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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추악한 자본

‘갑질의 전설’ 롯데는 언제 상생을 외쳤나?

갑질의 전설’ 롯데는 언제 상생을 외쳤나?
‘동주 vs 동빈’이 아니라 '롯데 갑질'이 문제의 본질인 이유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11-09 08:06:00


1968년 국내 제과 시장에서 롯데 껌이 선풍을 일으켰다. 이른바 ‘서구의 입맛’을 앞세운 바브민트와 스피아민트가 온 국민의 사랑을 받은 것이다. 롯데 자신도 1969년 신문 광고에 ‘10人에 7人은 알고 있습니다.’라고 선전했을 정도로 껌의 인지도는 대단했다. 1967년 국내에 진출한 롯데가 단 2년 만에 일군 대단한 성과였다.

그런데 1970년 11월 서울시 부정식품 특별단속반이 불량식품 조사를 벌인 결과 이 두 껌에서 쇳가루가 검출됐다. 모래나 휴지 같은 이물질이 나온 다른 불량식품과는 달리 껌에서 먹어서는 안 되는 쇳가루가 나온 것이다. 그런데 1970년대 서울시 도시계획을 총괄했던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이 사건은 롯데그룹에게 일대 반전의 기회였다”라고 묘사한다. 다음이 손 교수가 저서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 적은 이야기다.

“1970년 11월 13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을 청와대로 불렀다. 이날은 롯데제과의 껌에서 쇳가루가 검출돼 제조 정지 명령이 내려진 날이었다. 박 대통령이 이를 ‘조치’해주며 호텔롯데를 지어 경영해달라고 신 회장에게 부탁했다. 이날이 ‘롯데 재벌 탄생’이 결정된 날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신격호 회장이 일본에서 번 돈을 탐냈다. 롯데제과의 껌이 불량식품 단속에 걸린 것을 계기로 일본 자금을 국내에 들여와 호텔을 경영하라고 신 회장을 압박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압박’이 아니라 ‘특혜’가 되고 말았다. 손 교수의 회고대로 롯데는 박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서울 중심지 금싸라기 땅에 있던 반도호텔을 인수했고, 역시 서울 핵심 중심부에 롯데백화점을 지을 수 있었다. 게다가 롯데의 자금 대부분은 ‘외국 자본’으로 인정받아 외자도입법에 의해 각종 세금도 감면받았다. 오늘날 재계 서열 5위 롯데 재벌은 이렇게 박정희 군사정부의 후원 아래 ‘외국 자본’의 자격으로 특혜를 누리며 탄생한 것이다.

롯데는 이후에도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88올림픽 전까지 잠실벌에 그럴싸한 위락 시설을 짓고 싶어 했던 전두환 정부의 후원 아래 롯데는 롯데월드를 차지했다. 이 과정에서도 롯데의 자금 대부분은 ‘외국 자본’으로 인정받아 세금 감면 혜택을 누렸다. 또 롯데는 이명박 정부의 후원(정부가 성남 공항 활주로 문제까지 나서서 해결해 줄 정도의 막강한 후원)에 힘입어 제2롯데월드를 손에 넣었다.

이처럼 정부와 끈끈한 유착 관계로 승승장구했던 롯데에게 몹쓸 습관이 하나 생겼다. 정부가 대놓고 밀어주니 롯데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유통과 레저를 중심으로 커 온 롯데에게 소비자는 그나마 ‘조금은 존중해주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납품하는 중소 업체들은 그야말로 자신들의 밥이었다.

롯데 갑질’. 1967년 한국에 진출한 이래 롯데의 문화를 가장 잘 설명하는 ‘고유명사’다. 대형 유통업체들의 갑질이야 워낙 전통이 깊은 것이긴 하지만 그 중 ‘롯데 갑질’은 그 강도와 악질성 면에서 단연코 압도적이라는 것이 중소업체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롯데 갑질’은 다른 대형 유통업체의 갑질과 구분 지어 마땅하다는 의미에서 거의 고유명사화 해 사용된다.

청년유니온은 지난달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서비스부문 청년착취대상 시상식을 열었다. 시상식에서는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을 대신해 롯데월드 마스코트 로티가 상장을 받았다. ⓒ김철수 기자



경영권 분쟁보다 더 중요한 롯데 갑질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27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1998년 7월 24일자 <한겨레신문> 경제면 기사 제목이다. ‘롯데, 맏형답지 못하게…, 할인판매 허위과장광고 등 공정위 시정명령 독차지

이번에는 시계추를 최근으로 당겨보자. 2015년 9월 7일 <한국일보> 경제면 뉴스 제목이다. ‘롯데그룹, 불공정 행위 1위 불명예

20여 년이 지나도 불공정거래 지존 롯데의 위세는 변함이 없다. 그들은 1998년에도 공정위의 최고 고객이었고, 2015년에도 여전히 국내 최대 기업 삼성을 제치고 불공정 거래계의 원톱을 차지한다.

최근 나라 전체가 롯데그룹 신 씨 문중의 아귀다툼으로 시끄럽다. 손가락으로 누구를 해임했느니 아니니, 그게 불법이니 아니니부터 시작해서 아비의 비서가 누구니 아니니, 아비 정신이 멀쩡하니 혼미하니 등 충효를 제일의 덕목으로 여기는 한국 정서와 온통 동떨어진 뉴스들이 언론사 경제면을 도배한다. 듣도 보도 못한 일본 광윤사라는 골판지 제조업체의 지배구조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존재 자체가 알려지지 않았던 L투자회사의 주소지가 신격호 회장 주소지와 같다는 ‘국민이 전혀 알 필요 없는’ 사실도 중요 뉴스로 취급된다.

롯데그룹 창업자 신격호와 그의 장남 신동주, 차남 신동빈 등 3부자가 벌이는 이 패륜의 쇼는 언제 끝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정작 국민은 이 패륜 쇼를 재미지다고 생각은 하는데, 누가 이기느냐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신동주와 신동빈의 경영권 분쟁을 경제학 관점에서 한마디로 요약하면 ‘봉건 경영 vs 신자유주의 경영’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아비의 권한을 등에 입은 장남 신동주는 ‘손가락 해임’을 당연시하는 롯데 특유의 봉건 경영의 편에 서 있다. 반면 미국 유학파인 차남 신동빈은 “가족과 경영의 분리”를 주장하며 개방 경영을 신조로 이에 맞섰다.

논리적으로만 보면, 합리적 경영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라면 신동빈을, 유교적 시각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라면 신동주를 지지할 법하다. 하지만 실제 여론은 그 누구도 지지하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봉건경영을 하건 신자유주의 경영을 하건, 유통업계 질서의 정점에 서서 자신들보다 하위에 있는 사업자들을 사정없이 깔고 뭉개는 ‘롯데만의 갑질 문화’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유구한 갑질의 역사, 다 적기도 불가능하다

유통업계에서는 뒷돈을 챙겨주지 않으면 롯데 그룹에 납품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이미 비밀이 아니다. 얼마나 ‘롯데 갑질’이 대단했으면 지난달 27일 소상공인연합회 최승재 회장이 관세청에 방문해 면세점 특허권 연장에 대해 엄정한 심사를 촉구하면서 “롯데그룹은 면세점 사업으로 많은 수익을 냈지만 다른 기업들과 달리 소상공인들과 소통도 부족하고 상생과는 거리가 먼 경영을 일관하고 있다. 심사에 꼭 참고가 됐으면 한다”고 딴지를 놓을 정도였다.

심지어 2013년에는 아예 ‘롯데 재벌 피해자 모임’이라는 단체가 출범했다. 세븐일레븐-바이더웨이 가맹점주협의회와 전국유통상인연합회, 롯데월드 임차상인 비상대책위원회 등이 결성한 이 모임은 설립 취지를 설명하면서 “오죽하면 특정 재벌로는 처음으로 ‘롯데 재벌 피해자 모임’을 출범했겠느냐?”라며 절절한 심정을 호소했다. 피해자모임은 “생활고를 호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과로사로 사망한 편의점주, 과도한 매출 달성 압박으로 투신자살한 롯데백화점 입주업체 직원 등 비극적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롯데그룹과 신동빈 회장은 단 한 번도 잘못을 인정한 적도, 공식 사과를 한 적도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2014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프로야구 시즌이 개막한 4월부터 6월까지 롯데 자이언츠 최하진 대표가 원정경기 숙소 호텔을 찾아 “선수들을 관리해야 한다”며 새벽 1~7시 호텔 CCTV 촬영 내용을 모두 확인한 것이다. 롯데 자이언츠는 원정 숙소에 설치된 CCTV의 위치를 꼼꼼히 확인(우리 선수들이 잘 찍히나)하는 등 성년이 된 프로야구 선수들의 사생활을 감시하는 데에 온 힘을 다했다. 그해 5월 선수들이 울산 롯데호텔에서 CCTV 감시가 이뤄진다는 사실을 알고 이에 항의하면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는데,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를 공식적인 인권침해로 규정하기도 했다.

사실 ‘롯데 갑질’은 역사가 너무 깊고, 사례도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다. 이른바 ‘형제의 난’이 발생한 이후에도 몸에 밴 롯데 갑질은 멈추지 않았다. 올해 9월에는 김천의 한 롯데마트 과장급 직원이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민주노총은 “해당 롯데마트에 부과된 과징금을 회사가 아닌 자신이 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그 과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마냥 민주노총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볼 수만은 없는 이유가 있다. 이런 일이 한두 번 일어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2013년에도 롯데백화점 구리점과 청량리점에서 협력업체 직원이 잇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두 사건 역시 과도한 매출 압박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가 자살의 원인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앞에서 언급한 일련의 사태들이 모두 ‘선진 경영’을 신조로 내건 신동빈 회장 시대에 벌어진 일들이라는 점이다. 새정치연합 신학용 의원이 9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의하면 롯데는 2005년 이후 10년 동안 공정위 소관의 법을 위반한 건수가 모두 147건이었다. 삼성(139건)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한 것이다. 그런데 신동빈 회장이 한국 롯데의 그룹 경영 일선에 나선 것이 2004년(롯데 정책본부장)부터였다. ‘신동빈의 롯데’ 역시 갑질 측면에서 ‘신격호의 롯데’와 차별성이 없었던 셈이다.

부산지역 22개 단체로 구성된 좋은롯데만들기 부산운동본부가 9월 17일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지하 1층 입구에서 출범을 선포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롯데는 언제 상생을 외쳤나?

롯데그룹은 창사 이래 줄곧 정권과 긴밀한 유착을 이어왔다. 이 덕에 ‘롯데 갑질’이 사회적 물의를 빚어도 별 위기를 겪지 않았다. 그런데 이명박 전 대통령과 라이벌 관계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정권을 잡으면서 롯데의 신세가 처량해졌다. 2013년 롯데홈쇼핑이 세무조사를 맞아 600억 원대의 추징금을 물은 것은 전주곡이었다. 이듬해인 2014년 납품업체로부터 수십 억 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롯데백화점 임직원 24명이 무더기로 검찰에 기소됐다.

검찰 수사결과 롯데홈쇼핑 간부들은 납품업체들로부터 “자동차를 사는 데 돈을 보태라” “생활비가 필요하다”는 등 다양한 명목으로 돈을 뜯었고, 심지어 “이혼한 전처에게 생활비로 매달 300만 원을 보내라”는 황당한 요구도 내세웠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신동빈 회장은 사건 경위를 듣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격노했다고 한다. 수십 년 동안 업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롯데 갑질’을 왜 신 회장은 그제야 알고 격노했는지(혹은 격노하는 척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롯데그룹은 최근 들어 유난히 상생을 자주 강조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롯데가 상생을 강조하는 시기가 공교롭게도(!) 꼭 롯데가 무슨 사고를 친 직후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납품 비리가 드러나 롯데홈쇼핑이 홈 쇼핑 업계에서 퇴출 1순위로 거론됐을 때 롯데는 ‘목숨을 건’ 상생 방안을 발표했다. 사건 초기였던 2014년 7월 롯데는 임직원이 직접 투표해 정한 윤리헌장을 발표했고, 8월에는 협력사의 요청을 귀담아듣는 ‘리스너 제도’를 도입했다. 12월에는 회사 내부의 부정과 비리, 취약분야 점검 및 개선을 위해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청렴 옴부즈만’도 발족했다. 2015년 1월에는 협력업체와 고객 불만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결하기 위해 연간 50억 원의 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눈물겨운 노력 끝에 롯데홈쇼핑은 “탈락이 확실하다”는 여론을 뒤집고 올해 4월 방통위로부터 ‘극적으로’ 홈쇼핑 TV 사업자로 다시 승인받았다.

2012년 재벌 유통업체들의 골목상권 침해가 사회문제가 됐을 때도 롯데는 ‘유통산업발전협의체’를 구성하며 중소 업체들과 상생을 외쳤다. 그래서 겨우 정부의 규제와 여론의 질타에서 벗어나자 롯데는 다시 갑질을 시작했다. 그들의 갑질이 멈추지 않았다는 것은 이듬해 ‘롯데 재벌 피해자 모임’이라는 단체가 출범한 사실에서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롯데는 면세점 특허권 연장 심사를 앞둔 지난달에도 ‘상생 2020 선포식’을 열고 2020년까지 1,500억 원의 상생기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기존에 롯데가 운영해 온 면세점이 ‘형제의 난’으로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또 상생을 들고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허공 속의 공약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롯데는 최근 거의 1년에 한 번씩 상생 공약을 밝히는 중이다. 이는 롯데가 상생을 잘하려 하기 때문이 아니라, 매번 말만 뱉고 안 지키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고 보는 게 훨씬 합리적이다.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지난달 8일 오전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는 긴급기자회견에서 부인 조은주 씨가 발표문을 대독하고 있다. ⓒ김철수 기자


롯데의 역사를 살펴보면 ‘롯데 갑질’은 멈추지 않는 기관차와도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위기에 처할 때만 ‘상생’을 외친다. 이는 신격호의 봉건 경영에서도, 신동빈의 자유주의 경영에서도 불변의 사실이었다. 신격호-신동주 부자와 신동빈 회장에게 지금 벌어지는 경영권 분쟁은 “내가 롯데의 주인이다”를 가리는 한판 격전일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와 시민사회는 이를 본질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문제의 본질은 아비가 이기느냐 차남이 이기느냐가 아니다. 이야말로 “아무나 이겨라” 하고 무시해도 괜찮은 문제다. 더 중요한 것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50년 가까이 소비자와 중소 납품업체에 갑질을 멈추지 않았던 롯데의 문화를 바꿀 수 있느냐이다.

한 번도 을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 신동주-신동빈 형제에게 “‘롯데 갑질’을 제발 멈춰 달라”고 공손히 청하는 것은 누가 봐도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일이다. 신 씨 형제에게 맡기는 방식으로는 ‘롯데 갑질’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그들의 횡포를 멈추기 위해서는 경영권 분쟁의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강력한 제재와 시민사회의 보다 강도 높은 개입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출처  ‘갑질의 전설’ 롯데는 언제 상생을 외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