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도 모자라 초등교과서 한자병기라니
[민중의소리] 홍순희 서울율현초등학교 교사 | 최종업데이트 2015-08-24 07:29:24
교육부는 오는 9월 고시를 목표로 추진 중인 2015개정교육과정에 따라 2018년부터 초등학교 3학년 이상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겠다고 하여 한글단체, 현장교사, 교육단체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1970년 한글전용 교과서를 사용한 이래 45년이 흘러 해방 70주년을 맞았다. 지난 세월 한글전용 교과서에 의한 학습은 순탄하기만 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는 교육현장의 보고도 없었다. 대학교재에서도 한자가 사라졌으며 신문 역시 한글 전용이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한자를 모르면 생활하는데 불편한가’를 묻는 질문에 대해 2002년에는 70%, 2014년에는 54%가 그렇다고 답하여, 한자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감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육과정 개정 시 검토해야 할 사회적 요구와 학생들의 발달 및 성장의 측면에서 교과서 한자병기 도입의 근거를 찾기 어려운데도 정부가 이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자를 알면 낱말 뜻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면 학습내용 이해에 도움이 될까?
한자가 병기되면 문장이 길어지고 읽는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리게 된다. 전체 수업 활동에 집중하지 못하고 한자 병기된 낱말 뜻 풀이에 노력을 할애해야 하므로 수업은 오히려 부실해질 것이다.
한자 없이도 문맥상 낱말 뜻을 유추해보고 국어사전을 찾아 정확한 뜻을 알아보는 과정을 통해 문장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지만, 교과서에 한자가 병기되면 우리말과 글로 충분히 공부할 수 있었던 수업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무너지고 결국 수업 부실을 초래할 것이다.
한자병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학생들이 OECD 23개 국가 중 문해력이 최하위’라며 그 이유가 한자를 모르는데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OECD 발표 자료를 왜곡한 것이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3 학생들의 문해력은 세계 1~2위이다. 국제성인역량평가에서도 우리나라 16세~24세 청년들의 문해력은 22개 회원국 중 3위였는데, 55세~65세 노년층의 읽기 능력은 22개 조사국 중 20위를 차지하였다.
노년층은 한글전용세대가 아니라 한자세대라고 할 수 있다. 노년층의 읽기 능력 부족에 대해서는 노년층의 삶의 모습을 질적으로 분석해 그 원인을 찾아야 하지만,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는 노년층의 문제를 학생들의 문제로 호도하여 한자 교육 강화를 주장한다. 의도적인 거짓말로 볼 수밖에 없다.
교육부는 초등학교 98%가 한자교육을 이미 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현장에서 한자교육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질적으로 연구하지 않고 숫자놀음만 한 셈이다. 2009교육과정 총론은 한자교육을 체계적으로 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창의적체험활동 시간은 학교 또는 학년, 담임교사들의 재량으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정보통신, 보건교육, 한자교육의 체계적 지도를 규정한 교육과정 총론에 따라 ‘울며겨자먹기식’으로 한자교육시간을 배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업 결손 방지와 특색 있는 창의적 체험활동 확보를 위해 한자교육은 각 교과시간에 통합하여 진행한다고 보고한 학교들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사회시간에 우리나라 지형의 특징을 공부하면서 학생들에게 “‘지형’이란 땅지(地), 모양형(形)에서 나온 말이야. 그럼 지형이 무슨 뜻이니?”라고 물으면 “아하, 땅의 모양, 모습이군요.”라고 답한다. 교과서를 쓸 때 한자어를 우리말로 바꿔 쓰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보니 교육현장에서는 낱말 뜻풀이에 시간과 노력을 더 들이게 된다.
여하튼 학교들은 한자를 쓰지 않으면서도 낱말 뜻을 알아보는 과정을 한자교육이라고 보고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본래의 교과 수업목표에 도달하는 수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청, 학교장이 강제하여 한자인정도서를 구입, 실제로 한자 쓰기를 하는 학교도 간혹 있다. 이러한 학교 현장의 모습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98%가 한자교육을 한다는 통계를 내세운 교육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교육부는 초등학생 발달 단계에 적합하지 않은 한자교육을 강제해놓고는 이에 따른 고난도 한자 학습과 사교육을 규제하기 위해 적정 한자를 제시하겠다고 했다.
한술 더 떠 초등교과서에 한자병기를 강행하겠다고 하니 그야말로 ‘병 주고 약 주기’가 아니라 ‘병 주고 독약 주는’ 격이다. 2009개정 총론에 있는 ‘한자교육을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독소조항만 떼어내면 다 해결될 일인데, 교육부는 한자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한자병기가 사교육을 촉발할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초등학교 3학년에 영어가 들어오던 과정을 되짚어 보자.
초등 영어는 1990년대까지 흥미를 가진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한 특별활동이었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이후 초등학교에 영어교과가 필요하다고 말하자 영어는 ‘교과’가 되었다. 6차교육과정에서는 학교재량시간에 끼워넣기 했고 7차교육과정에서는 정식 교과(3~6학년, 1-1-2-2시간)로 발전했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의 ‘어린쥐’ 영어몰입정책으로 초등 영어 시간은 더 늘어났다(3~6학년, 2-2-3-3시간). 교육과정 개정으로 초등 영어 사교육 시장은 커질 대로 커졌고 유치원에서도 영어 사교육이 횡횡하게 되었다. 영어 발음 향상을 위해 유아들을 혀 수술 시킨다는 보도는 영어교육 광풍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정부는 초등 영어교육 도입으로 사교육 시장이 확대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결과는 딴판이다. 초등학교에서 ‘영포아(영어 포기 아동)’가 된 아이들은 자존감이 낮아졌고 이후 중학교 과정에서 외국어 학습 동기를 낮추고 있다.
초등 한자교육도 영어과의 전철을 밟게 될까봐 두렵다. 영전강(영어회화전담강사)과 같은 비정규 인력을 배치하거나 초등 한자교과 신설로 비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부는 국민들의 사교육 고통을 덜어주겠다고 말하지만 교육정책들은 늘 역방향으로 가고 있다.
교육부는 한자를 시험 출제에서 제외함으로써 사교육 확대를 막고 학생들의 학습 이해도만 높일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뭔가 새로운 학습을 추가하는데 학습 부담이 늘지 않을 리 없다.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은 이미 과도한 학습 부담으로 정상적인 발달과 성장에 방해를 받고 있다. 가히 교육체제에 의한 국가수준의 아동학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상황인 것이다.
최근 정부는 각 부처 합동으로 초등학교 폭력 감소를 위한 종합대책을 내어 놓았는데 기존 정책들을 재탕 삼탕해 엮어낸 것에 불과했다. 초등학생들의 정신적, 정서적 건강을 진정으로 염려한다면 한자병기를 포기하고 학습 부담을 덜어주는 게 급선무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한자병기의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말 대신 영어, 한자를 사용하면서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과 정체성을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이다.
예를 들어보자. ‘모래나 자갈 퍼 담는 것’이나 ‘나물 캐는 것’을 통틀어 한자말로 ‘채취’라고 한다. ‘산나물 채취’, 영어 ‘pick’을 우리말로 쓰면 냉이는 ‘캐고,’ 돌나물은 ‘걷고’, 도라지도 ‘캐고’, 고사리는 ‘꺾고’가 된다.
이들이 ‘채취’, ‘pick’으로 대체되면서 풍성하고 맛도 있는 우리 말들이 사라지고 있다. 한자병기 도입과 초등영어 지속은 우리말의 맛을 느끼는 능력을 감퇴시키고 풍성한 우리말을 죽이게 된다. 골목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던 놀이 문화가 사라지면서 놀이에 사용하던 우리말도 사라졌고 휴대폰에 넘치는 영어로 된 캐릭터나 게임에 친숙한 우리 아이들에게 진정 교육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우리말의 체계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어교과와 한자병기로 언어의 혼란기를 보내게 된다. 예전에 중학교부터 영어, 한자를 배웠을 시절에는 학생의 우리말 체계가 완성된 단계에서 영어, 한자, 우리말을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초등 3학년 영어교과 도입과 대중문화의 영어 남발 등으로 영어와 우리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토미, 짐, 엘리스는 외국 이름이고 양숙, 소영, 애란은 한국 이름이라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초등학교 6학년까지는 우리말 체계를 내면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므로, 영어와 한자 교육은 중학교 단계로 넘겨야 바람직하다. 우선 우리말과 글 실력이 탄탄해야 이후 외국어 학습도 잘 할 수 있다.
말과 글에는 공동체의 얼이 담겨 있다. 최근 생뚱맞게 추진되는 한자병기는 세계가 인정하는 쉽고 과학적인 우리글을 스스로 부정하는 추태이다. 영어와 어려운 한자말을 섞어 쓰면 유식한 것으로 간주하고 우리 것을 뭔가 모자란 것으로 비하하는 잘못된 풍토를 교육이 바로잡기는커녕 나서서 조장해서는 안 될 일이다.
초등 영어교과와 한자병기가 어린 학생들에게 사대주의적 경향을 주입하고 ‘우리’에 대한 자긍심과 정체성의 고양에 장애를 초래하는 측면이 있다면 정책을 과감하게 재고해봐야 한다.
해방 70주년을 맞아 영어와 한자를 무분별하게 사용해 온 뿌리 없는 말‧글살이를 반성하고 우리말 교육을 정상화하여야 시점에서 초등 영어교과 폐지와 한자병기 도입 폐기는 교육적으로 온당한 요구이다.
출처 [기고] 영어교육도 모자라 초등교과서 한자병기라니
[민중의소리] 홍순희 서울율현초등학교 교사 | 최종업데이트 2015-08-24 07:29:24
▲ 전교조, 한글학회 등 교육 및 한글 관련 53개 단체로 구성된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앞에서 한글교과서 장례식을 하고 있다. 이들은 초등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2015 교육과정 개정안을 규탄했다. ⓒ김철수 기자 |
교육부는 오는 9월 고시를 목표로 추진 중인 2015개정교육과정에 따라 2018년부터 초등학교 3학년 이상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겠다고 하여 한글단체, 현장교사, 교육단체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1970년 한글전용 교과서를 사용한 이래 45년이 흘러 해방 70주년을 맞았다. 지난 세월 한글전용 교과서에 의한 학습은 순탄하기만 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는 교육현장의 보고도 없었다. 대학교재에서도 한자가 사라졌으며 신문 역시 한글 전용이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한자를 모르면 생활하는데 불편한가’를 묻는 질문에 대해 2002년에는 70%, 2014년에는 54%가 그렇다고 답하여, 한자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감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육과정 개정 시 검토해야 할 사회적 요구와 학생들의 발달 및 성장의 측면에서 교과서 한자병기 도입의 근거를 찾기 어려운데도 정부가 이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초등학교 학생들. ⓒ정의철 기자 |
한자교육, 결국 수업부실로 이어져
한자를 알면 낱말 뜻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면 학습내용 이해에 도움이 될까?
한자가 병기되면 문장이 길어지고 읽는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리게 된다. 전체 수업 활동에 집중하지 못하고 한자 병기된 낱말 뜻 풀이에 노력을 할애해야 하므로 수업은 오히려 부실해질 것이다.
한자 없이도 문맥상 낱말 뜻을 유추해보고 국어사전을 찾아 정확한 뜻을 알아보는 과정을 통해 문장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지만, 교과서에 한자가 병기되면 우리말과 글로 충분히 공부할 수 있었던 수업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무너지고 결국 수업 부실을 초래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문해력 최하위라고?
한자병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학생들이 OECD 23개 국가 중 문해력이 최하위’라며 그 이유가 한자를 모르는데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OECD 발표 자료를 왜곡한 것이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3 학생들의 문해력은 세계 1~2위이다. 국제성인역량평가에서도 우리나라 16세~24세 청년들의 문해력은 22개 회원국 중 3위였는데, 55세~65세 노년층의 읽기 능력은 22개 조사국 중 20위를 차지하였다.
노년층은 한글전용세대가 아니라 한자세대라고 할 수 있다. 노년층의 읽기 능력 부족에 대해서는 노년층의 삶의 모습을 질적으로 분석해 그 원인을 찾아야 하지만,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는 노년층의 문제를 학생들의 문제로 호도하여 한자 교육 강화를 주장한다. 의도적인 거짓말로 볼 수밖에 없다.
교육부, 초등학교 98% 한자교육? 알고보면 '울며겨자먹기식' 시간배치
교육부는 초등학교 98%가 한자교육을 이미 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현장에서 한자교육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질적으로 연구하지 않고 숫자놀음만 한 셈이다. 2009교육과정 총론은 한자교육을 체계적으로 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초등학교 교육과정 편성‧ 운영의 중점
(6) 정보통신윤리교육, 보건교육, 한자교육 등은 관련 교과(군)와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하여 체계적인 지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
- 2009개정교육과정 총론
(6) 정보통신윤리교육, 보건교육, 한자교육 등은 관련 교과(군)와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하여 체계적인 지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
- 2009개정교육과정 총론
창의적체험활동 시간은 학교 또는 학년, 담임교사들의 재량으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정보통신, 보건교육, 한자교육의 체계적 지도를 규정한 교육과정 총론에 따라 ‘울며겨자먹기식’으로 한자교육시간을 배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업 결손 방지와 특색 있는 창의적 체험활동 확보를 위해 한자교육은 각 교과시간에 통합하여 진행한다고 보고한 학교들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사회시간에 우리나라 지형의 특징을 공부하면서 학생들에게 “‘지형’이란 땅지(地), 모양형(形)에서 나온 말이야. 그럼 지형이 무슨 뜻이니?”라고 물으면 “아하, 땅의 모양, 모습이군요.”라고 답한다. 교과서를 쓸 때 한자어를 우리말로 바꿔 쓰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보니 교육현장에서는 낱말 뜻풀이에 시간과 노력을 더 들이게 된다.
여하튼 학교들은 한자를 쓰지 않으면서도 낱말 뜻을 알아보는 과정을 한자교육이라고 보고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본래의 교과 수업목표에 도달하는 수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청, 학교장이 강제하여 한자인정도서를 구입, 실제로 한자 쓰기를 하는 학교도 간혹 있다. 이러한 학교 현장의 모습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98%가 한자교육을 한다는 통계를 내세운 교육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병 주고 독약 주기
교육부는 초등학생 발달 단계에 적합하지 않은 한자교육을 강제해놓고는 이에 따른 고난도 한자 학습과 사교육을 규제하기 위해 적정 한자를 제시하겠다고 했다.
한술 더 떠 초등교과서에 한자병기를 강행하겠다고 하니 그야말로 ‘병 주고 약 주기’가 아니라 ‘병 주고 독약 주는’ 격이다. 2009개정 총론에 있는 ‘한자교육을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독소조항만 떼어내면 다 해결될 일인데, 교육부는 한자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한자병기 사교육 규제? 결국 초등영어 부작용 전철 밟는다
한자병기가 사교육을 촉발할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초등학교 3학년에 영어가 들어오던 과정을 되짚어 보자.
초등 영어는 1990년대까지 흥미를 가진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한 특별활동이었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이후 초등학교에 영어교과가 필요하다고 말하자 영어는 ‘교과’가 되었다. 6차교육과정에서는 학교재량시간에 끼워넣기 했고 7차교육과정에서는 정식 교과(3~6학년, 1-1-2-2시간)로 발전했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의 ‘어린쥐’ 영어몰입정책으로 초등 영어 시간은 더 늘어났다(3~6학년, 2-2-3-3시간). 교육과정 개정으로 초등 영어 사교육 시장은 커질 대로 커졌고 유치원에서도 영어 사교육이 횡횡하게 되었다. 영어 발음 향상을 위해 유아들을 혀 수술 시킨다는 보도는 영어교육 광풍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정부는 초등 영어교육 도입으로 사교육 시장이 확대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결과는 딴판이다. 초등학교에서 ‘영포아(영어 포기 아동)’가 된 아이들은 자존감이 낮아졌고 이후 중학교 과정에서 외국어 학습 동기를 낮추고 있다.
초등 한자교육도 영어과의 전철을 밟게 될까봐 두렵다. 영전강(영어회화전담강사)과 같은 비정규 인력을 배치하거나 초등 한자교과 신설로 비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부는 국민들의 사교육 고통을 덜어주겠다고 말하지만 교육정책들은 늘 역방향으로 가고 있다.
더 이상의 초등생 학습부담은 '아동학대'
교육부는 한자를 시험 출제에서 제외함으로써 사교육 확대를 막고 학생들의 학습 이해도만 높일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뭔가 새로운 학습을 추가하는데 학습 부담이 늘지 않을 리 없다.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은 이미 과도한 학습 부담으로 정상적인 발달과 성장에 방해를 받고 있다. 가히 교육체제에 의한 국가수준의 아동학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상황인 것이다.
최근 정부는 각 부처 합동으로 초등학교 폭력 감소를 위한 종합대책을 내어 놓았는데 기존 정책들을 재탕 삼탕해 엮어낸 것에 불과했다. 초등학생들의 정신적, 정서적 건강을 진정으로 염려한다면 한자병기를 포기하고 학습 부담을 덜어주는 게 급선무이다.
한자병기로 인한 정체성 혼란... 결국 한글 자긍심까지 잃을 것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한자병기의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말 대신 영어, 한자를 사용하면서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과 정체성을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이다.
예를 들어보자. ‘모래나 자갈 퍼 담는 것’이나 ‘나물 캐는 것’을 통틀어 한자말로 ‘채취’라고 한다. ‘산나물 채취’, 영어 ‘pick’을 우리말로 쓰면 냉이는 ‘캐고,’ 돌나물은 ‘걷고’, 도라지도 ‘캐고’, 고사리는 ‘꺾고’가 된다.
이들이 ‘채취’, ‘pick’으로 대체되면서 풍성하고 맛도 있는 우리 말들이 사라지고 있다. 한자병기 도입과 초등영어 지속은 우리말의 맛을 느끼는 능력을 감퇴시키고 풍성한 우리말을 죽이게 된다. 골목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던 놀이 문화가 사라지면서 놀이에 사용하던 우리말도 사라졌고 휴대폰에 넘치는 영어로 된 캐릭터나 게임에 친숙한 우리 아이들에게 진정 교육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우리말의 체계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어교과와 한자병기로 언어의 혼란기를 보내게 된다. 예전에 중학교부터 영어, 한자를 배웠을 시절에는 학생의 우리말 체계가 완성된 단계에서 영어, 한자, 우리말을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초등 3학년 영어교과 도입과 대중문화의 영어 남발 등으로 영어와 우리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토미, 짐, 엘리스는 외국 이름이고 양숙, 소영, 애란은 한국 이름이라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초등학교 6학년까지는 우리말 체계를 내면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므로, 영어와 한자 교육은 중학교 단계로 넘겨야 바람직하다. 우선 우리말과 글 실력이 탄탄해야 이후 외국어 학습도 잘 할 수 있다.
말과 글에는 공동체의 얼이 담겨 있다. 최근 생뚱맞게 추진되는 한자병기는 세계가 인정하는 쉽고 과학적인 우리글을 스스로 부정하는 추태이다. 영어와 어려운 한자말을 섞어 쓰면 유식한 것으로 간주하고 우리 것을 뭔가 모자란 것으로 비하하는 잘못된 풍토를 교육이 바로잡기는커녕 나서서 조장해서는 안 될 일이다.
초등 영어교과와 한자병기가 어린 학생들에게 사대주의적 경향을 주입하고 ‘우리’에 대한 자긍심과 정체성의 고양에 장애를 초래하는 측면이 있다면 정책을 과감하게 재고해봐야 한다.
해방 70주년을 맞아 영어와 한자를 무분별하게 사용해 온 뿌리 없는 말‧글살이를 반성하고 우리말 교육을 정상화하여야 시점에서 초등 영어교과 폐지와 한자병기 도입 폐기는 교육적으로 온당한 요구이다.
출처 [기고] 영어교육도 모자라 초등교과서 한자병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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