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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박근혜 기자회견엔 '네 가지'가 없었다

박근혜 기자회견엔 '네 가지'가 없었다
[편집국에서] 80분간의 '마이웨이' 선언, 갈등의 새로운 시작
[프레시안] 임경구 기자 | 기사입력 2014-01-06 오후 6:41:12


취임 후 처음으로 가진 기자회견인데다 꼼꼼하기로 소문난 박근혜이다. 기자들의 질문은 사전에 취합됐다. 토씨 하나, 말 한마디 허투루 나온 얘기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준비된 기자회견'은 부실했다.

첫째, 박근혜의 기자회견엔 '정치'가 없었다.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국론이 분열되고 국력이 소모된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특검에 대해서도 "재판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사실상 거부했다. 유감 표명도 나오지 않았다. 여러모로 미흡하단 평가를 받는 정치권의 국가정보원 개혁 논의를 오히려 높이 평가하며 "이제 소모적인 논쟁을 접고 함께 미래로 나갔으면 한다"고 했다. 대선개입 사건을 심각한 국기 문란으로 보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야권과 야권 지지층을 달랠만한 립 서비스조차 없었다. 정치적 해법을 찾지 못한 국가기관 대선개입 문제는 올해도 정치 갈등의 축이 될 게 뻔하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제안한 사회적 대타협위원회 구성도 거부했다. 김 빠진 지 오래인 "노사정위 중심의 대타협"만 되풀이했다. 야당 대표가 박근혜 면전에서 내놓은 공식 제안이 거추장스런 일로 전락한 셈이다. 여야를 아울러 커지고 있는 개헌 논의에 대해서도 "민생을 안정시키고 경제가 궤도에 올라야 할 시점에 이런 것에 나라가 빨려들면 경제회복이 어려울 것"이라고 거부했다. 개헌 논쟁을 국력낭비로 규정하면서도 정치 혁신의 새로운 의제를 던지지도 않았다. 인적 쇄신도 여야 모두 요구하는 사안. 이에 대해서도 박근혜은 "개각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 비서진 개편도 같은 맥락"이라고 잘랐다.

둘째, 박근혜는 '소통'에 관한 전향적인 태도를 거부했다. "기계적 만남이나 국민 이익에 반하는 주장이라도 적당히 수용하거나 타협하는 것이 소통이냐, 그건 소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한 "비정상적인 관행에 대해 원칙적으로 대응한 것을 소통이 안돼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박근혜는 중점 과제로 강조한 공기업 개혁도 완충지대 없는 노·정 갈등으로 마찰음이 커진 철도 파업의 전례를 되풀이할 공산이 커졌다. 또한 사회적 현안을 풀어가는 방안으로 타협과 스킨십보다는 법과 원칙에 따른 징벌을 앞세움으로써 공안통치 논란을 사고 있는 진압형 국정운영의 연속을 시사했다. "자랑스러운 불통"이라고 한 이정현 홍보수석은 박근혜의 '복심' 맞다.

박근혜는 15년 전 교통사고 사망자의 억울함을 풀어준 '민원 해결'을 소통의 사례로 든 건 오히려 소통에 관한 협소한 인식을 재확인한 사례가 됐다. 마치 봉건시대 왕이 어느 백성의 청을 가납해 풀어줬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국정운영의 지존이라는 마음을 버리고 상호 대등한 위치에서 역지사지의 태도를 견지하는 민주적 소통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소통에 관한 박근혜의 협소한 이해는 반대세력과의 공존을 전제로 하는 '통합'이라는 단어가 80분 회견 내내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점에서도 확인된다.

셋째, 박근혜는 신년 구상과 기자회견의 가장 많은 부분을 경제에 할애했으나, '경제 민주화' 역시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경제 활성화'가 6번, 이와 대구를 이룬 '규제 완화'와 관련된 언급은 10번, '투자'는 7번이나 됐다. '복지'도 정책적 의미로는 부각되지 못한 채 "예술인 복지" 등 협소한 의미로 파편화됐다. 기초노령 연금 등 공약 후퇴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대기업들의 숙원인 규제 완화가 전면에 나선 반면, 경제 민주화의 실종과 복지 정책의 후퇴가 확연해 경제 기조를 둘러싼 논란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가 이날 야심차게 내놓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도 박정희 정권 시절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연상시킨다는 평을 받는다. 정부 주도의 경제 발전 계획이 가능한 시대냐는 논란은 차치하고 이조차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근혜가이 중점 추진과제로 밝힌 '비정상의 정상화', '창조경제를 통한 역동적 혁신경제', '내수와 수출의 균형' 등은 구체성이 떨어질뿐더러 기존에 강조해 온 이야기의 재탕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넷째, 박근혜는 회견 곳곳에서 지난해 거둔 외교 성과를 자랑했으나, 난마처럼 얽힌 동북아 상황을 타개하는데 있어 우선적 과제로 꼽히는 남북 문제에 대해 진전된 해법을 내놓지는 못했다. 박근혜가 적극적 통일론을 주장하며 "통일은 대박"이라고 한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3일 정부 신년인사회에서 "통일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했던 발언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이 같은 적극적 통일론에는 최근 보수 언론도 보조를 맞추고 있다. 그동안 진보 진영이 우위를 보인 통일 담론에 대한 공세적 대항 전략으로 읽힐 소지가 다분하다.

그러나 현 정부 임기 내에 추진할 남북관계의 구체적 전략은 뒷받침 되지 않았다. 남북관계와 관련해 박근혜가 내놓은 구체적 조치는 "이번 설을 맞아 이산가족들이 상봉하도록 해서 남북관계에 새로운 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곧바로 북한에 실무접촉 제의를 했다. 그러나 북한이 이를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남북 간의 민간 교류 확대를 강조하면서도 걸림돌로 지목되는 5.24 대북 제재 조치의 해제나 완화를 언급하지도 않았다. 북한이 신년사에서 밝힌 남북관계 개선 언급에 대해서도 "(북한이) 작년에도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이야기했지만 북한이 실제로 어떻게 했는지 잘 알고 계실 것"이라고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북한이 하는 것 봐서 대응 하겠다는 것이다. 선제적 외교 전략이 빠진 통일론이 공허해지는 까닭이다.

▲ 신년 기자회견을 하는 박근혜. ⓒ청와대


출처 : 박근혜 기자회견엔 '네 가지'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