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서 터졌다는 52조원의 ‘잭팟’이 신기루인 이유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6-05-03 00:25:00
아무리 역사는 반복된다지만 뭐가 이렇게 똑같은가? 위기에 처한 대통령이 중동 어느 나라를 방문한 뒤 “수 십 조 원의 경제효과가 있는 사업을 따냈다”고 선전한다. 언론 보도도 늘 한결같다. “정상외교 역사상 최대의 성과”라는 것이다.
전임 이명박이 자원외교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수출로 온갖 자랑질을 했을 때, 우리는 속았다. 자원외교는 주요 공기업을 빚더미에 올린 엉터리 외교였고 UAE 원전 수출은 아직도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돈 대주고 군대도 대주는’ 황당한 외교였다는 평가다.
이제는 박근혜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청와대는 방문 첫날 52조 원짜리 잭팟을 터뜨렸다고 발표를 한다. 그게 정말로 잭팟이면 얼마나 좋겠냐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잭팟일 확률이 너무 낮다. 게다가 잭팟이 아닌 것으로만 끝나면 다행인데, 잘못하면 엄청난 돈을 물린 채 쪽박 차고 나올 우려도 높다.
어차피 미래는 불확실한 것.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를 토대로 하면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드러난다. 박근혜가 터뜨렸다는 이란 발 52조 원짜리 잭팟, 그게 잭팟일 확률보다 아닐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수주액이 52조 원에 이른다는 공사의 실체다. 청와대는 “박근혜의 이란 국빈 방문을 계기로 중동의 마지막 블루오션인 이란에서 최대 52조 원 규모의 인프라 건설 및 에너지 재건 사업을 수주하는 발판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자기들이 밝힌 대로 “수주하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지 “수주를 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발판의 실체라는 것은 경제 분야 59건을 포함해 모두 66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는 것이다.
양해각서란 정식 계약을 체결하기에 앞서 쌍방의 의견을 미리 조율하고 확인하는 상징적 절차다. 당연히 법적 구속력도 없다. 심지어 상장기업들이 공시를 할 때에도 양해각서는 의무적으로 공시를 해야 하는 사항조차 아니다. 체결 당사자 중 한 곳이 “이번 각서는 나가리에요!” 한 마디 하면 끝나는 수준의 협약이라는 뜻이다.
물론 청와대가 거짓을 말하지는 않았다. 청와대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혔고, “공사를 수주했다”가 아니라 “수주하는 발판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부분 언론들은 마치 이번 외교를 통해 52조 원을 손에 쥔 듯 보도했다. 청와대는 이를 보고 그냥 즐기는 듯하다.
52조 원의 실체도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다. 청와대는 “인프라 및 에너지 재건 등 30개 프로젝트에서 양해각서 및 가계약 체결 등을 통해 확보한 수주 가능 금액은 371억 달러”라고 밝혔다. ‘확보한 수주 가능 금액’이라니, 세상에 이런 설명이 어디 있나? 371억 달러를 확보했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수주가 가능한(당연히 불가능할 수도 있는) 금액이 371억 달러라는 이야기인가?
당연히 후자다. ‘확보’란 정식 계약을 체결한 뒤에야 사용할 수 있는 단어다. 고작 MOU 체결 단계에서 확보했다고 말할 수 있는 수주 금액은 냉정히 말해 0원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확보한 수주 가능 금액’이라는 말장난으로 자신들의 외교성과를 뻥튀기했다.
더 황당한 건 청와대가 아직 확보도 되지 않은 371억 달러에 “일부 사업의 2단계 공사까지 감안하면 최대 456억 달러까지 수주 금액이 늘어날 것”이라고 덧셈을 했다는 사실이다. 1단계 공사 계약은커녕 고작 MOU를 체결했을 뿐인데 청와대는 벌써 2단계 공사까지 내다본다. 이렇게 부풀리고 또 부풀려서 나온 수치가 52조 원이다.
정식 계약 한 건도 없이 MOU만 66건 체결했는데, 갑자기 52조 원의 국부가 늘어나고 제2의 중동 붐이 일어난다는 게 청와대 설명이다. 아무리 중동 지역이 예수님의 고향이라지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여 살리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은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 게 아니다.
“52조 원을 벌었다”고 환호하기 전에 냉정하게 현실부터 살펴보자. 52조 원은 이란 국내총생산(GDP)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아무리 박근혜가 히잡을 둘렀다 해도 상식적으로 이란이 이 돈을 한국에 그냥 퍼 줄 리는 없다.
그렇다면 이란의 현실 상황을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 이란은 오랜 경제 제재와 최근 폭락한 유가로 극심한 경제 침체를 겪고 있다. 중동국가의 재정이 어려워져 실질적인 사업집행 기간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업계에서는 올해 안에 구체적인 계약이 한, 두 건이라도 나오면 다행으로 보는 분위기다.
아직 MOU 단계이기 때문에 일본이나 중국 자본과의 경쟁도 여전히 남아있다. 이란에서 성공하더라도 이란과 앙숙지간인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중동 국가와의 관계 악화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이란이 그 수많은 정부 발주 공사 대금을 제대로 지급할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란은 공사를 한국 기업에 맡기고 돈을 지불하는 방식 대신, 한국 기업이 알아서 자금을 구해 공사를 먼저 진행한 뒤 완성된 시설물의 운영을 한국 기업에 맡기는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이건 MB정부의 치적이라는 UAE원전도 그랬다)
돈도 한국 기업이 내서 공사를 하고, 그 대가도 한국 기업이 장기적으로 시설을 운영해 알아서 벌어가라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부실한 이란의 재정 상태를 감안할 때 개별 공사 당 건설 자금의 80~90%를 한국 기업이 감당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은 한국 기업들이 막대한 공사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결국 정부와 국책은행에 손을 벌려야 한다. 정부도 이를 위해 250억 달러(30조 원)를 국책은행 등을 통해 이란에 진출하는 기업에 지원할 계획이다. 한국 기업들은 공사를 마친 뒤 20~30년 동안 시설을 장기 운영하며 돈을 갚아나가야 한다. 그런데 이 운영기간 동안 이란의 정세가 급변하면 그야말로 대형 사고가 터질 수 있다.
극단적으로 이란이 다시 국제사회로부터 금융제재를 받게 되면 도로나 공장 등 기반시설의 소유권(혹은 운영권)을 빼앗길 수도 있다. 잔금이 있다면 그 잔금도 떼일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미국하고 이란하고 전쟁이라도 한 판 벌이면 한국 기업들은 줄줄이 수 천 억 원씩 물려야 할 판이다. 공사를 따는 과정까지도 험난하지만, 딴다고 마냥 좋아할 일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또 다른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만약 정부의 소망대로 66건의 MOU가 모조리 잘 풀려 52조 원의 공사를 따 냈다고 치자. 지금 당장 한국과 이란은 이 52조 원을 주고받을 결제 방법이 없다. 이번에 미국이 풀어준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조치는 완전한 것이 아니다. 이란과 거래를 할 때 달러로 거래를 하는 것은 여전히 금지돼 있다.
이 때문에 이란과는 현실적으로 유로화나 위안화, 엔화 등 제 3국 통화로 거래를 해야 한다. 문제는 한국의 원화 역시 유로화나 위안화, 엔화 등과 직접 거래되는 시장이 없기 때문에 이들 제3국 통화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달러를 한 번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당연히 이는 미국의 금융 제재를 위반하는 일이다.
지금 이란에서 석유를 사 올 때나, 전자제품을 수출할 때도 이런 사정은 똑같다. 그래서 이란이 한국의 은행에 개설해놓은 원화계좌를 이용한다. 즉 우리가 원유를 사온 후 이란의 한국 계좌에 돈을 넣고, 이란이 전자제품을 사가면 이 계좌에서 출금을 한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는 늘 수출과 수입이 비슷해야 한다는 데 있다. 일방적으로 흑자를 내서도 안되고, 대규모 투자를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52조원이라는 돈은 이런 식으로 주고받기엔 너무 큰 돈이다.
그래서 정부가 이란과의 금융거래에 필요한 결제 시스템부터 구축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하루 이틀에 해결될 일이 아니다. 미국의 견제를 피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이란에서 터뜨렸다는 52조 원의 잭팟은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도 그 떡을 손에 쥐는 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장담하기 어렵다.
한국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진보나 보수나 모두 똑같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52조 원짜리 잭팟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다. 통상 상징적인 절차로만 발표되는 66건의 MOU가 몇 %나 현실화될 수 있을까? 현실화가 된다고 해도 한국 정부와 국책은행의 막대한 자금 지원이 필요한 현실은 어떻게 극복할까? 설혹 자금이 마련된다 해도 불안한 이란 정세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래서 이 모든 문제들이 기적적으로 해결된다 해도, 달러 거래가 불가능한 현실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아무리 집권 후반기 그럴싸한 외교성과를 발표하고 싶은 청와대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쳐도 ‘이란 발 52조 원짜리 잭팟’은 과장이 너무 심했다. 이미 “정상외교 사상 최고의 경제적 성과”라고 부풀린 발표를 해 버린 박근혜는 이 프로젝트를 죽으나 사나 밀고 나갈 것이다.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이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 사고가 안 나기를 기도하는 일뿐이다. 불과 5년 전 자원외교로 나라를 한 번 거덜 낼 뻔했던 MB가 하필이면 박근혜와 같은 당 소속이어서 하는 말이다.
출처 이란에서 터졌다는 52조원의 ‘잭팟’이 신기루인 이유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6-05-03 00:25:00
아무리 역사는 반복된다지만 뭐가 이렇게 똑같은가? 위기에 처한 대통령이 중동 어느 나라를 방문한 뒤 “수 십 조 원의 경제효과가 있는 사업을 따냈다”고 선전한다. 언론 보도도 늘 한결같다. “정상외교 역사상 최대의 성과”라는 것이다.
전임 이명박이 자원외교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수출로 온갖 자랑질을 했을 때, 우리는 속았다. 자원외교는 주요 공기업을 빚더미에 올린 엉터리 외교였고 UAE 원전 수출은 아직도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돈 대주고 군대도 대주는’ 황당한 외교였다는 평가다.
이제는 박근혜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청와대는 방문 첫날 52조 원짜리 잭팟을 터뜨렸다고 발표를 한다. 그게 정말로 잭팟이면 얼마나 좋겠냐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잭팟일 확률이 너무 낮다. 게다가 잭팟이 아닌 것으로만 끝나면 다행인데, 잘못하면 엄청난 돈을 물린 채 쪽박 차고 나올 우려도 높다.
어차피 미래는 불확실한 것.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를 토대로 하면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드러난다. 박근혜가 터뜨렸다는 이란 발 52조 원짜리 잭팟, 그게 잭팟일 확률보다 아닐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 박근혜와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사드아바드 좀후리궁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시스
이 기적이 일어날 확률은 몇%?
이번 발표에서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수주액이 52조 원에 이른다는 공사의 실체다. 청와대는 “박근혜의 이란 국빈 방문을 계기로 중동의 마지막 블루오션인 이란에서 최대 52조 원 규모의 인프라 건설 및 에너지 재건 사업을 수주하는 발판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자기들이 밝힌 대로 “수주하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지 “수주를 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발판의 실체라는 것은 경제 분야 59건을 포함해 모두 66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는 것이다.
양해각서란 정식 계약을 체결하기에 앞서 쌍방의 의견을 미리 조율하고 확인하는 상징적 절차다. 당연히 법적 구속력도 없다. 심지어 상장기업들이 공시를 할 때에도 양해각서는 의무적으로 공시를 해야 하는 사항조차 아니다. 체결 당사자 중 한 곳이 “이번 각서는 나가리에요!” 한 마디 하면 끝나는 수준의 협약이라는 뜻이다.
물론 청와대가 거짓을 말하지는 않았다. 청와대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혔고, “공사를 수주했다”가 아니라 “수주하는 발판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부분 언론들은 마치 이번 외교를 통해 52조 원을 손에 쥔 듯 보도했다. 청와대는 이를 보고 그냥 즐기는 듯하다.
52조 원의 실체도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다. 청와대는 “인프라 및 에너지 재건 등 30개 프로젝트에서 양해각서 및 가계약 체결 등을 통해 확보한 수주 가능 금액은 371억 달러”라고 밝혔다. ‘확보한 수주 가능 금액’이라니, 세상에 이런 설명이 어디 있나? 371억 달러를 확보했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수주가 가능한(당연히 불가능할 수도 있는) 금액이 371억 달러라는 이야기인가?
당연히 후자다. ‘확보’란 정식 계약을 체결한 뒤에야 사용할 수 있는 단어다. 고작 MOU 체결 단계에서 확보했다고 말할 수 있는 수주 금액은 냉정히 말해 0원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확보한 수주 가능 금액’이라는 말장난으로 자신들의 외교성과를 뻥튀기했다.
더 황당한 건 청와대가 아직 확보도 되지 않은 371억 달러에 “일부 사업의 2단계 공사까지 감안하면 최대 456억 달러까지 수주 금액이 늘어날 것”이라고 덧셈을 했다는 사실이다. 1단계 공사 계약은커녕 고작 MOU를 체결했을 뿐인데 청와대는 벌써 2단계 공사까지 내다본다. 이렇게 부풀리고 또 부풀려서 나온 수치가 52조 원이다.
정식 계약 한 건도 없이 MOU만 66건 체결했는데, 갑자기 52조 원의 국부가 늘어나고 제2의 중동 붐이 일어난다는 게 청와대 설명이다. 아무리 중동 지역이 예수님의 고향이라지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여 살리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은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 게 아니다.
수주해도 문제, 곳곳에 도사린 현실적 위험
“52조 원을 벌었다”고 환호하기 전에 냉정하게 현실부터 살펴보자. 52조 원은 이란 국내총생산(GDP)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아무리 박근혜가 히잡을 둘렀다 해도 상식적으로 이란이 이 돈을 한국에 그냥 퍼 줄 리는 없다.
그렇다면 이란의 현실 상황을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 이란은 오랜 경제 제재와 최근 폭락한 유가로 극심한 경제 침체를 겪고 있다. 중동국가의 재정이 어려워져 실질적인 사업집행 기간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업계에서는 올해 안에 구체적인 계약이 한, 두 건이라도 나오면 다행으로 보는 분위기다.
아직 MOU 단계이기 때문에 일본이나 중국 자본과의 경쟁도 여전히 남아있다. 이란에서 성공하더라도 이란과 앙숙지간인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중동 국가와의 관계 악화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이란이 그 수많은 정부 발주 공사 대금을 제대로 지급할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란은 공사를 한국 기업에 맡기고 돈을 지불하는 방식 대신, 한국 기업이 알아서 자금을 구해 공사를 먼저 진행한 뒤 완성된 시설물의 운영을 한국 기업에 맡기는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이건 MB정부의 치적이라는 UAE원전도 그랬다)
돈도 한국 기업이 내서 공사를 하고, 그 대가도 한국 기업이 장기적으로 시설을 운영해 알아서 벌어가라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부실한 이란의 재정 상태를 감안할 때 개별 공사 당 건설 자금의 80~90%를 한국 기업이 감당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은 한국 기업들이 막대한 공사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결국 정부와 국책은행에 손을 벌려야 한다. 정부도 이를 위해 250억 달러(30조 원)를 국책은행 등을 통해 이란에 진출하는 기업에 지원할 계획이다. 한국 기업들은 공사를 마친 뒤 20~30년 동안 시설을 장기 운영하며 돈을 갚아나가야 한다. 그런데 이 운영기간 동안 이란의 정세가 급변하면 그야말로 대형 사고가 터질 수 있다.
극단적으로 이란이 다시 국제사회로부터 금융제재를 받게 되면 도로나 공장 등 기반시설의 소유권(혹은 운영권)을 빼앗길 수도 있다. 잔금이 있다면 그 잔금도 떼일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미국하고 이란하고 전쟁이라도 한 판 벌이면 한국 기업들은 줄줄이 수 천 억 원씩 물려야 할 판이다. 공사를 따는 과정까지도 험난하지만, 딴다고 마냥 좋아할 일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 정도 규모의 외환 거래 자체가 불가능한 현실
또 다른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만약 정부의 소망대로 66건의 MOU가 모조리 잘 풀려 52조 원의 공사를 따 냈다고 치자. 지금 당장 한국과 이란은 이 52조 원을 주고받을 결제 방법이 없다. 이번에 미국이 풀어준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조치는 완전한 것이 아니다. 이란과 거래를 할 때 달러로 거래를 하는 것은 여전히 금지돼 있다.
이 때문에 이란과는 현실적으로 유로화나 위안화, 엔화 등 제 3국 통화로 거래를 해야 한다. 문제는 한국의 원화 역시 유로화나 위안화, 엔화 등과 직접 거래되는 시장이 없기 때문에 이들 제3국 통화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달러를 한 번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당연히 이는 미국의 금융 제재를 위반하는 일이다.
지금 이란에서 석유를 사 올 때나, 전자제품을 수출할 때도 이런 사정은 똑같다. 그래서 이란이 한국의 은행에 개설해놓은 원화계좌를 이용한다. 즉 우리가 원유를 사온 후 이란의 한국 계좌에 돈을 넣고, 이란이 전자제품을 사가면 이 계좌에서 출금을 한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는 늘 수출과 수입이 비슷해야 한다는 데 있다. 일방적으로 흑자를 내서도 안되고, 대규모 투자를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52조원이라는 돈은 이런 식으로 주고받기엔 너무 큰 돈이다.
그래서 정부가 이란과의 금융거래에 필요한 결제 시스템부터 구축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하루 이틀에 해결될 일이 아니다. 미국의 견제를 피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이란에서 터뜨렸다는 52조 원의 잭팟은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도 그 떡을 손에 쥐는 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장담하기 어렵다.
한국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진보나 보수나 모두 똑같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52조 원짜리 잭팟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다. 통상 상징적인 절차로만 발표되는 66건의 MOU가 몇 %나 현실화될 수 있을까? 현실화가 된다고 해도 한국 정부와 국책은행의 막대한 자금 지원이 필요한 현실은 어떻게 극복할까? 설혹 자금이 마련된다 해도 불안한 이란 정세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래서 이 모든 문제들이 기적적으로 해결된다 해도, 달러 거래가 불가능한 현실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아무리 집권 후반기 그럴싸한 외교성과를 발표하고 싶은 청와대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쳐도 ‘이란 발 52조 원짜리 잭팟’은 과장이 너무 심했다. 이미 “정상외교 사상 최고의 경제적 성과”라고 부풀린 발표를 해 버린 박근혜는 이 프로젝트를 죽으나 사나 밀고 나갈 것이다.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이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 사고가 안 나기를 기도하는 일뿐이다. 불과 5년 전 자원외교로 나라를 한 번 거덜 낼 뻔했던 MB가 하필이면 박근혜와 같은 당 소속이어서 하는 말이다.
출처 이란에서 터졌다는 52조원의 ‘잭팟’이 신기루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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