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개천에서 용나기’보다 ‘헬조선에서 살아남기’가 먼저

‘개천에서 용나기’보다 ‘헬조선에서 살아남기’가 먼저
[민중의소리] 이상민 전문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6-04-29 16:50:55


최근 정부는 청년 일자리 대책을 발표했다. 2013년 33만 명이던 청년실업자 수는 올해 2월에는 56만 명이 되었다. 박근혜 정부 3년 만에 청년실업자 수가 70%나 늘어난 상황이니 청년실업률, 역대 최대치라는 말도 무색하다. 정부도 다급할 만하다.

이번 정부가 발표한 청년 일자리 대책의 핵심은 중소기업에 2년 다닌 청년이 300만 원을 저축하면 정부가 매칭으로 600만 원(기업은 300만 원)을 지원하는 ‘청년취업내일공제’라는 제도다.

하지만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정부는 아직도 ‘헬조선’의 현실을 모르는 것 같다.

▲ 유일호 기획재정부장관 겸 경제부총리와 주무 장관들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청년여성 일자리대책 당정협의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정의철 기자


개천에서 용나기가 어려운 게 가장 큰 문제일까

정부가 현재 우리나라 청년세대의 현실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것은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워졌다는 연민이다. 눈높이를 낮추고 대기업 대신 중소기업에 취직한 청년이 2년씩이나 때려치우지 않고 착실하게 저축한다면 ‘용’(중산층 진입)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바람이다.

그런데 요즘 청년세대의 가장 절박한 문제가 과연 ‘개천에서 용나기’어렵다는 것일까. 개천에서 열심히 노력해도 용이 될 수 없다는 한탄은 요즘 청년들이 듣기에는 오히려 사치스러운 말이다.

요즘 유행어는 ‘헬조선’이라는 단어다. 이 말은 개천에서 ‘노력’을 했는데도 용이 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말이 아니다. 개천에서라도 ‘노오오오력’를 해도 단지 살아남는 것조차도 어려워진 현실을 빗대서 나온 말이 ‘헬조선’이다.

단순히 살아남는 것조차도 힘든 ‘헬조선’에서 벗어나는 것이 개천에서 용 되는 것보다 더 급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알바’를 전전하는 88만 원 세대인 청년이 살아남는 것, 그리고 중소기업에도 취업을 못 하고 실업상태에 있는 청년이 살아남는 것이 더 시급하다.


결혼 안 한 청년은 EITC 대상에서 빠져

‘알바청년’이 헬조선에서 힘들게 ‘노오오력’을 하고 있어도 현재 EITC(근로장려세제) 제도는 청년만 왕따시킨다. EITC 제도는 근로 빈곤층(working poor)에 현금으로 마이너스 소득세를 지급하는 제도다. 소득이 높으면 소득세를 내고 일정 소득 이하면 소득세가 비과세된다. 그런데 비과세 소득보다도 소득이 낮으면 정부로부터 돈을 받는 제도가 있다. 이를 EITC 제도라고 한다. 결국, EITC 제도는 열심히 일해도 먹고살기 힘든 알바 등 근로 빈곤층에 현금을 지급하는 좋은 제도다.

그런데 EITC 제도는 결혼한 가구만을 대상으로 도입되었다. 이후 결혼하지 않은 단독가구에도 확대해서 올해부터는 40세 이상의 단독가구는 EITC 제도 혜택을 본다. 결국, 20대 30대이면서 결혼하지 않은(못한?) 청년은 EITC 제도의 권리에서 제외되었단 얘기다.

‘88만 원 세대’인 청년들은 당장 생활비 부족에 허덕이며 헬조선에서 버티고 있다. 그러나 근로 빈곤층을 위해 도입된 EITC 제도의 현금은 청년에 지급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알바청년에 ‘생활비’를 주는 EITC 대신 중소기업 취업 청년에 ‘저축금액’을 지원한다고 한다. 저축할 여력조차 없는 청년은 여전히 생활비에 허덕인다.

▲ 결혼을 하지 않은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EITC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사진은 알바노조가 아르바이트생 부당해고와 노동자 부당처우 등 맥도날드의 불법 행위를 규탄하는 점거 시위를 벌이는 모습. ⓒ김철수 기자


워킹푸어보다 더 어려운 미취업 청년

근로 빈곤층 보다 더 어려운 청년은 미취업 청년이다. 이러한 미취업청년에는 실업급여가 필요하다. 그러나 실업급여는 한 번이라도 취업에 성공하여 고용보험에 가입해본 이력이 있는 사람만 이용할 수 있는 ‘그림의 떡’이다.

그래서 최근 청년단체와 정치권 일각에선 청년 실업부조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고용보험 가입 이력이 없는 청년에게 실업급여를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자는 거다.

이러한 실업부조프로그램 중에서 ‘졸업실업급여’라는 제도도 있다.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 졸업반 학생들을 의무적으로 고용보험에 가입하게 하고 국가가 고용보험료를 대납하는 제도다. 고용보험에 가입된 이상 졸업과 동시에 미취업자는 실업급여를 받게 된다. 실업급여를 받는 학생이 성실하게 적극적인 구직 활동을 이행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 필요도 없다. 이미 존재하는 고용보험 시스템 내에 존재하는 실업급여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된다. 억지로 형식적인 취업프로그램에 참여할 필요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청년 EITC’ 제도, ‘졸업실업급여’ 같은 제도 대신 중소기업 청년의 저축액을 매칭하는 제도를 우선적인 정책으로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돈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즉, 제한된 예산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

올해 일자리 창출 예산은 15조8000억 원이다. 현재도 15조 원이 넘는 예산을 일자리 창출 사업에 쓰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15조 원이 넘는 예산으로 어떤 사업들을 하고 있을까?


청년들의 일자리 검색 능력이 부족해서 문제일까?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취직하는 것을 장려한다고 중소기업 취업 청년의 소득세를 깎아주는 정책을 하고 있다. 중소기업 연봉을 고려하면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들의 실제 세 부담 감소금액은 일 년에 십만 원 안팎이다. 불과 십만 원정도 세금을 덜 내겠다고 대기업 대신 중소기업을 선택하는 청년이 있을까?

또한, 청년 해외취업을 위해서도 예산을 쓰고 있다. 박근혜는 “대한민국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잘 해보라”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그 효과는 대단히 우려스럽다. (참고기사 : 정말 중동에 가면 돈을 벌 수 있을까?)

정부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은 ‘국가 직업소개소’다. 매달 전국 17개 창조경제센터서 ‘채용의 날’을 연다고 한다. 유일호 기재부 장관은 “전 부처가 일자리 중개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현재 청년 실업 문제는 일자리 정보가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청년들의 일자리 검색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수백 번의 일자리 검색 경험으로 무장된 ‘일자리 검색의 달인’이 현 청년세대다.

결국, 돈 문제라기보다는 철학의 문제다.

박근혜 정부의 6번째 일자리 대책사업의 핵심인 중소기업 청년 저축 매칭 사업을 분석해보자. 이를 통해 정부가 청년 일자리 대책에 어떤 철학을 가졌는지 엿볼 수 있다.

이번 저축 매칭 사업은 정부의 청년인턴 사업을 거쳐 중소기업에 취직한 청년을 대상으로 한다. 중소기업에 바로 취업한 청년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중소기업 취업 청년 중 300만 원 이상의 저축을 해야 혜택을 본다. 취업 전 빚이 많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저축하지 못한 청년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리고 2년 동안 직장에서 버틴 청년만 혜택을 본다. 2년 이내에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기업에서 매칭한 저축금액은 날아가게 된다.

▲ 청년희망재단을 찾은 박근혜가 이 재단의 프로그램을 통해 취업에 성공한 청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지난해 10월 설립된 청년희망재단은 올해 3월까지 64명의 취업을 성사시켰다. 이중 52명은 1년 계약직이다. ⓒ뉴시스


취업에 성공한 청년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건 오히려 부차적

결국, 개인의 여러 가지 ‘노오력’을 통해 살아남은 소수의 청년을 제한적으로 선택하여 정부의 혜택을 주겠다는 의미다. 그래서 소수의 청년이라도 개천에서 중산층 진입이라는 용(중산층 진입에만 성공해도 요즘엔 충분히 용이라고 불린다.)이 될 가능성을 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년들이 헬조선에서 아무도 죽지 않고 살아남게 하는 것이 정부의 복지철학의 제1차 목표가 되어야 한다. EITC 제도의 권리에서 청년들을 배제하고 ‘졸업실업급여’ 등 실업부조프로그램 없이 개인적인 노오력을 강조하는 청년 취업프로그램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다.

실업은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다. 실업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unemployment’ 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된 것이 19세기 말이라고 한다. 그 말은 실업이라는 현상은 자본주의와 산업화가 이뤄진 사회구조에서 발생한 구조적 사회현상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도외시하고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 취업에 성공한 일부 청년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형식으로는 청년 취업문제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


출처  ‘개천에서 용나기’보다 ‘헬조선에서 살아남기’가 먼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