국민들이 이미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60년 전, 시민 봉기가 일어났던 동독의 정부 역시 똑같이 시위의 원인을 치유하기보다는 시위의 정당성에 흠집을 내는 간단한 방법을 택했다. 그때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동독 정부에 시위를 부정하는 보다 간단한 방법을 제시하는 한 편의 시를 헌정했다. 오늘날 대한민국 정부가 참고해도 좋을 것으로 보인다. 시의 제목은 <해결방법>이며 마지막 단락은 이렇다.

차라리 더 쉽지 않을까요
정부 입장에서는
국민을 해산하고
다시 뽑는 게


손아람은

힙합 그룹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의 멤버로 활동했다. 그룹 이름과 같은 제목의 소설을 써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용산참사를 소재로, 정통 법정소설인 <소수의견>을 썼으며,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해 <너는 나다-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하다>에 실었다.


출처 :눈 뜬 자들의 청계광장…‘항의’가 소리없이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