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사건으로 드러난 글로벌 기업 한국지사들의 수상한 맨 얼굴
[경향신문] 정용인 기자 | 입력 : 2016-05-15 12:47:00ㅣ수정 : 2016-05-15 13:57:38
“아무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는 때도 있었다. 1인시위인데도 쫓아내려고 한 적도 있었다. 오늘 이렇게 기자님들이 많이 오니까 잔디밭까지 내주니….” 발언하던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5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 앞에서는 옥시 본사 영국항의방문단의 귀국보고 기자회견이 열렸다. 항의방문단은 지난 5일 오전 11시(현지시각) 영국 런던에서 열린 옥시 본사 ‘RB(레킷벤키저)’의 주주총회장 입구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입장이 담긴 성명서를 배포하고, 기자회견 및 시위를 전개한 바 있다. 원정 항의방문을 다녀온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인 김덕종 씨는 “한국에서 가습기 피해에 대해 주주총회에 참석하러 온 주주 중에서도 ‘동감한다, 지지한다’고 밝힌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기자회견장에서 “이날 주총에 참석한 한 주주는 주총이 끝난 뒤 총회 자료집을 우리에게 전달하기도 했다”며 받아온 주총 자료집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RB의 CEO는 유가족을 만난 자리에서 “‘개인적으로 미안하다’고 밝혔지만 한국에 와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라는 우리의 의견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며 “주총 자료집에 보면 한국지사의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고 명백히 표기하고 있는데도 본사의 책임은 회피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전환했지만, 회사가 보고해야 하는 사항만 달라졌을 뿐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다.” 지난 2일, 여의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옥시레킷벤키저의 한국법인장을 맡은 아타울라시드 사프달이 한 말이다.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전환한 것이 가습기 살균제 관련 책임을 경감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사프달 법인장의 말은 사실일까. 옥시 관련 등기부 등본을 떼 봤다. 유한회사 옥시의 설립은 2011년 12월 12일이다. 등본에 나온 등기기록의 개설사유 및 연월일에는 이날 ‘주식회사 옥시레킷벤키저’를 조직 변경해서 설립했다고 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5월 2일 기자회견을 한 방글라데시 출신의 아타울라시드 사프달은 2014년 6월에 이 회사의 이사로 취임했다가 한 달 만에 대표이사를 맡는다. 현 대표는 5월 2일 기자회견에서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가습기 피해사건이 일어난 당시에는 결정권자가 아니었던 셈이다.
지난해 말 <주간경향>은 글로벌 IT기업들이 한국지사를 설립할 때 ‘자본금 1,000만 원짜리 유한회사 설립 패턴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취재한 적이 있다. 이들 회사 대표들의 상당수는 국제조세법 전공자이거나 파이낸스 전문가들이었다. 취재 당시 글로벌 IT 회사뿐 아니라 화장품이나 명품, 의류나 식품 관련 회사도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 것을 일부 발견했다. (▶주간경향 1159호 -[포커스]글로벌IT기업 ‘코리아 유한회사’의 미스터리)
옥시도 마찬가지였다. 2011년 유한회사로 조직변경을 했기 때문에 2011년 이후의 공시자료는 없다. 공시에 따르면 옥시는 2010년 2,438억 원의 연 매출을 기록했다. 그게 마지막 기록이다. 2001년 이후 옥시는 매년 200억 이상 흑자를 기록했다. 본사가 가져가는 영업이익은 어느 정도 규모일까. 공시자료를 통해 일부 추산은 가능하다. 공시에 밝혀진 옥시의 송금처는 조금 복잡하다. 레킷벤키저앤브이, 레킷벤키저싱가포르, 래킷앤콜먼 유한회사 등에 옥시는 주주 배당, 자문료, 로열티 등의 명목으로 송금했다. 2009년과 2010년 동안 자문료는 141억 원이었고, 로열티는 162억 원이었다. 영국 옥시 본사의 해명은 형식적으로는 맞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형용모순이 존재한다. 2011년 RB가 한국지사의 형태를 유한회사로 바꾼 것은 다시 말해 한국지사의 ‘책임’도 본사가 거둬간 것으로 된다. 영업이익금이나 배당금은 고스란히 본국으로 가져가면서 “가습기 사건은 지사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책임 부분은 선을 긋는 것이다. 이익만 취하고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앞서 거론한 것처럼 옥시가 유한회사로 조직변경을 한 것은 2011년 12월 12일이다. 옥시의 조직변경에 앞서 상법의 회사 관련 규정에서 특히 유한회사, 유한책임회사 등의 규정을 두고 중요한 변경이 있었다. 1,000만 원 이상으로 규정하던 자본금과 50인 이하로 제한하는 사원 수 규정이 폐지되고 지분양도도 자유롭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원총회 소집도 서면 통지뿐 아니라 사원의 동의를 받아 전자문서, 다시 말해 팩스나 이메일로도 통지를 발송할 수 있게 하는 등 요건이 간소화되었다.
원론적으로 유한회사는 소수의 사원이 자신이 출자한 금액만큼 책임을 지는 구조를 가진 회사다. 그러기 때문에 주식회사와는 달리 법적으로 외부 감사나 불특정 다수에게 회사 상황을 공시할 의무가 없다. ‘규제’로 인식되었던 유한회사 설립요건 관련 규정이 없어지면서 주식회사와 실질적 차이는 없으면서도 회사 실적 등을 공개하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다.
이 시기를 전후로 해 유한회사는 폭증했다. 금융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2010년 1만6999개에서 4년 만인 2014년 말을 기준으로 2만5290개로 늘어났다. 이들 중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전환한 회사의 수나 외국계 회사의 비중과 관련한 자료는 공개되지 않았다. 사실 유한회사가 주식회사로 전환하는 것도 간단치 않지만, 주식회사가 유한회사로 바꾸는 과정은 더 쉽지 않다. 상법에서 주식회사가 유한회사로 바꾸려면 주주의 만장일치, 사채 상환 완료, 채권자 보호절차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로벌 회사의 경우, 이런 통상의 상황에 해당하지 않는다. 익명을 요청한 한 글로벌 기업의 한국지사 핵심 임원 ㄱ 씨의 말이다. “글로벌 기업의 인사나 의사결정은 이미 주식회사 시절에서도 본사에서 내린다. 조직전환 자체도 어렵지 않다. 100% 지분출자로 이뤄진 회사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유한회사로 바뀌었다고 내부에서 봤을 때는 특별히 바뀐 것도 없다. 그저 ‘페이퍼 워크’일 뿐이니까. 오히려 공시자료를 만들 필요가 없어지니 더 편해진 측면도 있다.” ㄱ 씨에 따르면 옥시 한국법인장 사프달의 답변도 사실이다. “공시의무가 없어졌다고 해도 매출이나 비용을 속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시만 안 될 뿐, 자세한 실적은 다 국세청에 보고하게 되어 있다. 국세청이 들여다볼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매출에는 당연히 상대방이 존재하는데, 그쪽을 들여다보면 이쪽 실적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매출을 감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럴까.
문제는 국세청이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국내 거래에 한정된다는 점이다. 외국 본사와 한국지사 사이의 거래 경우, 예컨대 기술료나 배당·로열티, 자문료 등의 명목으로 본사에 송출되는 잉여금의 비율이나 산정에 대해서는 해당 기업이 보고하는 것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다. 세액공제나 법인세 같은 것을 제외하고 매출이나 손익의 규모 역시 회사가 주장하는 것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이들 기업의 세무정보는 국세청만 독점하고 있어 만약 기업과 세무공무원의 유착이 일어난다면 내부 제보가 나오지 않는 한 외부에 드러나기도 어렵다.
의문은 이것이다. 2011년 상법(회사편) 개정 당시 이런 ‘부작용’은 예견되지 않았던 걸까. <주간경향>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등록된 관련 회의록(289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4차 전체회의, 2차 본회의 등)을 검토했지만, 유한회사 전환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따지는 의원은 없었다. 당시 입법주체인 법무부가 밝힌 법개정 취지를 보면 개정 이유로 ‘유한회사에 대한 각종 제한규정 철폐’를 내세우며 이렇게 밝히고 있다. “(1)유한회사는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소규모 기업을 전제로 하고 있으나, 폐쇄적 운영규정들은 유한회사에 대한 각종 제한으로 작용하여 유한회사의 이용에 불편을 초래하고 있음….” 당시 법무부의 보도자료를 보면 “이번 개정법의 정신은 자유롭게 창의로운 기업 경영을 지원하고, 투명한 기업 경영으로 공정사회를 구현하며, 국제기준에 맞게 회사 제도를 선진화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있다”고 개정 취지를 밝히고 있다.
<주간경향>은 지난번 글로벌 IT기업에 이어 대표적인 글로벌 명품·식음료 기업의 한국지사 등기부 등본을 조사해봤다. 처음부터 유한회사로 설립한 에르메스를 제외하고 조사해본 10개 기업 모두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전환했다. 앞서 상법 개정(2011년 4월) 이후에 유한회사로 전환한 회사는 앞서 옥시 이외에도 루이뷔통 코리아, 구찌 코리아 등이었다. (표 참조)
이번에 조사한 10개 기업 대부분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후반까지 한국에 주식회사로 진출했다가 대부분 2000년대 중반 이후에 유한회사로 변경했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글로벌 기업들은 자기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한 상공회의소와 같은 모임을 통해 한국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노하우가 전파되는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다년간 ‘다국적 기업 감시’ 활동을 해온 권오인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팀장의 말이다. 종전 주식회사 형태로 한국에 진출해 있던 글로벌 기업들이 왜 2000년대 중·후반 이후 대거 유한회사로 전환했는지에 대한 답이다. 문제점은 정부 당국도 인지하고 있었다. 2014년 10월 금융위원회는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을 전부 개정하여 유한회사와 비영리조직을 포함해 외부감사를 확대하는 입법예고안을 내놓았다. 전부개정안을 내놓으며 금융위원회는 “유한회사, 비영리법인 등은 회계감독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고, 대형 비상장 주식회사는 다수 이해관계인 등 상장사에 준하는 회계 투명성이 요구되나, 소규모 비상장사 수준으로 규율되는 것이 문제”라고 밝히고 있다. 입법은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 3월 27일,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가 제동을 걸었다.
규개위는 유한회사를 외부감사 대상으로 편입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공시의무를 지게 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고 결론을 지었다. 권오인 팀장은 “규개위의 결정은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라며 “기업들과의 유착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주간경향>은 규개위의 회의록 검토를 통해 어떤 과정을 통해 그와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검토하려 했다. 규개위 회의록을 보면 유한회사 대표를 불러 의견을 청취한 기록만 간략하게 나와 있을 뿐, 규개위 위원들의 관련 토론이나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생략되어 있었다. 권 팀장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사실 법개정 자체는 어렵지 않다. 여소야대로 국회 상황이 바뀌었으니 야당이 앞장서서 외감법 몇몇 규정만 손을 보면 된다. 옥시 사건으로 글로벌 기업 유한회사 문제가 터졌으니 지금이 여론 환기의 적기이긴 한데, 20대 국회 개원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국회, 특히 야당이 이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당 채이배 당선인은 “아직 당 입장에서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한 적은 없으나 개인 의견이지만 논의를 통해 당론을 정하는 것은 필요하다”며 “사회 전반의 투명성 제고 측면에서나 기업에서도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측면에서 회사법상 유한회사나 유한책임회사뿐 아니라 법인격을 가진 단체라면 일정 규모 이상인 경우 외부감사를 받아 공시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출처 [단독공개] 옥시사건으로 드러난 글로벌 기업 한국지사들의 수상한 맨 얼굴
[경향신문] 정용인 기자 | 입력 : 2016-05-15 12:47:00ㅣ수정 : 2016-05-15 13:57:38
“아무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는 때도 있었다. 1인시위인데도 쫓아내려고 한 적도 있었다. 오늘 이렇게 기자님들이 많이 오니까 잔디밭까지 내주니….” 발언하던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5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 앞에서는 옥시 본사 영국항의방문단의 귀국보고 기자회견이 열렸다. 항의방문단은 지난 5일 오전 11시(현지시각) 영국 런던에서 열린 옥시 본사 ‘RB(레킷벤키저)’의 주주총회장 입구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입장이 담긴 성명서를 배포하고, 기자회견 및 시위를 전개한 바 있다. 원정 항의방문을 다녀온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인 김덕종 씨는 “한국에서 가습기 피해에 대해 주주총회에 참석하러 온 주주 중에서도 ‘동감한다, 지지한다’고 밝힌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기자회견장에서 “이날 주총에 참석한 한 주주는 주총이 끝난 뒤 총회 자료집을 우리에게 전달하기도 했다”며 받아온 주총 자료집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RB의 CEO는 유가족을 만난 자리에서 “‘개인적으로 미안하다’고 밝혔지만 한국에 와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라는 우리의 의견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며 “주총 자료집에 보면 한국지사의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고 명백히 표기하고 있는데도 본사의 책임은 회피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옥시 영국 본사 레킷벤키저를 항의 방문했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김덕종씨(오른쪽 다섯 번째)와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오른쪽 여섯 번째)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관계자들과 함께 5월 11일 서울 여의도 옥시 본사 앞에서 방문 결과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이익만 취하고 책임은 안 지는 옥시 본사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전환했지만, 회사가 보고해야 하는 사항만 달라졌을 뿐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다.” 지난 2일, 여의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옥시레킷벤키저의 한국법인장을 맡은 아타울라시드 사프달이 한 말이다.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전환한 것이 가습기 살균제 관련 책임을 경감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사프달 법인장의 말은 사실일까. 옥시 관련 등기부 등본을 떼 봤다. 유한회사 옥시의 설립은 2011년 12월 12일이다. 등본에 나온 등기기록의 개설사유 및 연월일에는 이날 ‘주식회사 옥시레킷벤키저’를 조직 변경해서 설립했다고 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5월 2일 기자회견을 한 방글라데시 출신의 아타울라시드 사프달은 2014년 6월에 이 회사의 이사로 취임했다가 한 달 만에 대표이사를 맡는다. 현 대표는 5월 2일 기자회견에서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가습기 피해사건이 일어난 당시에는 결정권자가 아니었던 셈이다.
지난해 말 <주간경향>은 글로벌 IT기업들이 한국지사를 설립할 때 ‘자본금 1,000만 원짜리 유한회사 설립 패턴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취재한 적이 있다. 이들 회사 대표들의 상당수는 국제조세법 전공자이거나 파이낸스 전문가들이었다. 취재 당시 글로벌 IT 회사뿐 아니라 화장품이나 명품, 의류나 식품 관련 회사도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 것을 일부 발견했다. (▶주간경향 1159호 -[포커스]글로벌IT기업 ‘코리아 유한회사’의 미스터리)
옥시도 마찬가지였다. 2011년 유한회사로 조직변경을 했기 때문에 2011년 이후의 공시자료는 없다. 공시에 따르면 옥시는 2010년 2,438억 원의 연 매출을 기록했다. 그게 마지막 기록이다. 2001년 이후 옥시는 매년 200억 이상 흑자를 기록했다. 본사가 가져가는 영업이익은 어느 정도 규모일까. 공시자료를 통해 일부 추산은 가능하다. 공시에 밝혀진 옥시의 송금처는 조금 복잡하다. 레킷벤키저앤브이, 레킷벤키저싱가포르, 래킷앤콜먼 유한회사 등에 옥시는 주주 배당, 자문료, 로열티 등의 명목으로 송금했다. 2009년과 2010년 동안 자문료는 141억 원이었고, 로열티는 162억 원이었다. 영국 옥시 본사의 해명은 형식적으로는 맞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형용모순이 존재한다. 2011년 RB가 한국지사의 형태를 유한회사로 바꾼 것은 다시 말해 한국지사의 ‘책임’도 본사가 거둬간 것으로 된다. 영업이익금이나 배당금은 고스란히 본국으로 가져가면서 “가습기 사건은 지사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책임 부분은 선을 긋는 것이다. 이익만 취하고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앞서 거론한 것처럼 옥시가 유한회사로 조직변경을 한 것은 2011년 12월 12일이다. 옥시의 조직변경에 앞서 상법의 회사 관련 규정에서 특히 유한회사, 유한책임회사 등의 규정을 두고 중요한 변경이 있었다. 1,000만 원 이상으로 규정하던 자본금과 50인 이하로 제한하는 사원 수 규정이 폐지되고 지분양도도 자유롭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원총회 소집도 서면 통지뿐 아니라 사원의 동의를 받아 전자문서, 다시 말해 팩스나 이메일로도 통지를 발송할 수 있게 하는 등 요건이 간소화되었다.
원론적으로 유한회사는 소수의 사원이 자신이 출자한 금액만큼 책임을 지는 구조를 가진 회사다. 그러기 때문에 주식회사와는 달리 법적으로 외부 감사나 불특정 다수에게 회사 상황을 공시할 의무가 없다. ‘규제’로 인식되었던 유한회사 설립요건 관련 규정이 없어지면서 주식회사와 실질적 차이는 없으면서도 회사 실적 등을 공개하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다.
루이비통코리아, 구찌코리아도 바꿔
이 시기를 전후로 해 유한회사는 폭증했다. 금융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2010년 1만6999개에서 4년 만인 2014년 말을 기준으로 2만5290개로 늘어났다. 이들 중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전환한 회사의 수나 외국계 회사의 비중과 관련한 자료는 공개되지 않았다. 사실 유한회사가 주식회사로 전환하는 것도 간단치 않지만, 주식회사가 유한회사로 바꾸는 과정은 더 쉽지 않다. 상법에서 주식회사가 유한회사로 바꾸려면 주주의 만장일치, 사채 상환 완료, 채권자 보호절차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로벌 회사의 경우, 이런 통상의 상황에 해당하지 않는다. 익명을 요청한 한 글로벌 기업의 한국지사 핵심 임원 ㄱ 씨의 말이다. “글로벌 기업의 인사나 의사결정은 이미 주식회사 시절에서도 본사에서 내린다. 조직전환 자체도 어렵지 않다. 100% 지분출자로 이뤄진 회사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유한회사로 바뀌었다고 내부에서 봤을 때는 특별히 바뀐 것도 없다. 그저 ‘페이퍼 워크’일 뿐이니까. 오히려 공시자료를 만들 필요가 없어지니 더 편해진 측면도 있다.” ㄱ 씨에 따르면 옥시 한국법인장 사프달의 답변도 사실이다. “공시의무가 없어졌다고 해도 매출이나 비용을 속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시만 안 될 뿐, 자세한 실적은 다 국세청에 보고하게 되어 있다. 국세청이 들여다볼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매출에는 당연히 상대방이 존재하는데, 그쪽을 들여다보면 이쪽 실적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매출을 감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럴까.
문제는 국세청이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국내 거래에 한정된다는 점이다. 외국 본사와 한국지사 사이의 거래 경우, 예컨대 기술료나 배당·로열티, 자문료 등의 명목으로 본사에 송출되는 잉여금의 비율이나 산정에 대해서는 해당 기업이 보고하는 것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다. 세액공제나 법인세 같은 것을 제외하고 매출이나 손익의 규모 역시 회사가 주장하는 것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이들 기업의 세무정보는 국세청만 독점하고 있어 만약 기업과 세무공무원의 유착이 일어난다면 내부 제보가 나오지 않는 한 외부에 드러나기도 어렵다.
의문은 이것이다. 2011년 상법(회사편) 개정 당시 이런 ‘부작용’은 예견되지 않았던 걸까. <주간경향>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등록된 관련 회의록(289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4차 전체회의, 2차 본회의 등)을 검토했지만, 유한회사 전환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따지는 의원은 없었다. 당시 입법주체인 법무부가 밝힌 법개정 취지를 보면 개정 이유로 ‘유한회사에 대한 각종 제한규정 철폐’를 내세우며 이렇게 밝히고 있다. “(1)유한회사는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소규모 기업을 전제로 하고 있으나, 폐쇄적 운영규정들은 유한회사에 대한 각종 제한으로 작용하여 유한회사의 이용에 불편을 초래하고 있음….” 당시 법무부의 보도자료를 보면 “이번 개정법의 정신은 자유롭게 창의로운 기업 경영을 지원하고, 투명한 기업 경영으로 공정사회를 구현하며, 국제기준에 맞게 회사 제도를 선진화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있다”고 개정 취지를 밝히고 있다.
규개위는 외감법 개정에 왜 제동을 걸었나
<주간경향>은 지난번 글로벌 IT기업에 이어 대표적인 글로벌 명품·식음료 기업의 한국지사 등기부 등본을 조사해봤다. 처음부터 유한회사로 설립한 에르메스를 제외하고 조사해본 10개 기업 모두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전환했다. 앞서 상법 개정(2011년 4월) 이후에 유한회사로 전환한 회사는 앞서 옥시 이외에도 루이뷔통 코리아, 구찌 코리아 등이었다. (표 참조)
▲ 주요 글로벌기업 한국지사 유한회사 전환 현황. (2016년 5월 13일 현재)
이번에 조사한 10개 기업 대부분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후반까지 한국에 주식회사로 진출했다가 대부분 2000년대 중반 이후에 유한회사로 변경했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글로벌 기업들은 자기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한 상공회의소와 같은 모임을 통해 한국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노하우가 전파되는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다년간 ‘다국적 기업 감시’ 활동을 해온 권오인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팀장의 말이다. 종전 주식회사 형태로 한국에 진출해 있던 글로벌 기업들이 왜 2000년대 중·후반 이후 대거 유한회사로 전환했는지에 대한 답이다. 문제점은 정부 당국도 인지하고 있었다. 2014년 10월 금융위원회는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을 전부 개정하여 유한회사와 비영리조직을 포함해 외부감사를 확대하는 입법예고안을 내놓았다. 전부개정안을 내놓으며 금융위원회는 “유한회사, 비영리법인 등은 회계감독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고, 대형 비상장 주식회사는 다수 이해관계인 등 상장사에 준하는 회계 투명성이 요구되나, 소규모 비상장사 수준으로 규율되는 것이 문제”라고 밝히고 있다. 입법은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 3월 27일,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가 제동을 걸었다.
규개위는 유한회사를 외부감사 대상으로 편입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공시의무를 지게 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고 결론을 지었다. 권오인 팀장은 “규개위의 결정은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라며 “기업들과의 유착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주간경향>은 규개위의 회의록 검토를 통해 어떤 과정을 통해 그와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검토하려 했다. 규개위 회의록을 보면 유한회사 대표를 불러 의견을 청취한 기록만 간략하게 나와 있을 뿐, 규개위 위원들의 관련 토론이나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생략되어 있었다. 권 팀장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사실 법개정 자체는 어렵지 않다. 여소야대로 국회 상황이 바뀌었으니 야당이 앞장서서 외감법 몇몇 규정만 손을 보면 된다. 옥시 사건으로 글로벌 기업 유한회사 문제가 터졌으니 지금이 여론 환기의 적기이긴 한데, 20대 국회 개원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국회, 특히 야당이 이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당 채이배 당선인은 “아직 당 입장에서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한 적은 없으나 개인 의견이지만 논의를 통해 당론을 정하는 것은 필요하다”며 “사회 전반의 투명성 제고 측면에서나 기업에서도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측면에서 회사법상 유한회사나 유한책임회사뿐 아니라 법인격을 가진 단체라면 일정 규모 이상인 경우 외부감사를 받아 공시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출처 [단독공개] 옥시사건으로 드러난 글로벌 기업 한국지사들의 수상한 맨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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