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에게 성폭력 범죄 저지른 국정원 직원 처벌하라”
[토요판] 뉴스분석 왜?
좌익효수 재판회부
[한겨레] 허재현 기자 | 등록 : 2015-12-11 19:41 | 수정 : 2015-12-12 11:30
검찰(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이 2012년 대선 때 ‘좌익 효수’란 아이디로 활동했던 국가정보원 직원(41)을 지난달 26일 불구속 기소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관련해 일반 직원에 대한 기소는 이번이 처음이다. 2013년 6월 검찰은 원세훈 국정원장 등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한 적은 있으나 심리전단(심리정보국) 일반 직원들에 대해서는 불기소 처분한 바 있다. 윗선의 지시로 벌어진 일임을 참작해 불기소했다는 게 당시 검찰(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사건 특별수사팀)의 전반적 설명이었다.
그런데 최근 좌익효수는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이 아닌 대공수사국 소속 직원이었던 것으로 드러나 눈길을 끈다. 심리전단 외에 다른 부서에서도 대선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또 그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수사가 한창이던 2012년 말부터 2013년 초까지 피의자 유우성(35)씨의 동생 유가려 씨의 심문에도 관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간첩 증거 조작 사건’과 ‘대선 개입 사건’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여러 의문의 지점들을 짚어봤다. 좌익효수에 대한 재판은 곧 시작된다.
좌익효수. 좌익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달아 놓는다(梟首)는 뜻이다. 이 섬뜩한 아이디를 사용한 국정원 직원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검찰이 2013년 6월 원세훈 국정원장의 범죄 사실을 밝히고 언론이 범죄일람표를 인터넷에 공개하면서다. 검찰은 좌익효수 아이디를 밝히지 않았지만, 언론에 공개된 범죄일람표 글을 토대로 누리꾼이 역추적에 나서면서 좌익효수라는 아이디가 드러났다. 좌익효수는 상식 이하의 막말과 특정인에 대한 모욕, 정치관여 글을 남겼다. 그는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등에 “아따 전(두환) 장군께서 확 밀어버리셨어야 하는디 아따”, “홍어 종자 절라디언들은 죽여버려야 한다” 등의 글을 남겼다. 이 외 2011년 4월 5일 국회의원 보궐선거(분당을)에 출마한 손학규 전 민주당 의원을 두고 “손학규는 배신자라는 콘셉트가 너무 강하고 좌익으로 변절한 매국노”라고 글을 쓰거나, 2012년 12월 11일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를 향해 “김×× 동무와 손잡고 고향으로 돌아가라. 이제 너의 시체팔이 진저리난다” 등의 글을 남겼다.
특히 좌익효수는 야권 성향의 인터넷 방송인 이경선(46·일명 망치부인)씨와 그의 딸에게 막말성 글을 썼는데 그는 디시인사이드 게시판에 “망부 저 씨×련은 북괴 빨갱이 편에서 이야기하죠.”(2011년 1월 16일)라고 쓰고, 이경선 씨의 딸(당시 초등학교 6학년)의 사진을 두고 “거참 ×까치 생겼네. 지 애미처럼. 저×도 커서 빨갱이 될 거 아님? 운동권 애들한테 조낸 ×××”(2011년 1월 15일)라고 썼다.
이 씨는 좌익효수를 검찰에 국가정보원법상 정치관여죄 및 형법상 명예훼손죄 혐의로 2013년 10월 7일 고소했다. 검찰은 그러나 좌익효수를 지난해 6월 한차례 조사만 한 뒤 아무런 조처가 없었다. 그러다 고소 접수 25개월 만인 지난달 26일 불구속 기소(국가정보원법 위반 및 형법 모욕죄)했다.
좌익효수 재판에서 중요하게 살펴볼 지점은 과연 좌익효수가 한 행동이 개인적이었나 하는 점이다. 어쩌면 심리전단 외의 국정원 직원들도 대선에 개입했고 그중 한 명의 흔적이 돌발적으로 나타난 것일 수 있다. 좌익효수는 간첩 사건 등을 맡는 대공수사국 소속 5급 공무원이다. 5급은 국정원에서 보통 과장 직급 이전의 관리자급 직책을 맡는다.
신경민 국회 정보위원회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헌수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은 최근 신 의원을 찾아 좌익효수가 국정원에 한 소명 내용을 전했다. 좌익효수는 ‘내 진심이 아니었다. 원세훈(전 국정원장) 등의 압박이었다. 내 배우자가 호남 출신인데 그런 짓을 하겠느냐’는 취지로 소명하며 국정원의 대기발령 조처를 억울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좌익효수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심리전단 직원 외에도 또 다른 국정원 직원들이 원세훈 전 원장의 지시로 정치 댓글을 달았을 가능성이 있다. 좌익효수가 남긴 정치 댓글은 누리꾼이 찾아낸 것만 3,000여 개다. 과연 바쁜 업무시간에 이 정도 글을 어떻게 남길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 규모다. 누리꾼이 찾아내지 못한 다른 글이 더 있을 수 있다. 좌익효수라는 아이디 외에 다른 아이디로 어떤 글을 남겼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좌익효수가 남긴 글의 내용을 보면, 심리전단이 대선개입 행위를 하며 남긴 글들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심리전단 직원이 남긴 글은 대체로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칭찬하거나 야권 대선 후보의 정책을 비판하는 등 상대적으로 차분한 편이다. 반면 좌익효수가 남긴 글은 과격하고 공격적이다. 특정인에 대한 공격이 감정적으로 비칠 정도로 많다. 이 때문에 좌익효수의 글은 개인적인 일탈로 비치기도 한다. ‘원세훈 등의 압박이었다’고 한 주장은 어쩌면 윗선의 핑계를 대고 빠져나가려 한 변명일 수 있다. 진실은 좌익효수의 재판을 지켜보며 찾아가야 한다.
“홍어, 절라디언” 등 막말 댓글
국정원 직원 ‘좌익효수’ 재판 회부
검찰이 25개월만에 기소 결정
개인 일탈인가, 조직적 범죄인가
“원세훈 압박 있었다며 억울해 해”
좌익효수 징계했다는 국정원 보고
허위로 드러나고 간첩조작사건에
관여했던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좌익효수 고소한 인터넷 방송인
이경선씨 “딸이 아직도 힘들어해”
‘좌익효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실마리를 잡으려면 좌익효수에게 공격당한 당사자인 이경선 씨가 지난 몇 년간 겪은 일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의 경험을 관찰해보면 좌익효수가 과연 한 명이었는지 의심해볼 만한 정황이 있다. 검찰이 운영했던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사건 특별수사팀’은 2013년 8월 “국정원(심리전단)이 민간인 외부 조력자를 동원해 매월 300만 원의 활동비를 지급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경선 씨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 씨는 2009년께부터 우익 성향의 누리꾼으로부터 집단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진행하는 아프리카방송 ‘망치부인의 시사수다방’ 채팅창에 ‘홍어’라는 글이 도배되었다. 그때만 해도 호남을 비하하는 홍어라는 말은 지금처럼 광범위하게 유행하던 시기가 아니다. 이씨가 인터넷 시사 방송을 시작한 것은 2007년 1월부터이고 원세훈 국정원장은 2009년 2월 취임했다. 그러나 이 씨는 당시 자신을 공격하는 누리꾼들이 국정원과 연계되어 있을 것이란 의심은 하지 못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으로 논란이 커지던 2013년 7월 초 이 씨의 방송 채팅방에 한 일베 성향의 누리꾼이 ‘좌익효수 닉네임은 우리가 공유하는 것이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는 모 커뮤니티에 적혀 있다’고 말한 뒤 사라졌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국정원이 아이디를 만들고 민간인이 이를 활용해 좌파를 공격하도록 했다는 뜻이다. 다만 이 누리꾼이 갑자기 폭로하고 사라진 주장을 현재로선 검증할 방법이 없다.
이 씨와 그의 딸이 좌익효수를 고소까지 하게 한 문제의 성폭력 글은 2011년 1월 15일 작성됐다. 디시인사이드 커뮤니티에는 이즈음 ‘연북갤(연평도북괴도발갤러리) 사건’이 터졌다고 한다. 이곳에서 누리꾼들은 ‘망치부인의 딸을 강간하고 싶다’는 등의 글을 남겼고 이러한 글들에 문제의식을 느낀 ‘야구갤’과 ‘코미디갤’ 누리꾼들이 연북갤 누리꾼과 ‘전쟁’을 벌였다고 한다. 좌익효수는 이때 그 성폭력 댓글을 달았다.
2012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 직후 수십 명의 누리꾼이 다시 나타나 ‘이경선 씨의 딸을 납치해 강간하고 토막살인하겠다’며 자신들이 직접 인터넷 방송을 진행했다. 방송 화면에는 이 씨 딸 사진을 걸어두었다. 이경선 씨는 서울중앙지검에 이들을 고소했다. 수사 결과 이들은 포항지역 주부들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경기도 일대 피시방에서 인터넷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 일부가 대구지검으로 이첩됐으나 결국 검찰은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한 누리꾼을 대부분 찾지 못하고 불기소 처분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3월에도 같은 수법의 범죄를 저지른 누리꾼이 나타났는데 경찰 수사 결과 이들 누리꾼 역시 포항지역 주부들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이 씨는 자신을 지난해까지 괴롭힌 누리꾼 집단이 국정원의 지원을 받아 활동한 것 아닌지 의심한다. 좌익효수 한 명의 수사로 끝날 사안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좌익효수 재판과 별도로 국정원이 그동안 해온 거짓 해명 또한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좌익효수가 세상에 드러났을 때인 2013년 7월 4일 국정원은 보도자료를 내어 “(좌익효수는) 국정원 직원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며 “거짓 내용을 유포한 사람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좌익효수에 대해 공개 문제를 제기해온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그러나 국정원은 아직 진선미 의원을 고소하지 않았다. 검찰 수사로 좌익효수는 국정원 직원임이 밝혀진 상황이다. 국정원 스스로도 좌익효수라는 아이디를 쓴 ‘41세 남자 국정원 직원’을 징계했다고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한 상태다. 궁지에 몰렸던 국정원이 당시 거짓말로 언론 플레이를 한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국정원은 이전에도 거짓 보도자료를 낸 적이 있다. 국정원은 “국정원은 이번 대선 관련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일체의 정치적 활동은 한 적이 없다”(2012년 12월 11일), “(국정원 직원) 김 씨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인터넷 댓글을 게재한 사실이 없다”(2013년 1월 31일)고 주장했었다.
국정원은 또 최근까지 좌익효수를 징계하지 않고 국회에 거짓 보고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은 지난해 11월 국회에 “좌익효수 직원은 대기발령 됐다”고 보고했지만, 실제로는 올해 11월 대기발령 조처가 있었다고 이병호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에 다시 보고했다. 신경민 의원이 수개월간 집요하게 확인한 끝에 얻어낸 답변이었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지난달 24일 “(좌익효수 직원에게)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던 것은 확실하나 수사 중이라 정식 징계 절차는 적절치 않다. 수사가 끝나면 징계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국회에서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국회에 왜 허위 보고를 했는지에 대해선 소명하지 않았다. 이병호 원장은 심지어 지난달 중순까지 좌익효수가 쓴 글이 정확히 무엇인지 내부에서 제대로 보고받지 못했다고 국회에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신경민 의원은 10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국정원이 박근혜의 국정원 개혁 약속 이후에도 좌익효수를 감싸고 있었던 것이 드러났다. 국회에서 계속 감시하지 않았다면 좌익효수는 되레 승진했을지도 모른다. 국정원이 국민에게 개혁을 약속한 것을 더이상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또 “좌익효수가 원세훈의 압박으로 그러한 글을 썼다고 소명하는데 심리전단 직원들도 똑같이 그런 소명을 했다. 문제가 드러났을 때 빠져나가는 어떤 매뉴얼이 내부에 있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또 하나 의문점은 2013년 1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이 세상에 전해지는 과정과 관련한 것이다. 당시 세간에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물타기 하려고 국정원이 대형 간첩 사건을 터뜨린 것 아니냐는 의심이 많았다. 결국, 이 사건은 조작사건으로 확인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좌익효수는 유가려 씨에게 허위진술을 하게 한 심문에 개입한 대공수사국 직원임이 뒤늦게 확인된 것이다. 신경민 의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국정원 2차장으로부터 지난달 30일 확인받았다.
유가려 씨는 2012년 11월 말까지 합동심문센터 심문에서 ‘오빠(유우성)는 간첩이 아니다’는 태도를 유지하다 서울에서 찾아온 대공수사국 직원들이 심문을 시작하면서 ‘오빠가 간첩이다’라고 허위진술을 시작했다. 다음 해 1월 느닷없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이 발표됐다. 좌익효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심문에 개입했는지 더는 알려진 게 없어 분석이 어렵지만 우연치고는 좀 절묘한 편이다.
이경선 씨는 2013년 좌익효수의 글을 문제 삼아 정부를 상대로 1억 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이정호 부장판사)는 지난 9월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법원은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좌익효수가 국정원 직원이라고 인정하기 어렵고 또 좌익효수의 댓글 작성 행위가 국정원 직원의 업무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씨는 항소한 상태다. 좌익효수가 국정원 직원임이 확인됐고 검찰 기소가 이뤄진 상황이라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도 관심거리다.
이 씨는 8일 <한겨레>와 만나 자신의 딸이 좌익효수의 글 때문에 여전히 힘들어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씨는 “얼마 전 딸이 꿈에서 한 남자가 스토커처럼 따라와 집에서 나오라고 부르는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려 비명을 지르다 깨어났다. 어린아이 사진을 보면서 그런 성적 모욕 글을 남기고 싶었는지, 그게 국정원 직원의 할 일이라고 정말 생각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박근혜는 지난해 9월 국무회의에서 “사이버상의 국론을 분열시키고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도를 넘어서고 있어 사회의 분열을 가져오고 있다. 이런 상태를 더 이상 방치한다면 국민들의 불안이 쌓이게 돼서 걷잡을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인터넷상에서 박근혜를 비판하는 글이 늘고 있는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 검찰은 박근혜의 발언 직후 명예훼손 수사전담팀까지 꾸려 ‘누리꾼 드잡이’를 한 바 있다. 그러는 와중에 좌익효수의 사건은 캐비닛 속에 묻어두었다. 사이버 명예훼손에 대한 검찰 수사의 칼날이 어느 한쪽에만 날카로운 것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상호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10일 <한겨레>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되는 것을 지켜보고 좌익효수가 남긴 글이 대선 개입 사건과 관련된 것인지 재검토하느라 기소가 늦어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정원은 <한겨레>의 질문에 “현재 재판 중인 사안과 관련해서는 어떤 해명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출처 “내 딸에게 성폭력 범죄 저지른 국정원 직원 처벌하라”
[토요판] 뉴스분석 왜?
좌익효수 재판회부
[한겨레] 허재현 기자 | 등록 : 2015-12-11 19:41 | 수정 : 2015-12-12 11:30
▲ 18대 대선 때 전라도 비하 발언 등 정치 댓글을 남긴 국가정보원 직원 좌익효수(41·남)를 고소했던 인터넷 방송인 이경선 씨가 8일 오전 서울 도봉구 창동 자신의 집에서 검찰의 좌익효수 기소 통보 관련 서류를 들고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재판에 회부된 좌익효수는 “원세훈의 압력으로 글을 썼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강재훈 선임기자
▶ 좌익효수라는 섬뜩한 아이디로 정치 댓글을 수천 개 남겼던 국가정보원 직원을 기억하십니까. 검찰이 최근 이 직원에 대한 기소를 결정했습니다. 고소가 이뤄진 지 무려 25개월 만입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기소된 국정원 일반 직원은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좌익효수는 재판 과정에서 어떤 주장을 할까요. 과연 좌익효수 개인의 일탈일까요. 국정원은 왜 좌익효수가 국정원 직원이 아니라고 거짓말했던 걸까요. 재판을 지켜보면 새로운 비밀이 드러날지 모릅니다.
검찰(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이 2012년 대선 때 ‘좌익 효수’란 아이디로 활동했던 국가정보원 직원(41)을 지난달 26일 불구속 기소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관련해 일반 직원에 대한 기소는 이번이 처음이다. 2013년 6월 검찰은 원세훈 국정원장 등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한 적은 있으나 심리전단(심리정보국) 일반 직원들에 대해서는 불기소 처분한 바 있다. 윗선의 지시로 벌어진 일임을 참작해 불기소했다는 게 당시 검찰(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사건 특별수사팀)의 전반적 설명이었다.
그런데 최근 좌익효수는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이 아닌 대공수사국 소속 직원이었던 것으로 드러나 눈길을 끈다. 심리전단 외에 다른 부서에서도 대선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또 그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수사가 한창이던 2012년 말부터 2013년 초까지 피의자 유우성(35)씨의 동생 유가려 씨의 심문에도 관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간첩 증거 조작 사건’과 ‘대선 개입 사건’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여러 의문의 지점들을 짚어봤다. 좌익효수에 대한 재판은 곧 시작된다.
좌익효수 혼자서 남긴 글일까
좌익효수. 좌익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달아 놓는다(梟首)는 뜻이다. 이 섬뜩한 아이디를 사용한 국정원 직원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검찰이 2013년 6월 원세훈 국정원장의 범죄 사실을 밝히고 언론이 범죄일람표를 인터넷에 공개하면서다. 검찰은 좌익효수 아이디를 밝히지 않았지만, 언론에 공개된 범죄일람표 글을 토대로 누리꾼이 역추적에 나서면서 좌익효수라는 아이디가 드러났다. 좌익효수는 상식 이하의 막말과 특정인에 대한 모욕, 정치관여 글을 남겼다. 그는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등에 “아따 전(두환) 장군께서 확 밀어버리셨어야 하는디 아따”, “홍어 종자 절라디언들은 죽여버려야 한다” 등의 글을 남겼다. 이 외 2011년 4월 5일 국회의원 보궐선거(분당을)에 출마한 손학규 전 민주당 의원을 두고 “손학규는 배신자라는 콘셉트가 너무 강하고 좌익으로 변절한 매국노”라고 글을 쓰거나, 2012년 12월 11일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를 향해 “김×× 동무와 손잡고 고향으로 돌아가라. 이제 너의 시체팔이 진저리난다” 등의 글을 남겼다.
특히 좌익효수는 야권 성향의 인터넷 방송인 이경선(46·일명 망치부인)씨와 그의 딸에게 막말성 글을 썼는데 그는 디시인사이드 게시판에 “망부 저 씨×련은 북괴 빨갱이 편에서 이야기하죠.”(2011년 1월 16일)라고 쓰고, 이경선 씨의 딸(당시 초등학교 6학년)의 사진을 두고 “거참 ×까치 생겼네. 지 애미처럼. 저×도 커서 빨갱이 될 거 아님? 운동권 애들한테 조낸 ×××”(2011년 1월 15일)라고 썼다.
이 씨는 좌익효수를 검찰에 국가정보원법상 정치관여죄 및 형법상 명예훼손죄 혐의로 2013년 10월 7일 고소했다. 검찰은 그러나 좌익효수를 지난해 6월 한차례 조사만 한 뒤 아무런 조처가 없었다. 그러다 고소 접수 25개월 만인 지난달 26일 불구속 기소(국가정보원법 위반 및 형법 모욕죄)했다.
좌익효수 재판에서 중요하게 살펴볼 지점은 과연 좌익효수가 한 행동이 개인적이었나 하는 점이다. 어쩌면 심리전단 외의 국정원 직원들도 대선에 개입했고 그중 한 명의 흔적이 돌발적으로 나타난 것일 수 있다. 좌익효수는 간첩 사건 등을 맡는 대공수사국 소속 5급 공무원이다. 5급은 국정원에서 보통 과장 직급 이전의 관리자급 직책을 맡는다.
신경민 국회 정보위원회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헌수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은 최근 신 의원을 찾아 좌익효수가 국정원에 한 소명 내용을 전했다. 좌익효수는 ‘내 진심이 아니었다. 원세훈(전 국정원장) 등의 압박이었다. 내 배우자가 호남 출신인데 그런 짓을 하겠느냐’는 취지로 소명하며 국정원의 대기발령 조처를 억울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좌익효수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심리전단 직원 외에도 또 다른 국정원 직원들이 원세훈 전 원장의 지시로 정치 댓글을 달았을 가능성이 있다. 좌익효수가 남긴 정치 댓글은 누리꾼이 찾아낸 것만 3,000여 개다. 과연 바쁜 업무시간에 이 정도 글을 어떻게 남길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 규모다. 누리꾼이 찾아내지 못한 다른 글이 더 있을 수 있다. 좌익효수라는 아이디 외에 다른 아이디로 어떤 글을 남겼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좌익효수가 남긴 글의 내용을 보면, 심리전단이 대선개입 행위를 하며 남긴 글들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심리전단 직원이 남긴 글은 대체로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칭찬하거나 야권 대선 후보의 정책을 비판하는 등 상대적으로 차분한 편이다. 반면 좌익효수가 남긴 글은 과격하고 공격적이다. 특정인에 대한 공격이 감정적으로 비칠 정도로 많다. 이 때문에 좌익효수의 글은 개인적인 일탈로 비치기도 한다. ‘원세훈 등의 압박이었다’고 한 주장은 어쩌면 윗선의 핑계를 대고 빠져나가려 한 변명일 수 있다. 진실은 좌익효수의 재판을 지켜보며 찾아가야 한다.
“홍어, 절라디언” 등 막말 댓글
국정원 직원 ‘좌익효수’ 재판 회부
검찰이 25개월만에 기소 결정
개인 일탈인가, 조직적 범죄인가
“원세훈 압박 있었다며 억울해 해”
좌익효수 징계했다는 국정원 보고
허위로 드러나고 간첩조작사건에
관여했던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좌익효수 고소한 인터넷 방송인
이경선씨 “딸이 아직도 힘들어해”
포항 주부 주민번호 도용 사건 미스터리
‘좌익효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실마리를 잡으려면 좌익효수에게 공격당한 당사자인 이경선 씨가 지난 몇 년간 겪은 일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의 경험을 관찰해보면 좌익효수가 과연 한 명이었는지 의심해볼 만한 정황이 있다. 검찰이 운영했던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사건 특별수사팀’은 2013년 8월 “국정원(심리전단)이 민간인 외부 조력자를 동원해 매월 300만 원의 활동비를 지급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경선 씨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 씨는 2009년께부터 우익 성향의 누리꾼으로부터 집단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진행하는 아프리카방송 ‘망치부인의 시사수다방’ 채팅창에 ‘홍어’라는 글이 도배되었다. 그때만 해도 호남을 비하하는 홍어라는 말은 지금처럼 광범위하게 유행하던 시기가 아니다. 이씨가 인터넷 시사 방송을 시작한 것은 2007년 1월부터이고 원세훈 국정원장은 2009년 2월 취임했다. 그러나 이 씨는 당시 자신을 공격하는 누리꾼들이 국정원과 연계되어 있을 것이란 의심은 하지 못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으로 논란이 커지던 2013년 7월 초 이 씨의 방송 채팅방에 한 일베 성향의 누리꾼이 ‘좌익효수 닉네임은 우리가 공유하는 것이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는 모 커뮤니티에 적혀 있다’고 말한 뒤 사라졌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국정원이 아이디를 만들고 민간인이 이를 활용해 좌파를 공격하도록 했다는 뜻이다. 다만 이 누리꾼이 갑자기 폭로하고 사라진 주장을 현재로선 검증할 방법이 없다.
이 씨와 그의 딸이 좌익효수를 고소까지 하게 한 문제의 성폭력 글은 2011년 1월 15일 작성됐다. 디시인사이드 커뮤니티에는 이즈음 ‘연북갤(연평도북괴도발갤러리) 사건’이 터졌다고 한다. 이곳에서 누리꾼들은 ‘망치부인의 딸을 강간하고 싶다’는 등의 글을 남겼고 이러한 글들에 문제의식을 느낀 ‘야구갤’과 ‘코미디갤’ 누리꾼들이 연북갤 누리꾼과 ‘전쟁’을 벌였다고 한다. 좌익효수는 이때 그 성폭력 댓글을 달았다.
2012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 직후 수십 명의 누리꾼이 다시 나타나 ‘이경선 씨의 딸을 납치해 강간하고 토막살인하겠다’며 자신들이 직접 인터넷 방송을 진행했다. 방송 화면에는 이 씨 딸 사진을 걸어두었다. 이경선 씨는 서울중앙지검에 이들을 고소했다. 수사 결과 이들은 포항지역 주부들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경기도 일대 피시방에서 인터넷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 일부가 대구지검으로 이첩됐으나 결국 검찰은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한 누리꾼을 대부분 찾지 못하고 불기소 처분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3월에도 같은 수법의 범죄를 저지른 누리꾼이 나타났는데 경찰 수사 결과 이들 누리꾼 역시 포항지역 주부들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이 씨는 자신을 지난해까지 괴롭힌 누리꾼 집단이 국정원의 지원을 받아 활동한 것 아닌지 의심한다. 좌익효수 한 명의 수사로 끝날 사안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좌익효수 재판과 별도로 국정원이 그동안 해온 거짓 해명 또한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좌익효수가 세상에 드러났을 때인 2013년 7월 4일 국정원은 보도자료를 내어 “(좌익효수는) 국정원 직원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며 “거짓 내용을 유포한 사람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좌익효수에 대해 공개 문제를 제기해온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그러나 국정원은 아직 진선미 의원을 고소하지 않았다. 검찰 수사로 좌익효수는 국정원 직원임이 밝혀진 상황이다. 국정원 스스로도 좌익효수라는 아이디를 쓴 ‘41세 남자 국정원 직원’을 징계했다고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한 상태다. 궁지에 몰렸던 국정원이 당시 거짓말로 언론 플레이를 한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국정원은 이전에도 거짓 보도자료를 낸 적이 있다. 국정원은 “국정원은 이번 대선 관련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일체의 정치적 활동은 한 적이 없다”(2012년 12월 11일), “(국정원 직원) 김 씨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인터넷 댓글을 게재한 사실이 없다”(2013년 1월 31일)고 주장했었다.
국정원은 또 최근까지 좌익효수를 징계하지 않고 국회에 거짓 보고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은 지난해 11월 국회에 “좌익효수 직원은 대기발령 됐다”고 보고했지만, 실제로는 올해 11월 대기발령 조처가 있었다고 이병호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에 다시 보고했다. 신경민 의원이 수개월간 집요하게 확인한 끝에 얻어낸 답변이었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지난달 24일 “(좌익효수 직원에게)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던 것은 확실하나 수사 중이라 정식 징계 절차는 적절치 않다. 수사가 끝나면 징계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국회에서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국회에 왜 허위 보고를 했는지에 대해선 소명하지 않았다. 이병호 원장은 심지어 지난달 중순까지 좌익효수가 쓴 글이 정확히 무엇인지 내부에서 제대로 보고받지 못했다고 국회에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신경민 의원은 10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국정원이 박근혜의 국정원 개혁 약속 이후에도 좌익효수를 감싸고 있었던 것이 드러났다. 국회에서 계속 감시하지 않았다면 좌익효수는 되레 승진했을지도 모른다. 국정원이 국민에게 개혁을 약속한 것을 더이상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또 “좌익효수가 원세훈의 압박으로 그러한 글을 썼다고 소명하는데 심리전단 직원들도 똑같이 그런 소명을 했다. 문제가 드러났을 때 빠져나가는 어떤 매뉴얼이 내부에 있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공무원간첩조작 사건과 좌익효수
또 하나 의문점은 2013년 1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이 세상에 전해지는 과정과 관련한 것이다. 당시 세간에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물타기 하려고 국정원이 대형 간첩 사건을 터뜨린 것 아니냐는 의심이 많았다. 결국, 이 사건은 조작사건으로 확인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좌익효수는 유가려 씨에게 허위진술을 하게 한 심문에 개입한 대공수사국 직원임이 뒤늦게 확인된 것이다. 신경민 의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국정원 2차장으로부터 지난달 30일 확인받았다.
유가려 씨는 2012년 11월 말까지 합동심문센터 심문에서 ‘오빠(유우성)는 간첩이 아니다’는 태도를 유지하다 서울에서 찾아온 대공수사국 직원들이 심문을 시작하면서 ‘오빠가 간첩이다’라고 허위진술을 시작했다. 다음 해 1월 느닷없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이 발표됐다. 좌익효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심문에 개입했는지 더는 알려진 게 없어 분석이 어렵지만 우연치고는 좀 절묘한 편이다.
이경선 씨는 2013년 좌익효수의 글을 문제 삼아 정부를 상대로 1억 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이정호 부장판사)는 지난 9월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법원은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좌익효수가 국정원 직원이라고 인정하기 어렵고 또 좌익효수의 댓글 작성 행위가 국정원 직원의 업무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씨는 항소한 상태다. 좌익효수가 국정원 직원임이 확인됐고 검찰 기소가 이뤄진 상황이라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도 관심거리다.
이 씨는 8일 <한겨레>와 만나 자신의 딸이 좌익효수의 글 때문에 여전히 힘들어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씨는 “얼마 전 딸이 꿈에서 한 남자가 스토커처럼 따라와 집에서 나오라고 부르는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려 비명을 지르다 깨어났다. 어린아이 사진을 보면서 그런 성적 모욕 글을 남기고 싶었는지, 그게 국정원 직원의 할 일이라고 정말 생각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박근혜는 지난해 9월 국무회의에서 “사이버상의 국론을 분열시키고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도를 넘어서고 있어 사회의 분열을 가져오고 있다. 이런 상태를 더 이상 방치한다면 국민들의 불안이 쌓이게 돼서 걷잡을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인터넷상에서 박근혜를 비판하는 글이 늘고 있는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 검찰은 박근혜의 발언 직후 명예훼손 수사전담팀까지 꾸려 ‘누리꾼 드잡이’를 한 바 있다. 그러는 와중에 좌익효수의 사건은 캐비닛 속에 묻어두었다. 사이버 명예훼손에 대한 검찰 수사의 칼날이 어느 한쪽에만 날카로운 것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상호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10일 <한겨레>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되는 것을 지켜보고 좌익효수가 남긴 글이 대선 개입 사건과 관련된 것인지 재검토하느라 기소가 늦어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정원은 <한겨레>의 질문에 “현재 재판 중인 사안과 관련해서는 어떤 해명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출처 “내 딸에게 성폭력 범죄 저지른 국정원 직원 처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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