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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미국은 언제든 IS와 손잡을 수 있다

미국은 언제든 IS와 손잡을 수 있다
[게릴라 칼럼] '국익' 따라 태도 바꿨던 미국... IS가 당근을 준다면?
[오마이뉴스] 글: 김종성, 편집: 손지은 | 16.01.19 13:25 | 최종 업데이트 16.01.19 13:26


IS는 '이슬람 국가'의 약칭이다. 명칭만 놓고 보면 무장단체가 아니라 국가다. 지난해 6월에는 공식적인 국가 수립도 선포했다. 최고 지도자인 칼리프 자리에는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를 추대했다. 점령지를 지배할 행정체계도 구축해놓았다. 또 화폐까지 발행하고 있다.

지배 영역을 봐도 웬만한 국가에 뒤지지 않는다. IS는 왼쪽의 시리아와 오른쪽의 이라크를 잠식해가며 영역을 팽창했다. 현재 IS의 영역은 이라크 정부군의 영향권보다는 좁지만, 시리아 정부군의 영향권보다는 넓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남한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약간 넓은 것 같기도 하다.

IS의 등장 이전만 해도, 우리 머릿속에 있는 IS는 국제표준 IS(International Standards)의 그 IS였다. 그 IS는 공업제품의 국제표준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위의 객관적 지표들만 놓고 봐도, 이슬람국가 IS는 국가가 될 만한 '국제표준'을 상당 부분 갖추고 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IS의 활동은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에게 고통과 불행을 안겨주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동시다발 연쇄 테러로 13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정부 관료나 군인이 아닌 일반인들까지 겨냥하는 IS의 군사공격을 지켜보노라면, 가슴 속 감정 때문에라도 그들을 국가로 승인하는 게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있다. IS에 대한 승인 여부를 주도하는 것은 우리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점이다. 만약 미국이 전략적 판단에 따라 IS에 대한 태도를 갑자기 바꾸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그런 우려를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미국이 IS를 제압하는 일이 결코 녹녹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의 북한도 새해 벽두부터 미국을 놀라게 했다. 미국은 마음 같아서는 1월 10일 한국 오산 상공을 비행한 B-52 폭격기를 그대로 북상시켜 북한을 제압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진짜로 전쟁을 벌일 수는 없기에, 스스로 전쟁의 명분을 만들지 않으려고 북한 수소폭탄 실험의 의미를 평가절하하기에 바쁘다.

이런 미국이, 이미 커질 대로 커져 버린 IS를 손쉽게 제압하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물론 그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상태로는 벅찬 게 사실이다.

지난 16일(현지 시각) 미국은 핵 개발과 관련해서 이란에 대해 가했던 기존 제재를 해제한 데 이어, 17일(현지 시각)에는 미사일 문제와 관련해서 이란에 대해 새로운 제재를 가하기로 했다. 이렇게 당근과 채찍을 통해 이란을 견제하는 데 성공했다는 판단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또 다른 전쟁 대신 외교를 통해 세계를 더욱 안전하게 만들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전쟁 대신 외교를 통해 세계평화를 달성하고 있다는 말은 미국 정부의 이상적 목표를 내비친 것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전쟁을 할 수 없어 외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미국의 답답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향후 IS 때문에 힘이 더 부치게 되면, '전쟁 대신 외교'라는 말이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또 나오지 않을까. IS를 승인하는 편이 손실을 최소화하는 길이라고 판단되면, 그런 태도 변화가 나오지 않을까.


미국에게 어제의 적은 오늘의 동지

▲ 미국은 전범 일본에 핵무기를 투하한 지 3년 만에 일본과 손을 잡았다. 사진은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일본왕 히로히토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1945년 8월, 미국은 자국 처지에서 볼 때 IS보다 더 얄밉고 더 강력한 적을 상대로 원자폭탄 두 방을 투하했다. 오죽 미웠으면 핵폭탄 두 방을 떨어뜨렸을까. 미국은 일본을, 세계를 상대로 반 인류 범죄를 저지른 전범 국가로 취급했다. 그래서 핵 공격까지 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랬던 미국이 3년도 안 돼 일본에 대한 태도를 확 바꾸었다. 일본을 핵심 동맹국으로 삼을 조짐을 보인 것이다. 미국은 처음에는 장개석(장제스)이 이끄는 중국 국민당을 내세워 소련을 견제하고자 했다.

그러나 공산당과 국민당의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의 패퇴가 확실시되자, 미국은 1948년 1월 '일본을 전략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육군장관 로이얄의 성명을 발표했다. 소련을 견제할 목적으로 일본과 동맹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어제까지 전범국으로 취급했던 상대방을 갑자기 동맹국으로 모시기로 한 것이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었다.

IS도 흉내 낼 수 없는 악행을 자행한 일본까지 용서하고 손잡은 나라가 미국이다. 그런 미국이 어느 날 갑자기 IS를 국가로 승인할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IS와 싸우는 것이 더는 무용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도, 미국이 지금처럼 열심히 싸울 수 있을까? 지난 세기에 미국이 국제법상의 국가승인제도를 어떻게 운용했는지 확인해보면, IS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내일이라도 당장 바뀔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국제법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국가승인의 요건은 '영토·국민·정부를 갖춤으로써 국내법상의 국가로 성립되어야 한다'는 것과 '국제법을 준수할 의사 및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요건을 갖춘 정치집단이 있으면 국가로 승인할 수 있다는 게 국제법 학계의 견해다.

하지만, 그런 학설에 맞춰 국가승인제도를 운용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특히 미국이 그렇다. 미국은 국제법상의 요건을 살펴가며 국가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나라가 아니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승인요건이 미비한 상대방한테도 국가승인을 부여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객관적 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는데도 국가승인이 시기상조로 이루어지는 것을 국제법학 용어로 '상조(尙早)의 승인'이라고 한다. 미국의 대외관계에서도 상조의 승인이 있었다. 1903년 파나마 승인이 대표적이다.

파나마는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가 만나는 지점이다. 파나마 오른쪽에는 콜롬비아가 있다. 미국은 19세기 후반부터 파나마 지역에 눈독을 들였다.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려면, 파나마 지역에 운하를 뚫어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파나마는 독립국이 아니었다. 콜롬비아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미국은 콜롬비아 정부한테서 파나마 지역의 이용권을 얻고자 했다. 미국은 1천만 달러의 일시금과 연간 25만 달러의 이용료를 지급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콜롬비아 정부가 더 많은 조건을 내세웠기 때문에 협상이 쉽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파나마 지역 주민들이 콜롬비아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이럴 때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정부군의 진압작전을 지켜보면서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정부군이 반란군을 진압할 수 없고 반란군이 국가 형태를 갖추었을 때, 반란군을 국가로 승인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미국의 행동은 성급했다. 상조의 승인을 했다.

파나마 반란군은 1903년 11월 3일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자 미국은 콜롬비아 정부군이 진압작전을 개시하기도 전에 파나마를 국가로 승인했다. 11월 6일, 미국은 파나마를 상대로 사실상의 국가승인을 했다. 일시적·잠정적이라는 전제로 사실상의 승인을 했다.

사실상의 승인 제도는 19세기 초반에 중남미 국가들이 스페인·포르투갈을 상대로 독립을 선언하는 분위기에서 고안했다. 이때 세계최강인 영국은 양쪽 모두를 만족하게 할 방안을 모색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사실상의 승인이다. 잠정적으로나마 승인해준다고 함으로써 독립군 쪽을 만족하게 하고, 잠정적으로만 승인해준다고 함으로써 식민본국을 만족하게 하고자 했다.

그런 사실상의 승인이 파나마 반군의 독립선언 3일 만에 미국 측에서 나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은 파나마 반군과 콜롬비아 정부 양쪽을 다 의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일주일 뒤에 해소되었다. 미국이 파나마 반군을 국가로 인정하는 법률상의 승인을 해줬다. 반군한테 승산이 있다고 판단되자 콜롬비아를 버리기로 한 것이다. 미국이 파나마에 대해 상조의 승인을 해준 것은 콜롬비아 정부가 요구한 것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파나마운하를 건설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미국의 뜻대로 파나마운하가 건설되었다.


당근을 얻는다면, IS를 치켜세울지도

▲ 파나마운하를 통과하는 미국 전함 미주리호.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국익을 위해서라면 남의 눈치에 개의치 않고 국가승인을 해주는 미국의 태도는 1948년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났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포하자 미국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사실상의 승인을 해줬다. 법률상의 승인은 이듬해인 49년 1월 31일에 있었다.

사실상의 승인과 법률상의 승인 사이에 8개월이나 소요된 것은, 사실상의 승인 당시 이스라엘의 지배권이 튼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립선언 당시 이스라엘이 갖고 있던 땅은 지금의 영토에 비하면 극히 좁았다. 나머지 땅은 독립선언 이후에 전쟁을 통해 획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의 사실상 승인은 성급한 면이 없지 않았다.

다른 강대국들의 경우도 별로 다르지 않지만, 미국이 국가승인을 해주는 기준은 지극히 자의적이다. 국제법 책을 보고 하는 게 아니라 계산기를 두들기면서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앞으로 IS와의 관계에서도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IS를 상대로 열심히 전쟁하고 있지만, 힘이 부친다고 판단되거나 IS가 미국에 당근을 제시하면 적당한 명분을 내세워 IS에 대한 국가승인을 합리화하려 할지도 모른다.

만약 IS가 러시아에 대한 공동견제나 중동 석유 이권의 제공 같은 이익을 제시한다면, 미국의 태도가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더군다나 IS가 이미 객관적인 국가의 요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적당한 명분만 생기면 IS를 승인하는 게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 미국은 IS가 국가승인에 필요한 International Standard를 갖추었다면서 오히려 IS를 치켜세울지도 모른다.


출처  미국은 언제든 IS와 손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