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대신 닭’도 힘겨운, 서러운 설날
[민중의소리] 한도숙 한국농정신문 대표 | 최종업데이트 2015-02-19 10:13:04
꼭 적당한 것이 없을 때 그만은 못하지만 그와 비슷한 것으로 대신하는 경우 '꿩대신 닭'이란 말을 쓴다. 이 속담은 떡국에 꿩고기를 넣어 끓였던 데서 비롯한다. 성리학이 이 땅에 들어오던 고려 말부터 선비들은 매사냥을 즐겼다. 이후 매사냥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숭상하는 스포츠로 조선 천지에 매봉산, 매봉, 응봉산, 응봉이란 이름을 남겼다. 서울 한강변의 응봉동 응봉을 비롯해 필자의 마을 앞산도 매봉이다. 그만큼 매사냥이 성행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그렇게 매사냥을 해서 잡는 것은 주로 꿩이었고 꿩고기는 반가(班家)에서 주로 떡국에 넣어 끓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후 꿩의 공급이 모자라자 닭을 쓰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꿩 대신 닭'이란 속담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그나마 닭이라도 넣은 떡국 먹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울적하다. 전국이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비상이어서 그렇고, 사회적 불안도 또한 그렇다. 축산농민은 출하가 막히니 사료만 먹여야 하고, 또 너무 커버리니 품질이 나빠 값이 떨어져 울상이다. 소비자는 떡국에 넣을 닭고기마저 공급이 원활치 않으니 울상일 수밖에. 게다가 이동제한도 겹쳐 설날이 서러운 날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설 대목을 맞아 제수용품이 약 5%나 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농산물 값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정부의 주장이 그렇고, 대중매체가 그렇게 보도하고, 여론 주도층이 생각없이 그리 말하니, 생산자 농민도 과잉생산 때문이라고 한다. 기가 찰 일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것인가. 예를 들면 이렇다. 진도 대파가 가격하락으로 작살이 났다. 시장에 물량이 넘쳐나니 가격하락으로 나타난 것이다. 왜 시장에 넘쳐나는가. '꿩 대신 닭' 때문이다. 중국산 건조대파, 냉동대파, 세척대파, 파분말, 혼합양념들이 진도산 대파 대신 팔려나간다. 그러니 진도 대파 값은 폭락의 폭락을 거듭한다. 이것이 과잉생산인가, 수입 때문이지.
'꿩 대신 닭'은 도처에 있다. 필자의 농사는 과일 중 과일인 배 농사다. 그런데 대목 보려고 남겨둔 배가 경매시장에서 그야말로 똥값이다. 사려는 사람은 적고 팔려고 내놓은 물건은 많다. 사려는 사람은 왜 적을까. 다른 수입과일이 많은 까닭이다. 차례를 지내도 조율이시(棗栗梨柿)로 배를 올려야 하지만 요즘은 바나나가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배 대신 바나나 그게 '꿩대신 닭'아닌가.
이런 문제는 정부의 정책오류가 빚은 참사다. 속칭 '다이다이' 협상만 생각하고 '꿩 대신 닭'이 될 수 있는 것은 간과한 때문이다. 농민들의 의견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은 관료와 대통령의 자세가 문제였다. 이로써 농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만 바꿔버렸다. 농업은 생명산업이며 미래 창조경제라고 읊어대지만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정글의 무한경쟁이다. 참으로 농업에 대한 무지다. 오죽하면 조선일보가 사설로 경쟁력 없는 쌀농사 짓지 말자고 으름장을 놓겠는가. 누군가 뒷배 단단한 세력이 밀어주지 않는다면 발언하기 어려운 말이다. 그러니 농민들을 위한 설이 농민들에게 서러운 설이 될 것 같다. 아니 상위 10%에 들지 못하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서러운 설이 될 모양이다.
근대는 오랜 전통문화를 단절시키며 진행됐다. 또한 근대는 산업화의 동의어가 됐으며 따라서 농경과 그 오랜 전통문화는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갑오농민전쟁이 실패로 끝난 1896년 을미개혁으로 우리는 설을 양력으로 옮겼다. 그러나 여전히 민중들은 양력설을 쇠지 않았다. 그리고 일제하에서는 떡을 하지 못하도록 방앗간을 순사가 지키고 흰 설빔에 먹물을 뿌려대는 폭력 앞에서도 신정을 쇠지 않았다. 친일주구와 관료들만 양력으로 설을 쇨 뿐이었다. 이는 해방 후에도 계속 됐다. 이중과세를 하지말자고 아무리 잡도리를 해도, 설을 구정이라고 옛것이라고 근대화의 발목을 잡는 것이라 해도 민중들은 전래의 설에 떡국을 먹고 덕담을 건네고 세배를 하고 차례를 지냈다. 박정희 정권에서는 더한 잡도릴 했지만 설에 고향에 돌아가느라 서울역 압사사건(1963년)이 일어날 정도로 설은 민중의 명절이었다. 민주화가 된 1985년 '민속의 날'이 되었지만 민중들은 인정하지 않았고 1989년에 들어서야 전래의 민족명절 설이 되고 앞뒤로 하루씩을 포함한 3일을 법정공휴일로 제정함으로 설은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런 우여곡절의 설이 민중들의 진정한 설이 되어야 함에도 제대로 된 설을 맞을 수없는 사정들이란 결국 통치하고 군림 하는 권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음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어렵게 설을 제자리로 돌린 것은 민중들의 끈질긴 요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민중들이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귀중한 설을 맞는다. 설은 새로움을 의미한다. 새날이며 새것이라는 의미다. 떡국을 하얗게 끓이는 것이나 흰옷설빔을 입는 것이나 모두 새날에 대한 희망의 몸가짐이다.
덕담은 과거형으로 하는 게 예의란다. "복직 하셨다지" 또는 "농사지어 한시름 놓으셨다지" 처럼 "모두들 복많이 지으셨다죠."
출처 [한도숙 칼럼] ‘꿩 대신 닭’도 힘겨운, 서러운 설날
[민중의소리] 한도숙 한국농정신문 대표 | 최종업데이트 2015-02-19 10:13:04
꼭 적당한 것이 없을 때 그만은 못하지만 그와 비슷한 것으로 대신하는 경우 '꿩대신 닭'이란 말을 쓴다. 이 속담은 떡국에 꿩고기를 넣어 끓였던 데서 비롯한다. 성리학이 이 땅에 들어오던 고려 말부터 선비들은 매사냥을 즐겼다. 이후 매사냥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숭상하는 스포츠로 조선 천지에 매봉산, 매봉, 응봉산, 응봉이란 이름을 남겼다. 서울 한강변의 응봉동 응봉을 비롯해 필자의 마을 앞산도 매봉이다. 그만큼 매사냥이 성행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그렇게 매사냥을 해서 잡는 것은 주로 꿩이었고 꿩고기는 반가(班家)에서 주로 떡국에 넣어 끓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후 꿩의 공급이 모자라자 닭을 쓰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꿩 대신 닭'이란 속담이 만들어진 것이다.
꿩 대신 닭도 쉽지 않은 명절
그런데 올해는 그나마 닭이라도 넣은 떡국 먹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울적하다. 전국이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비상이어서 그렇고, 사회적 불안도 또한 그렇다. 축산농민은 출하가 막히니 사료만 먹여야 하고, 또 너무 커버리니 품질이 나빠 값이 떨어져 울상이다. 소비자는 떡국에 넣을 닭고기마저 공급이 원활치 않으니 울상일 수밖에. 게다가 이동제한도 겹쳐 설날이 서러운 날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뿐이랴 쌍용차 굴뚝에서 농성중인 해고노동자들도 떡국이 서러울 테고 제주 강정 또 한 서러운 떡국을 먹게 될 것이다. 아직도 맹골수도 찬 바다에서 나오지 못한 아홉 명의 실종자와 가족들, 그리고 청천벽력으로 가족을 잃은 세월호 피해자들에게도 피눈물이 흐르는 설이 될 터이다. 일터를 쫓겨난 노동자들, 최저임금조차도 받지 못하는,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청년들, 신념만으로도 죄가 되어 감옥에 갇힌 자들까지 도처에 즐거운 설 명절은 남의이야기일 뿐인 사람들로 넘쳐난다... 설의 기원이 '서럽다'에서 나온 것이라더니 이래서 그런 것인가.
▲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이 해고자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지난 12월 13일부터 굴뚝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정의철 기자 |
설 대목을 맞아 제수용품이 약 5%나 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농산물 값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정부의 주장이 그렇고, 대중매체가 그렇게 보도하고, 여론 주도층이 생각없이 그리 말하니, 생산자 농민도 과잉생산 때문이라고 한다. 기가 찰 일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것인가. 예를 들면 이렇다. 진도 대파가 가격하락으로 작살이 났다. 시장에 물량이 넘쳐나니 가격하락으로 나타난 것이다. 왜 시장에 넘쳐나는가. '꿩 대신 닭' 때문이다. 중국산 건조대파, 냉동대파, 세척대파, 파분말, 혼합양념들이 진도산 대파 대신 팔려나간다. 그러니 진도 대파 값은 폭락의 폭락을 거듭한다. 이것이 과잉생산인가, 수입 때문이지.
'꿩 대신 닭'은 도처에 있다. 필자의 농사는 과일 중 과일인 배 농사다. 그런데 대목 보려고 남겨둔 배가 경매시장에서 그야말로 똥값이다. 사려는 사람은 적고 팔려고 내놓은 물건은 많다. 사려는 사람은 왜 적을까. 다른 수입과일이 많은 까닭이다. 차례를 지내도 조율이시(棗栗梨柿)로 배를 올려야 하지만 요즘은 바나나가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배 대신 바나나 그게 '꿩대신 닭'아닌가.
이런 문제는 정부의 정책오류가 빚은 참사다. 속칭 '다이다이' 협상만 생각하고 '꿩 대신 닭'이 될 수 있는 것은 간과한 때문이다. 농민들의 의견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은 관료와 대통령의 자세가 문제였다. 이로써 농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만 바꿔버렸다. 농업은 생명산업이며 미래 창조경제라고 읊어대지만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정글의 무한경쟁이다. 참으로 농업에 대한 무지다. 오죽하면 조선일보가 사설로 경쟁력 없는 쌀농사 짓지 말자고 으름장을 놓겠는가. 누군가 뒷배 단단한 세력이 밀어주지 않는다면 발언하기 어려운 말이다. 그러니 농민들을 위한 설이 농민들에게 서러운 설이 될 것 같다. 아니 상위 10%에 들지 못하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서러운 설이 될 모양이다.
▲ 농민들이 쌀 전면개방과 WTO 관세화 통보를 규탄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철수 기자 |
설날은 민중의 명절이다
근대는 오랜 전통문화를 단절시키며 진행됐다. 또한 근대는 산업화의 동의어가 됐으며 따라서 농경과 그 오랜 전통문화는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갑오농민전쟁이 실패로 끝난 1896년 을미개혁으로 우리는 설을 양력으로 옮겼다. 그러나 여전히 민중들은 양력설을 쇠지 않았다. 그리고 일제하에서는 떡을 하지 못하도록 방앗간을 순사가 지키고 흰 설빔에 먹물을 뿌려대는 폭력 앞에서도 신정을 쇠지 않았다. 친일주구와 관료들만 양력으로 설을 쇨 뿐이었다. 이는 해방 후에도 계속 됐다. 이중과세를 하지말자고 아무리 잡도리를 해도, 설을 구정이라고 옛것이라고 근대화의 발목을 잡는 것이라 해도 민중들은 전래의 설에 떡국을 먹고 덕담을 건네고 세배를 하고 차례를 지냈다. 박정희 정권에서는 더한 잡도릴 했지만 설에 고향에 돌아가느라 서울역 압사사건(1963년)이 일어날 정도로 설은 민중의 명절이었다. 민주화가 된 1985년 '민속의 날'이 되었지만 민중들은 인정하지 않았고 1989년에 들어서야 전래의 민족명절 설이 되고 앞뒤로 하루씩을 포함한 3일을 법정공휴일로 제정함으로 설은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런 우여곡절의 설이 민중들의 진정한 설이 되어야 함에도 제대로 된 설을 맞을 수없는 사정들이란 결국 통치하고 군림 하는 권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음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어렵게 설을 제자리로 돌린 것은 민중들의 끈질긴 요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민중들이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귀중한 설을 맞는다. 설은 새로움을 의미한다. 새날이며 새것이라는 의미다. 떡국을 하얗게 끓이는 것이나 흰옷설빔을 입는 것이나 모두 새날에 대한 희망의 몸가짐이다.
굴뚝 위에서 새해를 맞든, 농성장에서 새날을 맞든, 감옥에서 맞든, 썩어가는 배추포기를 바라보며 맞든 모두 희망을 잃지는 말아야 한다. '꿩 대신 닭'의 양력설을 배척하고 설날을 지켜낸 선열처럼 우리의 일터를, 우리의 삶을 끈질기게 만들어나가자.
덕담은 과거형으로 하는 게 예의란다. "복직 하셨다지" 또는 "농사지어 한시름 놓으셨다지" 처럼 "모두들 복많이 지으셨다죠."
출처 [한도숙 칼럼] ‘꿩 대신 닭’도 힘겨운, 서러운 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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