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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언론과 종편

최소한의 양심조차 내팽개친 ‘가차 저널리즘’

최소한의 양심조차 내팽개친 ‘가차 저널리즘’
‘유민 아빠’ 김영오씨 과거 발언 문제 삼는 보수언론의 부끄러운 행태
[민중의소리] 강경훈 기자 | 발행시간 2014-08-28 08:36:21 | 최종수정 2014-08-28 11:03:23


▲ 박근혜가 4월 17일 진도체육관을 방문해 세월호 사고 피해자 가족들과 대화하고 있다. 당시 다수의 가족들은 박근혜에게 구조 지연에 대해 거세게 항의했다. ⓒ김철수 기자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다음날, 실종자 가족(당시)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에 박근혜가 방문했다. 생존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시기였기에 가족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구조당국의 사고 해역 수색 작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박근혜가 온다는 소식에 진도체육관은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아수라장이 됐다. 당시 가족들에게 필요했던 건 단지 빨리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확실한 조치와 구조 성과였지, '의전 따위'가 동반된 박근혜의 생색내기용 위로 방문이 아니었다.

“여기 오는 것보다 빠른 수색 지시를 내리고 한명이라도 더 빨리 구해야 하지 않냐.”
“경호 때문에 구급차가 들어오지도 못하고 구조 장비 실은 차량이 이동을 못 하고 있다.”
“컨트롤센터에서 구조 지휘나 제대로 해 달라.”

박근혜와 대면한 가족들이 체육관에서 울부짖으며 외쳤던 말들이다. 차가운 바닷속에서 추위에 떨고 있을 생때같은 자식들의 생사 앞에서 부모의 정신이 어찌 온전할 수 있었을까.

사고 첫날 생존자 구조 이후 추가 구조가 전혀 없다는 데 대한 분노와 구조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 구조당국에 대한 불만, 한시라도 빨리 자식들의 생사를 알고 싶은 절박한 심정….박근혜가 방문한 그 당시 진도체육관의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과 주요 방송사들은 그러한 모습들을 외면하거나 ‘한편’으로 한줄 처리한 반면, “단 한명의 실종자도 없도록 구조 작업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박근혜의 말과 이 말에 대한 호응인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가족들의 박수만을 부각했다. 언론을 접한 국민들은 수색 작업이 원활하게 이뤄지는 줄 알았고, 가족들의 분노를 알지 못했다. 오죽하면 가족들의 실제 모습을 지워버린 당시 언론 보도에 대해 KBS의 한 기자는 ‘날조’라고 표현했을까.

그들이 ‘날조’라는 비난까지 감수하며 숨기고자 했던 당시 가족들의 진짜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4개월이 지난 지금,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5일째 단식 중인 ‘김영오’라는 인물에 초점이 맞춰져 재가공됐다.

‘참사 후 진도체육관서 朴 대통령에 막말’, ‘유민아빠 김영오씨 대통령 향한 막말 동영상 논란’, ‘유민아빠의 진도체육관 막말’, 각각 27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사회면에서 비중 있게 다룬 기사의 제목이다.

하지만 4월 17일 당시 현장에 대한 이들 매체의 보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데 대해서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을 해서 책임질 사람은 모두 엄벌토록 할 것”이라는 박근혜의 말이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제발 아이를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가족들의 말에 귀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인 박근혜의 온화한 모습이 부각됐다. 반면 박근혜를 향한 가족들의 분노는 전후관계를 생략한 채 마치 ‘비행’처럼 다뤄졌다.

종합편성채널 MBN은 4월 17일 ‘사고 가족 만난 박 대통령 원인규명.엄벌 약속’이라는 보도에서 박근혜의 말에 가족들이 환호하며 박수치는 모습을 교묘하게 편집해 방송해놓고, 27일에는 ‘유민아빠 진도체육관서 박근혜에게 막말 논란’이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김씨의 격한 항의 장면만 편집해 내보냈다. 다른 가족들의 고성과 항의 장면은 일절 담지 않았다.

심지어 <조선일보>의 인터넷판 <조선닷컴>은 같은 날 본지 영상을 인용해 청와대를 손으로 가리키며 “7시간이 아니라 하루종일 어디 가서 싸돌아다니나 보다 XX”이라고 말한 부분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본지 로고가 박힌 캡처 화면까지 첨부했다. 박근혜 면담을 요구하며 힘든 몸을 이끌고 청와대로 향하다 경찰에 가로막힌 김씨의 참담한 심정을 있는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하려던 의도마저 악의적으로 이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40일이 넘는 기간 동안 목숨을 건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김씨는 진상조사위원회의 수사권.기소권이 부여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런 만큼 김씨의 일거수일투족은 이른바 ‘특별법 국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이 흥분해 있었던 당시 그의 격한 항의와 욕설을 마치 그 혼자만의 ‘비행’인 것처럼 부각한 보도는 투쟁의 중심에 있는 김씨의 도덕성을 흠집내 그의 단식이 갖는 의미와 진정성을 퇴색시키려는 의도로 밖에 비춰지지 않았다. 이는 특정인의 사소한 말실수나 부적절한 행동을 사안의 맥락과는 무관하게 자극적으로 부각하는 비양심적 보도 행태를 일컫는 ‘가차 저널리즘(Gotcha Journalism)’에 지나지 않는다.

한 가지 묻고 싶다. 자식이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고 구조작업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아버지가 구조당국 책임자들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행위가 비정상적인가? 아니면 사실을 보도해야 할 언론사가 애초 은폐했던 모습을 마치 새로운 사실인양 흠집내기용으로 써먹는 행위가 비정상적인가?

김씨에 대한 의도적 흠집내기 보도에 대해 '예은 아빠' 유경근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이렇게 억울함을 토로했다. 세상 어떤 부모들의 마음이 이와 다를 수 있을까.

“그날 모든 부모가 그랬다. 도대체 내 아이가 빠져 죽어가는 걸 직접 보고 있었는데, 살릴 수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정작 (구조현장에) 가보면 여전히 (구조를) 안 하고 있었는데, 그 시간에 이성을 갖고 있을 부모가 어딨나. 그 시간에 삿대질 안 할 부모가 어딨나. 유민 아빠만 잡아내서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고 있는데 참 너무들 하다.”


출처  [기자수첩] 최소한의 양심조차 내팽개친 ‘가차 저널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