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의 언론 장악'보다 무서운 '사주의 언론 장악'
[들끓는 언론계, 싸우는 기자들·下] "'순복음 찌라시', 부끄러웠다"
[프레시안] 김윤나영 기자 | 기사입력 2012-02-29 오전 8:10:01
MBC, KBS, YTN 등 방송3사가 잇따라 파업을 결의하고 있을 때, 다른 한편에서는 그보다 오래 전부터 '조용한 싸움'이 진행되고 있었다. <국민일보>와 <부산일보> 등 신문사 기자들이 '언론사 사주'와의 싸움을 선포한 것. '정권에 의한 방송장악'에 항거하는 방송사 기자들의 싸움과 모양새는 다르지만, 방송사든 신문사든 기자들이 내거는 가치는 같다. 바로 '편집권 독립'이다.
29일로 파업 69일차를 맞는 <국민일보> 기자들은 현재 김윤호 편집국장과 조민제 사장 퇴진,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직접적인 파업 명분은 임금단체협상 결렬이지만, 그 이면에는 지난해 10월 편집국 기자 75%의 불신임을 받고도 직무수행을 계속하는 김윤호 편집국장과 20여 년간 '족벌 경영'을 해온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 일가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기자들의 설명이다.
<국민일보>는 조용기 목사가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의 헌금을 모아 1988년 12월 10일 창간했다. 조 목사의 동생인 조용우 씨가 초대 사장을 맡은 데 이어, 첫째 아들인 조희준, 사돈인 노승숙 씨를 거쳐 현재는 둘째 아들인 조민제 씨가 사장을 맡고 있다. 2006년 조 목사가 경영에서 물러나겠다는 결정을 내린 이후 <국민일보>는 형식상 '국민문화재단'이라는 공익재단에 속하게 됐지만, 여전히 조 목사 가족이 경영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일보>, 조용기 목사 개인을 비호하는 대변자였다"
20년 넘게 곪아온 국민일보 소유구조 문제에 대해 국민일보 기자들은 지난해 12월23일 파업으로 맞섰다. 발단은 지난해 노조위원장 해고였다. 노조는 "국민일보를 둘러싸고 가족 간 경영권 다툼이 벌어지고 그 와중에 사장이 개인 비리로 재판까지 받게 되자 기자와 사원들은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워졌다"고 고백했다. 아울러 "기자들은 사규에 따라 회사 명예를 실추시키면 징계를 받는데, 사장 일가는 국민일보의 명예를 실추시켜도 도리어 이를 지적한 사원들에게 해고와 명예훼손으로 대응했다"고 분노했다.
기자들은 파업에 참가한 궁극적인 이유로 '조 목사 일가 경영' 체제가 고스란히 편집권 침해로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호소한다. 이들은 지난 2일 성명서를 통해 "기자로서의 소중한 삶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국민일보가 진실을 전하는 언론사가 아닌 권력을 좇는 언론사로 전락했다는 부끄러운 현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국민일보는 조용기 목사 개인을 비호하는 대변자였고 조 목사를 호위하는 보도만 했다"면서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목회자들을 칭찬했고 대형교회의 잘못된 행태를 두둔했다"고 고백했다. 구체적으로는 "조용기 목사를 다룬 MBC PD수첩 '나는 아간이 아니다'가 방영된 직후 국민일보는 '기독교를 폄훼하는 PD수첩'이라는 사실과 다른 사설을 냈다"고 인정했다. 또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기사를 쓴 기자를 교체해달라고 요구할 때마다 번번이 그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털어놨다.
노조는 "그동안 국민일보가 기독교 내 젊은 층과 개혁세력으로부터 '순복음 찌라시'라는 비난을 받는 게 부끄러웠다"며 "이번 파업을 계기로 교회의 특정 집안으로부터 편집권을 되찾아 좋은 언론으로 거듭나려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일보>, 박근혜에 유리한 옹호 논설 쏟아져 나와"
지난해 11월30일 초유의 '발행 중단 사태'를 맞았던 <부산일보> 또한 편집권 독립 문제로 여전히 진통을 앓고 있다.
사건은 "부산일보 사측 징계 남발, 노사 갈등 격화"라는 기사가 <부산일보> 1면에 실리자 사측이 신문 인쇄를 거부하면서 촉발됐다. 부산일보 사측이 '정수재단의 사회 환원'을 촉구한 기사를 쓴 이정호 편집국장을 징계하고, 이호진 노조위원장을 면직 징계하려 했다는 내용이 담긴 기사였다.
논란이 된 정수장학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한자씩 따서 만든 것으로, 5.16 쿠데타 직후에 설립된 '5.16 장학회'가 그 전신이다. 정수장학회는 부산일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고, 부산일보 사장은 정수장학회가 임명한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005년까지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 맡았다. 이후 박 위원장은 자신의 비서였던 최필립 씨를 후임 이사장으로 앉혀 여전히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편집권 침해'의 근거로 부산일보 노조는 선거 때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에 대해 노골적으로 우호적인 기사가 쏟아졌다고 토로한다. 2004년 총선을 앞둔 4월 부산일보 기자들은 "낯을 들고 다니기가 부끄러울 정도"라며 편파 보도를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내기도 했다.
부산일보 노조는 27일 성명에서 "60년이 넘는 역사 동안 부산과 영남 지역 독자들에게 정론지로 사랑받았던 전통을 이어갈 수 있도록 편집권과 경영권 독립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구체적으로는 정수장학회가 부산일보에 부당하게 개입하지 못하도록 사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요구했다. 부산일보 노조가 추천한 후보군 안에서 사장을 선출해달라는 것.
이에 대해 이명관 사장 지명자는 "사장선임제도에 대해 노조와 계속 협의해 나가며, 임기 중 일정시기에 도출된 안에 대해 찬반투표를 한다"는 안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명문화된 약속이 아니라면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28일 밝힌 상황이다.
"<연합뉴스>, 공정 보도 못했던 점 책임 통감"
싸우는 양태는 앞선 두 매체와 다르지만, 연합뉴스 노조 또한 다음달 21일로 예정된 주주총회를 앞두고 박정찬 사장 연임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박정찬 사장 취임 이후 '공정 보도'가 사라졌다는 게 그 이유다.
공병설 연합뉴스 노조위원장은 "박 사장 취임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한명숙 전 총리 수사, 4대강 문제,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문제 등에서 보도의 공정성이 훼손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합뉴스 노조가 지난 1월25일부터 2월1일까지 벌인 설문조사에서, 연합뉴스 조합원 10명 가운데 8명은 "현 경영진 취임 이후 연합뉴스 기사의 공정성이 이전보다 퇴보했다"고 평가했다. 10명 가운데 7명은 현 경영진의 연임에 반대했다.
"박 사장이 무리하게 보도채널을 개국하면서 편집부 기자들의 업무 부담이 가중돼 좋은 기사를 쓰지 못한다"는 점도 노조의 또 다른 불만이다.
이에 따라 노조 집행부는 지난 15일부터 릴레이 단식농성에 들어갔고, <연합뉴스>의 최대 주주인 뉴스통신진흥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노조 조합원 가운데 절반인 220여 명도 27일부터 28일까지 집단으로 연가를 내고 투쟁에 나섰다.
노조는 29일 뉴스통신진흥회 이사회에서 박 사장이 연합뉴스 사장 최종후보자로 낙점될 경우 파업도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박 사장의 임기는 3월까지다.
연합뉴스 노조는 "언론의 생명인 공정보도와 관련해서 일선 기자들의 책임을 적지 않음을 인정한다"며 "더 치열하게 싸우지 못했던 비겁함, 자기검열, 권력에 대한 비판의식 결여를 통렬히 반성한다"고 말했다.
출처 : '정권의 언론 장악'보다 무서운 '사주의 언론 장악'
[들끓는 언론계, 싸우는 기자들·下] "'순복음 찌라시', 부끄러웠다"
[프레시안] 김윤나영 기자 | 기사입력 2012-02-29 오전 8:10:01
MBC, KBS, YTN 등 방송3사가 잇따라 파업을 결의하고 있을 때, 다른 한편에서는 그보다 오래 전부터 '조용한 싸움'이 진행되고 있었다. <국민일보>와 <부산일보> 등 신문사 기자들이 '언론사 사주'와의 싸움을 선포한 것. '정권에 의한 방송장악'에 항거하는 방송사 기자들의 싸움과 모양새는 다르지만, 방송사든 신문사든 기자들이 내거는 가치는 같다. 바로 '편집권 독립'이다.
29일로 파업 69일차를 맞는 <국민일보> 기자들은 현재 김윤호 편집국장과 조민제 사장 퇴진,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직접적인 파업 명분은 임금단체협상 결렬이지만, 그 이면에는 지난해 10월 편집국 기자 75%의 불신임을 받고도 직무수행을 계속하는 김윤호 편집국장과 20여 년간 '족벌 경영'을 해온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 일가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기자들의 설명이다.
<국민일보>는 조용기 목사가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의 헌금을 모아 1988년 12월 10일 창간했다. 조 목사의 동생인 조용우 씨가 초대 사장을 맡은 데 이어, 첫째 아들인 조희준, 사돈인 노승숙 씨를 거쳐 현재는 둘째 아들인 조민제 씨가 사장을 맡고 있다. 2006년 조 목사가 경영에서 물러나겠다는 결정을 내린 이후 <국민일보>는 형식상 '국민문화재단'이라는 공익재단에 속하게 됐지만, 여전히 조 목사 가족이 경영하고 있는 셈이다.
▲ ⓒ국민일보 노조 |
"<국민일보>, 조용기 목사 개인을 비호하는 대변자였다"
20년 넘게 곪아온 국민일보 소유구조 문제에 대해 국민일보 기자들은 지난해 12월23일 파업으로 맞섰다. 발단은 지난해 노조위원장 해고였다. 노조는 "국민일보를 둘러싸고 가족 간 경영권 다툼이 벌어지고 그 와중에 사장이 개인 비리로 재판까지 받게 되자 기자와 사원들은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워졌다"고 고백했다. 아울러 "기자들은 사규에 따라 회사 명예를 실추시키면 징계를 받는데, 사장 일가는 국민일보의 명예를 실추시켜도 도리어 이를 지적한 사원들에게 해고와 명예훼손으로 대응했다"고 분노했다.
기자들은 파업에 참가한 궁극적인 이유로 '조 목사 일가 경영' 체제가 고스란히 편집권 침해로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호소한다. 이들은 지난 2일 성명서를 통해 "기자로서의 소중한 삶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국민일보가 진실을 전하는 언론사가 아닌 권력을 좇는 언론사로 전락했다는 부끄러운 현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국민일보는 조용기 목사 개인을 비호하는 대변자였고 조 목사를 호위하는 보도만 했다"면서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목회자들을 칭찬했고 대형교회의 잘못된 행태를 두둔했다"고 고백했다. 구체적으로는 "조용기 목사를 다룬 MBC PD수첩 '나는 아간이 아니다'가 방영된 직후 국민일보는 '기독교를 폄훼하는 PD수첩'이라는 사실과 다른 사설을 냈다"고 인정했다. 또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기사를 쓴 기자를 교체해달라고 요구할 때마다 번번이 그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털어놨다.
노조는 "그동안 국민일보가 기독교 내 젊은 층과 개혁세력으로부터 '순복음 찌라시'라는 비난을 받는 게 부끄러웠다"며 "이번 파업을 계기로 교회의 특정 집안으로부터 편집권을 되찾아 좋은 언론으로 거듭나려 한다"고 강조했다.
▲ 부산일보 본사 로비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하는 이호진 노조위원장. ⓒ부산일보 노조 |
"<부산일보>, 박근혜에 유리한 옹호 논설 쏟아져 나와"
지난해 11월30일 초유의 '발행 중단 사태'를 맞았던 <부산일보> 또한 편집권 독립 문제로 여전히 진통을 앓고 있다.
사건은 "부산일보 사측 징계 남발, 노사 갈등 격화"라는 기사가 <부산일보> 1면에 실리자 사측이 신문 인쇄를 거부하면서 촉발됐다. 부산일보 사측이 '정수재단의 사회 환원'을 촉구한 기사를 쓴 이정호 편집국장을 징계하고, 이호진 노조위원장을 면직 징계하려 했다는 내용이 담긴 기사였다.
논란이 된 정수장학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한자씩 따서 만든 것으로, 5.16 쿠데타 직후에 설립된 '5.16 장학회'가 그 전신이다. 정수장학회는 부산일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고, 부산일보 사장은 정수장학회가 임명한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005년까지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 맡았다. 이후 박 위원장은 자신의 비서였던 최필립 씨를 후임 이사장으로 앉혀 여전히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편집권 침해'의 근거로 부산일보 노조는 선거 때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에 대해 노골적으로 우호적인 기사가 쏟아졌다고 토로한다. 2004년 총선을 앞둔 4월 부산일보 기자들은 "낯을 들고 다니기가 부끄러울 정도"라며 편파 보도를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내기도 했다.
부산일보 노조는 27일 성명에서 "60년이 넘는 역사 동안 부산과 영남 지역 독자들에게 정론지로 사랑받았던 전통을 이어갈 수 있도록 편집권과 경영권 독립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구체적으로는 정수장학회가 부산일보에 부당하게 개입하지 못하도록 사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요구했다. 부산일보 노조가 추천한 후보군 안에서 사장을 선출해달라는 것.
이에 대해 이명관 사장 지명자는 "사장선임제도에 대해 노조와 계속 협의해 나가며, 임기 중 일정시기에 도출된 안에 대해 찬반투표를 한다"는 안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명문화된 약속이 아니라면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28일 밝힌 상황이다.
"<연합뉴스>, 공정 보도 못했던 점 책임 통감"
싸우는 양태는 앞선 두 매체와 다르지만, 연합뉴스 노조 또한 다음달 21일로 예정된 주주총회를 앞두고 박정찬 사장 연임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박정찬 사장 취임 이후 '공정 보도'가 사라졌다는 게 그 이유다.
공병설 연합뉴스 노조위원장은 "박 사장 취임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한명숙 전 총리 수사, 4대강 문제,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문제 등에서 보도의 공정성이 훼손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합뉴스 노조가 지난 1월25일부터 2월1일까지 벌인 설문조사에서, 연합뉴스 조합원 10명 가운데 8명은 "현 경영진 취임 이후 연합뉴스 기사의 공정성이 이전보다 퇴보했다"고 평가했다. 10명 가운데 7명은 현 경영진의 연임에 반대했다.
"박 사장이 무리하게 보도채널을 개국하면서 편집부 기자들의 업무 부담이 가중돼 좋은 기사를 쓰지 못한다"는 점도 노조의 또 다른 불만이다.
이에 따라 노조 집행부는 지난 15일부터 릴레이 단식농성에 들어갔고, <연합뉴스>의 최대 주주인 뉴스통신진흥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노조 조합원 가운데 절반인 220여 명도 27일부터 28일까지 집단으로 연가를 내고 투쟁에 나섰다.
노조는 29일 뉴스통신진흥회 이사회에서 박 사장이 연합뉴스 사장 최종후보자로 낙점될 경우 파업도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박 사장의 임기는 3월까지다.
연합뉴스 노조는 "언론의 생명인 공정보도와 관련해서 일선 기자들의 책임을 적지 않음을 인정한다"며 "더 치열하게 싸우지 못했던 비겁함, 자기검열, 권력에 대한 비판의식 결여를 통렬히 반성한다"고 말했다.
출처 : '정권의 언론 장악'보다 무서운 '사주의 언론 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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