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에 다시 한번 묻는다...이 철모 누구 건가?
김훈 중위 14주기,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 재가동해 진상 밝혀야
[오마이뉴스] 고상만 기자 | 12.02.24 20:28 | 최종 업데이트 12.02.24 20:28
또다시 1년이 지났습니다. 지난해 13주기 추모제를 했으니 올해는 14주기 추모제가 됩니다. 19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의문사한 '김훈 중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다른 분들에게 지난 14년이 어떤 의미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김훈 중위 유족에게 지나간 14년은 참담한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행복하고 단란했던 가정은 무너졌고, 그 어머니의 얼굴에 환한 미소는 지워진 지 오래입니다.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중장이던 김훈 중위의 아버지 역시 70대를 바라보는 노구를 이끌고 자식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입술이 새까맣게 탔습니다. 국회로, 국민권익위원회로, 또 여러 인권단체를 찾아다니며 그 아버지가 애말라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저 역시 지난 14년은 나름 힘들고 괴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신'은 있을까요? '신은 진실을 알고 있지만 다만, 그 때를 기다릴 뿐이다'라고 했나요.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시간과 눈물이 필요하기에 신은 이토록 오랫동안 이 사건의 진실을 방치하는 것일까요? 정말 신이 있다면 저는 항의하고 싶습니다.
14년 전, 운명의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1998년 2월 24일 낮 12시 즈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241GP 3번 벙커에서 젊은 청년 장교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다시 2시간 뒤. 국방부는 벙커에서 발견된 김훈 중위가 자신에게 지급된 권총으로 자살했다고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각은 아직 수사관이 사건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지금까지 '자살'로 결정된 이유는 바로 이처럼 잘못된 관행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수사도 하기 전에 이미 자살로 결론 내려졌으니 당연히 그 이후 진행된 수사 역시 정상적일 수 없었습니다. 아니, 국방부의 자살 결론에 맞춘 '확인 사살'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즉, 김훈 중위의 사망원인이 무엇인지를 수사한 것이 아니라 '자살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더 심했습니다. 사건 발생 후 약 두 달 정도가 지난 1998년 4월 29일, 1차 수사 발표에서 그들은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자살은 확실하다"는 황당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김훈 중위 아버지인 김척 예비역 육군 중장과 제가 만난 시점이 바로 그때였습니다. 당시 천주교인권위원회의 상근 간사로 있던 저에게 아버지는 조근조근 자신의 의문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과 확인 과정을 통해 저는 적어도 국방부의 주장처럼 김훈 중위가 자살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김 중위의 사인이 자살일 수 없는 이유
가장 큰 의문은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서 화약흔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국방부의 주장처럼 김훈 중위가 자신의 우측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냥한 후 격발해 자살했다면 응당 그 우측 손에는 화약흔이 검출돼야 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결론으로 김훈 중위의 우측손에서 검출된 화약흔은 없었습니다. 유족이 이를 지적하며 항의하자 국방부의 변명은 해괴했습니다. 권총 사격시 화약흔은 나타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 자신들이 모두 3차례에 걸쳐 발사 실험을 했고, 그 결과 화약흔의 검출 유무는 반드시 동일하지 않아 별 의미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진짜였을까요? 저희도 처음엔 믿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방부가 설마 분명한 사실을 두고 거짓말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설마했던 국방부가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국방부가 실시한 3차례에 걸친 6명의 발사 실험자 우측 손에서 화약흔이 모두 검출됐습니다.
더 웃기는 일은 김훈 중위의 좌측 손바닥에서 발견된 '화약흔'입니다. 국방부의 논리대로라면 응당 좌측 손바닥에서도 화약흔이 검출돼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많은 화약흔이 묻을 수밖에 없는 우측 손에도 없는 화약흔이 어떻게 좌측 손바닥에서 검출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유감스럽게도 이 질문에 대해 국방부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김훈 중위는 스스로 총을 격발한 사실이 없습니다. 그 증거는 바로 국방부 특조단이 실시한 6명의 총기 발사 실험자 모두에게 검출됐다는 화약흔이 김훈 중위의 우측 손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좌측 손바닥에서 검출된 화약흔은 무엇일까요. 재미 법의학자인 노여수 박사는 이에 대해 '김훈 중위가 사망할 당시 누군가가 쏘려하자 이를 방어하고자 본능적으로 좌측 손을 내민 방어흔적'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또한 이 사건과 관련한 화약흔 논란을 두고 감정한 '미국 육군수사연구소' 역시 보고서에서 김훈 중위의 우측 손에서 화약흔이 발견되지 않았기에 '사망자가 스스로 쐈다고 귀결 지어서는 안 됨'이라고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방부는 이같은 여러 의견에도 여전히 '김훈 중위는 자살'이라며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대법원도 인정한 국방부의 엉터리 초동수사
김훈 중위 사건을 둘러싼 이같은 의혹은 참으로 많습니다. 화약흔 의혹 뿐만이 아닙니다. 김훈 중위가 숨진 사건 현장에서 자살하는 데 사용했다는 권총은 마치 누군가가 깨끗이 닦아 놓은 듯 지문이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김훈 중위가 사망한 진짜 시각이 언제인지 알지 못하며 사망 현장의 유류품은 조작되고 부대원에 대한 알리바이 역시 제대로 조사되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김훈 중위 사망 사건은 왜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허점 투성이일까요?
바로 국방부 수사단의 잘못된 '초동 수사'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대법원의 판결을 통해서도 인정됐습니다. 1999년 4월 14일, 국방부 특별합동조사단에서 또다시 김훈 중위 사인을 '자살'로 발표하자 유족은 마지막 수단으로 법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지루한 3년여 간의 소송을 거친 후 대법원은 김훈 중위 사인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국방부에 있다며 2006년 12월 7일,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김훈 중위 사건의 초동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더라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이를 소홀히 하여 사건의 실체를 불분명하게 만들었고, 현재까지도 이 사건 사고가 자살인지 타살인지 명확히 결론을 내릴 수 없도록 했다. … 결국 유가족들로 하여금 (사망자의) 사인에 대한 알 권리나 명예 감정 등 인격적 법익을 침해했다."
국방부의 허술한 수사가 결국 오늘날까지 김훈 중위의 유족을 고통스럽게 한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철모의 진짜 주인을 알고 싶다
하지만 이처럼 많은 의혹을 떠나 제가 정말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의혹은 현장에 발견된 '철모'의 존재입니다. 어쩌면 저는 이 '철모' 때문에 지난 14년 동안 이 사건을 포기할 수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문제의 철모는 김훈 중위가 사망한 3번 벙커에서 권총을 반쯤 덮고 있는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땀에 절어 더러운 헝겊에 낡다 못해 여기저기 내피가 헤지고 찢긴 철모. 또한 야간 작전시 얼굴에 바르는 위장 크림이 덕지덕지 묻어 있던 철모였습니다.
당시 국방부는 이 철모에 대해 사건 현장에 출동했던 '미군 군의관'의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즉, 사건 현장에 도착한 미군 군의관이 김훈 중위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도착한 후 자신의 철모를 벗어 바닥에 내려 놓았는데, 그후 깜빡하고 그냥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 사건 현장을 촬영하고자 벙커 안으로 들어온 미군 정보하사 '포터'가 문제의 철모를 찍게 된 것이라고 국방부는 해명했습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어쩌면 국방부는 유족과 인권운동가를 바보로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단언컨대, 문제의 철모는 미군 군의관의 철모가 아닙니다. 그 증거는 너무나 많습니다. 가장 확실한 증거는 사건 당일 문제의 미군 군의관과 함께 출동한 위생병 이아무개 병장의 증언입니다. 국방부 특조단의 해괴한 억지 주장에 어처구니가 없었던 저는 이아무개 병장의 존재를 확인한 후 전역한 그를 찾아 만났습니다. 그는 나이답지 않게 매우 신중했습니다. 정확한 기억이 아니면 답변하지 않아 답답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질문에 대해서 그는 주저하지 않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바로 '문제의 철모'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제가 보여준 사진속의 철모는 미군 군의관의 철모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제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단호하게 단정할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가 한 말은 지극히 상식적이었습니다. "매일 보는 철모인데 왜 모르겠느냐"는 반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미군 군의관의 철모는 어떻게 생겼느냐"고 물으니 그의 답변은 명쾌했습니다. 군대 용어로 소위 'A급 철모'라고 했습니다. 새것처럼 늘 깨끗했던 미군 군의관의 철모는 관물대 위에 놓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만약 미군 군의관이 사진속의 철모처럼 더럽고 헤진 채 방치한다면 오히려 징계감"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나아가 더 중요한 말도 했습니다. 사진 속의 철모에 덕지덕지 묻은 위장용 녹색크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작전 시 위장을 위해 바르는 녹색 크림을 미군 군의관은 바를 일이 없다"며 "그런데 이런 철모가 어떻게 그의 것이겠냐"며 되묻곤 웃었습니다.
정말 국방부에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이 철모는 누구의 철모입니까?
'군대 의문사' 규명을 위한 조사기구 재출범해야
2월 23일, 김훈 중위의 아버지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아들의 추모제에 꼭 좀 참석해 달라는 말씀이 오늘따라 유난히 제 마음을 젖게 했습니다. 자식이 먼저 죽은 것도 아픈데 늙은 그 아버지가 아들의 추모제를 준비하고, 또 그 자리에 와서 함께 추모해 주기를 바라는 그 슬픈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순간 눈물이 핑 돕니다. 정말 김훈 중위의 진실은 언제쯤 밝혀질까요.
지난 2010년 12월 30일,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해산한 후 김훈 중위를 비롯해 군대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이들의 사인을 규명하는 국가 조사 기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아무것도 밝혀지지 못했는데 과거사 관련 기구가 '불필요한 예산 낭비'라며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신지호 국회의원이 폐지안을 제기한 후 '군 의문사위'는 결국 그후 1년 연장 활동한 후 해산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군대에서 의문의 사인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바람은 오직 하나입니다. 군인들의 급여를 월 40만 원으로 인상하는 것도 좋고 사회 복귀 자금을 주자는 제안도 좋지만 내 가족이, 형제가, 남편이 어떻게 죽음의 길로 가게됐는지 그 속사정을 알 수 있도록 조사할 수 있는 '군 의문사위'를 다시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징병제 국가에서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자 누구처럼 회피하거나 꼼수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입대했는데 사인을 두고 논란이 제기된다면, 대한민국 정부와 국방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최소한 진실이라도 밝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정부와 국방부는 이들 유족의 가슴에 피멍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한을 이 불쌍한 가족들에게 안겨줘야 한단 말입니까?
다시 14년. 김훈 중위의 영정 앞에 하얀 국화꽃을 내려놓으며 저는 결심합니다. 처음에는 당신의 부모님 부탁 때문에 이 사건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당신의 사건을 끝까지 내려놓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당신의 진실이 이대로 묻힌다면 또 다른 제2, 제3의 억울한 '김훈'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간절한 마음으로 저는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영원한 청년 장교, 고 김훈 중위의 14주기 기일을 추모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작성한 고상만 기자는 인권운동가로서 지난 1998년 판문점에서 의문사한 김훈 중위 사건을 14년간 추적한 책 <그날 공동경비구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책으로 여는 세상 펴냄)를 쓴 저자입니다.
출처 : 국방부에 다시 한번 묻는다...이 철모 누구 건가?
김훈 중위 14주기,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 재가동해 진상 밝혀야
[오마이뉴스] 고상만 기자 | 12.02.24 20:28 | 최종 업데이트 12.02.24 20:28
▲ 김훈 중위 13주기 추모제 '훈이를 사랑하는 가족 일동' 사랑하는 장남을 잃은 그의 부모는 매년 아들의 추모제에 진상규명을 기원하는 꽃바구니를 올렸다. ⓒ 고상만 |
또다시 1년이 지났습니다. 지난해 13주기 추모제를 했으니 올해는 14주기 추모제가 됩니다. 19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의문사한 '김훈 중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다른 분들에게 지난 14년이 어떤 의미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김훈 중위 유족에게 지나간 14년은 참담한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행복하고 단란했던 가정은 무너졌고, 그 어머니의 얼굴에 환한 미소는 지워진 지 오래입니다.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중장이던 김훈 중위의 아버지 역시 70대를 바라보는 노구를 이끌고 자식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입술이 새까맣게 탔습니다. 국회로, 국민권익위원회로, 또 여러 인권단체를 찾아다니며 그 아버지가 애말라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저 역시 지난 14년은 나름 힘들고 괴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신'은 있을까요? '신은 진실을 알고 있지만 다만, 그 때를 기다릴 뿐이다'라고 했나요.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시간과 눈물이 필요하기에 신은 이토록 오랫동안 이 사건의 진실을 방치하는 것일까요? 정말 신이 있다면 저는 항의하고 싶습니다.
14년 전, 운명의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 그는 아버지를 잇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장교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그를 '파파보이' 의지가 나약한 한심한 존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김훈 중위의 동기생은 말한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운 육사 출신 장교였다고 말이다. ⓒ 김척 |
수사도 하기 전에 이미 자살로 결론 내려졌으니 당연히 그 이후 진행된 수사 역시 정상적일 수 없었습니다. 아니, 국방부의 자살 결론에 맞춘 '확인 사살'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즉, 김훈 중위의 사망원인이 무엇인지를 수사한 것이 아니라 '자살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더 심했습니다. 사건 발생 후 약 두 달 정도가 지난 1998년 4월 29일, 1차 수사 발표에서 그들은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자살은 확실하다"는 황당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김훈 중위 아버지인 김척 예비역 육군 중장과 제가 만난 시점이 바로 그때였습니다. 당시 천주교인권위원회의 상근 간사로 있던 저에게 아버지는 조근조근 자신의 의문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과 확인 과정을 통해 저는 적어도 국방부의 주장처럼 김훈 중위가 자살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김 중위의 사인이 자살일 수 없는 이유
가장 큰 의문은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서 화약흔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국방부의 주장처럼 김훈 중위가 자신의 우측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냥한 후 격발해 자살했다면 응당 그 우측 손에는 화약흔이 검출돼야 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결론으로 김훈 중위의 우측손에서 검출된 화약흔은 없었습니다. 유족이 이를 지적하며 항의하자 국방부의 변명은 해괴했습니다. 권총 사격시 화약흔은 나타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 자신들이 모두 3차례에 걸쳐 발사 실험을 했고, 그 결과 화약흔의 검출 유무는 반드시 동일하지 않아 별 의미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진짜였을까요? 저희도 처음엔 믿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방부가 설마 분명한 사실을 두고 거짓말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설마했던 국방부가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국방부가 실시한 3차례에 걸친 6명의 발사 실험자 우측 손에서 화약흔이 모두 검출됐습니다.
더 웃기는 일은 김훈 중위의 좌측 손바닥에서 발견된 '화약흔'입니다. 국방부의 논리대로라면 응당 좌측 손바닥에서도 화약흔이 검출돼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많은 화약흔이 묻을 수밖에 없는 우측 손에도 없는 화약흔이 어떻게 좌측 손바닥에서 검출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유감스럽게도 이 질문에 대해 국방부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김훈 중위는 스스로 총을 격발한 사실이 없습니다. 그 증거는 바로 국방부 특조단이 실시한 6명의 총기 발사 실험자 모두에게 검출됐다는 화약흔이 김훈 중위의 우측 손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좌측 손바닥에서 검출된 화약흔은 무엇일까요. 재미 법의학자인 노여수 박사는 이에 대해 '김훈 중위가 사망할 당시 누군가가 쏘려하자 이를 방어하고자 본능적으로 좌측 손을 내민 방어흔적'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또한 이 사건과 관련한 화약흔 논란을 두고 감정한 '미국 육군수사연구소' 역시 보고서에서 김훈 중위의 우측 손에서 화약흔이 발견되지 않았기에 '사망자가 스스로 쐈다고 귀결 지어서는 안 됨'이라고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방부는 이같은 여러 의견에도 여전히 '김훈 중위는 자살'이라며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대법원도 인정한 국방부의 엉터리 초동수사
▲ 김훈 중위 가족의 일상 행복했던 김훈 중위 가족. 1998년 2월 24일, 그날 이후 이 가정의 행복한 일상은 사라졌다. ⓒ 고상만 |
김훈 중위 사건을 둘러싼 이같은 의혹은 참으로 많습니다. 화약흔 의혹 뿐만이 아닙니다. 김훈 중위가 숨진 사건 현장에서 자살하는 데 사용했다는 권총은 마치 누군가가 깨끗이 닦아 놓은 듯 지문이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김훈 중위가 사망한 진짜 시각이 언제인지 알지 못하며 사망 현장의 유류품은 조작되고 부대원에 대한 알리바이 역시 제대로 조사되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김훈 중위 사망 사건은 왜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허점 투성이일까요?
바로 국방부 수사단의 잘못된 '초동 수사'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대법원의 판결을 통해서도 인정됐습니다. 1999년 4월 14일, 국방부 특별합동조사단에서 또다시 김훈 중위 사인을 '자살'로 발표하자 유족은 마지막 수단으로 법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지루한 3년여 간의 소송을 거친 후 대법원은 김훈 중위 사인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국방부에 있다며 2006년 12월 7일,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김훈 중위 사건의 초동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더라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이를 소홀히 하여 사건의 실체를 불분명하게 만들었고, 현재까지도 이 사건 사고가 자살인지 타살인지 명확히 결론을 내릴 수 없도록 했다. … 결국 유가족들로 하여금 (사망자의) 사인에 대한 알 권리나 명예 감정 등 인격적 법익을 침해했다."
국방부의 허술한 수사가 결국 오늘날까지 김훈 중위의 유족을 고통스럽게 한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철모의 진짜 주인을 알고 싶다
▲ 문제의 철모 낡고 헝겁이 헤진 문제의 철모는 김훈 중위가 자살하는데 사용했다는 권총을 덮고 있었다. 국방부는 이 철모가 미군 군의관의 철모라고 주장했다. 나는 묻는다. 정말 이 철모는 누구의 철모인가? 왜 국방부는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 김척 |
당시 국방부는 이 철모에 대해 사건 현장에 출동했던 '미군 군의관'의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즉, 사건 현장에 도착한 미군 군의관이 김훈 중위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도착한 후 자신의 철모를 벗어 바닥에 내려 놓았는데, 그후 깜빡하고 그냥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 사건 현장을 촬영하고자 벙커 안으로 들어온 미군 정보하사 '포터'가 문제의 철모를 찍게 된 것이라고 국방부는 해명했습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어쩌면 국방부는 유족과 인권운동가를 바보로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단언컨대, 문제의 철모는 미군 군의관의 철모가 아닙니다. 그 증거는 너무나 많습니다. 가장 확실한 증거는 사건 당일 문제의 미군 군의관과 함께 출동한 위생병 이아무개 병장의 증언입니다. 국방부 특조단의 해괴한 억지 주장에 어처구니가 없었던 저는 이아무개 병장의 존재를 확인한 후 전역한 그를 찾아 만났습니다. 그는 나이답지 않게 매우 신중했습니다. 정확한 기억이 아니면 답변하지 않아 답답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질문에 대해서 그는 주저하지 않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바로 '문제의 철모'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제가 보여준 사진속의 철모는 미군 군의관의 철모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제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단호하게 단정할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가 한 말은 지극히 상식적이었습니다. "매일 보는 철모인데 왜 모르겠느냐"는 반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미군 군의관의 철모는 어떻게 생겼느냐"고 물으니 그의 답변은 명쾌했습니다. 군대 용어로 소위 'A급 철모'라고 했습니다. 새것처럼 늘 깨끗했던 미군 군의관의 철모는 관물대 위에 놓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만약 미군 군의관이 사진속의 철모처럼 더럽고 헤진 채 방치한다면 오히려 징계감"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나아가 더 중요한 말도 했습니다. 사진 속의 철모에 덕지덕지 묻은 위장용 녹색크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작전 시 위장을 위해 바르는 녹색 크림을 미군 군의관은 바를 일이 없다"며 "그런데 이런 철모가 어떻게 그의 것이겠냐"며 되묻곤 웃었습니다.
정말 국방부에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이 철모는 누구의 철모입니까?
'군대 의문사' 규명을 위한 조사기구 재출범해야
2월 23일, 김훈 중위의 아버지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아들의 추모제에 꼭 좀 참석해 달라는 말씀이 오늘따라 유난히 제 마음을 젖게 했습니다. 자식이 먼저 죽은 것도 아픈데 늙은 그 아버지가 아들의 추모제를 준비하고, 또 그 자리에 와서 함께 추모해 주기를 바라는 그 슬픈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순간 눈물이 핑 돕니다. 정말 김훈 중위의 진실은 언제쯤 밝혀질까요.
지난 2010년 12월 30일,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해산한 후 김훈 중위를 비롯해 군대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이들의 사인을 규명하는 국가 조사 기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아무것도 밝혀지지 못했는데 과거사 관련 기구가 '불필요한 예산 낭비'라며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신지호 국회의원이 폐지안을 제기한 후 '군 의문사위'는 결국 그후 1년 연장 활동한 후 해산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군대에서 의문의 사인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바람은 오직 하나입니다. 군인들의 급여를 월 40만 원으로 인상하는 것도 좋고 사회 복귀 자금을 주자는 제안도 좋지만 내 가족이, 형제가, 남편이 어떻게 죽음의 길로 가게됐는지 그 속사정을 알 수 있도록 조사할 수 있는 '군 의문사위'를 다시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징병제 국가에서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자 누구처럼 회피하거나 꼼수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입대했는데 사인을 두고 논란이 제기된다면, 대한민국 정부와 국방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최소한 진실이라도 밝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정부와 국방부는 이들 유족의 가슴에 피멍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한을 이 불쌍한 가족들에게 안겨줘야 한단 말입니까?
다시 14년. 김훈 중위의 영정 앞에 하얀 국화꽃을 내려놓으며 저는 결심합니다. 처음에는 당신의 부모님 부탁 때문에 이 사건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당신의 사건을 끝까지 내려놓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당신의 진실이 이대로 묻힌다면 또 다른 제2, 제3의 억울한 '김훈'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간절한 마음으로 저는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영원한 청년 장교, 고 김훈 중위의 14주기 기일을 추모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작성한 고상만 기자는 인권운동가로서 지난 1998년 판문점에서 의문사한 김훈 중위 사건을 14년간 추적한 책 <그날 공동경비구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책으로 여는 세상 펴냄)를 쓴 저자입니다.
출처 : 국방부에 다시 한번 묻는다...이 철모 누구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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