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해도 박수만... 박근혜의 '망언록'만 쌓여간다
[게릴라칼럼] 지도자의 막말에 당당히 맞서는 미국, 설설 기는 한국
[오마이뉴스] 강인규 | 15.12.16 11:56 | 최종 업데이트 15.12.16 12:01
나는 두 나라를 삶의 토대로 삼으며 살아가고 있다. 우선 태어나고 자란 한국이 있고, 이주 노동자로 와서 밥벌이를 하는 미국이 있다. 불행히도, 지금 두 나라를 바라보는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 없다.
미국이 안타까운 첫 번째 이유는 늘어가는 총기 사건 때문이다. 12월만 해도 캘리포니아 샌버나디오에서 난사 사건이 일어나 14명이 숨지고 22명이 다쳤다. 이제 미국에서 한두 명의 희생자를 내는 총기 사건은 '뉴스 거리'도 안 될 만큼 일상화 한 지 오래다.
미국 기준으로 적어도 4명 이상이 죽거나 다칠 때 '대량 총기 난사(mass shooting)' 사건으로 부르는데, 2015년 한 해만도 무려 350건이 넘게 발생했다. 대량 총기 난사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2014년 383명이었고, 올해는 대폭 늘어, 12월 초까지 무려 92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난사 사건의 빈도는 2014년 337건에서 크게 늘지 않은 반면, 사망자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살상능력이 큰 총기류를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대형 총기 사고가 터질 때마다 '규제' 이야기가 나오지만, 총기 소유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총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문제'라는 식의 논리를 편다.
여기서 한 술 더 떠, '총기를 규제하면 범법자들만 총을 갖게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어차피 범죄자들은 법을 무시하는 사람들이니 금지법을 만들어봐야 소용 없고, 오히려 '착한 사람'들만 자기 방어권을 잃게 되니, 아예 규제를 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들은 여기서 '더 많은 이들이 총을 갖는 게 해법'이라는 놀라운 결론을 이끌어 낸다. 총기 사건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80퍼센트 이상이 '합법적으로 구매'한 총기를 사용한다는 통계가 있는 데도 말이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고,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언어를 일그러뜨리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내 마음이 어두운 두 번째 이유다. 더욱 참담한 것은, 한국 사회의 언어 왜곡은 미국의 뺨을 쳐도 여러 대 칠 정도로 끔찍하다는 점이다. 그로 인한 결과는 단지 한 사람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수많은 국민들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참담한 결말로 이어진다.
지난해 한국에서는 1만 383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매일 38명의 국민이 자살로 사라지는 셈이다. 10만 명 당 자살자 수는 27.3명으로, 미국 자살자와 대량 총기 사건 사망자 수를 모두 합한 비율의 두 배에 달한다.
전 연령층에 걸쳐 한국인의 자살 충동 원인 1위는 '생활고'였다. 그런데도 한국의 박근혜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임금격차가 사회통합 장애물"이라면서 비정규직 임금인상 대신 '정규직 임금삭감'과 '손쉬운 해고'를 해결책으로 내놓는다.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여당 지도자는 "복지 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진다"는 기막힌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미국에서 '언어 왜곡'의 선두에 선 사람은 단연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다. "한국은 주한미군을 공짜로 데려다 쓴다," "예쁜 여자는 일할 필요가 없다," "멕시코 이민자들은 마약과 범죄를 들여온다" 등 트럼프의 '막말'은 손에 꼽기도 어려울 정도다. 이것만으로 부족했던 것일까. 그는 최근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전면 금지시켜야 한다"며 또 다른 '언어 폭탄'을 터뜨려 전세계를 경악시켰다.
지난 11월 파리에서 총기 테러가 일어났을 때, 트럼프는 '프랑스의 엄격한 총기 규제가 재앙을 키웠다'고 언성을 높였다. "만일 프랑스인들이 (미국인처럼) 총기를 소지하고 다닐 수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미국 대다수의 주가 총기 소지를 허용하지만, 미국 총기 난사 사건은 빈도나 희생자 수에서 프랑스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말이다.
그러다가 캘리포니아에서 초대형 총기 사건이 터지자, 트럼프는 '무슬림'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는 "(가해자들) 이름을 보라"며, 노골적으로 아랍계 이민자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나온 것이 "모든 무슬림의 입국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발언이었다. 무지와 정치적 계산 앞에서는, 총기 사건 대다수가 자국인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실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정치인들의 언어 왜곡은 피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정치인들이 정치적 이득을 추구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을테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 '막말'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일 것이다. 언론, 지식인, 시민사회가 '불량 언어'를 맹렬히 비판하며 맞서싸울 때, '왜곡된 언어'는 그저 개인의 '망발'로 끝날 뿐, '왜곡된 현실'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당사자 한 번 뜨겁게 데이고 나면, 무지와 탐욕이 폭로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입을 함부로 열지 못할 것이다.
미국 언론 <뉴욕타임스>, <CNN>, <MSNBC> 등은 트럼프의 '유해한 언어'를 지속적으로 비판해 왔다. 경영자들이 즐겨읽는 <포브스>까지도 '트럼프의 멕시코 이민자 발언의 허구성 폭로'라는 제목으로 이민자들의 범죄율이 자국인보다 낮다는 사실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 금지' 발언이 나오자, 시앤앤(CNN)의 프리다 기티시는 "트럼프는 미국의 크나큰 수치(Donald Trump is a huge embarrassment for America)"라며 비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미국인 대다수는 트럼프의 무슬림 발언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최근 일어난 총기 사건으로 무슬림 이민자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이 강화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도 말이다. 엔비시(NBC)와 <월스트리트>가 공동으로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말에 찬성한다고 말한 국민은 25퍼센트에 지나지 않은 반면, 57퍼센트의 미국인이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우리 사회는 정치인, 특히 박근혜의 '유해한 언어'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한국에서 '언어 왜곡'의 선두에 선 사람은 단연 새누리당 소속 박근혜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 "역사를 잘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이야기", (현재 교과서에서 '부끄러운 역사'로 보이는 게 어느 부분이냐는 질문에) "전체 책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 등 박근혜의 '막말'은 손에 꼽기도 어려울 정도다.
그것만으로 부족했던 것일까. 그는 최근 "복면 시위는 못 하도록 해야 한다"며, "IS(이슬람국가)도 지금 얼굴을 감추고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해 세계를 경악시켰다. 박근혜의 이 발언은 전세계 언론에 보도되었고, 인터넷에는 "제 나라 국민을 테러범과 비교해?... 정말 대책 없는 사람이다", "왜 그 나라는 점점 북한처럼 되는 걸까?", "정부가 역사책을 쓰겠다는 나라에서 뭘 기대해?" 등의 한심하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앨러스터 게일은 트위터에 "한국 박근혜가 마스크를 쓴 자국민 시위대를 이슬람국가에 비유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이다"라고 썼다. 정상적인 민주국가였다면, 집권당이 "실언이었다"며 황급히 사과하고 '위험관리' 모드로 돌입할 상황이었으나, 한국의 집권당인 새누리당은 박근혜의 '복면금지'를 언급한 지 단 하루 만에 '복면금지법'을 발의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세계에 충격을 안긴 몰상식한 발언이 국내에서는 비판은커녕, 말하는 즉시 법이 되고 정책이 되니 박근혜가 말 조심을 할 까닭이 없다. 그는 더 나아가 지난 8일 '테러방지법'의 조속한 처리를 종용하며 "(한국에 테러방지법이 없다는 것) 전 세계가 안다. IS(이슬람국가)도 알아버렸다"며 '어록'에 한줄을 더 보탰다. 그리고 이틀 뒤 새로운 '히트작'인 "젊은이들 가슴에 사랑이 없어진다"가 나왔다.
박근혜는 지난 10일 "소득이 없고 고용이 불안하기 때문에 결혼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방치하면 젊은이들의 가슴에 사랑이 없어진다"며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청년들 마음에 사랑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지만, 대체로 타당하고 아름다운 말씀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박근혜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금 우리 경제의 재도약과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동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개혁은 장기근속 노동자 월급을 깎는 '임금 피크제'와 해고 규정을 완화해 쉽게 자를 수 있게 만드는 '고용 유연화' 정책이 핵심이다. 임금을 깎아야 소득이 늘고, 쉽게 해고해야 고용이 안정된다는 억지는 젊은이들 가슴을 '사랑'으로 불태우기는커녕, 분노의 불을 당기고 있다.
박근혜의 말을 들으며 '혼이 비정상'화 하는 것을 느끼는 것은 비단 청년들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젊은이 엿먹이기'의 결정타는 박근혜의 '노동개혁으로 사랑 불붙이기' 선언 하루 뒤에 나왔다. 보건복지부가 성남시가 추진하는 '청년 배당'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정부는 이미 성남시의 '무상 공공 산후조리원'와 '무상 교복'에도 불수용 통보를 내린 상태다.
'사랑의 불'은 오직 박근혜만 붙일 수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박근혜의 대선공약이었던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 등은 모두 지방정부에 떠넘긴 채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그러면서 자치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청년 복지정책은 끈질기게 훼방 놓고 있다. 우리나라는 복지도 '국정화'되어 '박근혜 하사품'만 허용되는 나라일까?
하지만 박근혜의 무책임한 입이나 행동과 상관 없이 그의 지지율은 46퍼센트에 이른다.
미국의 잔혹한 총기 범죄와 몰상식한 정치인의 발언은 우울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질 이유가 있다. 상대가 유력 대선 후보든, 대통령이든 무지한 발언은 무지하다고 지적하고, 수치스러운 행동은 수치스럽다고 비판하는 언론, 지식인, 정치인들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트럼프가 '무슬림 입국 금지' 발언을 하자, 같은 공화당의 의원인 린지 그레엄은 텔레비전에 출연해 그 발언을 통렬히 꾸짖었다. 그는 트럼프의 구호인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자"라는 구호를 상기시키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트럼프 같은 사람에게 '지옥에나 떨어져라'라고 말하는 것이다"라며 맹렬히 비난했다.
그리고는 트럼프가 '미국의 위대함'이 인종적 다양성과 종교적 관용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으며, "극단적 폭력을 거부하는 99%의 무슬림"에 등을 돌림으로써 도리어 미국의 안전을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자신에게 비판적인 <워싱턴포스트>를 언급하며 근거 없는 주장을 펼쳤을 때도 그랬다. 아마존 창업자가 그 신문을 인수한 이유가 '세금을 덜 내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아마존과 <워싱턴포스트>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기에 사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시카고 대학 경영대 교수인 오스턴 굴스비는 즉시 나서서 반박했다.
"당신은 기업을 운영한 경험을 살려 대통령에 출마한다며? 당신이 한 말은 내가 이번 주 들은 경제 관련 발언 가운데 가장 멍청한 이야기다."
우리나라 지식인과 언론은 지도자의 몰상식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지난 14일 한국경제 연구원은 '비정규직법의 풍선효과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기간제 및 파견근로 2년 제한을 둔 비정규직보호법이 도입된 뒤 근로자 임금 격차가 오히려 커졌다'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비정규직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게 법 적용을 강화하거나 추가 입법으로 빈틈을 막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보고서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노동사용 규제 강화로 비정규직근로자 보호를 기대할 수 없는 만큼 노동시장 구조와 인력수급에 맞춘 유연한 노동정책이 검토돼야 한다."
형법이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없을 때, '느슨한 법적용'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국민들이 입는 겨울 옷이 추위를 막아주지 못하는 만큼, 벗고 다니게 하자'는 이야기나 다를 바 없다.
트럼프는 최근 해리슨 포드에게 망신을 당했다. 트럼프가 "해리슨 포드를 좋아한다"며, 그가 대통령으로 출연해 테러범과 격투를 벌인 영화 <에어포스원> 이야기를 끄집어 냈다. 해리슨 포드는 인터뷰에서 이 일화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도널드, 그건 영화였어. 지금 같은 현실이 아니라고. 하긴 당신이 (그 차이를) 어떻게 알겠냐만."
해리슨 포드는 이 짧은 조롱으로 두 가지를 비웃었다. 하나는 자격 없는 정치인의 지적 수준이고, 또 하나는 그런 사람이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었다. 그렇다 해도, 한국보다는 상황이 나아 보인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이가 유력한 대선 후보가 된 현실은 한심할지 모르나, 적어도 아직 대통령은 아니기 때문이다.
출처 막말 해도 박수만... 대통령 '어록'만 쌓여간다
[게릴라칼럼] 지도자의 막말에 당당히 맞서는 미국, 설설 기는 한국
[오마이뉴스] 강인규 | 15.12.16 11:56 | 최종 업데이트 15.12.16 12:01
나는 두 나라를 삶의 토대로 삼으며 살아가고 있다. 우선 태어나고 자란 한국이 있고, 이주 노동자로 와서 밥벌이를 하는 미국이 있다. 불행히도, 지금 두 나라를 바라보는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 없다.
미국이 안타까운 첫 번째 이유는 늘어가는 총기 사건 때문이다. 12월만 해도 캘리포니아 샌버나디오에서 난사 사건이 일어나 14명이 숨지고 22명이 다쳤다. 이제 미국에서 한두 명의 희생자를 내는 총기 사건은 '뉴스 거리'도 안 될 만큼 일상화 한 지 오래다.
미국 기준으로 적어도 4명 이상이 죽거나 다칠 때 '대량 총기 난사(mass shooting)' 사건으로 부르는데, 2015년 한 해만도 무려 350건이 넘게 발생했다. 대량 총기 난사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2014년 383명이었고, 올해는 대폭 늘어, 12월 초까지 무려 92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난사 사건의 빈도는 2014년 337건에서 크게 늘지 않은 반면, 사망자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살상능력이 큰 총기류를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대형 총기 사고가 터질 때마다 '규제' 이야기가 나오지만, 총기 소유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총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문제'라는 식의 논리를 편다.
여기서 한 술 더 떠, '총기를 규제하면 범법자들만 총을 갖게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어차피 범죄자들은 법을 무시하는 사람들이니 금지법을 만들어봐야 소용 없고, 오히려 '착한 사람'들만 자기 방어권을 잃게 되니, 아예 규제를 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들은 여기서 '더 많은 이들이 총을 갖는 게 해법'이라는 놀라운 결론을 이끌어 낸다. 총기 사건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80퍼센트 이상이 '합법적으로 구매'한 총기를 사용한다는 통계가 있는 데도 말이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고,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언어를 일그러뜨리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내 마음이 어두운 두 번째 이유다. 더욱 참담한 것은, 한국 사회의 언어 왜곡은 미국의 뺨을 쳐도 여러 대 칠 정도로 끔찍하다는 점이다. 그로 인한 결과는 단지 한 사람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수많은 국민들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참담한 결말로 이어진다.
지난해 한국에서는 1만 383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매일 38명의 국민이 자살로 사라지는 셈이다. 10만 명 당 자살자 수는 27.3명으로, 미국 자살자와 대량 총기 사건 사망자 수를 모두 합한 비율의 두 배에 달한다.
전 연령층에 걸쳐 한국인의 자살 충동 원인 1위는 '생활고'였다. 그런데도 한국의 박근혜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임금격차가 사회통합 장애물"이라면서 비정규직 임금인상 대신 '정규직 임금삭감'과 '손쉬운 해고'를 해결책으로 내놓는다.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여당 지도자는 "복지 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진다"는 기막힌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트럼프의 '유독성 언어'
▲ 도널드 트럼프의 '경찰 살해범 사형' 공약을 보도하는 CNN 뉴스 갈무리. ⓒ CNN
미국에서 '언어 왜곡'의 선두에 선 사람은 단연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다. "한국은 주한미군을 공짜로 데려다 쓴다," "예쁜 여자는 일할 필요가 없다," "멕시코 이민자들은 마약과 범죄를 들여온다" 등 트럼프의 '막말'은 손에 꼽기도 어려울 정도다. 이것만으로 부족했던 것일까. 그는 최근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전면 금지시켜야 한다"며 또 다른 '언어 폭탄'을 터뜨려 전세계를 경악시켰다.
지난 11월 파리에서 총기 테러가 일어났을 때, 트럼프는 '프랑스의 엄격한 총기 규제가 재앙을 키웠다'고 언성을 높였다. "만일 프랑스인들이 (미국인처럼) 총기를 소지하고 다닐 수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미국 대다수의 주가 총기 소지를 허용하지만, 미국 총기 난사 사건은 빈도나 희생자 수에서 프랑스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말이다.
그러다가 캘리포니아에서 초대형 총기 사건이 터지자, 트럼프는 '무슬림'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는 "(가해자들) 이름을 보라"며, 노골적으로 아랍계 이민자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나온 것이 "모든 무슬림의 입국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발언이었다. 무지와 정치적 계산 앞에서는, 총기 사건 대다수가 자국인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실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정치인들의 언어 왜곡은 피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정치인들이 정치적 이득을 추구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을테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 '막말'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일 것이다. 언론, 지식인, 시민사회가 '불량 언어'를 맹렬히 비판하며 맞서싸울 때, '왜곡된 언어'는 그저 개인의 '망발'로 끝날 뿐, '왜곡된 현실'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당사자 한 번 뜨겁게 데이고 나면, 무지와 탐욕이 폭로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입을 함부로 열지 못할 것이다.
미국 언론 <뉴욕타임스>, <CNN>, <MSNBC> 등은 트럼프의 '유해한 언어'를 지속적으로 비판해 왔다. 경영자들이 즐겨읽는 <포브스>까지도 '트럼프의 멕시코 이민자 발언의 허구성 폭로'라는 제목으로 이민자들의 범죄율이 자국인보다 낮다는 사실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 금지' 발언이 나오자, 시앤앤(CNN)의 프리다 기티시는 "트럼프는 미국의 크나큰 수치(Donald Trump is a huge embarrassment for America)"라며 비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미국인 대다수는 트럼프의 무슬림 발언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최근 일어난 총기 사건으로 무슬림 이민자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이 강화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도 말이다. 엔비시(NBC)와 <월스트리트>가 공동으로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말에 찬성한다고 말한 국민은 25퍼센트에 지나지 않은 반면, 57퍼센트의 미국인이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우리 사회는 정치인, 특히 박근혜의 '유해한 언어'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박근혜의 유해한 언어
▲ 박근혜가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마치고 나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 참석자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에서 '언어 왜곡'의 선두에 선 사람은 단연 새누리당 소속 박근혜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 "역사를 잘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이야기", (현재 교과서에서 '부끄러운 역사'로 보이는 게 어느 부분이냐는 질문에) "전체 책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 등 박근혜의 '막말'은 손에 꼽기도 어려울 정도다.
그것만으로 부족했던 것일까. 그는 최근 "복면 시위는 못 하도록 해야 한다"며, "IS(이슬람국가)도 지금 얼굴을 감추고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해 세계를 경악시켰다. 박근혜의 이 발언은 전세계 언론에 보도되었고, 인터넷에는 "제 나라 국민을 테러범과 비교해?... 정말 대책 없는 사람이다", "왜 그 나라는 점점 북한처럼 되는 걸까?", "정부가 역사책을 쓰겠다는 나라에서 뭘 기대해?" 등의 한심하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앨러스터 게일은 트위터에 "한국 박근혜가 마스크를 쓴 자국민 시위대를 이슬람국가에 비유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이다"라고 썼다. 정상적인 민주국가였다면, 집권당이 "실언이었다"며 황급히 사과하고 '위험관리' 모드로 돌입할 상황이었으나, 한국의 집권당인 새누리당은 박근혜의 '복면금지'를 언급한 지 단 하루 만에 '복면금지법'을 발의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세계에 충격을 안긴 몰상식한 발언이 국내에서는 비판은커녕, 말하는 즉시 법이 되고 정책이 되니 박근혜가 말 조심을 할 까닭이 없다. 그는 더 나아가 지난 8일 '테러방지법'의 조속한 처리를 종용하며 "(한국에 테러방지법이 없다는 것) 전 세계가 안다. IS(이슬람국가)도 알아버렸다"며 '어록'에 한줄을 더 보탰다. 그리고 이틀 뒤 새로운 '히트작'인 "젊은이들 가슴에 사랑이 없어진다"가 나왔다.
▲ <디플로매트>지 인터넷판에 실린 박근혜의 발언에 외국 독자들이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 The Diplomat
박근혜는 지난 10일 "소득이 없고 고용이 불안하기 때문에 결혼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방치하면 젊은이들의 가슴에 사랑이 없어진다"며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청년들 마음에 사랑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지만, 대체로 타당하고 아름다운 말씀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박근혜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금 우리 경제의 재도약과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동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개혁은 장기근속 노동자 월급을 깎는 '임금 피크제'와 해고 규정을 완화해 쉽게 자를 수 있게 만드는 '고용 유연화' 정책이 핵심이다. 임금을 깎아야 소득이 늘고, 쉽게 해고해야 고용이 안정된다는 억지는 젊은이들 가슴을 '사랑'으로 불태우기는커녕, 분노의 불을 당기고 있다.
박근혜의 말을 들으며 '혼이 비정상'화 하는 것을 느끼는 것은 비단 청년들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젊은이 엿먹이기'의 결정타는 박근혜의 '노동개혁으로 사랑 불붙이기' 선언 하루 뒤에 나왔다. 보건복지부가 성남시가 추진하는 '청년 배당'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정부는 이미 성남시의 '무상 공공 산후조리원'와 '무상 교복'에도 불수용 통보를 내린 상태다.
'사랑의 불'은 오직 박근혜만 붙일 수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박근혜의 대선공약이었던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 등은 모두 지방정부에 떠넘긴 채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그러면서 자치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청년 복지정책은 끈질기게 훼방 놓고 있다. 우리나라는 복지도 '국정화'되어 '박근혜 하사품'만 허용되는 나라일까?
하지만 박근혜의 무책임한 입이나 행동과 상관 없이 그의 지지율은 46퍼센트에 이른다.
당당히 맞서는 미국, 설설 기는 한국
미국의 잔혹한 총기 범죄와 몰상식한 정치인의 발언은 우울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질 이유가 있다. 상대가 유력 대선 후보든, 대통령이든 무지한 발언은 무지하다고 지적하고, 수치스러운 행동은 수치스럽다고 비판하는 언론, 지식인, 정치인들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트럼프가 '무슬림 입국 금지' 발언을 하자, 같은 공화당의 의원인 린지 그레엄은 텔레비전에 출연해 그 발언을 통렬히 꾸짖었다. 그는 트럼프의 구호인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자"라는 구호를 상기시키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트럼프 같은 사람에게 '지옥에나 떨어져라'라고 말하는 것이다"라며 맹렬히 비난했다.
그리고는 트럼프가 '미국의 위대함'이 인종적 다양성과 종교적 관용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으며, "극단적 폭력을 거부하는 99%의 무슬림"에 등을 돌림으로써 도리어 미국의 안전을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자신에게 비판적인 <워싱턴포스트>를 언급하며 근거 없는 주장을 펼쳤을 때도 그랬다. 아마존 창업자가 그 신문을 인수한 이유가 '세금을 덜 내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아마존과 <워싱턴포스트>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기에 사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시카고 대학 경영대 교수인 오스턴 굴스비는 즉시 나서서 반박했다.
"당신은 기업을 운영한 경험을 살려 대통령에 출마한다며? 당신이 한 말은 내가 이번 주 들은 경제 관련 발언 가운데 가장 멍청한 이야기다."
▲ 트럼프의 '절세' 주장에 굴스비가 '멍청한 소리'라며 트위터를 통해 반박하고 있다. 세금재단의 앨런 콜, <뉴욕타임스>의 닐 어윈 등도 나서서 트펌프의 주장이 왜 허황됐는지에 대해 비판했다. ⓒ 트위터 갈무리
우리나라 지식인과 언론은 지도자의 몰상식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지난 14일 한국경제 연구원은 '비정규직법의 풍선효과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기간제 및 파견근로 2년 제한을 둔 비정규직보호법이 도입된 뒤 근로자 임금 격차가 오히려 커졌다'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비정규직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게 법 적용을 강화하거나 추가 입법으로 빈틈을 막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보고서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노동사용 규제 강화로 비정규직근로자 보호를 기대할 수 없는 만큼 노동시장 구조와 인력수급에 맞춘 유연한 노동정책이 검토돼야 한다."
형법이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없을 때, '느슨한 법적용'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국민들이 입는 겨울 옷이 추위를 막아주지 못하는 만큼, 벗고 다니게 하자'는 이야기나 다를 바 없다.
해리슨 포드, 박근혜에게는 뭐라고 말할까
▲ 해리슨 포드가 인터뷰에서 트럼프를 조롱하고 있다. ⓒ News4
트럼프는 최근 해리슨 포드에게 망신을 당했다. 트럼프가 "해리슨 포드를 좋아한다"며, 그가 대통령으로 출연해 테러범과 격투를 벌인 영화 <에어포스원> 이야기를 끄집어 냈다. 해리슨 포드는 인터뷰에서 이 일화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도널드, 그건 영화였어. 지금 같은 현실이 아니라고. 하긴 당신이 (그 차이를) 어떻게 알겠냐만."
해리슨 포드는 이 짧은 조롱으로 두 가지를 비웃었다. 하나는 자격 없는 정치인의 지적 수준이고, 또 하나는 그런 사람이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었다. 그렇다 해도, 한국보다는 상황이 나아 보인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이가 유력한 대선 후보가 된 현실은 한심할지 모르나, 적어도 아직 대통령은 아니기 때문이다.
출처 막말 해도 박수만... 대통령 '어록'만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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