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수의`가 진짜 우리 전통… 일제 잔재 `삼베수의` 타파해야
[이데일리] 김병준 기자 | 입력시간 : 2016.05.18 12:00
[이데일리 김병준 기자]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사업 등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에 앞장섰던 고 김영삼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당시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으신 위안부 할머니들께서도 일본이 규정한 삼베수의를 입고 마지막 길을 가셨습니다.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전통 복식 전문가인 최연우 단국대학교 전통의상학과 교수의 말이다.
통계청이 지난 2월 말 공개한 ‘2015년 출생·사망통계 (잠정)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사망자 수는 27만5700명이다. 통계청은 이 수치가 사망원인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83년 이래 최대치라고 밝혔다. 인구 1,000명당 사망자 수를 일컫는 조사망률도 전년 대비 2.6% 증가한 5.4명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매년 수십만 명의 사람이 다양한 이유로 세상을 떠나고 있는 가운데 ‘죽음’을 다루는 장례식장, 상조회사 등 업체도 점점 기업화, 전문화되고 있다. 장례식장 및 관련 서비스업체는 전국적으로 3,078개(2014년 기준)에 달하며 업종 종사자도 2만2895명에 이른다. 엄연한 하나의 산업군으로 자리 잡은 이들은 현재 국내 장례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수많은 기업과 관계자가 집행하고 있는 장례문화의 많은 부분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최연우 단국대 교수에 따르면 삼베로 만든 수의, 영정 사진, 유족 완장과 리본, 영좌의 꽃장식 등 오늘날 국내 장례문화의 대부분이 잘못됐다. 이 모든 것은 우리 고유의 전통이 아닌 일제 강점기 당시의 치욕스러운 잔재라고 최연우 교수는 설명했다. 광복을 맞이한 지 어느덧 70여 년이 지났지만, 장례문화에서는 아직도 주권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수의 재료, 완장과 리본 등 오늘날 장례 모습은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의례준칙’을 따르고 있다. 민족문화 말살정책의 하나로 일본이 규정한 문화가 우리의 전통으로 오해받고 있는 현실이다. 현재 장례문화 대부분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충격적인 사실은 1474년 조선 성종이 만든 ‘국조오례의’ 등 옛 문헌 기록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일본이 격하시킨 잘못된 장례문화가 만연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 대부분이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옳든 그르든, 오랜 기간 지속하며 굳어진 ‘문화 현상’을 한순간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 일부의 노력만으로 전체를 계몽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이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타파해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교육과 캠페인이 정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잘못된 장례문화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산업적인 벽도 허물 수 있어야 한다. 전국에서 성업 중인 기존 수천 개 업체가 장기간 서비스해 온 시스템 자체를 일순간에 ‘초기화’하는 것은 그에 따른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잘못된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바꿔내야 한다. 하물며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뿌리 뽑기 위해 강요한 문화라면, 이를 계승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잘못을 알리고 바로잡기 위한 바람이 불고 있다. 그리고 최연우 교수가 그 선봉에 서 있다. 경기 용인시 수지구 단국대학교에서 최연우 교수를 직접 만나 현재 국내 장례문화 중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 최우선으로 되돌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 이를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들어봤다.
그렇다. 많은 부분이 잘못됐다. 우선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고인이 입는 삼베수의다. 사실 삼베 옷은 고인의 수의가 아닌 유가족이 입는 상복이다. 우리 조상은 고인과 혈연적으로 가까운 관계일수록 거친 삼베 상복을 입어 슬픔의 크기를 형상화했다. 하지만 고인에게 삼베수의를 입힌 사례는 전통 장례문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상주 등 유족이 팔에 차는 완장과 왼쪽 가슴에 다는 리본도 일제 강점기의 잔재다. 보통 넉 줄 완장은 맏상제가, 석 줄은 둘째 이하 아들이, 두 줄은 사위가, 한 줄은 형제·손자 등이 각각 차고 상을 치르는데 이것도 사실 우리의 전통이 아니다.
근조 화환을 상가에 세워놓는 풍습도 일제 강점기부터 생긴 근본 없는 문화다. 우리 조상은 상여에 장식하는 화려한 종이꽃 이외에는 상가에서 생화를 사용한 적 없다. 영좌 뒤를 장식하는 국화도 일본에서 유입된 문화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국화가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꽃이기 때문이다. 영좌 뒤에 병풍을 세우는 게 우리 조상의 일반적인 전통이다.
전통 복식 연구가로서 삼베수의가 전통으로 오해받고 있는 현실이 가장 안타깝다. 문화가 시대와 장소에 맞게끔 변하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편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으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닌 삼베수의는 분명히 타파해야 할 잘못된 문화다. 이런 연유로 삼베수의가 아닌 진짜 전통 수의를 알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과거 조상이 남긴 문헌과 기록은 물론 분묘에서 발굴된 유물 등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조선 성종 당시 ‘국조오례의’를 보면 우리 조상은 염습할 때 비단·명주 등 견직물을 수의로 사용했다. 소렴, 대렴의 경우에도 붉은 강사포나 면복 등 고급 견직물을 사용했다. 문헌에서 삼베는 유가족이 입는 상복의 소재로 제시돼 있다.
조선 시대 분묘 발굴 과정에서 비단, 무명, 모시로 만들어진 수의가 다수 발견됐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대마로 만든 삼베수의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사용되지 않은 옷이다. 당시 삼베로 수의를 제작하면 “오죽 가난하면 삼베수의겠는가”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고인에게 귀한 비단옷을 입히고 유족은 거친 삼베옷을 입은 채 모두가 모여 슬픔을 나누던 장례가 우리의 진짜 전통이다. 하지만 우가키 가즈시게 조선총독부 총독이 1934년 11월 10일 제정한 ‘의례준칙’ 이후 조선인은 비단과 명주 사용을 금지당했다. 그때부터 잘못된 삼베수의 문화가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의례준칙’에 담긴 수의 규정을 앞세운 조선총독부는 우리의 전통 장례문화를 격하시키려 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대한제국 황제와 관원의 복식을 자신들보다 낮은 등급으로 규정한 것과 유사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부모님을 여읜 ‘죄인’이라는 마음으로 상주가 입는 거친 삼베를 고인에게 입히는 수의 재료로 사용하면서 정신적인 열등감을 조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당시 일본이 우리 민족의 저항 의지를 꺾기 위해 삼베수의의 소재인 대마를 재배하게 했다는 분석도 있다. 대마 줄기는 삼베의 원료가 되지만 잎은 대마초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대부분이 장례식장에서 상조회사를 통해 상을 치르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삼베수의가 일제 강점기의 잔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는 장례식장이나 상조 기업 등 업체도 마찬가지다. 이 탓에 대다수 사람이 업체가 마련한 삼베수의로 고인을 모시고 있다.
더 큰 문제는 1976년 대마관리법 시행 이후 공급되고 있는 삼베수의 대부분이 중국산 저가 재료를 사용한 제품이라는 점이다. 안동에서 재배된 삼베로 만들어진 수의도 있지만 천만 원이 넘는 고가 제품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수요가 적은 편이다. 결국, 품질이 좋지 못한 중국산 삼베수의만 팔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돼 버렸다.
이 때문에 현재 국내 한복 산업은 큰 타격을 입은 상태다. 염색 공장, 직조 공장은 문을 닫은 지 오래됐으며 바느질, 자수, 문양 등을 다루고 만드는 장인도 대부분 한복 산업계를 떠났다.
하지만 잘못된 삼베수의를 대신할 전통 의상이 보급되기 시작한다면 무너져가는 한복 산업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의를 공급하기 위해 공장은 생산을 재개해야 할 것이고 전문가들도 다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잘못된 문화를 바로잡는 것만으로도 쓰러져가는 산업을 되살릴 수 있으며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품질은 물론 가격 면에서도 중국산 삼베수의를 대신할 전통 수의를 보급할 수 있다. 문화적으로도, 산업적으로도 삼베수의는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하나의 산업군을 형성하고 있는 상조업체의 기존 서비스를 무작정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복을 연구하고 있는 학자의 관점에서 그들과 공생할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존에 판매하던 삼베수의를 전통 수의로 교체함과 동시에 전통에 부합하는 삼베 상복을 개발해 상조업체에 공급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일단 ‘고인에게 삼베수의를 입히는 것은 잘못된 장례문화다’라는 사실을 대다수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하는 적절한 계몽 활동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가 교육과 캠페인에 대대적인 힘을 쏟아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언론과 방송 등 매체도 이런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
바쁜 현대인들 처지에서 전통 예법을 모두 준수하는 장례를 치르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 고인의 마지막 옷인 수의만큼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전통을 현대적으로 복원해 계승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통 수의 복원하기’를 최우선적 과제로 삼고 완성도 있는 수의를 만들기 위해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난해 단국대학교와 한국문화개발진흥이 산학협력사업의 목적으로 시작한 ‘전통에 바탕을 둔 신형 수의 디자인 개발’ 프로젝트 덕분에 올해 초 신형 전통수의를 완성할 수 있었다.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소장된 실제 수의 수천 점의 소재, 색, 디자인 등을 기반으로 1년여 동안 연구와 준비, 시행착오를 거쳐 신형 전통수의 제작을 마쳤다.
최근 상명대와 단국대에서 ‘땅으로 시집가는 날’이라는 주제로 신형 수의 발표회 겸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언론, 방송 등 매체를 통해서도 신형 수의를 홍보하고 있다.
전통 상조의 현대적 계승을 위해 전통의상 전문가, 서예가, 동·서양화가, 조각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했다. 신형 수의 개발을 목적으로 지난 1년간 문헌과 유물 고증을 통해 자료를 정리했다. 이를 기반으로 삽화, 패턴, 가봉 품 제작 등의 과정을 거친 뒤 본 품을 만들었다. 과정마다 수차례에서, 많게는 수십 차례까지 수정·보완 작업을 거쳤다.
광장시장, 남대문시장, 염색 집, 금박 집, 보석 집 등 온갖 현장을 발로 뛰며 원단의 종류, 무늬, 색은 물론 자수 실과 부속품 하나까지도 꼼꼼하게 선택했다. 모든 신형 수의는 전통의상학과, 전통복식연구소 소속 연구진의 수작업으로 제작됐다.
우리가 만들어 낸 신형 수의는 기존 저가 삼베수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역작이다. 품위 있고 세련된 디자인의 수의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국민 다수에게 보급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신형 전통수의는 가격대에 따라 특별주문형, 최고급형, 고급형 등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
우선 특별주문형 신형 수의의 이름은 ‘천상의 면류관’이다. 면류관은 과거 군주가 쓰던 최고 등급의 관모를 일컫는다. 우리 조상은 군주가 사망하면 천상에서도 영광과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관 안에 면류관을 넣었다는 기록이 있다.
두 번째 최고급형 전통 수의는 ‘영광의 규’라고 이름을 붙였다. 규는 군주가 성대한 의례를 행하기 위해 예복을 갖춰 입을 때 손에 드는 기물로 국가 통치의 권한을 상징하는 도구로 알려져 있다. 천하를 다스릴 권한을 상징하는 기물로 군주가 사망하면 관 속 중앙에 규를 두었다고 전해진다.
마지막으로 고급형은 ‘평안의 패옥’이라는 이름의 수의다. 패옥은 군주와 신하가 예복을 갖춰 입을 때 양쪽 허리에 차고 아래로 드리우던 장식이다. 덕을 상징하는 옥으로 만들어진 패옥은 군자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 군주가 사망하면 비단에 패옥 모양을 그린 뒤 망자의 양쪽 허리쯤에 두었다.
‘천상의 면류관’은 일반을 염두에 두고 기획한 제품이 아니다. 대통령이나 영부인 등을 생각하고 제작한 고가의 수의다. 반면 ‘영광의 규’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류층을 대상으로 만들었다.
사실 제작 과정에서 가장 많이 신경 쓴 것은 ‘평안의 패옥’이다. 잘못된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일부 사람이 아닌 보편적인 모두가 이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반이 공감할 수 있도록 판매가를 최대한 낮추면서도 전통을 계승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와 실패를 거듭한 뒤 완성한 수의다.
세 종류 모두 남성복과 여성복이 각각 마련됐다. 또한, 조상의 수의처럼 각 수의는 고인의 생전 직업을 유추할 수 있게 고안됐다. 색깔과 디자인은 물론 세부적인 항목까지 다르게 디자인됐다. 물론 고증에 따라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제작됐다.
현재 단국대학교 법인 직영 병원 장례식장에 신형 수의를 공급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또한 궁중문화상조(주)를 통해 일반에 판매하고 있다.
이번 신형 수의 제작 사업을 통해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우리의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뒤 산업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쳐왔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일상생활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소품이나 기념품 등 문화 상품에 초점이 맞춰진 사업이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위한 ‘상품’이 아닌, 우리가 실생활에서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전통 ‘제품’은 많지 않다. 이처럼 비경제적인 전통 사업이 늘 아쉬웠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능성을 봤다. 전통 수의를 제대로 연구하고 현대적으로 제품화한다면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례와 수의 산업이 차지하는 경제적 규모가 어느덧 작지 않은 수준까지 올라왔기 때문이다. 이번에 만든 신형 수의가 우리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전통 사업의 시발점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최근 영화 ‘귀향’을 봤다. 위안부 할머니를 소재로 한 내용으로 국내외에서 큰 화제가 됐던 영화다. 그런데 영화에서 표현된 망자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속에서 그들은 저승으로 가는 길에 입었던 마지막 옷을 그대로 착용하고 있었다.
고인 관점에서 수의는 어쩌면 ‘영생의 옷’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가족의 마음에 남아 있는 고인도 대부분 마지막 모습이지 않은가. 영화를 보고 난 뒤 수의 문화를 올바로 되돌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작업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예전에 진행했던 ‘옛 어른 의생활 조사’ 당시 들었던 “땅으로 시집간다”라는 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할머니가 혼례 때 입었던 원삼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가 수의로 입었다는 이야기였다. ‘영생의 옷’ 신형 수의를 제작하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이 아름다운 사연을 한시도 잊은 적 없다.
많은 연구진이 고증과 시행착오를 통해 완성한 신형 수의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고인이 부드럽고, 밝고, 따뜻한 신형 수의를 입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지막 길을 가시면 좋겠다. 남은 유가족 또한 신형 수의를 통해 조금이나마 아픔을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출처 `비단수의`가 진짜 우리 전통… 일제 잔재 `삼베수의` 타파해야
[이데일리] 김병준 기자 | 입력시간 : 2016.05.18 12:00
[이데일리 김병준 기자]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사업 등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에 앞장섰던 고 김영삼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당시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으신 위안부 할머니들께서도 일본이 규정한 삼베수의를 입고 마지막 길을 가셨습니다.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전통 복식 전문가인 최연우 단국대학교 전통의상학과 교수의 말이다.
통계청이 지난 2월 말 공개한 ‘2015년 출생·사망통계 (잠정)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사망자 수는 27만5700명이다. 통계청은 이 수치가 사망원인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83년 이래 최대치라고 밝혔다. 인구 1,000명당 사망자 수를 일컫는 조사망률도 전년 대비 2.6% 증가한 5.4명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매년 수십만 명의 사람이 다양한 이유로 세상을 떠나고 있는 가운데 ‘죽음’을 다루는 장례식장, 상조회사 등 업체도 점점 기업화, 전문화되고 있다. 장례식장 및 관련 서비스업체는 전국적으로 3,078개(2014년 기준)에 달하며 업종 종사자도 2만2895명에 이른다. 엄연한 하나의 산업군으로 자리 잡은 이들은 현재 국내 장례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수많은 기업과 관계자가 집행하고 있는 장례문화의 많은 부분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최연우 단국대 교수에 따르면 삼베로 만든 수의, 영정 사진, 유족 완장과 리본, 영좌의 꽃장식 등 오늘날 국내 장례문화의 대부분이 잘못됐다. 이 모든 것은 우리 고유의 전통이 아닌 일제 강점기 당시의 치욕스러운 잔재라고 최연우 교수는 설명했다. 광복을 맞이한 지 어느덧 70여 년이 지났지만, 장례문화에서는 아직도 주권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수의 재료, 완장과 리본 등 오늘날 장례 모습은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의례준칙’을 따르고 있다. 민족문화 말살정책의 하나로 일본이 규정한 문화가 우리의 전통으로 오해받고 있는 현실이다. 현재 장례문화 대부분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충격적인 사실은 1474년 조선 성종이 만든 ‘국조오례의’ 등 옛 문헌 기록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일본이 격하시킨 잘못된 장례문화가 만연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 대부분이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 특별주문형 신형수의 ‘천상의 면류관’을 소개하고 있는 최연우 단국대학교 전통의상학과 교수.
사실 옳든 그르든, 오랜 기간 지속하며 굳어진 ‘문화 현상’을 한순간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 일부의 노력만으로 전체를 계몽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이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타파해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교육과 캠페인이 정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잘못된 장례문화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산업적인 벽도 허물 수 있어야 한다. 전국에서 성업 중인 기존 수천 개 업체가 장기간 서비스해 온 시스템 자체를 일순간에 ‘초기화’하는 것은 그에 따른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잘못된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바꿔내야 한다. 하물며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뿌리 뽑기 위해 강요한 문화라면, 이를 계승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잘못을 알리고 바로잡기 위한 바람이 불고 있다. 그리고 최연우 교수가 그 선봉에 서 있다. 경기 용인시 수지구 단국대학교에서 최연우 교수를 직접 만나 현재 국내 장례문화 중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 최우선으로 되돌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 이를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들어봤다.
국내 장례문화 중 많은 부분이 잘못됐다고 들었다
그렇다. 많은 부분이 잘못됐다. 우선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고인이 입는 삼베수의다. 사실 삼베 옷은 고인의 수의가 아닌 유가족이 입는 상복이다. 우리 조상은 고인과 혈연적으로 가까운 관계일수록 거친 삼베 상복을 입어 슬픔의 크기를 형상화했다. 하지만 고인에게 삼베수의를 입힌 사례는 전통 장례문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상주 등 유족이 팔에 차는 완장과 왼쪽 가슴에 다는 리본도 일제 강점기의 잔재다. 보통 넉 줄 완장은 맏상제가, 석 줄은 둘째 이하 아들이, 두 줄은 사위가, 한 줄은 형제·손자 등이 각각 차고 상을 치르는데 이것도 사실 우리의 전통이 아니다.
근조 화환을 상가에 세워놓는 풍습도 일제 강점기부터 생긴 근본 없는 문화다. 우리 조상은 상여에 장식하는 화려한 종이꽃 이외에는 상가에서 생화를 사용한 적 없다. 영좌 뒤를 장식하는 국화도 일본에서 유입된 문화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국화가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꽃이기 때문이다. 영좌 뒤에 병풍을 세우는 게 우리 조상의 일반적인 전통이다.
전통 복식 연구가로서 삼베수의가 전통으로 오해받고 있는 현실이 가장 안타깝다. 문화가 시대와 장소에 맞게끔 변하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편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으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닌 삼베수의는 분명히 타파해야 할 잘못된 문화다. 이런 연유로 삼베수의가 아닌 진짜 전통 수의를 알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삼베수의가 잘못됐다는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나
과거 조상이 남긴 문헌과 기록은 물론 분묘에서 발굴된 유물 등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조선 성종 당시 ‘국조오례의’를 보면 우리 조상은 염습할 때 비단·명주 등 견직물을 수의로 사용했다. 소렴, 대렴의 경우에도 붉은 강사포나 면복 등 고급 견직물을 사용했다. 문헌에서 삼베는 유가족이 입는 상복의 소재로 제시돼 있다.
조선 시대 분묘 발굴 과정에서 비단, 무명, 모시로 만들어진 수의가 다수 발견됐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대마로 만든 삼베수의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사용되지 않은 옷이다. 당시 삼베로 수의를 제작하면 “오죽 가난하면 삼베수의겠는가”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수의가 이처럼 삼베 소재의 옷으로 변모하게 된 원인은
고인에게 귀한 비단옷을 입히고 유족은 거친 삼베옷을 입은 채 모두가 모여 슬픔을 나누던 장례가 우리의 진짜 전통이다. 하지만 우가키 가즈시게 조선총독부 총독이 1934년 11월 10일 제정한 ‘의례준칙’ 이후 조선인은 비단과 명주 사용을 금지당했다. 그때부터 잘못된 삼베수의 문화가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의례준칙’에 담긴 수의 규정을 앞세운 조선총독부는 우리의 전통 장례문화를 격하시키려 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대한제국 황제와 관원의 복식을 자신들보다 낮은 등급으로 규정한 것과 유사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부모님을 여읜 ‘죄인’이라는 마음으로 상주가 입는 거친 삼베를 고인에게 입히는 수의 재료로 사용하면서 정신적인 열등감을 조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당시 일본이 우리 민족의 저항 의지를 꺾기 위해 삼베수의의 소재인 대마를 재배하게 했다는 분석도 있다. 대마 줄기는 삼베의 원료가 되지만 잎은 대마초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삼베수의의 문제점을 분석해 본다면
요즘 대부분이 장례식장에서 상조회사를 통해 상을 치르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삼베수의가 일제 강점기의 잔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는 장례식장이나 상조 기업 등 업체도 마찬가지다. 이 탓에 대다수 사람이 업체가 마련한 삼베수의로 고인을 모시고 있다.
더 큰 문제는 1976년 대마관리법 시행 이후 공급되고 있는 삼베수의 대부분이 중국산 저가 재료를 사용한 제품이라는 점이다. 안동에서 재배된 삼베로 만들어진 수의도 있지만 천만 원이 넘는 고가 제품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수요가 적은 편이다. 결국, 품질이 좋지 못한 중국산 삼베수의만 팔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돼 버렸다.
이 때문에 현재 국내 한복 산업은 큰 타격을 입은 상태다. 염색 공장, 직조 공장은 문을 닫은 지 오래됐으며 바느질, 자수, 문양 등을 다루고 만드는 장인도 대부분 한복 산업계를 떠났다.
하지만 잘못된 삼베수의를 대신할 전통 의상이 보급되기 시작한다면 무너져가는 한복 산업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의를 공급하기 위해 공장은 생산을 재개해야 할 것이고 전문가들도 다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잘못된 문화를 바로잡는 것만으로도 쓰러져가는 산업을 되살릴 수 있으며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품질은 물론 가격 면에서도 중국산 삼베수의를 대신할 전통 수의를 보급할 수 있다. 문화적으로도, 산업적으로도 삼베수의는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하나의 산업군을 형성하고 있는 상조업체의 기존 서비스를 무작정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복을 연구하고 있는 학자의 관점에서 그들과 공생할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존에 판매하던 삼베수의를 전통 수의로 교체함과 동시에 전통에 부합하는 삼베 상복을 개발해 상조업체에 공급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잘못된 삼베수의 문화를 타파하기 위한 최우선 과제는
일단 ‘고인에게 삼베수의를 입히는 것은 잘못된 장례문화다’라는 사실을 대다수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하는 적절한 계몽 활동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가 교육과 캠페인에 대대적인 힘을 쏟아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언론과 방송 등 매체도 이런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
바쁜 현대인들 처지에서 전통 예법을 모두 준수하는 장례를 치르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 고인의 마지막 옷인 수의만큼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전통을 현대적으로 복원해 계승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통 수의 복원하기’를 최우선적 과제로 삼고 완성도 있는 수의를 만들기 위해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난해 단국대학교와 한국문화개발진흥이 산학협력사업의 목적으로 시작한 ‘전통에 바탕을 둔 신형 수의 디자인 개발’ 프로젝트 덕분에 올해 초 신형 전통수의를 완성할 수 있었다.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소장된 실제 수의 수천 점의 소재, 색, 디자인 등을 기반으로 1년여 동안 연구와 준비, 시행착오를 거쳐 신형 전통수의 제작을 마쳤다.
최근 상명대와 단국대에서 ‘땅으로 시집가는 날’이라는 주제로 신형 수의 발표회 겸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언론, 방송 등 매체를 통해서도 신형 수의를 홍보하고 있다.
신형 전통수의는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가
전통 상조의 현대적 계승을 위해 전통의상 전문가, 서예가, 동·서양화가, 조각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했다. 신형 수의 개발을 목적으로 지난 1년간 문헌과 유물 고증을 통해 자료를 정리했다. 이를 기반으로 삽화, 패턴, 가봉 품 제작 등의 과정을 거친 뒤 본 품을 만들었다. 과정마다 수차례에서, 많게는 수십 차례까지 수정·보완 작업을 거쳤다.
광장시장, 남대문시장, 염색 집, 금박 집, 보석 집 등 온갖 현장을 발로 뛰며 원단의 종류, 무늬, 색은 물론 자수 실과 부속품 하나까지도 꼼꼼하게 선택했다. 모든 신형 수의는 전통의상학과, 전통복식연구소 소속 연구진의 수작업으로 제작됐다.
우리가 만들어 낸 신형 수의는 기존 저가 삼베수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역작이다. 품위 있고 세련된 디자인의 수의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국민 다수에게 보급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신형 전통수의는 가격대에 따라 특별주문형, 최고급형, 고급형 등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
세 가지 신형 전통수의 각각의 특징은 무엇인가
우선 특별주문형 신형 수의의 이름은 ‘천상의 면류관’이다. 면류관은 과거 군주가 쓰던 최고 등급의 관모를 일컫는다. 우리 조상은 군주가 사망하면 천상에서도 영광과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관 안에 면류관을 넣었다는 기록이 있다.
두 번째 최고급형 전통 수의는 ‘영광의 규’라고 이름을 붙였다. 규는 군주가 성대한 의례를 행하기 위해 예복을 갖춰 입을 때 손에 드는 기물로 국가 통치의 권한을 상징하는 도구로 알려져 있다. 천하를 다스릴 권한을 상징하는 기물로 군주가 사망하면 관 속 중앙에 규를 두었다고 전해진다.
마지막으로 고급형은 ‘평안의 패옥’이라는 이름의 수의다. 패옥은 군주와 신하가 예복을 갖춰 입을 때 양쪽 허리에 차고 아래로 드리우던 장식이다. 덕을 상징하는 옥으로 만들어진 패옥은 군자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 군주가 사망하면 비단에 패옥 모양을 그린 뒤 망자의 양쪽 허리쯤에 두었다.
신형 전통수의 종류를 가격대별로 나눈 이유는
‘천상의 면류관’은 일반을 염두에 두고 기획한 제품이 아니다. 대통령이나 영부인 등을 생각하고 제작한 고가의 수의다. 반면 ‘영광의 규’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류층을 대상으로 만들었다.
사실 제작 과정에서 가장 많이 신경 쓴 것은 ‘평안의 패옥’이다. 잘못된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일부 사람이 아닌 보편적인 모두가 이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반이 공감할 수 있도록 판매가를 최대한 낮추면서도 전통을 계승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와 실패를 거듭한 뒤 완성한 수의다.
세 종류 모두 남성복과 여성복이 각각 마련됐다. 또한, 조상의 수의처럼 각 수의는 고인의 생전 직업을 유추할 수 있게 고안됐다. 색깔과 디자인은 물론 세부적인 항목까지 다르게 디자인됐다. 물론 고증에 따라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제작됐다.
현재 단국대학교 법인 직영 병원 장례식장에 신형 수의를 공급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또한 궁중문화상조(주)를 통해 일반에 판매하고 있다.
신형 전통수의를 제작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이번 신형 수의 제작 사업을 통해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우리의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뒤 산업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쳐왔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일상생활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소품이나 기념품 등 문화 상품에 초점이 맞춰진 사업이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위한 ‘상품’이 아닌, 우리가 실생활에서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전통 ‘제품’은 많지 않다. 이처럼 비경제적인 전통 사업이 늘 아쉬웠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능성을 봤다. 전통 수의를 제대로 연구하고 현대적으로 제품화한다면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례와 수의 산업이 차지하는 경제적 규모가 어느덧 작지 않은 수준까지 올라왔기 때문이다. 이번에 만든 신형 수의가 우리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전통 사업의 시발점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일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근 영화 ‘귀향’을 봤다. 위안부 할머니를 소재로 한 내용으로 국내외에서 큰 화제가 됐던 영화다. 그런데 영화에서 표현된 망자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속에서 그들은 저승으로 가는 길에 입었던 마지막 옷을 그대로 착용하고 있었다.
고인 관점에서 수의는 어쩌면 ‘영생의 옷’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가족의 마음에 남아 있는 고인도 대부분 마지막 모습이지 않은가. 영화를 보고 난 뒤 수의 문화를 올바로 되돌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작업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예전에 진행했던 ‘옛 어른 의생활 조사’ 당시 들었던 “땅으로 시집간다”라는 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할머니가 혼례 때 입었던 원삼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가 수의로 입었다는 이야기였다. ‘영생의 옷’ 신형 수의를 제작하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이 아름다운 사연을 한시도 잊은 적 없다.
많은 연구진이 고증과 시행착오를 통해 완성한 신형 수의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고인이 부드럽고, 밝고, 따뜻한 신형 수의를 입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지막 길을 가시면 좋겠다. 남은 유가족 또한 신형 수의를 통해 조금이나마 아픔을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출처 `비단수의`가 진짜 우리 전통… 일제 잔재 `삼베수의` 타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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