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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 거짓말·눈속임…정체성 명목으로 ‘국가주의 부활’

국민에 거짓말·눈속임…정체성 명목으로 ‘국가주의 부활
[경향신문] 송현숙 기자 | 입력 : 2015-11-01 22:54:58 | 수정 : 2015-11-01 23:28:12


지난달 12일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행정예고한 후 20일은 명목상의 의견수렴 기간일 뿐, 현 정부엔 국민들이 안중에 없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시간이었다. 이미 국정화 밀어붙이기로 방향을 정한 정부 앞에 국정화를 반대하는 국민들은 방해자일 뿐이었다. 국정화에 반대하면 국민이 아니라는 말이 나오고, 스스로 합격시켜 학교현장에 배포한 교과서와 집필진을 종북교과서와 친북사상을 퍼뜨리는 숙주로 매도하는 ‘자기부정’이 이어졌다.

행정예고의 방점은 지난달 27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이 찍었다. 박근혜는 “역사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것은 우리 세대의 사명”이라고 못박았다. 국정화에 반대하는 여론을 ‘확고한 국가관과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라는 명목으로 억누르려는, ‘국가주의’의 환생이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역사학계 원로·교수들과 역사 전공 학생들이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역사인들의 거리행동’ 집회를 열고 정동길을 따라 청계광장까지 행진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국정화 반대하면 국민이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지난 20일간 정부·여당은 이를 정면으로 무시하고 거스르는 태도를 보였다.

정부는 처음엔 여론에 기대 국정화를 추진하려 했다. 지난달 12일 국정화 방침을 발표하며 강조했던 것도 질문이 왜곡돼 논란이 일긴 했지만 일반 국민들이 국정화를 원하는 여론이 많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반발이 거세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지난달 24일 “국정화는 여론조사나 투표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고, 이정현 최고위원은 이틀 후 “국정화 반대 국민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라는 극단적 말까지 쏟아부었다.


정권이 국민을 우습게 보는 행태는 국회 위증을 보면 명확해진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밥먹듯 하고도 사과나 해명은 없다.

지난달 8일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국회에서 국정화에 관해 확정된 것이 없다고 했지만, 훨씬 이전부터 교육부는 국정화 비밀 TF를 가동한 사실이 발각됐다.

교육부 당국자는 국정화 예산이 지난달 13일 국무회의에서 예비비 44억원을 결정한 다음날 국회에 예비비로 할지, 본예산으로 할지 결정되지 않았다는 허위 보고를 했다.

정부·여당은 이에 더해 잠깐만 자료를 봐도 알 만한 거짓말과 눈속임 광고를 태연히 계속했고, 외신 브리핑에서도 국내 언론에 거짓으로 판명난 내용을 반복하는 행태를 자행했다.

이성권 교사(서울 대진고)는 “공론화 절차는 아예 없고, 현장 목소리를 외면한 채 진행되는 국정화 추진 과정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민주주의와도 결코 맞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000여명이 국정화 반대 선언을 발표한 좋은교사운동 임종화 공동대표는 “기독교 단체라 상당히 보수적인 분들이 많은데, 교단 전체를 배제하고 무시하는 정부의 태도에 역사교사가 아닌 교사 전체의 문제로 생각해 참여하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 그림을 누르면 큰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추악함의 종합선물세트

행정예고 기간 막판에 비밀 TF 운영과 꼼수 예비비, 반상회 동원, 국정화 지지자 명의 도용 등 온갖 추악한 모습이 아이들의 교육 문제를 다루는 교육부에서 연달아 드러나는 것을 본 국민들은 참담함을 토로했다. 예비비조차 좋은 교과서 제작이 아닌 거짓과 색깔론으로 덧칠된 홍보나 광고에 쏟아부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여론에 귀 막고, 민주적 절차와 명분을 무시한 정부에 국민들은 동원 대상일 뿐이었다. 역사학계와 교사·학생들이 모두 반대하는 국정화 지지엔 극우보수세력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기존 교과서를 공격하더라도 국정화는 답이 아니라고 뒤로 빠질 텐데 최근엔 학자그룹 밖에서 거친 표현으로 목소리만 더 높이고 있다”며 “정부·여당의 명분이 허약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여론이 불리하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최태욱 한림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우리 국민들이 그렇게 한심한 편은 아닌데, 일방적이고 무식한 의제에 포장도 정지작업도 안돼 있다”며 “시간이 갈수록 반대가 늘어날 것”이라고 짚었다.


출처  [국정화 행정예고 오늘 종료] 국민에 거짓말·눈속임…정체성 명목으로 ‘국가주의 부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